제47호 2016년 4월호 살림,살림

[ 지리산 동네부엌-수수밥·소고기미역국·잡채·불고기 ]

외식과 비교할 수 없는 생일상

글 고은정 _ 사진 류관희

생일이라고 패밀리레스토랑에 예약하고 친구들을 불러 밥을 사 먹는 세상에 산다. 돌아보니 나도 몇 번인가는 딸아이 생일에 그랬다. 문득 나중에 딸아이가 엄마의 생일상을 어떻게 기억할지 두려웠다. 내 생일에 어머니는 단 한 번도 밖에서 음식을 사 주지 않았다. 사실 내가 어린아이였을 때는 백일이나 돌잔치 외에는 생일잔치라는 말조차 없었다. 나이를 먹으니 내 생일과 가족의 생일에 마음과 시간을 내서 생일상을 차리고 싶다. 그렇게 상을 차려 가족 모두 둘러앉아 여유롭게 밥을 먹으며 훗날 기억에 남길 추억을 만들고 싶어서다.

 

 

열세 살까지 챙겨 먹는 수수밥
어머니는 내가 열세 살이 될 때까지 생일마다 미역국을 끓이고 수수팥떡을 해 주셨다. 미역국은 인덕이 있으라고 끓여 주는 것이고, 수수팥떡은 나쁜 귀신이 나를 해치지 못하도록 지켜 주기에 꼭 먹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동지에 붉은 팥죽을 쑤어 먹으면서 역질귀신을 쫓고자 했던 것처럼 수수와 팥의 붉은색이 귀신을 쫓는다고 믿는 어머니는 수수팔떡을 해 주며 신앙과도 같은 자식 사랑의 마음을 표현하셨다. 결혼하고 처음 맞는 남편의 생일에 어머니가 오셨다. 나는 미역국을 끓이고 고기를 구워 상을 차렸고 어머니는 붉은 수수팥떡과 잡채를 해 오셨다. 그리고 앞으로 남편의 생일에 수수팥떡을 하기 어려우면 수수밥이라도 해 주라고 당부하셨다. 그래야 남편이 건강하고 하는 일마다 잘된다는 것이었다. 딸아이 돌 때 어머니는 또 수수팥떡을 해 오셨다. 그리고 딸아이가 열세 살이 될 때까지 아무리 힘들더라도 수수팥떡을 해 주라고 당부했다. 떡을 하기 어려우면 수수밥으로 대신 해도 좋다고 하셨다. 그래야 아이가 건강하게 잘 크고 훌륭한 사람으로 자란다는 것이었다. 곧 내 생일이 돌아온다. 그날 나는 어머니의 당부대로 수수밥을 해 먹을 것이다. 나를 낳아 주신 어머니께 감사드리고 남은 삶이 평탄하기를 바라는 기원을 수수밥에 담을 것이다.

 

산후선약인 미역으로 끓이는 생일국
지난달 남편의 생일이 지났고 며칠 후면 내 생일이다. 미역국은 생일 음식들 중 빠져서는 안 되는 가장 중요한 음식 중 하나이다. 어머니의 표현을 빌면 미역국을 끓여 먹어야 인덕이 있어 사회생활을 하는데 어려움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평소에도 나는 미역국을 열심히 끓여 먹는다. 미역을 씹을 때 느껴지는 식감도 좋고 바다를 연상하게 하는 비릿한 향도 좋기 때문이다. 어려서 살기 어려웠던 탓에 소고기를 일상적으로 먹지 못했는데 미역국을 먹을 때만은 소고기가 내는 국물 맛을 탐닉할 수 있었다. 그 습관이 굳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전복을 양식하는 시댁 어른이 가끔 집으로 살아 있는 전복을 보내 주신다. 바다에서 바로 채취한 미역 위에 살아 있는 전복을 얹어서 보내 주신다. 전복은 다른 먹이는 먹지 않고 오로지 신선한 미역만을 먹으면서 자라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가 고급 음식 재료로 생각하고 몸을 보하기 위해서 먹는 전복의 유일한 먹이가 미역이라는 이야기는 그만큼 미역이 생명을 키우고 살리는 데 좋다는 것이다. 인덕은 ‘자기하기 나름’이므로 생일에 미역국을 끓여 먹지 않는다고 인덕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생일엔 미역국을 계속 끓여 먹을 것이다. 나를 낳고 미역국을 드셨을 어머니를 위한 일이기도 하고 그나마도 안 해 먹으면 삶이 너무 쓸쓸할 것이라 계속해서 미역국을 끓일 것이다.

 

 

지리산 동네부엌에 사람들이 모였다. 잡채에 들어갈 시금치를 손질하는 김에 봄나물들도 손질했다. 먹는 건 금방이라도 손질하는 데 정성이 든다. 그래도 먹으면서 기뻐할 이들을 생각하니 힘이 난다.

 

 

긴 당면 가닥처럼 명줄 길게 살라고 먹는 잡채
생일이 되면 잡채 생각이 난다. 어머니가 식구들 생일에만 잡채를 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 집에서는 일 년에 가족의 횟수만큼만 잡채를 먹을 수 있었다. 넉넉하게 살지 못해서 다른 재료에 비해 쫄깃한 당면발을 잔뜩 넣었는데 당면발이 매끄럽게 목을 타고 넘어가면서 달콤하고 간간한 맛을 내니 잡채를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채소가 몸에 좋으니 영양을 맞춘답시고 이제 당면을 적게 넣어 보지만 좀처럼 어린 시절 생일에만 먹던 그 잡채의 맛이 나지 않는다.
생일에 잡채를 먹는 건 긴 당면 가닥처럼 명줄이 길게 오래오래 살라는 의미이다. 시장에 나가 밀국수를 사다가 만들어 주어도 그만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여러 가지 재료를 하나하나 따로 볶아 식힌 뒤 오래된 집간장으로 간을 하셨다. 간장의 감칠맛에 입안에 저절로 침이 고였다. 거기에 귀한 참기름을 듬뿍 넣고 설탕으로 단맛을 더해 달달하고 고소한 잡채를 듬뿍 담아 한접시 상에 올려놓으셨다.
잡채는 상에 앉아서 먹는 것보다 무치시는 어머니 옆에서 징징거리며 졸라대서 얻어 먹는 게 더 맛있었다. 고개를 젖히고 벌린 입에 어머니가 양념 묻은 손으로 넣어 주는 그 잡채가 얼마나 맛있었던지. 얼른 밥상을 받고 싶어 마음이 바빴다.
누군가 생일을 맞았는데도 유독 이래저래 귀찮고 피곤한 날이 있다. 그럴 땐 소면을 삶아 집에서 담근 간장과 들기름에 살짝 무쳐 먹는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 가는 소면이 맛있기는 하다. 하지만 곧 후회한다. 마음먹으면 언제든 해 먹을 수 있는 국수라니. 생일이 아니더라도 곧 잡채를 한번 해 먹겠다고 다짐한다. 어머니가 그러셨듯이 나도 가족의 생일엔 가능하면 모여 앉아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면서 추억을 만들겠다고 각오를 다지게 된다.

 

길게 채 썬 무가 무쳐 같이 나오는 불고기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군인 아버지가 서울로 배정을 받아 가족이 이사를 왔다. 농촌에 살 때와는 달리 어머니 활동이 조금 달라졌다. 대표적인 것이 어머니가 계를 하면서 동네 아주머니들과 멀리 외출하시는 날이 생긴 것이다. 서울 정릉의 안쪽에 살던 우리가 어머니를 따라 지금의 돈암동 어디쯤으로 나들이를 다니는 행사가 시작되었다고나 할까. 계를 타는 사람이 계원들에게 밥을 사는데 주로 서울식 불고기를 먹으러 갔다. 길게 채 썬 무가 하얗게 무쳐져 같이 나오는 불고기를 먹을 수 있는 유일한 날이었다. 아껴 먹는 고기는 양에 차지 않았지만, 남은 국물에 밥을 비벼 꿀꺽 삼키면 꿀맛이었다.
그렇게 잘 먹는 자식들이 안쓰러웠는지 어머니는 가족들이 생일을 맞으면 식당에서 먹은 불고기의 맛을 흉내 내어 생일상을 차려 주셨다. 지금도 가끔 그 시절 불고기 맛이 생각난다. 서울에 가면 구멍이 뚫린 불판에 얹어 구워 먹는 서울식 불고기집을 찾아가 먹어 본다. 그러다 어느 날 나는 그 불고기판을 하나 샀다. 옛날 기분을 내면서 밥을 먹기 위해. 그러다 그것도 사치라 그림처럼 모셔 두고 프라이팬 위에 고기를 굽는다. 어머니가 차려 주셨던 것처럼 나도 가족들의 생일마다 어머니의 불고기 맛을 흉내 내서 밥상을 차린다.
소고기는 아버지의 밥상에나 가끔 올랐다. 아이들인 우리들은 병이 나서 심하게 앓고 난 다음에라야 몸을 추스르라는 뜻으로 끓여 주시던 죽에서야 소고기를 볼 수 있었다. 끼니 걱정을 했던 때였으니만큼 투정 부릴 처지가 아니었다. 일 년에 겨우 몇 번 먹을 수 있었으니 소고기는 자주 먹기에 만만하지 않은 식재료이다. 여전히 우리 집에서는 가족의 생일이 되어서야 미역국과 불고기에 소고기를 쓴다. 못 살던 시절의 추억이 무에 그리 대단하냐고 하겠지만 나는 그때의 추억을 잊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남편이나 딸아이의 생일이 돌아오면 여전히 소고기를 사다가 볶고 있을 것이다.

 

 

수수밥

재료
쌀 2컵, 찰수수 1/2컵, 물 2.6컵, 소금 약간
만드는 법
1 쌀을 씻는다.
① 쌀에 물을 붓고 대충 씻는다는 기분으로 휘휘 저어 물을 버린다.
② 박박 문지르지 말고 양 손바닥을 붙여 비비면서 꼼꼼하게 씻는다.
③ 2~3번 더 휘휘 저으면서 씻어 체에 밭쳐 30분간 불린다.
2 수수를 같은 방법으로 씻는다.
3 압력밥솥에 분량의 물과 수수를 넣고 30분간 불린다.
4 압력밥솥을 불에 올리고 뚜껑을 연 채로 센 불로 끓인다.
5 물이 끓기 시작하면 불린 쌀과 소금을 넣고 뚜껑을 덮어 밥을 한다.

 

 

소고기미역국

재료
미역 25g, 간장 1~2큰술, 들기름 1큰술, 소금 약간, 소고기 양지머리 200g, 다시마 1장, 물 2L
만드는 법
1 물 2L에 소고기와 다시마를 넣고 센 불로 끓인다.
2 물이 끓기 시작하면 약한 불을 줄이고 30분간 국물을 낸다.
3 미역을 물에 30분간 불린 후 깨끗이 씻어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다.
4 소고기 국물에서 고기를 꺼내 먹기 좋은 크기로 썬다.
5 소고기 국물을 여과지에 한 번 거른다.
6 냄비에 미역, 썬 소고기, 간장, 소고기 국물을 넣고 10분간은 센 불로 끓이고 불을 줄인 후 약 20~30분간 더 끓인다.
7 미역국이 다 끓으면 모자라는 간은 소금으로 하고 불을 끈다. 간장으로만 간을 하면 색이 검어져 식감이 떨어지므로 소금을 같이 쓴다.
※ 소고기로 국물내기가 번거로우면 먹기 좋은 크기로 썬 소고기와 미역을 들기름과 간장에 볶다가 물을 붓고 같은 방법으로 끓여도 된다.

 

 

불고기

재료
불고기용 소고기 600g, 양파 1개, 대파 1뿌리
불고기 양념 : 맛간장 4~5큰술, 들기름 1큰술, 후추 약간

만드는 법
1 소고기에 분량의 맛간장과 약간의 후추, 들기름 1큰술을 넣고 고루 버무린다.
2 양파의 껍질을 벗기고 씻어 채 썬다.
3 대파는 손질하여 깨끗하게 씻고 길이 4-5cm로 썰어 반을 잘라 놓는다.
4 달군 둥근 팬에 버무려 둔 소고기를 넣고 넓게 펴면서 국물이 생기지 않게 빠르게 볶다가 반쯤 익으면 썰어 놓은 양파를 넣고 볶는다.
5 고기와 양파가 거의 익으면 대파를 넣고 한 번 더 익혀 담아낸다.

 

 

잡채

재료
소고기 200g, 표고버섯 6장, 목이버섯 10개, 느타리버섯 50g, 시금치 100g, 양파 1개, 당근 1/2개, 당면 200g, 현미유, 간장, 들기름, 통깨
고기양념 : 간장 2큰술, 설탕 1큰술, 다진 파 1큰술, 마늘 1작은술, 참기름 1큰술, 후추 약간
당면양념 : 간장 1~2큰술, 설탕 1큰술, 참기름 2큰술
만드는 법
1 당면은 따뜻한 물에 담가 둔다. 2 소고기는 분량의 양념에 재워 둔다.
3 표고버섯과 목이버섯은 각각 따뜻한 물에 담가 불린다.
4 시금치는 다듬어 씻은 뒤 끓는 물에 소금을 넣고 살짝 데쳐 찬물에 헹군 후 꼭 짜서 물기를 뺀다.
5 양파는 껍질을 벗겨 채 썰고 당근도 깨끗이 손질해 채 썬다.
6 시금치는 들기름과 간장에 무친다.
7 프라이팬에 현미유를 두르고 양파와 당근을 각각 따로 볶아 넓은 그릇에서 식힌다. 볶을 때 소금으로 간 한다.
8 달군 프라이팬에 소고기를 넣고 물기가 약간 있게 볶는다. 볶은 소고기에 표고버섯, 목이버섯, 느타리버섯을 넣고 물기 없이 볶아 넓은 그릇에 담아 식힌다.
9 불린 당면을 불에 올려 끓기 시작 후 10분 정도 삶는다. 삶은 당면을 건져 둥근 팬에 넣고 당면 양념을 넣고 물기 없이 볶아 한 김 식힌다.
10 모든 재료를 함께 넣어 골고루 버무린다. 모자란 간은 간장과 설탕으로 하고 통깨로 마무리한다.

 

 

↘ 고은정 님은 약선식생활연구센터 대표로, 우리 장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라면 어디든 달려가고 있습니다. 《장 나와라 뚝딱》과 《집 주변에서 찾는 음식보약》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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