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호 2015년 11월호 [특집] 특집-우리들의 아름다운 노년

[ 콩트 - 생산자들의 노후 살림터를 꿈꾸며 ]

내 농사 접고도 한살림 하세

글 이근행

한살림생산자연합회에는 현재 2,100여 세대가 회원으로 등록되어 있고 해마다 조금씩 증가하고 있다. 올해는 10월까지 113세대가 탈퇴했는데 돌아가신 분도 있고 친환경농사를 포기하는 경우도 꽤 있다. 그 가운데 고령으로 탈퇴한 회원이 18명이다. 이분들의 평균 연령은 77세, 회원 전체 평균 연령은 60세이다. 약정하고 생산비를 보장하려고 애쓰는 한살림이기에 일반 농가에 비해 평균 연령이 너덧 살 적고, 50대 이하 비중이 절반이며, 2세가 농사를 승계하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고령화 현상이 심각한 우리 농촌의 추세는 한살림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그간 애쓰신 노고에 감사하는 뜻에서, 또 우리 아이들이 건강한 땅에서 자란 건강한 먹을거리를 지속적으로 먹기 위해서도 생산자들의 노후에 대한 관심과 복지 방안 마련이 절실하다. 현재 노후 대책을 활발히 논의 중이며, 내년에는 가능한 정책부터 도입할 예정이다. 마음속으로 그려왔던, 한살림 생산자 회원들의 노후에 대한 짤막한 이야기를 꾸며 보았다. 장소와 인물은 임의로 정했다.

 

 

 

밤비가 내리더니 아침 공기가 제법 쌀쌀하다. 그래도 아직 한낮 햇볕은 따갑다. 박선생은 기지개로 몸을 풀고 뒷마당으로 내려갔다. 며칠째 볕에 말리고 있는 고추와 결명자를 다시 풀어헤쳤다. 함께 돌보는 밭에서 딴 고추는 양도 제법 되고 이곳 춘당골 이름으로 생산 약정한 물품이라 지난주에 영농조합 건조기로 보냈다. 지금 널고 있는 고추는 춘당골 식구들 먹을 김장을 할 때 쓰려고 뒤뜰에 개간한 텃밭에서 지었다. 거름기가 좀 부족했는지 양은 적어도 참 예쁘게 자랐다. 결명자는 눈이 침침하다는 식구들이 많아 늘 마실 수 있도록 해볼 요량이다. 뒤따라 나온 이 형이 손을 도와 금세 일을 마쳤다. 이 형은 지난달에 이곳에 들어왔는데, 남도에서 한살림 배추농사를 지었다. 젊었을 적에 목수일하다 허리를 다쳐 농사가 힘들어질 즈음 다행히 아들이 마을로 돌아와 물려주고 이곳에 왔다한다. 보아 하니 손놀림은 여전해 보인다. 허리를 펴고 맑게 갠 하늘을 쳐다보니 오늘 하루 더 말리면 결명자 꼬투리도 하나둘씩 터지겠지 싶다. 식당 뒷문에서 남원댁이 아침식사하라고 손짓한다. 우리가 남원댁이라고 부르는 김 씨 아주머니는 전북 남원 산내에서 논과 고사리 밭을 가꿨는데 남편을 먼저 보내고 임대 논은 돌려주고는 고사리만 한살림에 내고 지냈다.워낙 음식 솜씨가 좋아 춘당골을 준비하며 주방 일을 부탁드려 오게 되었다. “이래봬도 나는 한살림에 스카웃된 사람이여”라며 춘당골 할배들을 호령하는 여장부다. 그도 그럴 것이 남원댁 손을 거친 나물이며, 추어탕, 육개장은 인기가 대단하다. 인근에 산지점검을 오는 실무자들도 일부러 여기 와서 한끼 먹고 간다.

 

함께 꿈을 이룬 춘당골

춘당골은 충남 예산에 자리 잡은 한살림 생산자 쉼터다. 올해로 삼 년이 되었는데, 한살림 농사를 짓다가 힘에 부쳐 은퇴한 생산자들 스물세 명이 함께 지내는 마을이자 요양시설이다. 노후 살림터인 셈이다. 세 집은 부부가 함께 와 지내고 있다. 이층으로 지은 ‘춘당’은 위 층에 열 칸 방이 있고 아래층에 거동이 조금 불편한 어르신들이 지내는 방과 거실, 식당 겸 모임방, 세탁방이 있다. 단지 안에는 열댓 평 남짓한 흙집도 여섯 채를 앉혀 부부가 지내거나 그룹홈처럼 두세 명이 함께 지내고 있다. 그중 한채는 손님방으로 관리한다. 별채로는 창고와 작업공간이 있어 소일거리로 나무를 만질 수 있어 좋아들 한다. 아직 남아 있는한 필지는 지금 기초를 다지고 있는데, 올해 안에 마을찜질방을 지을 예정이다. 수도권 한살림 조합원으로 오랜 기간 활동해온 원 씨네 부부가 손님방으로 쓰는 흙집을 제집처럼 드나들더니, 지난봄에는 남편이하던 사업을 다 넘기고는 아예 내려와 살고 싶다고 했다. 춘당골에 도시 조합원 식구는 처음이라 춘당골 공동체 식구들과 생산조직 복지위원회가 논의한 끝에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랬더니 원 씨네가 귀촌하면 집짓는 데 쓰려고 했던 노후자금 일부를 마을찜질방 짓는데 보태겠다고 해서 숙원사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춘당골에서는 마음을 내고 공간을 열어주면 더 큰 마음이 보태지고 더 멋진 공간들이 만들어지는 것을 일상처럼 경험하고 있다.

춘당골 사업은 한살림 생산자들의 오랜 꿈가운데 하나였다. 한살림을 처음부터 꾸려오신 어르신들이 한 분, 두 분 먼저 떠나시고 너무 연로해 농사짓기 힘이 부쳐 어쩔 수 없이 탈퇴하는 어르신이 많아지면서 노후 복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수년간 오갔다. 공동체나 마을 혹은 자손이 귀농해서 어르신을 돌보고 농사지으시던 땅을 가꾸어 가면 가장 좋겠는데 그럴 여건이 여의치 않은 이들도 많으니 조직적으로 준비하자 해서 복지기금을 마련해 왔다. 마침 적당한 부지를 발견해 땅과 춘당 건물은 기금을 출연해 진행하였고, 소비자 조합원들이 기금과 운영자금을 내며 성원해 주어, 생산자 회원들이 추가 후원해 별채를 마련했고 입주 대상을 선정했다. 일찌감치 지역 생산자 복지를 구상하고 기금을 적립해 농민재단을 설립한 아산에서도 재단 일부를 출자했다.

쉼터에는 장독과 텃밭이 있어 장과 푸성귀를 해결하고 있다. 생산 활동도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 지역공동체 출신인 정 선생이 춘당골에 들어오면서 당신이 짓던 논과 밭을 춘당골에 기부했다. 해서 논은 인근 아산의 청년회원 영농단이 돌보고 그 수익은 춘당골에 귀속하기로 했고, 밭은 춘당골 식구들이 관리하되 귀농을 준비하는 젊은 친구들이 농사를 배우고 노동력을 제공하며 실습할 수 있도록 관계망을 꾸리고 있다. 농사를 은퇴하고 여기 들어온 식구들이 회춘을 하는지, 쉼터 한 켠에 외양간을 지어 소, 돼지, 닭도 몇 마리 먹이고 퇴비도 만들자고 새삼 들떠 있다. 농사 경험을 물려줄 수 있는 곳, 실습과 체험이 가능한 협동농장 꼴을 갖추어 간다고 생각하니 젊은 시절의 꿈을 노후에 실현하는 설렘이 일렁이는 모양이다.

 

따스한 자당골

목수 경혐이 있는 이 형은 내년 봄 하동으로 내려갈 예정이다. 춘당골에 이어 한살림은 하동에 ‘자당골’을 준비하고 있는데 아직 손은 쓸 만하다며 자당골 건설에 손을 보태겠다고 한다. 여기보다 따뜻하고 넓은 땅에 100명 규모의 새로운 노후 살림터를 준비 중인데 부지는 기금으로 확보했고 더 많은 생산자와 소비자 회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 지원도 일부 받을 예정이다. 채소, 해산물 전처리와 소분, 콩나물재배 등 가공시설도 배치해 한살림과 지역을 이어갈 생각이다. 게다가 귀촌하는 한의와 가정의 의사도 연계되어 요양병원의 기능도 갖추려고 한다. 따스한 곳에서 한살림과 함께 노후를 보내고 싶다던 괴산의 한 여성생산자 회원은 벌써 요양보호사 공부를 하고 있다. 햇볕 따사로운 자당골 언덕배기 한 켠에는 한살림 상조사업의 일환으로 공원묘원도 마련하기로 했다.

춘당골 식구들은 이번 주 울력으로 마당에 작은 화단을 만들고 화초 알뿌리를 심기로 했다. 내년 여름에 처음 진행하기로 한 어린이 생명학교 준비를 지금부터 하고 있는 것이다. 내년 여름에 참여하게 될 대전 월 평동의 조합원 자녀인 아름이 마음속에 수선화 꽃봉오리가 맺힌다.

예산의 춘당과 하동의 자당은 시작도 끝도 아니다. 하나의 매듭일 뿐이다. 부안 변산과 괴산 청천의 공동체에서는 이미 원로 생산자회원 몇 분이 서로 기대고 어울려 지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거나, 노후를 보내는 분들을 챙겨 돌보고 있다. 꽃을 따라 몇몇 지역을 거점으로 돌아다니며 한 해 농사를 짓는 양봉 생산자들은 자체 기금을 적립하고 운영하여 그 거점마다 쉼터를 마련하고, 연로하여 생산 일선에서 물러나신 생산자 회원에게 기본소득처럼 용돈 수준의 연금을 드리고 있다. 이제 제주에서 양구까지 한살림 생산공동체마다 나름의 돌봄 프로그램과 공간을 운영하여 소비자들과도 연계 교류하고 있으니, 새로운 이모작 인생의 노후를 한살림에서 다시금 시작하는 셈이다. 더욱 좋은 것은 전국의 농촌과 도시가 한살림 돌봄 연계망으로 이어지니 산골의 호젓함을 좋아하는 이들은 그들 나름대로, 들이나 바닷가의 탁 트임을 좋아하는 회원들은 또 나름대로, 한두 해씩 지내고 싶은 곳에서 어울려 생활하고 일을 도우며 지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형과 박 선생은 화단 흙을 고르고 나서 남원댁이 오후 참으로 내온 국수를 훌훌 말아 먹었다.

“내 농사 접고 나서까지 우린 여기서 이렇게 한살림을 계속하고 있네요.”

“그러게 말일세, 한살림하길 참 잘했지!”

늦가을 햇살이 따사롭게 비춘다.

 

 

↘ 이근행 님은 농촌 생산공동체, 협동농장 등 한살림 실현지를 꿈꾸며 한살림생산자연합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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