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호 2016년 1월호 살림,살림

[ 옛 농부들의 농사이야기-농산물값 폭락이 시작된 1970년대 ]

사람 밥값이 개 밥값만 못한 세상

글 전희식 _ 그림 전새날

2014년 11월 초순, 경남 진주시 근교의 넓디넓은 논에는 대풍작을 이룬 누런 벼가 그야말로 황금물결을 이루고 있는데 눈을 의심케 하는 현수막 하나가 걸려 있었다. 개 사료 어쩌고 하는 글자가 보이는가 싶었는데 쌀값 현수막이었다. 쌀값이 개 사료값만도 못한 현실을 개탄하면서 서울에서 열리는 농민대회에 올라가자고 알리는 내용이었다.

 

 

하루 고추 따면 2/3 남을까 말까
쌀값이 개 사료값만도 못하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말도 안 된다 싶어서 농민들이 주장하는 계산표를 봤는데 진짜였다. 산지 쌀값은 80kg 한 가마에 14만 9천352원인데 반해 ‘홀리스틱’이라는 개 사료는 6.8kg에 3만 8천500원이니 kg당 가격을 비교하면 1천817원 대 5천661원이다. 1/3도 안 되는 가격이다.
마른고추가 근당 6천3백 원까지 떨어진 상태다. 이것도 하우스 고추 얘기고 건조기 고추 가격은 더 낮다. 고추 따는 이에게 일당 7만 원은 줘야 하는데 점심 밥값에 두 차례 새참까지 계산하면 8만 원도 더 든다. 그렇다면 하루에 고추를 얼마나 딸까? 마른고추로 계산하면 40~50근 정도다. 물고추 15포대쯤 따는 걸로 계산하면 그 정도이다. 결국 따는 고추의 1/3은 일당으로 나간다. 따는 걸로 끝나지 않는다. 보름 내지 20일은 하우스에서 말려야 하다. 모종값, 농약값, 비닐멀칭과 로터리 치는 트랙터 이용료를 계산하면 정말 남는 게 없다. 2015년 나락 매상가는 특등이 5만 3천700원이고 1등은 5만 2천 원인데 2014년에 비하면 가마 당 평균 2천 원 정도 내렸다. 풍년이라고는 해도 벼 총생산량은 2014년에도 못 미친다. 가격은 폭락이다. 쌀값뿐 아니다. 이구동성으로 농민들이 심을 게 없다고 한다. 토마토값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폐농이 속출할 정도다. 포도농사를 접는 농가가 속속 늘고 있다. 생산면적도 급감하고 있다.

 

곡물자급률은 날로 떨어지는데 가격이 폭락하는 이유가 뭘까? 우리나라의 농업이 철저하게 세계식량체계에 포박되어 있기 때문이다. 초국적종식품복합체가 완벽하게 지배하는 세계농식품체계는 한국농업을 홈짝달싹 못하게 하고 있다.

 

 

세계 시장에 들어선 뒤로 형편없는 성적표
2014년 여름 매실 10kg짜리 특품 5상자에 1만 원에 거래된 기록이 있다. 그 계산서에 의하면 총액 1만 원 중에서 수수료 700원, 운임 7천500원, 하차비 1천500원이고 농부 손에 쥐어진 돈은 단돈 300원이었다. 300원은 상자 다섯 개 값도 안 된다. 2015년 2월 감귤 최저가는 10kg에 2천원, 가공용은 1천600원이었다. 양배추와 무값도 그야말로 똥값이었다.
곡물자급률은 날로 떨어지는데 가격이 폭락하는 이유가 뭘까? 우리나라의 농업이 철저하게 세계식량체계에 포박되어 있기 때문이다. 초국적 농식품복합체가 완벽하게 지배하는 세계농식품체계는 한국농업을 옴짝달싹 못하게 하고 있다. 가깝게는 1994년 우루과이협상 이후 한국정부가 이에 굴복한 결과다. 박근혜 대통령의 선거공약인 쌀값 21만 원은 고사하고 15만 원 선도 무너졌다. 이에 항의하던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한 달 넘게 중환자실에서 의식을 놓은 채 누워있게 된 것도 그런 원인이다.
1970년대 중반부터 급속하게 진행된 농업의 주산단지화를 기억할 것이다. 그 이전에는 아무리 풍년이 들어도 폭락은 없었다. 자기 먹을 것 중심으로 농사짓고 남는 것을 그 지역 안에서 사고팔았다. 땅은 농사짓는 곳이지 투기하는 곳이 아니었다. 농업의 주산단지화가 진행되면서 정부는 돈벌이 농사를 권장했다. 소규모 가내수공업체제를 파괴하고 모든 걸 사다 쓰게 했다. 농민들은 돈을 벌어야 했고 시장 의존도는 커졌다. 이것이 바로 세계농식품체계로 빨려 들어가는 입구였다.
농약지원, 비료지원, 농기계도입지원, 경지정리, 시설하우스 등장, 각종 정책지원금 등은 이른바 녹색혁명형 농업이었고 철저한 미국식 농업의 이식이었다. OECD 최고 수준의 한국농업의 집약성은 생산성 중심으로 흘러왔지만 한계가 명확하다. 2015년 한국은 고추 1kg의 생산원가가 1만 1천686원이지만 중국은 1천895원이다. 마늘은 2천49원 대 686원이고 양파는 334원 대 98원이다. 우리 농업이 세계 시장으로 편입되어 고도화된 지금의 성적표다.

 

 

땅은 농사짓는 곳이지 투기하는 곳이 아니었다. 농업의 주산단지화가 진행되면서 정부는 돈벌이 농사를 권장했다. 소규모 가내수공업체제를 파괴하고 모든 걸 사다 쓰게 했다. 농민들은 돈을 벌어야 했고 시장의존도는 커졌다. 이것이 바로 세계농식품체계로 빨려 들어가는 입구였다.

 

 

나라 잃은 것과 견줄 만한 새 을사늑약들
해방 직후 잉여농산물로 한국농업을 초토화한 미국은 박정희정권 때부터는 유상 판매로 돌변했다. 정부는 주산단지를 조성해서 고추, 마늘, 밤, 사과 등 단일경작 농사를 급격하게 늘렸고 우리 농업은 일손, 자금, 유통, 생산 등 모든 분야에 있어 외부의존도가 크게 높아져 버렸다. 1970년대 말부터 미국의 농산물 수입자유화 압력이 가중되었고 각종 농업관련 국제협약들은 일본에 나라를 잃은 것과 견줄 만한 새로운 을사늑약이 되었다. 전두환 군부정권 때의 소 파동은 세계농업체계의 하부 단위가 된 농업파괴범들 준동의 시작이었다.
얼마 전 충북 음성군에 걸린 현수막에는 농민들의 절망이 묻어난다. “먹고살려고 하우스 한 동 더 지었더니 일만 늘고 빚만 늘었다. ㄴㄱㅁㅆㅂ 이기 사람 사는 꼴이가?” 여기서 ㄴㄱㅁㅆㅂ은 ‘니기미씨발’로 추정된다. 농가소득 중 농업소득 비중은 계속 하락하여 2001년 47.1%, 2005년 38.7%. 2013 29.1%다. 농사지어서는 먹고살 수 없다는 징표다.
2015년 5월 말에 농업진흥청과 한국식품유통학회, 농정연구센터 공동으로 ‘한중FTA 등 완전 개방 시대에 대비한 국내 농어업발전전략’ 세미나가 열렸는데 근본적인 농업경영체계 변화를 강조했다. 주산단지화를 강화하여 경영 효율성 제고와 인건비 절감을 위한 일시수확시스템, 6차산업화와 농장공간고도화, 브랜드육성, 수출농업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우리 농업을 이 지경으로 만든 원흉이 그런 정책이었는데 그걸 더 강화하자는 방안이다. 농업의 외부의존도는 더 커지게 된다. 이 말을 들으며 어느 시골 할머니가 한 말이 떠오른다. “저런 놈들 주뎅이를 망치로 쪼사부려”야 한다는.

 

 

↘ 전희식 님은 농민생활인문학 대표로, 전북 장수군 산골에 살면서 《똥꽃》, 《엄마하고 나하고》, 《시골집 고쳐 살기》 등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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