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호 2016년 1월호 [특집] 특집-우리들의 유기농

[ 친환경 유기농업에서 유기순환 생태농업으로 ]

씨앗도 거름도 순환되어야 한다

글 안철환

유기농업의 근본은 순환이다. 우리 조상들은 “자기 똥 3년 먹지 않으면 죽는다”고 했다. 그러니까 생산과 소비 그리고 농사를 둘러싼 환경 전체가 순환하는 것을 유기농업이라 하고, 이를 ‘유기순환 생태농업’이라고 정의하고자 한다.

 

 

전남 완도 청산도에서는 흙이 별로 없어 돌을 쌓아 논을 만들었다. 이렇게 척박한 환경에서도 곡식 농사를 짓는다니 놀라운 일이다. 우리 환경에 맞고 생명력 강한 곡식이 한국 유기농업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추운 겨울과 무더운 여름을 견디려니 비닐하우스를 할 수밖에
유기농사를 무기물이 아닌 유기물을 투입하는 농사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투입하는 유기물 대부분이 외부에서 끌어온 고비용 자재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여기에서 말하는 외부란 물리적 거리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순환이 되지 않는 범위’라고 봐야 한다.
유기순환 생태농업은 사람의 건강이 우선이 아니라 환경의 건강이 우선이다. 한국 유기농은 환경보다는 건강이 중심이 되어 발전해 온 측면이 있다. 유기농 생활협동조합 운동 초기의 “생산자는 소비자의 건강을, 소비자는 생산자의 생계를 책임진다”는 표어를 봐도 알 수 있다. 한국 유기농 소비가 크게 확대된 건 2000년대 초 모 방송에서 했던 웰빙 프로그램이 공전의 히트를 친 이후부터로 기억한다. 유기농 소비가 급증하자 생산이 그를 감당하기 힘들어 유기농업 생산 일선에서는 비닐멀칭과 기계농, 비닐하우스가 크게 늘었다. 그전에는 어쩔 수 없이 비닐멀칭을 하더라도 그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게 인지상정이었다. 기계는 경운기 정도나 쓰면 되었지 그 이상은 엄두도 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비닐하우스 농사는 되도록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여겼다. 인분을 이용한 농사는 너무도 당연한 것이어서 귀농자라면 누구나 생태뒷간 만드는 게 자랑이었다.
내가 전통농업을 복원하겠다고 시골 구석구석의 할머니 할아버지를 찾아 돌아다닌 것도 그즈음이었다. 대략 4~5년을 다닌 후에야 건강이 아닌 환경을 중심으로 한 농사가 무엇인지에 대한 단서를 잡았다. 그건 바로 벼를 중심으로 한 곡식 농사였다. 한국 환경에선 벼와 곡식은 잘되지만 채소와 과일 그리고 축산은 잘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추운 겨울과 폭우성 장마가 지배하는 무더운 여름을 견디는 채소와 과일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특히 고온다습한 여름 날씨를 견디는 건 벼와 곡식밖에 없다. 이런 환경에서 채소농사를 하려니 장마를 피하기 위해 비가림 비닐하우스를 많이 쓰게 된 것이다. 도시 근교는 말할 것도 없고, 참외로 유명한 경북 성주를 밤에 갔다가 펼쳐진 비닐하우스가 바다인 줄 알고 놀란 기억이 아직도 선하다.
고투입 농사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 환경에 맞지 않는 농사를 하려다 보니 에너지와 자재를 많이 투입해야 하는 것이다. 한국 유기농사가 채소 중심으로 시작된 것은 그런 점에서 매우 아쉽다. 한국 유기농사가 채소가 아닌 곡식 중심으로 발달했다면 우리의 유기농은 저투입 순환농사가 되었을 것이다. 곡식 농사는 우리 환경에 맞기에 건강 중심이 아닌 환경 중심의 농사가 자연스레 발전했을 것이고, 유기순환 생태농사가 어렵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곡식 농사야말로 한국 유기농업의 돌파구
나는 곡식이야말로 진정한 음식이라 본다. 왜? 곡식은 씨를 먹기 때문이다. 씨야말로 ‘온전한 음식(whole food)’이다. 씨는 생명의 근원이기에 모든 영양과 에너지의 정수이다. 씨를 먹으면 다 먹은 것과 같다. 씨를 먹으면 그 씨가 절로 번식된다. 먹기 전에 씨로 쓸 곡식을 따로 남겨 두면 된다. 사람들은 평생 김치를 먹으면서 배추씨를 본 적도, 받아 본 적도 없을 것이다. 매일 상추에 돼지고기를 싸 먹으면서도 상추씨를 본 적도, 받아 본 적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곡식 씨는 어떻게 생겼는지 안다. 씨를 받아 보겠다고 하면 그리 어렵지 않다.
대개 제일 좋은 씨는 먹을거리로 쓴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제일 좋은 씨는 씨로 써야 한다. 사람은 두 번째로 좋은 것을 먹어야 한다. 그래야 씨가 계속 이어지고 진화할 수 있다. 제일 좋은 씨를 먹으면 언젠가 그 씨는 사라지고 만다.
한국에서는 벼가 이모작되지 않는다. 따뜻한 남쪽에서나 보리와 이모작이 가능했다. 이런 나라에서 백미로만 식량을 자급하겠다는 것은 엄청난 착각이든가 현실을 호도하는 일이었다. 자급도 안 될뿐더러 껍질을 깎아 부족해진 영양을 보충할 다른 음식들이 필요했다. 그게 바로 고기였고, 밀이었으며, 다양한 가공식품이었다. 백미 자급은 그렇게 우리 밥상에 고기와 불필요한 음식들을 끌어들였다. 고기를 먹게 되니 고기의 독을 중화시키기 위해 생채소를 많이 먹어야 했다. 유기농 채소가 각광을 받은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그리고 백미 자급주의는 우리 들녘에 다양한 토종 곡식들을 쫓아냈다. 더불어 우리 농민들도 농촌에서 쫓겨나야 했다. 나는 한국 농업의 근대화가 백미주의 확대, 곡식 퇴출 그리고 고기와 생채소의 일반화로 이어졌다고 평가한다. 이는 당연히 식량자급률 감소, 농촌인구 급감, 환경 파괴 및 먹을거리 오염으로 이어졌고 애석하게도 역으로 유기농사의 발전 배경으로 작용했다고 본다.

 

 

더디 가더라도 똥오줌 받아 쓰고 토종종자 기르자
농부는 원래 똥 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요즘 똥 치는 농부가 사라졌다. 거름을 돈 주고 사다 뿌린다. 농가마다 수세식 변기가 일반화되었고 유기농 교육기관에 가 보아도 죄다 수세식 변기뿐이다. 순환농업이라 해서 별다른 게 아니다. 우선 내 똥오줌부터 거름으로 쓰는 것을 제안하고 싶다. 남은 음식물도 당연히 거름으로 쓰자. 그게 순환농업의 시작이자 근본이다. 또한 생산비용을 줄이는 저투입농사의 첫 걸음이다.
순환농업의 완성은 씨앗을 받아 심는 것이다. 그러려면 토종종자를 복원해야 한다. 사는 씨앗은 거의 불임 종자이기 때문이다. 설령 받는다 해도 로열티를 내야 한다. 그런데 토종종자는 상품성이 떨어진다. 수확량도 적다. 그러니 처음부터 재배하는 모든 종자를 토종으로 하지 말고 한두 가지 토종종자로 이어가자. 토종씨드림이라는 단체에서 하는 ‘한 농가 한 품종 갖기’ 운동이다. 토종은 우리 환경에서 오랜 세월 재배되어 왔기 때문에 환경적응력이 뛰어나다. 그래서 저투입 순환농사가 쉽다. 병해충에도 비교적 강하고 거름도 적게 먹고 땅도 덜 망가뜨린다.
고생은 농부가 하고 돈은 농약 회사가 챙기는 것처럼 유기농부도 그리 될까 늘 노파심이 든다. 더디 가더라도 늘 근본을 되돌아보며 갔으면 한다.

 

 

생산자 스스로가 농사를 바꾼다
한살림에서는 토종종자를 보존하고 확대하기 위해 앉은뱅이밀, 중파 등 토종 작물을 재배해 공급하고 있다. 또 충북 괴산에 ‘우리씨앗농장’을 운영하여 각 생산지에 토종종자를 보급하고 있으며, 충남 부여 여성생산자들이 재래종 종자포를 일구는 일을 지원하고 있다.
한살림생산자연합회에서는 생산자가 주체적으로 변화를 이끌어가고자 13개 품목(벼, 감귤, 당근, 사과, 배, 포도, 블루베리, 감자, 건고추, 한지형마늘, 딸기, 수박, 유정란)에 대해 ‘작목모임’을 결성하였거나 결성 준비 중이다. 생산자 간의 협력과 협동을 바탕으로 생산 과정의 어려움을 스스로 해결하려는 데 목적을 둔 작목모임을 통해 생산공동체를 확장하고 지속가능한 유기농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다.
또 지역순환농업을 활성화하고 한살림의 가치에 맞는 농업기술을 확립하기 위해 지난해 ‘생산기술연구회’를 만들었다. 유기농 자재를 외부에 의존하는 방식과 생각을 전환하고, 생산자 서로의 경험을 나누어 한살림의 가치에 맞는 농법을 연구하고 공유한다는 취지다. 이를 통해 소비자의 신뢰를 얻는 것은 물론 유기적인 생산과정을 통해 수확하는 농산물의 품질까지 높인다는 게 연구회의 목표다. 지난 모임에서는 “토양관리의 기본적 내용들과 사례 중심의 강의가 관심을 주목시키기에 적절했다”는 등의 의견이 나왔다. 2016년 정리된 내용을 출간하고, 2017년부터 생산지에 본격적으로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김관식 한살림생산자연합회 사무처장은 “생산자들 역시 유기농이 관행화되는 데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있다”면서 “다시 처음의 한살림 정신으로 돌아가 농산물을 생산하되, 소비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 품질을 담보하기 위한 노력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충북 괴산 우리씨앗농장에서 자라는 토종오이.

 

 

↘ 안철환 님은 경기 안산에서 바람들이농장을 일구며 전통농업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인분을 거름으로 쓰고 토종종자를 보존하는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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