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호 2016년 1월호 살림,살림

[ 책으로 떠나는 인문학 여행-집회는 폭력이 아니다 ]

억눌렸던 이들의 목소리

글 하승우

내가 기억하는 집회는 대부분 아름답다. 분명 어떤 집회는 고통스럽고 힘들고 어려웠지만 돌이켜 보면 그때 모여 얘기를 나누고 함께 외쳤던 순간들에 대한 아련함, 그리움이 남아 있다. 집회가 아니라면 억눌려 숨죽여 지내던 사람들이 자신을 드러내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장은 한국에 없다. 집회에서는 혼자서는 낼 수 없는 힘이 생기고 혼자라면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어떤 공통된 감각이 만들어진다. 그 힘과 감각은 다시 그 자리로 향하게 만든다.

 

 

 

언론이 폭력의 딱지를 붙이는 지난 11월 ‘민중총궐기’ 집회에서도 사람들의 행동은 아름다웠다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혼자서 아무런 이유 없이 경찰버스에 줄을 걸고 잡아당겼다면 그건 폭력이다. 하지만 노동개악 중단, 재벌책임 강화, 밥쌀 수입 저지와 농산물 적정가격 보장, 공안탄압 중단, 역사왜곡 중단, 여성·이주민·장애인·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 중단, 군국주의 반대, 청년일자리 창출과 대학구조조정 반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신규원전 건설 반대, 국립공원 케이블카 건설계획 폐기, 의료·철도·가스·물 민영화 중단, 영리병원 추진 중단과 공공의료 확충이라는 공공의 의제를 내걸고 여러 사람들이 함께 경찰버스에 줄을 걸고 잡아당겼다면 그건 의사표현이고 무조건 길을 가로막는 경찰에 대한 항의이다. 한국 역사에서 맥락을 따지지 않고 행동만을 문제 삼아 폭력으로 규정했다면, 민주화 운동이라 얘기되는 중요한 사건들, 예를 들어 1960년 3~4월, 1979년 10월~1980년 5월, 1987년 6~9월의 사건들도 모두 폭력이다. 그 사건들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이만큼이라도 살 수 있을까?
정말 무엇이 폭력인지 궁금하다면, 서울시 조희연 교육감 등 여러 연구자들이 쓴 《국가폭력, 민주주의 투쟁, 그리고 희생》(함께읽는책 펴냄, 2002)을 권한다. 이 책에서 우리는 공권력을 가장한 폭력의 실체를 목격하고 투쟁이 왜 ‘싸움과 다툼’이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더 사실적인 폭력을 접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쓴 《야만시대의 기록: 아무도 기록하지 않는 역사》(역사비평 펴냄, 2006)를 권한다. 우리가 무조건 비판해야 할 진짜 폭력이 무엇인지를 그 책에서 접할 수 있다.

 

왜 우리는 냉소를 보내나?
신시아 레빈슨은 《오늘, 우리는 감옥으로 간다》(2013)에서 1963년 흑인차별에 맞서 감옥으로 향했던 미국 버밍햄시 청소년들의 삶을 추적한다. 흑인 열 명 중 한 명만이 선거인명부에 올라가고, 명부에 등록하려면 67개 카운티의 이름을 모두 외거나 비누 한 개에 얼마나 많은 거품이 있는지를 묻는 황당한 시험을 통과해야 했던 시절, 십대들이 흑인민권을 외치며 거리로 나가 시위를 벌였고 또 감옥으로 끌려갔다. 이 시위에 참여했던 제임스는 “집회에 나간다는 것이 단지 십대들이 함께 모여서 시간을 보내며 여러 연설자들의 연설을 듣는 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훨씬 더 심각한 일이었죠. 집회에 나가는 건 우리의 의무라는 걸 알게 된 계기였어요. 우리가 견딜 수 있는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결정하는 건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었죠. 인종 문제를 부각하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만 했어요”라고 회고한다. 불의에 눈감는 멈춤이 아니라 자신이 선 한계를 넘어서고자 했던 그 몸짓들이 미국을 변화시켰다.
한국의 상황은 더 처절하다. 2003~2005년, 전북 부안군에서 방사성폐기물처리장 반대싸움을 주도했던 이현민 씨는 《녹색당 선언》(2012)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촛불집회장을 지켰던 할머니들을 이렇게 기억한다.
“집회장에 도착하면 가방 속에서 시위용품(?)을 주섬주섬 꺼냅니다. 먼저 비닐을 겹겹이 두른 스티로폼을 꺼내 방석으로 깔고 앉은 뒤 담요 조각으로 만든 무릎 덮개를 덮고, 몽당 양초와 군데군데 그을린 종이컵에 촛불을 켭니다. 마지막으로 나무토막으로 만든 딱딱이를 손장갑 위에 끼웁니다. 장갑을 끼면 박수 소리가 나지 않으니까 대용으로 만든 발명품입니다. 할머니들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린 나이 먹고 힘도 없어서 할 수 있는 게 있어야지. 이렇게 촛불집회라고 빠짐없이 참석해서 박수라도 쳐야 핵폐기장을 몰아낼 것 아니여?’ 그렇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촛불집회를 지켜 주셨습니다.”
당시 조선·중앙·동아일보는 부안을 가리켜 “대한민국은 불타고 있는가”, “부안 ‘무정부 상태’ 방치할 건가”, “화염병 던지며 주민투표 요구하나”라는 자극적인 기사를 뽑아냈다. 지금과 얼마나 다를까?
부안싸움이 길어졌던 만큼 주민 피해도 컸고, 경찰의 마구잡이식 진압 때문에 등이나 다리에 부상을 입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일반적인 집회 현장과 다른 특이한 점이 있다고 했습니다. 대규모 집회와 시위 현장에서 자주 발생하는 압사 환자를 찾기 어렵다는 겁니다. 도망가느라 뒤엉켜 넘어지고 밟혀서 다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분석이었습니다.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집회 현장에 있던 사람으로서 그때의 상황이 파노라마처럼 생생히 떠올랐습니다. 할머니들은 진압을 하러 달려오는 전경 앞에 주저앉았습니다. 남자들과 젊은이들을 잡아가지 못하게 인간 바리케이드를 쳤습니다. 때로는 군홧발에 짓밟히기도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주민들은 이성을 차리고 침착함을 잃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책임을 물어야 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오늘, 우리는 감옥으로 간다
신시아 레빈슨 지음 | 박영록 옮김
낮은산 펴냄 | 2013년

 

 



녹색당 선언
김종철, 녹색당 외 지음
이매진 펴냄 | 2012년

 

 



철학의 헌정 - 5.18을 생각함
김상봉 지음
길 펴냄 | 2015년

 

 

 

나의 행복이 타인의 고통에 빚지고 있다
권력을 쥔 자들은 매일매일 우리를 조롱하고 물질적이고 정신적인 폭력을 가한다. 폭력에 저항하지 않는 수치심은 사람의 정신과 내면을 갉아먹는다. 그리고 파괴된 내면을 감추려는 사람들은 외려 소리 내는 시민들에게 냉소를 보낸다. 1980년 광주에 바치는 김상봉의 《철학의 헌정》(2015)은 “빚지고 있음의 의식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의무감의 원천”이라고 주장한다. “타인의 고통에 나의 행복이 빚지고 있음을 깨달을 때, 우리가 느끼는 가책과 부끄러움이야말로 우리에게 그 빚을 갚으라는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다.” 진리가 힘을 잃을 때는 노골적인 폭력보다 우리가 그 진리에 냉소를 보낼 때이다. 그러니 집회를 비난하는 바로 지금이야말로 집회가 가장 절실한 순간, 우리가 모여야 할 순간이다.
함석헌 선생은 “자유라는 이름만 불러서 자유는 오지 않는다. 실제로 죄악적인 법을 무서워 말고 할 말은 하고 쓸 글은 씀으로써만 가능하다. 그러면 감옥도 가고 징역도 살는지 모른다. 그러나 자유는 감옥에서 자기 알을 까고 나온다. 많은 자유 투사들이 감옥에서 알을 까고 나올 때 언론자유는 얻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니 집회를 폭력이라 비난하지 마라. 우리는 자유라는 출산의 고통(産苦)을 겪고 있을 뿐이다.

 

 

↘ 하승우 님은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운영위원으로 풀뿌리민주주의와 아나키즘, 자치와 공생의 삶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사회의 모순과 잘못을 지적하기 위해 날카롭고 까칠해야 하지만 삶의 방향은 우정을 향해야 한다고 믿는 ‘까칠한 로맨티스트’입니다. 오랜 수도권 생활을 접고 충북 옥천에서 자치와 자급의 삶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http://www.salimstory.net/renewal/sub/view.php?post_id=1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