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호 2016년 1월호 살림,살림

[ 살림의 현장-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 결과와 전망 ]

파국은 막았지만 또다시 숙제를 미루다

글 한재각 _ 사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지난 12월 12일 오후 7시 30분. 프랑스 파리에서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총회)가 타결된 역사적 순간이다. 짧게는 총회가 시작된 11월 말부터 2주간, 길게는 2009년 코펜하겐 총회 실패 이후 6년간 진행됐던 길고도 힘든 협상이 끝맺은 것이다. 이로서 인류는 2020년부터 신기후체제를 출범시킬 수 있게 되었다. 총회장의 각국 대표단이 감격에 겨워 서로 껴안고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그러나 같은 시각 파리 거리 곳곳에는 ‘기후정의’를 외치며 행진한 수만 명의 시위대가 있었다. 이들 중에는 협상 타결 소식에 냉소를 보내는 이들도 상당했다. 대체 파리 총회에서 타결된 협상 결과가 무엇일까?

 

 

2020년까지 모든 국가가 온실가스를 줄여 나가기로
지금까지는 교토의정서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유일한 국제 제도였다. 그래서 2012년에 효력이 끝나는 교토의정서를 이어가기 위한 협상이 중요했지만, 기대를 모았던 코펜하겐 총회는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 이에 따라 2013~2020년에는 사실상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국제 체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임시방편으로 교토의정서 체제가 2020년까지 연장되었지만,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15%를 배출하는 국가들만 참여하고 있을 뿐이다. 미국 등을 비롯한 선진국의 무책임과 산유국의 집요한 방해, 그리고 중국 등 신진 다배출국들의 비협조는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추가적인 국제 제도를 창출할 수 없게 했다. 전 세계의 온실가스 배출은 계속되고 지구는 점점 더워지고 있었다. 시간만 흘러갔다.
이런 상황에서 파리 총회 합의문이 타결된 것이다. 그 결과 “2020년부터 모든 국가가 온실가스를 줄여 나가 기온 상승을 2100년까지 2℃ 이하, 최대한 1.5℃ 이하로 유지”하자는 합의를 이루어 냈다. 이번 협상에서 가장 높게 평가받는 부분이다. 또한 교토의정서와 다르게 선진국만이 아니라 개도국이라는 이유로 예외로 인정되던 중국과 인도와 같은 다배출국가를 비롯한 모든 국가가 ‘보편적으로’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지기로 했다는 점도 주목할 일이다. 그리고 선진국들은 돈을 모아서 개도국들이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이미 시작된 기후변화에 적응하는 것을 돕기로 했다. 과거와 다르게 미국과 중국이 전향적인 태도를 취한 게 주효했다는 평가가 많다. 온실가스 배출량 1, 2위 국가이지만 교토의정서에서 탈퇴하거나 감축 의무를 거부했던 국가들이 신기후체제 성립을 촉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동안 미국 등 온실가스 다배출국가는 온실가스 감축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해 왔다. 이를 풍자하기 위해 예술가들은 자유의 여신상을 '오염시킬 자유(Freedom To Pollude)'의 여신상으로 세워 놓았다. 여신상이 들고 있는 횃불에서 온실가스를 상징하는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그 아래에 가난한 나라를 상징하는 사람들이 서있다.

 

 

 

미래세대를 위해 탈석유를 외치는 노르웨이 어버이연합.

 

 

기후재앙 해결에 대해 진지한 태도 없는 한국 정부
이로써 파국을 면했지만, 이번 파리 총회 합의문이 지구와 인류를 구할 수 있을지는 자신할 수 없다. 이번 협상이 타결된 건 핵심적인 쟁점들은 다음 협상으로 넘기고, 신기후체제를 출범시키는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장기 목표로 최대한 1.5℃ 이하로 기온 상승을 막는 데 최선을 다하자는 합의문을 만들었지만, 정작 각국에서 자발적으로 정한 2030년까지의 온실가스 감축목표(INDC)를 종합하면 2.7℃까지 상승할 것이라고 분석됐다.
2100년까지 온실가스의 순 배출량을 ‘제로(0)’로 만들자는 합의도 크게 주목받았다. 국내외 언론과 환경단체들은 “화석연료 시대의 종말”을 선언한 것이라며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당장 석유 등 화석연료를 더 이상 채굴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을 80여 년 후의 목표로 미루었다. 게다가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숲과 같은 ‘흡수원’을 다시 인정하면서, 2100년 이후에도 화석연료 사용을 합법화할 가능성을 남겨 두었다. 또 애초 협상문 초안에 있었던 “2050년까지 2010년 대비 70~95% 감축”이라는 조항을 삭제했다. 기후재앙을 피해야 한다는 절박한 인식과는 거리가 멀다. 석유기업 등 화석연료 자본과 그들의 동맹국들이 집요하게 방해한 탓으로, 합의문에서 ‘화석연료(fossil fuel)’라는 단어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구 역사상 가장 중요한 2주간”이었던 파리 총회에서 한국 정부는 철저히 방관자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온실가스 배출 추정치(BAU) 대비 37% 감축”을 야심찬 목표라고 연설했다. 그러나 BAU는 개도국이 사용하는 방식으로, 선진국이 사용하는 2005년 절대량 감축방식으로 계산하면 겨우 5% 감축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언급도 하지 않았다. 다른 국가에서 한국과 같은 감축목표를 제시한다면 결코 기후재앙을 피할 수 없다. 또 나경원 국회의원의 고위급 연설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정부가 아닌 국회의원이 연설한 전례도 없을뿐더러 기후협상 수석대표인 윤성규 환경부 장관이 도중에 귀국하면서 가능하게 됐다는 점은 해괴하기까지 하다. 한국 정부는 파리 총회에서 기후재앙이라는 전인류적 위기 해결을 위해 어떠한 진지한 태도도 보여 주지 못했다. 한국 국민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위기 탈출의 방향을 설정하였다는 점에서 최소한의 안도는 할 수 있지만, "기후가 아니라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노력은 결국 각국 시민들의 몫으로 남았다. 각국에서 화석연료 시대의 정치를 종결하고 기후변화 시대의 정치를 열어 가는 일은 누가 대신해 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12월 12일 프랑스 파리 에펠탑광장에서 열린 대중집회 모습. 현수막에는 "일어나 기후를 위해 결단하라!"고 써 있다.

 

 

기후재앙을 피하려면 풀뿌리가 움직여야
기후정의 활동가들은 파리 총회 전부터 총회 이후가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각국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얽히고 석유자본과 기업들의 영향력이 점점 강해지는 모습에서 어떤 것도 낙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위기 탈출의 방향을 설정하였다는 점에서 최소한의 안도는 할 수 있지만, “기후가 아니라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노력은 결국 각국 시민들의 몫으로 남았다. 각국에서 화석연료 시대의 정치를 종결하고 기후변화 시대의 정치를 열어 가는 일은 누가 대신해 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총회장 밖 NGO포럼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에너지 민주주의’ 문제였다. 에너지 사용을 줄이고 재생에너지 이용을 확대하여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데 따른 비용과 혜택의 사회적 형평성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이에 많은 연구자들과 활동가들은 에너지 산업의 공공성을 확보하고 에너지 전환을 추구할 수 있는 방법을 토론했다. 유럽에서 성장하는 에너지협동조합 그리고 지역에너지공사 등을 주요 방안으로 꼽았는데, 한국에서도 주목할 사항이다.
파리 합의가 인류가 기후재앙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일종의 ‘심리적 안정제’ 역할을 한다면, 그것은 약보다 독이 될 것이다. 20여 년간의 기후협상 과정을 통해서 확인한 건 국제 협상가들에게만 맡겨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기후재앙을 피하기 위해서는 풀뿌리가 움직이고, 녹색정치를 통해 지역과 국가를 바꾸어야 한다. 시장이나 기술만으로는 기후재앙을 피할 수 없다.

 

 

↘ 한재각 님은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 등을 거쳐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부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도 맡아 잠시 외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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