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호 2016년 1월호 [특집] 특집-우리들의 유기농

[ 운동으로, 전략으로, 실천으로 ]

더 나은 유기농은 가능하다②새로운 패러다임 ‘유기농 3.0’으로

글 장혜선

여전히 전 세계 1%도 안 되는 유기농업
세계 유기농업의 역사는 약 100년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19세기 말~20세기 초 농업의 문제점을 직시한 많은 사람들이 생명·식량·농업·인간 및 지구가 서로 긴밀히 조화를 이루고 건전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하며, 유기농을 그중 하나로 주장했다. 이때를 ‘유기농 1.0’이라 부른다.
1970년대 시작된 ‘유기농 2.0’은 각국에서 유기농 표준과 유기농업 육성법을 제정하는 등 다양한 법적 토대가 만들어지는 단계였다. 1980년대 미국과 유럽에서 먼저 유기농 규정을 도입하였고, 현재까지 82개국에서 법적 근거를 마련하였다. 이후 유기농업은 전 세계에 걸쳐 꾸준히 성장하여 2013년 기준 연간 720억 달러(84조 2천760억 원) 이상의 시장 규모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정부와 민간단체에서 주도해 온 법적 토대는 유기농 생산과 가공에 대한 최소한의 필요조건만 정했을 뿐 유기농업 철학의 핵심인 4대 원칙, 즉 건강·배려·생태·공정의 원칙을 총체적으로 충족하지 못했다. 그 결과 법적으로 유기농 인증을 받지는 않았지만 진정한 유기농사를 짓는 많은 농민들과 소농(가족농과 소작농, 주로 최빈국가의 여성농민)들이 제외됐다. 또 유기농의 목표를 공유하지만 유기농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농업생태학, 공정무역, 식량주권, 지역사회지원농업(CSA), 도시농업 등 다양한 운동과의 연대도 배제됐다.
또 전 세계적으로 유기농업의 많은 업적이 인정받았지만, 100년이 지난 지금 인증받은 유기농업의 소비량이나 농지면적은 전 세계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관행농업에서 유기농업으로 전환하는 비율도 낮으며, 유기농지가 확대되는 비율도 유기농산물 시장 성장세에 미치지 못한다. 유기농의 생태적 절차는 어느 정도 신뢰를 받고 있지만 정책입안자에 의해 주류 농업에 대한 대안으로는 거의 고려되지 않고 있다. 유기농업의 공익성 또한 크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혁신과 변화를 위한 유기농 3.0
이러한 유기농 2.0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11일 충북 괴산에서 ‘유기농 3.0 괴산선언’이 선포되고, ‘유기농 3.0’의 개념과 지침이 발표됐다. 자세한 내용을 아래에서 보자.

 

1. 혁신의 문화
유기농민을 양성하고 농민이 직접 참여하는 현장 연구를 강화해 전반적인 생산성과 품질을 높인다. 유기농민은 오래전부터 토양을 지키고, 식물과 동물의 다양성을 보장하며, 물과 공기의 오염 방지를 위해 노력해 왔다. 혁신이란 농업공동체의 전통적 지식을 존중하며 자연의 원동력을 배우는 것이다. 또한 유기농업의 비전을 공유하는 사람, 조직 및 단체와 협력하고 이들을 지원하여 유기농의 원칙이 실천되도록 한다.

 

2. 모범사례를 향한 지속적인 발전
지역 차원에서 지속적인 발전을 거두려면 지역에서 얻는 만큼 되돌리는 균형이 필요하다. 또 자원의 균형 및 인간의 공평한 삶을 추구하고 나 자신뿐만 아니라 내가 의존하고 있는 다른 사람과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협력해야 한다. 유기농업 시스템을 발전시키는 한편 공공선을 위한 목표를 정하고 실천한다.

 

3. 투명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유기농의 진정성 보장
유기농의 발전을 위해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의사소통은 필수다. 인증은 이러한 소통의 한 방법이나 그 과정은 유연하게 변해야 한다. 인터넷 등 새로운 시스템을 활용하여 가치 사슬의 투명성을 보장하는 방법도 등장하고, 제3자 인증이 아닌 참여형 인증제도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생산의 모든 단계와 인증에서도 투명성과 혁신을 추구한다.

 

 

4. 광범위한 지속가능성 관련 현안 포용
지속가능한 농업 및 식량 시스템을 추구하는 여러 단체들과 협력한다. 유기농운동은 식량과 농업 시스템을 만드는 다양한 개척자들을 새롭게 발굴하고 공통의 목표를 공유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또한 유기농의 여러 혜택에 관한 과학적 증거를 발굴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도록 해야 한다.

 

5. 농업 현장에서부터 최종 농산물까지 총체적 역량 강화
농민이 직면한 주요 과제 중 하나는 농산물 가격 보장이다. 생산이 투입한 비용과 노동력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핵심 해결책은 투명성이다. 한국의 한살림과 인도의 마을판매점이 좋은 모델로, 판매한 수익의 60~75%를 농민에게 되돌려 주고 생산한 유기농산물 대부분은 지역사회에서 소비된다. 농민과 소비자 간의 소통이 더욱 강화되려면 투명한 중간단계가 필요하므로, 농민과 소비자의 평등에 기반을 둔 사회적기업 등을 양성한다. 농지에서부터 식탁까지 총체적인 공급망을 개선하는 것이 핵심이다.

 

6. 진정한 가치와 공정 가격 보장
진실한 원가계산을 위한 실용적인 방법을 정하며, 투명성을 높이고 외부에 쓰는 비용과 이익을 내부로 돌린다. 또 모든 거래에서 공정한 관계를 유지하여 적정가격을 보장한다. 진정으로 지속가능하고 건강한 유기농업을 확대하고 시장을 성장시키려면 가치 사슬 전반에서 다양한 유기농산물을 쉽게 구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농민시장, CSA 같이 소비자와 생산자가 긴밀한 관계를 맺는 것뿐만 아니라 소매상 등과의 관계도 중요하다.

 

유기농 3.0은 진행형이다. 국제유기농운동연맹(IFOAM)에서는 850개 이상의 회원 단체 의견을 수렴하여 정책을 수립할 예정이다. 전 세계에 유기농의 수많은 이점과 사례가 공유되어 유기농업이 더욱 확산되길 바란다.

 

 

 

↘ 장혜선 님은 환경농업단체연합회 국제연대팀장으로 활동했으며, 2013년부터 국제유기농운동연맹 아시아(IFOAM Asia)에서 사무총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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