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호 2015년 12월호 살림,살림

[ 협동의 힘-주택과 농지를 공유하는 전남 해남 미세농부협동조합 ]

함께 농사짓고 함께 모여 사는 청년들

글 \ 사진 우미숙 편집위원

이제 갓 시골살이 3~4년차 청년들. 아직 농부라고 명함 내밀기 어려운 30대 중후반 친구들이 모여 서로 가족 삼아 생활공동체를 꾸렸다. 전남 해남의 미세마을 사람들. 이들은 스스로 전업농부라고 말하지 않는다. 같이 살고 있지만 공동체라는 이름을 붙이지도 않는다. 그저 협동조합을 만들어 공유농지에서 농사짓고 공동주택에서 생활을 함께한다.

 

 

생활공동체이자 농업공동체로

청년들이 농촌에서 새로운 삶터를 개척하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농촌에 가족이 없으면 주거공간과 농지를 구하기 어려운데 이들은 자본도 없다. 하지만 미세마을은 운이 아주 좋았다. 전남 해남군 현산면 만안리에 있는 미세마을 농부 김단 씨에게는 1980년대부터 친환경농업을 해 온 아버지에게 물려받을 땅이 있었고 그 땅을 공유농지로 내놓을 수 있었다. 김단 씨는 외지생활을 하다가 2010년 아버지에 이어 농사를 지으려고 해남으로 왔고 2011년 한살림생산자공동체인 해남참솔공동체에서 실무를 보면서 친구와 함께 농사짓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세마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당시 공동체라고 말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었다. 김단 씨는 이곳에서 마을공동체를 꾸리고 싶었다. 생활공동체이면서 농업공동체로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고 생업을 꾸려가고 싶었다. 알음알음으로 도시 청년들이 미세마을에서 시골살이를 해 보러 왔다. 오랫동안 머물고 싶은 사람들이 남았고 이렇게 미세마을에 살기로 작정한 청년들이 어느덧 열 명이 되었다. 청년들이 미세마을에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은 생활할 곳과 생업 기반이 있기 때문이다. 미세마을 사람들은 공동소유의 토지를 기반으로 마을 공동체를 꾸리기로 했다. 첫 작업으로 2013년 5월에 미세농부협동조합을 설립했다. 김단 씨는 집과 농지를 협동조합에 출자했다.

“미세마을은 농지를 공동 소유로 전환하려고 했다. 이것이 단지 내 명의로 된 땅을 내놓아 공동명의로 바꾸는 식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필요했던 것이 협동조합이다.”

김단 씨에게 협동조합은 소유의 개념을 전환하는 ‘형식’이었다. 지난해에는 농업회사 법인을 새로이 꾸렸다. 토지를 거래할 때 협동조합으로는 법적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협동조합이 소유한 토지 이외에 농업회사법인의 이름으로 임대한 땅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미세마을에서 농사짓는 땅은 모두 4만 9천600㎡(1만 5천 평) 정도이며, 김단 씨 소유 땅은 1만 3천200㎡(4천 평)이다. 현재 농업회사법인이 김단 씨의 땅과 지역의 다른 땅을 임대해서 농사를 짓고, 미세마을 이름으로 생산물을 출하한다.

 

 

수습 기간 3개월, 적응 기간 3년

미세마을에서 가장 오래 산 사람은 4년차 김단 씨다. 대체로 3년 정도 이곳에 머물렀다. 현재 이곳에 사는 열 명의 청년들은 모두 해남 출신이 아니다. 전직은 다양하다. 대안학교 출신이거나 시민사회단체에서 활동하던 이들도 있다. 특이한 점은 남성은 두 명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여성이라는 점. 미세농부협동조합 이사장이면서 ‘나의 시골살이 디자인학교’ 교장인 정혜성 씨는 “나만 해도 그렇지만, 결혼과 상관없이 농촌에 정착해 살고 싶어 하는 사람 중엔 남자보다 여성들이 상대적으로 많고 적응도 더 잘한다”고 말한다. 정해성 씨는 또래 친구 두 사람과 함께 미세마을에 들어왔고 3년째 이곳에 살고 있다.

미세마을의 하루 일과는 단순하다. 자유롭게 일어나서 오전 8시에 공동밥집에 모여 각자 자기 방식대로 아침식사를 해결한다. 9시에 일을 시작하고 12시에 공동밥집에서 함께 점심을 먹고 오후 5~6시 즈음 일을 마친다. 저녁식사도 함께한다. 밥을 함께해 먹는 일은 중요한 일로 여겨 꼭 지킨다. 두 명씩 돌아가며 점심과 저녁식사를 준비하는데 보통 한 달에 다섯 번씩 당번을 한다. 처음엔 불만도 많고 힘들어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편하게 받아들인다. 식재료는 거의 자급하고 있다. 숙식은 집 다섯 채에서 나눠서 한다. 오래된 사람은 혼자 지내기도 하지만 대체로 두세 사람이 함께 생활한다.

“우리도 공동체이지만 여타 다른 공동체에서 가지고 있는 원칙이나 단단함, 가치 지향은 없다. 비슷한 지향점을 가진 이들이 모여 사는 것은 사실이지만 완전한 생활공동체나 농업공동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김단 씨는 이곳이 공동체보다 ‘배움터’로 불리기를 바란다. 그만큼 개방적이고 자유롭게 생활하고, 같이 밥 먹고 부대끼며 삶을 배워가는 데 의미를 두기 때문이다.

일하는 방식은 이렇다. 농지를 수익형 농지와 자급형 농지로 나눠, 수익형 농지에서는 함께 농사지은 것을 농업회사법인 이름으로 출하하고 일한 만큼 계산해 소득을 배분한다. 자급형 농지에서 생산한 것은 팔지 않고 각자 먹거나 지인에게 보내거나 마음대로 처리한다. 지난해에는 모두 똑같이 일정한 금액을 나누는 방식이었지만 “똑같이 받으면 똑같이 일해야 한다는 원칙 때문에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문제 제기를 받아들여 기본급을 두고 나머지는 각자 수익형 일을 하기로 했다. 도시에서는 살아가기 불가능해 보이는 월 소득이지만 공동생활터 미세마을에서 살아가기엔 문제없다. 생활공동체로 살면 든든하다. 혼자 살 때의 경제적·심리적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 미세마을에서는 ‘더불어 생존’할 수 있다는 것에 모두 어느 정도 동의한다.

 

 

 

밭에서 함께 일하는 모습이다. 돌집은 함께 사는 공간. 아래 사진은 공동밥집. 밥을 함께해 먹는 일은 미세마을에서 아주 중요한 일이다. 밥이 맛있었는지 미소가 환하다.

 

 

공동주택 마련과 공유농지 확장이 꿈

농부라는 직업으로 살아가는 것이 가능할까. 바람직한가. 미세마을 사람들이 자주 하는 질문이다. 이들은 “시골의 적나라한 현실을 보여주고 싶다. 농업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삶이 어떤지 알아야 하지 않겠나. 도시에서 근본 생태적인 사고방식으로 살았던 사람들이 오면 환상이 깨질 때가 많다”며 “농촌 삶에 환상을 갖기보다 살면서 있는 그대로 느낀 다음에 결정해야 한다” 고 말한다.

그래서 기획한 것이 ‘나의 시골살이 디자인학교’다. 장래희망이 농업인이 아니어도, 청년이 아니어도, 그저 시골살이를 경험하고 싶거나, 어떻게 살지 고민하는 사람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올해 8월부터 11월까지 진행한 과정에 5명이 참여했고, 1명을 제외하고 모두 여성이었다. 참가자들은 “직접 농사짓고 사람들과 생활공동체를 꾸려보면서 시골살이의 맛을 실제로 느끼고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는 기회였다”고 말했다.

‘나의 시골살이 디자인학교’는 모두 3개월 과정이다. 시골살이에 대한 일종의 수습기간이라고 볼 수 있는데 3개월 정도가 지나면 남을 사람과 떠날 사람이 정해진다. 안정기 3년이 지나면 이제 마을 사람이 다 됐다고 말할 수 있다.

미세마을협동조합은 누구에게나 열린, 보통의 마을공동체를 꿈꾼다. 생활, 문화, 교육 모든 것이 어우러지는 마을. 협동조합이 계획한 사업은 두 가지, 공동주택 사업과 공유농지 사업이다. 농지는 자본이 많이 필요한 일이라 시간이 오래 걸린다. 장기적인 계획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다. 당장에 추진할 수 있는 일은 공동주택 사업이다.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내년에도 제2기 ‘나의 시골살이 디자인학교’를 이어가려고 한다.

요즘 농촌에서 살기로 선택한 청년들 가운데 전업농부가 되겠다는 사람이 드물다. 생산공동체를 꾸리고 있는 오래된 생산자들의 모습만 청년들에게 기대하는 건 무리가 아닐까. 농촌에 살면 꼭 농사만 지어야 할까. 미세마을의 미래는 새로운 농촌공동체다. 협동조합으로 터를 잡고 학교를 만들어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사람들이 삶의 뿌리를 내리는 곳으로 만들어간다. 이들은 오늘도 20년~30년을 내다보며 자신들의 미래를 함께 그려가고 있다.

 

 

↘ 우미숙 님은 한살림성남용인생협에서 활동했고 현재 성남사회적경제네트워크 대표로 지역공동체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만은 알고 먹자》, 《협동조합 도시, 볼로냐를 가다》(공저), 《공동체도시》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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