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호 2016년 1월호 [특집] 특집-우리들의 유기농

[ 운동으로, 전략으로, 실천으로 ]

더 나은 유기농은 가능하다③유기농의 근원은 유기농부, 귀농 지원하고 농지 제공해야

글 박호진

전국귀농운동본부(귀농본부)에서는 2010년부터 ‘자립하는 소농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자립하는 소농학교란 최소한의 농기구를 사용하여 내 몸을 땅과 가까이 하는 경험을 통해 소농의 철학을 가슴속에 새기는 1년 단위 농사실습학교이다. 매년 20여 명이 함께했으며 50% 정도의 귀농률을 보이고 있다. 또 20년째를 맞는 생태귀농학교를 거친 많은 귀농자들이 이제는 10년 이상 경력을 가진 농민이 되었다. 외부의 투입 없이 가족의 노동력만으로 자급하며 사는 가정이 있는가 하면, 귀농자들끼리 모여서 토종종자로 곡식 농사를 짓기도 한다. 없어진 동네 방앗간을 다시 만들고 분교를 세우는 등 지역의 농촌공동체를 회복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생태적 가치를 품고 귀농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지만 농촌의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대부분 직거래로 생산한 농산물을 판매하고 있지만 외부 농자재를 투입하지 않고 키워 낸 농산물의 귀함을 소비자들이 다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다. 또 젊은 사람들이 귀농의 꿈을 이루기 위해 문을 두드리고 있고 좀 더 생태적인 농사를 짓고 싶어 하지만, 비싸진 농지를 사거나 빌리지 못해서 또는 유기농에 대한 선입견으로 눈치를 보느라 주저하는 경우를 너무나 많이 보았다. 여러 이유로 휴경되고 있는 농지들을 보다 세심하게 관리하여 귀농자들이 편하게 농지를 임대해 농사지을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전남 곡성으로 귀농한 한 젊은 농부는 생태적인 방법으로 유기농사를 짓고 싶어 했다. 하지만 첫해부터 서두르지는 않았다. 옆집 할머니가 시키는 대로 고추농사를 지었다. 어쩔 수 없이 약을 쳐야 할 때도 있었다. 어느 날인가는 할머니가 나오는 때를 기다렸다가 농약 통에 물을 채워서 농약을 뿌리는 시늉을 하며 큰소리로 인사했다고도 한다. 그러면서 조금씩 유기농으로 전환하였고, 지금은 마을에서 별 탈 없이 농사를 짓는다고 한다. 귀농본부에서도 400평 남짓한 땅에 손모내기를 하자 마을에서는 “유난 떤다”며 좀처럼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바람이 잘 통하는 논에서 뿌리를 잘 내린 벼들은 그해 심한 태풍에 주위 논의 벼들이 다 쓰러질 때도 꿋꿋이 버텨 냈다. 그러자 동네 어르신들이 “어렸을 때는 우리도 다 그리 지었지” 하면서 조금씩 인정해 주었고, 지금은 많은 논을 우리에게 빌려주었다.
얼마 전 유럽에 생태적인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을 소개해 주는 ‘Access to land’라는 누리집에 대해 들었다. 우리도 귀농자들이 지역에서 공익적인 일을 하는 사례를 모아 보고자 지난해부터 ‘두런두런 콩밭’이라는 누리집을 열었다. 이곳에서 토종종자를 귀농자 혹은 도시농부에게 보급하는 일을 시작했다. 또 위 유럽의 사례처럼 생태적인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에 대한 정보를 나누는 일도 계획하고 있다.

 

참고_ Access to land accesstoland.eu
두런두런 콩밭 congdoo.org

 

 

손모내기를 하는 소농학교 학생들

 

 

 

↘ 박호진 님은 전국귀농운동본부 사무처장입니다. 귀농본부를 거쳐 간 선배들처럼 언젠가 귀농의 꿈을 이루길 손꼽아 기다리며 바쁘고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http://www.salimstory.net/renewal/sub/view.php?post_id=1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