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호 2016년 1월호 살림,살림

[ 이런 전시 저런 공연 ]

예술, 현실 비판과 성찰도 매력적으로

글 안태호 편집위원

 

 

윌리엄 켄트리지의 작품 <사랑이 충만한 캐스피어(Casspirs Full of Love), 1989>. 캐스피어는 남아프리카에서 반란군을 진압할 때 사용된 무장 장갑차를 말한다. 잔혹한 무기에 '사랑이 충만한'이라는 역설적인 제목이 붙인 작품 속에는 당시의 사회상이 반영되어 있다. 이미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윌리엄 켄트리지의 전시를 준비한단 얘길 듣고 살짝 두근거렸다. 6년 전 만났던 작품의 여운이 여전했던 까닭이다. 전시명은 <주변적 고찰>. 남아공 아파르트헤이트 한복판에서 흑백차별에 저항하는 백인의 복잡한 정체성과 함께 정치학·미술 및 연극·마임·TV를 아우르는 작가의 폭넓은 전공과 직업은 예술의 폭이 확장되고 진화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의 출세작인 <망명 중인 펠릭스>를 비롯한 목탄 애니메이션 작품들은 남아공의 현실비판을 넘어 현대사회에 대한 매력적인 성찰을 보여 준다. 자타가 공인하는 현대예술의 살아 있는 거장이 도달한 고지의 풍경을 엿보고 싶은 이들은 3월 27일 전에 서울 종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찾아가 보자. 유튜브에서 작품을 미리 감상하면 많은 도움이 되겠다.
아무래도 현대미술은 버겁다는 이들에겐 간송문화전 5부로 진행되는 <화훼영모-자연을 품다>를 추천한다. 간송의 컬렉션은 구구한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정평이 나 있다.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리는 전시에는 김홍도, 신윤복, 장승업, 정선 등 익숙한 대가들의 이름이 즐비하다. 화훼영모란 꽃과 풀, 날짐승과 길짐승을 일컫는 말이지만 실제로는 모든 동식물을 소재로 하는 그림. 옛그림에 친숙하게 접근할 만한 좋은 기회다. 역시 3월 27일까지.
말의 눈을 쇠꼬챙이로 찌른 소년의 이야기. 연극 <에쿠우스>는 실화를 바탕으로 영국의 극작가 피터 쉐퍼가 쓴 현대의 고전이다. 죄책감, 종교적 구원, 원초적 욕망, 왜소해진 개인, 파편화된 인간관계 등의 짜임과 울림이 일품이다. 17살 소년 알런과 정신과 의사 다이사트의 대화는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의 등 위에 올라탄 듯한 아슬아슬한 쾌감을 선사한다. 송승환, 최재성, 최민식 등 전통적으로 알런 역을 맡은 배우들은 연기력을 인정받는 명배우로 성장했다. 이번에도 류덕환, 조재현, 안석환 등 출연진이 화려하다. 특히 눈길을 끄는 건 알런 역으로 중복 캐스팅된 서영주. 알런과 같은 나이로 무대에 오르는 배우는 그가 세계 최초일지도 모른다. 서울 종로 대학로 DFC 대명문화공장에서 2월 7일까지.
서로 다른 존재가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는 흔해 빠졌지만, 그 대상이 사람의 피를 먹는 뱀파이어 소녀라면? <에쿠우스>가 탄탄하게 검증된 작품이라면 연극 <렛미인>은 영화의 성공에 기댄 도전이다. 영화 <렛미인>은 스웨덴이라는 낯선 나라가 주는 서늘한 이미지만큼이나 충격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해 일종의 팬덤을 만들어 냈다. 북구의 얼어붙을 듯한 쓸쓸함과 도저한 고독감을 연극이 어떻게 받아 낼지 궁금하다. 흡혈귀 일라이 역에 이은지, 박소담. 일라이를 사랑하는 창백한 소년 오스칼 역에 안승균, 오승훈. 1월 21일부터 2월 28일까지 서울 서초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
쌀쌀한 날씨를 능가하는 즐거움이 예술에는 있다고 믿는다. 가벼운 나들이의 여유가 독자들과 함께하기를.

 

 

 

↘ 안태호 님은 부천문화재단 생활문화사업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예술가가 못 되면 근처에서라도 놀자는 게 인생의 몇 안되는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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