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호 2015년 11월호 [특집] 특집-우리들의 아름다운 노년

[ 지금 여기에서 준비할 것들 ]

건강 챙기고 고마움을 표현하세요

글 한경혜

100살 넘게 사는 ‘백세인’의 증가는 이제 세계적으로 매우 광범위하고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일본의 경우 100살이 되는 노인에게 장수를 축복하는 의미에서 은으로 만든 컵을 정부가 지급하여 왔는데, 최근 들어 은컵의 두께를 얇게 하고 크기도 줄였다. 은컵 비용이 부담될 만큼 백세인의 숫자가 많아졌다는 해석도 가능하고, 100살까지 사는 것이 그만큼 흔해졌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백세시대, 축복인가 재앙인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 산 사람으로 공식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사람은 122세까지 생존한 장 깔망이라는 프랑스 여성이다. 병원에 출생기록이 있어 정확한 나이를 알 수 있었기 때문에 사람의 한계수명이 120살 내외라는 학자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 주는 사례가 된다. 한국사회에서도 몇 년 전 정부가 “백세시대가 도래하였다”고 선언한 것을 계기로 초고령 사회와 장수에 대한 많은 논의가 급증하였다. 백세시대를 화두로 하는 연금보험 등 금융상품이 쏟아져 나오고 ‘100세 쇼크’, ‘호모 헌드레드’, ‘백세시대: 축복인가 재앙인가?’ 등 주요 일간지 기획연재물의 제목만 보더라도 백세시대가 현실로 다가왔음을 알 수 있다. 생활수준 향상과 의료기술 발달 등으로 오랫동안 인간의 염원이었던 장수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늘어나는 수명을 바라보는 마음이 밝지만은 않다. ‘수명 연장이 혹시 아픈 기간의 연장을 의미하는 건 아닐까? 노년기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기간이 될 가능성이 큰 건 아닐까? 외롭고 쓸쓸한 노년이 되는 건 아닌가? 인간다운 모습으로 말년을 맞이할 수 있을까?’ 하는 많은 질문들 앞에 서게 되는 것이다. 나는 지난 10여 년 동안 전국의 초고령 노인들을 조사하면서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주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저 밤낮으로 움직여야 해”

강원 정선 지역에 지금도 아침마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100살 어르신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가 만난 이윤형(가명) 할아버지는 97살이었는데, 허리도 꼿꼿하고 표정도 당당했으며 부인과 함께 살고 있었다. 장수 비결을 묻자 “그저 밤낮으로 움직여야 해”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직접 패서 쌓아 두었다는 장작더미를 보여주었다. 그리고는 버려진 강변의 모래밭을 사서 소나무를 심기 시작하여 지금은 근교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지를 만든 과정을 자랑스럽게 설명하였다.

이윤형 할아버지는 초고령인데도 아주 건강할 뿐 아니라 적지 않은 자산을 직접 관리한다는 점에서 당당한 노후를 이루는 두 가지 중요한 요소를 갖춘 본보기라고 할 수 있다. 할아버지의 자신감은 상당 부분 든든한 경제력에 기초하고 있었다. 한국의 노인들이 자녀를 키우는 데 전력을 기울이고 노후를 위한 경제적 대비를 하지 않아, 노년기에는 자녀에게 의존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에서 예외적이었다.

과거에는 자녀에 대한 투자가 노후 대비였다. 나이가 들면 곳간 열쇠를 자녀에게 넘기고 재산 관리의 일선에서 물러나는 것이 당연시되었다면, 이제는 세상이 변하였다. 노인들 간에 떠도는 이야기 중에 “효성스러운 자녀를 원한다면 자녀에게 지갑을 통째로 넘기지 말라”는 말이 있는데, 현대 한국사회의 가족관계 세태를 잘 반영한다. 경제적 독립이 뒷받침되지 않을 때 심리적 독립을 기대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런데 중년의 베이비부머들을 대상으로 서울대학교에서 최근 조사한 바에 따르면 대부분이 자녀들의 학비, 결혼 및 신혼집 마련 등에 대한 지출을 앞세우고 막상 자신의 노후 준비는 뒤로 미루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녀에게 베풀지 않는 인색한 부모가 되라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수명 연장으로 길어진 노후를 독립적으로 보내기 위해서는 ‘내 주머니를 챙기고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자녀에게 의존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궁극적으로는 자녀를 위하는 길이기도 하다.

 

 

당연하게 생각 말고 감사해야

장수 노인을 조사하면서 관찰한 중요한 점 중의 하나는 사회적 지원체계가 부족한 한국사회에서 노인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건 ‘가족’이라는 것이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실 이는 노인에 대한 사회적 부양체계가 자리 잡힌 서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어떠한 시스템으로도 결코 대체될 수 없는 사랑과 배려, 보살핌의 핵심에 가족이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102살 하현자(가명) 할머니는 매우 현명한 사람이었다. 집안에서 각 가족 구성원이 차지하는 공간의 위치와 규모 등은 그 사람이 가족 내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반영하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노인의 약화된 가족 내 권력을 이야기하면서 노인들 스스로가 자조적으로 사용하는 ‘뒷방 늙은이’라는 표현도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100살이 넘었는데도 아직 안방을 쓰던 하현자 할머니의 사례는 노인과 자녀 간 관계의 현주소를 잘 보여준 경우다.

하현자 할머니는 특히 건강한 노화와 연결 된 중요한 성격적 특성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통제감’이 아주 높은 경우로 관찰되었다. 통제감은 스스로의 의지와 행동으로 자신의 삶을 조절하거나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이며, 사회적 관계에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성격과 연결되어 있다. 내가 보기에 할머니는 다양한 방식으로 자녀와의 관계에 대한 나름대로의 처세전략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며느리에게 적극적으로 감사함을 표시하는 것이었다. 우리 연구진에게도 당신이 며느리에게 감사해 하며 칭찬을 많이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할머니의 당당한 성격과 함께 가족을 보듬는 마음이 가정에서 할머니가 큰방을 쓰는 요인이 됨을 관찰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한국사람은 대부분 가족 간에 감사함을 표시하는 데 인색하다. 가족이 하는 일을 당연시한다. 며느리가 시부모를 모시는 건 며느리의 당연한 도리이며, 돈을 벌어 오는 건 남편의 당연한 의무이고, 식사를 차려 주는 건 당연히 부인이 하는 일이라고 여긴다. 감사하는 마음과 표현이 극히 부족하다. 서로 감사하는 마음이 넘치는 ‘감사의 경제학’을 극대화하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 길어진 노년기를 위한 가장 중요한 준비임을 보여주는 많은 연구들이 있다. 특히 부부간에 함께하는 세월을 감사할 줄 알 때 자녀가 모두 독립하고 부부만 남게 되는 노년의 삶의 질이 높고 행복하다. 배우자가 있는 노인은 치매에 걸릴 확률도 1/4로 낮아진다는 연구결과도 있으니 함께 장수할 수 있도록 부부간에 잘할 일이다.

그러나 내가 만난 백세인들 중에는 오랫동안 쌓인 미움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는 경우도 상당수 있었다. 이런 부부들의 경우 상대방에 대한 비난으로 인터뷰가 가득 채워지기 일쑤였고, 심지어는 연구진이 아무리 부탁하여도 함께 사진 찍히기조차 거부할 정도였다. 주로 남성 노인들이 과거에 아주 가부장적 행동을 하며 부인을 존중하지 않았거나 외도·폭력 등으로 가족을 잘 돌보지 않았고, 여성 노인들은 평생 동안 참았던 힘듦과 미움을 나이 들어서야 비로소 토로할 수 있게 된 경우이다. 이런 경우 나이가 들면서 일상에서 배우자에 대한의존성이 커지는 남성 노인의 삶의 질이 열악할 뿐 아니라 자녀들에게까지 부정적 여파를 미치게 된다. 존중받는 아내로서의 삶을 한번도 살아 보지 못하고 아직 미움의 보따리를 안고 있는 여성의 삶이 안타까움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현재의 가족관계는 오랜 관계의 역사적 결과물이다. 어떤 노년을 맞이할 것인가는 지금부터 어떻게 하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독립적인 노후를 준비하고, 배우자를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배려하자. 이미 다 아는 이야기라고 생각 들면, 당장 실천에 옮기는 일만 남았다.

 

 

↘ 한경혜 님은 서울대학교 교수로 가족학, 노년학 분야의 후학을 양성하고 있습니다. 특히 베이비부머의 노후 준비에 대한 연구 및 한국의 초고령 노인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 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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