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5호 2016년 2월호 살림,살림

[ 협동의 힘-한푼 두푼 저축해 스스로 돕는 자활공제조합 ‘해밀나눔금고’ ]

사람이 담보, 협동이 신용

글 \ 사진 우미숙 편집위원

한 달 치 생활비가 빠듯해 생계에 어려움을 겪을 땐 믿고 기댈 곳이 정말 필요하다.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은 큰돈이 필요할 때 제도권 금융기관의 벽을 넘기가 힘겹다. 단지 어린아이 병원비로 쓸 몇 만 원, 며칠 사용할 교통비나 쌀값 몇 푼이 빠듯할 때도 있다. 절실하고 급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밀나눔금고가 만들어졌다. 자활기관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매달 돈을 모으고, 생계나 의료, 자녀교육 등으로 돈이 급히 필요할 때 빌리는 자활공제조합이다.

 

조합원들은 동아리활동을 통해 교류한다. 이를 통해 생활에서도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는다. 텃밭동아리는 텃밭에서 오이, 고추, 상추, 아욱, 호박, 토마토, 고구마, 토란 등을 같이 심고 기르고 함께 밥상을 차리기도 한다.

 

 

도장이나 통장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 신용이 생기다
“하루 이틀 쓸 교통비가 없어서 일하러 가기 어려운 지경이에요. 긴급 대출 10만 원만 부탁해요.”
어느 날 자활기관에서 활동하는 이가 해밀나눔금고를 찾아왔다. 당장 돈이 필요한데 어디에서 구할지 몰라 찾아왔다고. 그는 1계좌 5천 원을 내고 조합원으로 가입하고 긴급대출로 10만 원을 받아 갔다.
이처럼 당장 교통비가 없어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기초생활보장수급자의 경우, 자활기관에서 활동하고 받는 급여가 최저생계비의 80% 수준이다. 노동자가 아닌 자활을 돕는 기관에서 훈련원 자격으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밀나눔금고를 만들자고 논의하기 시작한 것은 2007년이다. 성남지역에서 자활근로사업단을 운영하던 몇몇 핵심 활동가들은 생활고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계’ 형태의 공제조합을 만들기로 마음을 모았다. 논의 단계부터 참여했던 박진만 이사장은 “도장과 통장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은 은행 거래 꿈을 꿀 수 없다”면서 제도권 금융의 높은 벽을 스스로 넘는 길밖에 없었다고 회고한다.
2008년 4월, 해밀나눔금고는 ‘해밀협동조합’이라는 이름으로 137명의 조합원이 모여 창단했다. 출자금은 1계좌 5천 원부터 10계좌 5만 원까지 자유롭게 냈으며, 바자회를 열어 수익금을 보태 총출자금 2천만 원으로 시작했다.
협동조합기본법 제정 이후 협동조합 법인으로 등록이 되지 않은 조직은 ‘협동조합’이라는 이름을 쓸 수 없어 2015년 6월 이사회에서 해밀나눔금고로 이름을 바꿨고, 2016년 총회 승인을 앞두고 있다.
현재 조합원은 250명, 총자본금이 2억 4천만 원으로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조합원은 성남지역 자활기관에서 활동하는 이들로 기초생활보장수급자와 차상위계층이 대부분이며, 법적 조직이 아니어도 자활기관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에 대한 믿음으로 출자하고 이용한다.
해밀나눔금고의 조합원이 되려면 매달 5천 원(1계좌) 이상 출자해야 한다. 이들은 긴급대출이나 소액대출을 받을 수 있다. 한도는 최고 20만 원까지이며, 연 3%의 대출이자를 내야 한다. 출자금 액수에 비례해 더 많은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이를테면 본인 출자가 50만 원 이상이면, 100만 원, 100만 원 이상일 때, 150만 원, 150만 원 출자금이 있다면 200만 원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이때도 대출이자는 3%다.
상환율은 거의 100%다. 대출 기간이 보통 10개월에서 20개월, 긴급대출이나 소액대출은 3개월 안에 상환해야 하는데 거의 약속을 잘 지킨다. 가끔 상환기일을 넘기는 사례도 있지만 몇 달 기다리면 어김없이 연락을 해 온다.
해밀나눔금고는 무담보소액대부사업 외에 수익사업으로 전국공제협동조합연합회와 함께 생활재공동구매사업과 보험연결사업을 하며, 매년 한 번 지역 사회적경제에 참여하는 사람들과 함께 후원행사를 연다. 수익사업에서 나온 기금은 동아리활동이나 장학금으로 지원한다. 지난해 200만 원의 장학금으로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지원했다.
해밀나눔금고 조합원들은 동아리활동을 통해 교류한다. 관계를 안 맺는 사람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기 마련이라는 세상 이치를 볼 때 생활에서도 긴밀한 유대관계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동아리활동을 적극 권유한다. 텃밭·노래·영화·등산 등의 모임이 느슨하게나마 이뤄지고 있다.

 

공제조합이지만 자본 안정성 중요
최근 공제조합이 협동조합이라는 이름을 내려놓는 과정에서 법인화 논의가 있었다. 하지만 제도적으로 한계가 많아 선뜻 무엇을 선택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가장 근접하게 얘기되는 것이 사회적협동조합 법인화다. 공제사업이 가능한 법인이지만 주 사업이 별도로 있어야 하는 현실적 한계에 부닥쳐 진전하지 못했다.
“그냥 이대로가 좋다. 제도 안에 들어가면 행정절차도 많고 법적 제약도 따르기 마련이다. 만일 신용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법외조직이 더 나을 수 있다.” 김현숙 사무국장은 법인화가 실질적인 대안은 되지 않는다고 잘라 말한다.
아무리 신용이 필요 없는 공제조합이지만 자본 안전성은 중요하다. 그래서 해밀나눔금고는 출자금 대출 거래를 자활기관 통장을 사용한다. 전자장부도 있지만 수기장부를 꼼꼼하게 기록하는 것도 자금운영의 투명성과 안전을 위한 조치다. 자금은 제도권 금융기관에 맡기며, 이율이 높다는 제2금융권 거래는 하지 않는다. 이 정도라면 자활기관에 대한 신뢰, 사람에 대한 믿음이 든든해 법외기관으로 있다 하더라도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투명하고 안전한 자금관리를 위해 수기장부를 꼼꼼하게 작성하고 있다.

 

 

매달 천 원으로 200명 의료비를 지원하는 ‘천 원의 행복’
올해 전국자활공제협동조합연합회에서 4천 명을 목표로 ‘천 원의 행복’을 추진할 계획이다. 해밀나눔금고에서는 150명 정도 참여하기로 했다. 출자금은 1회 1만 원을 내며, 매달 1천 원의 기금을 낸다. 4천 명이 모여 8천800만 원을 모으면 200명에게 의료 혜택을 줄 수 있다는 기획이다. 즉 한 사람당 생애 한 번 5~30만 원의 의료비를 지원 받을 수 있다. 상호부조사업인 공제조합활동이 가장 취약한 것이 의료비 해결이다. 특히 기초생활보장수급자나 차상위계층은 특별히 의료급여가 면제되나 비급여항목이 늘어나면서 의료비 부담이 동시에 늘어났다. 비록 얼마 되지 않은 금액이지만 공제조합으로서 할 수 있는 만큼 해 보자는 의지로 시작한 일이다.
한 사람이 매달 5천 원, 5만 원, 10만 원을 냄으로써 자신과 다른 사람의 삶을 살려낼 수 있다니 대단하다. 혼자 힘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이를 계기로 엮어지는 사람 관계망이 세상살이가 어려운 사람들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해밀나눔금고가 보여 준다.

 

 

해밀나눔금고
해밀은 ‘비 온 뒤 맑게 갠 하늘’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조합원이 되어 그런 세상을 함께 만들어도 좋겠다. 해밀나눔금고의 목적에 동의하는 일반시민 및 법인과 단체, 성남만남지역자활센터 실무자와 주민 누구나 조합원이 될 수 있다. 1좌 5천 원 이상의 출자금을 내고 이사회 승인을 거친다. 일반대출을 받으려면 6개월, 10좌수 이상 출자를 해야 한다.
문의 : mannamhouse.or.kr, 031-745-9851

 

 

 

 

↘ 우미숙 님은 한살림성남용인생협에서 활동했고 현재 성남사회적경제네트워크 대표로 지역공동체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만은 알고 먹자》, 《협동조합 도시, 볼로냐를 가다》(공저), 《공동체도시》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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