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호 2015년 11월호 [특집] 특집-우리들의 아름다운 노년

[ 한살림서울생협 어르신아카데미 ‘꽃보다 노년’에서 만난 ]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진행 우미숙 편집위원 \ 정리 김세진 편집부 \ 사진 임근재

한살림서울생협에서 서울시 지원을 받아 어르신 아카데미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6월 서울 장충동에서 8강에 걸쳐 연 어르신 아카데미 ‘꽃보다 노년’에 참석한 사람 몇 명이 후속 모임을 꾸렸다. 사는 곳도, 살아온 방식도 다르지만 아카데미를 인연으로 함께 노년을 꾸려가고 있는 강옥자(61)·김혜순(71)·심복례(62) 씨를 10월 22일 서울 은평구에 있는 한살림서울생협 은평지구 조합원 모임방에서 만나 ‘시니어의 오늘과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꽃보다 아름다운 여인’ 네 명이 모였다. 한살림서울생협에서 진행한 ‘꽃보다 노년’을 수강한 이들이 후속 모임을 꾸려 함께 미술관도 가고 농촌에도 가서 일손을 돕고 있다. 이들은 “나이가 들면 고집이 강해져 새로운 사람을 잘 안 만나려는 경향이 흔하”지만 “여기에서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참 좋”다고 말했다. 시계방향으로 심복례·강옥자·김혜순씨와 진행자 우미숙 씨.

 

 

우미숙(우)_ 시니어 하면 흔히 경제 문제, 자식 문제 등을 이야기하는데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마침 ‘꽃보다 노년’에서 만난 인연을 계속 이어가는 분들이 계시다니 더 궁금하고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김혜순(김)_ 저는 1946년생으로 올해 71살이에요. 사람들 평균연령이 높아져서 이젠 75세부터 노년이라던데 그러면 우리는 아직 청년이야. 2년 전에 남편을 먼저 보내고 아들과 함께 살아요. 남편이 생전에 시골로 가자며 평창에 집을 마련해 두었는데 그곳에서 텃밭도 하고 관리도 해야 해서 서울과 오가며 살고 있어요. 직장에 다니다가 55살에 은퇴했죠.

 

강옥자(강)_ 저는 61살이에요. 남편은 아직 일해요. 막내아들만 빼고 두 아들을 장가보냈어요. 다들 유학시키고 잘 키웠다고들 하지만 어릴 때 외국에 떼어 놓아서 그런지 부모에게 거리를 두려 해서 서운할 때가 많아요. 젊을 때 성당에서 봉사를 많이 했어요. 여전도회 대표 등 활동을 많이 했는데 60살이 넘으니 이제 젊은이가 하도록 비켜줘야겠더라고요.

 

심복례(심)_ 저는 62살인데 30년 넘게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어요. 어머니가 몸이 불편해서 삼시세끼 밥을 챙겨 드리느라 어디를 못 갔어요. 돌아가신 지 3년 되었는데 이제야 내 시간이 생겼어요. 남편이 얼마 전에 은퇴해 집에서 함께하는 시간이 많죠. 저는 6~7년 전부터 전통문화진흥원에 다니면서 이런저런 활동을 하고 있어요.

 

“내가 노년이라고?”

우_ 여기 오신 분 모두 ‘꽃보다 노년’을 수강하셨잖아요. 후속 모임을 꾸려서 같이 서울시립미술관에도 가고 요리교실도 열고 생산지에 가서 배추를 뽑는 등 일손도 돕고 같이 김치도 담갔다고 들었어요. 참 좋아 보입니다. 어떻게 ‘꽃보다 노년’에 참석하게 되셨나요?

 

김_ 한살림 매장에서 포스터를 봤는데 제목이 맘에 들더라고요. 참가비도 5천 원밖에 안 하고. 잠시 ‘내가 노인인가?’ 생각하다가 ‘들어 봐야지’ 하고 신청했어요. 국가 혜택도 받아야지 싶고. 그런데 강의 열리는 데가 계단이 깊어서 힘들더라고. 허리 아프고 다리 당기고 쥐나서 겨우 다녔어요. 그렇지만 뭘 시작하면 빠지지 않는 성격이라 한 번도 안 빠졌어.

 

심_ 동생이 소식지를 오려 주면서 형부와 가 보라고 해서 가 봤지. 처음에 ‘가만있어 봐. 내가 노인인가?’ 했어요. 착각하고 사는 거지. 남편을 억지로 데려갔는데 한 번 가고 안 가더라고요. 남자가 단 두 명이라 어색했는지. 덩달아 나도 두 번 빠졌어. 그러다 집에 있으면 뭐하나 싶어서 가 보자해서 다시 나갔죠.

 

강_ 어느 조합원이 문자를 줘서 알았어요. 공부하는 걸 좋아하는데 아카데미라니까 얼른 신청했지. 당시에 내가 노년이라는 생각이 없었어요. 생체 나이는 60살이 넘었는데도 30살 느낌으로 살았던 거예요. 그러다 막상 아카데미를 가니까 내가 노년인 게 확 다가오는 거예요. 27명이 신청했는데 84살인 분도 있고 70대도 있고. 또래 친구들과만 어울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 60~80대가 함께 강의도 듣고 어울릴 수 있구나. 이게 함께하는 삶이네. 어울려 살아야겠다’ 그게 딱 오는 거예요

 

우_ 청년들이 성년식을 치르듯이 노년식을 치르는 듯한 느낌이네요. 다른 분들은 어떠셨어요? 노년이라는 것이 받아들여지는지.

 

심_ 저는 아직 받아들이기 힘들어요. 시어머니가 97살에 돌아가셨는데 대소변을 받아 냈어요. 마지막 5년 동안은 요양원에 모셨는데 어찌나 마음이 무겁던지. 어머니 돌아가신 지 3년 되고 이제야 내 시간이 생겼어요. 늦게 사회에 나와서 더 실감이 안드는 것 같아요. 그런데 어느 날 사진을 찍으면 내가 거울에서 본 모습과 달리 늙어 있더라고요.

 

김_ 맞아. 그래서 나도 사진 찍는 게 싫어요. 문득 정년퇴직할 때 생각이 나네. 55살에 했으니 15년 되었어요. 일을 그만두니 기분이 묘했어요. 출근하던 버릇에 새벽에 절로 눈이 떠졌죠. 석 달쯤 되니 너무 좋더라고요. 이젠 어디에 매여서 살지 못하겠더라고요. 몇 십 년을 어떻게 다녔나 몰라. 60살까지 일하면 돈은 더 벌지 모르겠지만 내 생활이 없어져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젊을 때 하고 싶은 걸 해야 하니 50대에 그만두라고 말해요.

 

 

“남편 교육시켜야 해”


우_ 여기에는 남편이 아직 현역에서 일하는 분도 있지만 나이 들면 퇴직하시잖아요. 어떤 분들은 종일 얼굴을 맞대고 지내는 게 힘들다던데 어떠신가요?

 

김_ 같이 직장 생활해서 정신없이 그냥 살았어요. 눈 뜨면 직장 나가고 밤에 애들 키우고 그렇게 세월이 가 버렸어요. 그러다가 그 사람이 갔고.

 

심_ 남자들은 밥이며 빨래며 안 해요. 잠깐 어디 간다고 하면 “밥은? 나는 어떻게?”라고 해요. 지금은 좀 나아져서 차려 놓으면 챙겨 먹어요. 언젠가 열흘 동안 집을 비운 적이 있었는데 돌아오니 집안이 엉망이었어요.
젊을 땐 전혀 안 그러더니 이제 와 손잡고 어디 가자고 하니 화가 나요.

 

김_ 가 줘야지. 나처럼 남편 없다고 생각해 봐. 그리고 남편들 교육시켜야 해요. 지금도 안 늦어요. 세탁하는 법도 가르치고. 내가 저 세상으로 갔다고 생각하라고 해요. 오랫동안 집을 비웠을 때 더러우면 대신 치우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둬. 요즘 연금을 따로 타려고 이혼하거나 황혼 이혼한다고들 하는데 그동안 산 세월이 얼마인데 어떻게든 같이 살아야 해요.

 

강_ 남편에게 기대를 안 하게 되어요. 기대하면 실망하니까 기대 자체를 접어요. 그게 나이 드는 지혜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서로 알아서 배려하는 부분도 생기고요.

 

 

“나이 먹었다고 폐품이 아니야”

우_ 나이 들어도 사회에서 역할을 하고 싶잖아요. 일본 그린코프생협에서는 60살 넘는 분, 세 명 이상이 동업 형태로 워커즈를 해서 함께 식당이나 점포를 열었더라고요. 꼬부랑 할머니가 앞치마 입고 동네 특산물을 판매해요. 재활용할 옷을 모아 다른 지역에 전달하는 봉사를 하는 분도 있고. 수입은 적어도 일이 있어서 행복하다고 하시더라고요. 독일에 가니 머리 희끗희끗한 할아버지가 식당에서 서빙하고. 우리도 노인들이 저런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김_ 서비스업 같은 건 나이 많은 사람들이 하고 청년들은 창조적인 일을 하면 좋을 텐데. 나이 많은 사람이 할 일과 적은 사람이 할 일이 따로 있어요. 나이 먹었다고 폐품이 아니야. 나이 먹은 사람들이 더 지혜롭고 기술도 갖췄기 때문에 그런 걸 전수할 필요가 있어요.

 

 

 

 

 

“첫째 건강, 둘째 돈, 셋째는 친구”

우_ 혹시 지금 이 순간에 간절한 것이 있나요?

 

심_ 여행을 좋아하는데 그간 매여 있었으니 이제 홀가분하게 다니고 싶어요. 그렇지만 100살까지 산다고 하니 돈을 아껴야 해서 함부로 못 다니겠어요. 국내 여행은 생각보다 돈이 많이 안 들고 좋더라고요. 해외는 친구들과 돈 모아서 일 년에 한두 번 다녀오면 행복한 거죠.

 

김_ 건강하고 싶어요. 이전에 많이 아팠어요. 건강이 첫째이고 할 일이 있으면 좋겠고. 둘째, 돈이 있어야겠고. 나는 남편이 없으니 친구가 있어야 하고. 딸이 크니까 친구 같기는 하지만.

 

심_ 그래도 친구가 많은 게 최고인 것 같아.

 

김_ 맞아. 그리고 할 일이 있어야 안 늙어요.

 

강_ ‘100세 시대’라고들 하니 앞으로 40년을 산다는 말인데 이대로 늙으면 안 될 것 같아요. 그래서 댄스를 배워 보려 해요. 사람들 말이 세포가 살아나고 생활이 너무 행복하다는 거예요.
‘실버세대’라고 하는데 그게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거잖아요.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있는데 65살이 되면 자원 봉사를 하고 싶어요. 80살까지 내 발로 건강하게 다니고 싶고 80살 넘어서는 내 밥을 내가 먹는 게 희망사항이에요.
우리 동네에 어떤 80살 넘은 할아버지는 주변 독거노인들에게 도시락을 배달하는데 굉장히 자랑스러워 하세요. 자원봉사냐고 여쭤 보니까 매달 20만 원씩 받는다고 해요. 걸어서 배달하니 건강도 좋아지고 옷도 밝게 입으면서 얼굴도 펴지셨더라고요. 문득 나이 80살엔 20만 원이 굉장히 큰 돈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김_ 나이 드니 국민연금이 참 중요해요. 남편이 퇴직할 당시에는 연금을 일시불로 받거나 나눠 받거나 선택할 수 있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일시불로 받아서 집 사고 했다지만 제가 연금으로 받자고 했어요. 평생 월급 타 먹고살고 저축하는 기술밖에 없는데 뭐 할거야? 그때 참 잘한 것 같아요. 일시불로 받아서 쫄딱 망한 사람들도 있어요.
남편이 먼저 돌아갔지만 저는 70%를 계속 받고 있어요. 꼬박꼬박 받는 게 중요해요. “덕분에 잘 먹고 삽니다” 하면서 감사해요. 노년엔 몇 십만 원이 큰돈이죠. 연금을 들지 않으면 나중에 힘들어요.

 

 

“단돈 몇 십만 원도 노후엔 큰돈”

우_ 역시 나이 들면 돈이 문제네요?

 

강_ 그럼요. 돈 없으면 아파도 병원 못가요. 요양원에 가도 한 달에 60만 원 정도가 들어요. 입소하는 사람들 중에 나라에서 20만 원씩 받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거기에 개인 돈을 얼마 더 보태야 갈 수 있죠. 기저귀 값이니 뭐니 각자 충당해야 하니 적어도 50만 원은 있어야 해요. 그 정도는 마련하고 노년을 맞아야 할 것 같아. 노파심이지만 젊은이들이 돈을 안 모으잖아요. 우리 애들만 해도 나름대로 생각하는 게 있겠지만 여행만 다니고 돈을 안 모아요.

 

김_ 젊은 애들은 돈을 안 모으고 즐기는 것 같아요. 우리 집도 그래요. 장가가야 하는 아들이 모아 놓은 돈이 없어요.

 

우_ 국민연금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해 주셨는데요. 나라에서 ‘시니어’ 이름을 붙여 이것저것 하는 게 있지만 정작 받쳐 주는 제도가 별로 없죠. 어떻게 느끼시나요?

 

강_ 우리 세대가 과도기에 있는 것 같아요. 1988년에 나라에서 국민연금을 시작했죠. 1955년생인 우리는 베이비 붐 세대인데 사실 노후 자금 마련한 사람이 많지 않아요. 자녀들 결혼자금으로 많이 부담하고 연금도 없어서 깡통 계좌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많고. 일본과 20년 정도 차이 나는 것 같아요. 일본은 노인 천국이라고 해요. 일본에 여행 가서 할머니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80살에 일하는 분이 많아요. 할머니들이 앞치마 두르고 깔깔거리며 즐기더라고요. 건강한 삶이죠.

 

 

우_ 살아 보니까 이런 게 부족하니 나라에
서 좀 해 줬으면 좋겠다는 게 있다면?

 

김_ 우리는 복지가 정착되는 과도기에 사느라 돈이 많이 들어요. 젊은이들은 직장이 없어서 힘들고. 정치인이 잘하면 좋은데 다른 주머니 차서 세금이 흘러나가는 것 같아요.

 

강_ 앞으로 복지 제도를 어떻게 제대로 마련할지 고민해야 해요. 우리나라는 자원이 없어서 두뇌로 먹고살아요. 사람을 뽑을 때 사회복지를 어떻게 할 건지 살펴봐요. 특히 노년에는 그게 가장 중요해요. 몇 년 전에 노령연금이 생겨 20만 원씩 받지만 그게 언제까지 유지될지 모른다며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나이 들어 같이 살고 싶어요”

우_ 외국에 노인들이 모여 사는 데가 있어요. 주택협동조합을 만들어 땅을 함께 사서 집을 지어요. 주거공간은 각각 만들고 세탁소와 식당을 공동운영하면서 순번제로 일을 맡아서 해요.

 

강_ 저도 학교 친구들과 연립주택을 구해서 방 하나씩 차지하고 살자고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대신 남편이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요. 여자들끼리 모여 살아야지요. 오래된 희망사항이죠.

 

김_ 다니는 절에서 노인들이 같이 살 공간을 만들려고 추진하다가 대신 어린이집을 지었어요. 전부 아이들에게 투자하자고 결정했어요. 그런데 막상 어린이집 운영이 잘 안 되니까 차라리 노인들이 모이는 곳으로 만들자는 이야기도 있어요.

 

강_ 젊은 사람들은 ‘셰어하우스’라고 전세나 월세를 같이 내서 공동으로 살기도 하던데 나이든 사람들도 돈을 다 자식들에게 주고 없으면 그렇게도 할 것 같아요. 어차피 살아야 하니까 괜찮을 것 같아요.

 

우_ 한살림 같은 생활협동조합에서 시니어 활동으로 바라는 게 있어요?

 

강_ 앞으로 한살림에서 요양원을 만들 수도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건강한 먹을거리가 제공될 테니 좋을 거 같아요. 요양원이 생기면 제일 먼저 입소하고 싶어요. 들어 가서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봉사도 하고 싶어요.

 

김_ 한살림에서 그렇게 하면 좋겠네요. 하지만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 동네 경로당을 가 봤는데 화투를 소일거리를 삼고, 텃세가 있어서 70살은 발도 못 들여놓겠더라고요. 서로 도우려는 마음이 없고 남을 거느리면서 대우 받으려고 하니까 문제예요. 정부에서 경로당에 보조를 많이 하는데 그게 바람직한가 싶어요.

 

우_ 나이 먹어서 좋은 점이 있을 것 같아요.

 

김_ 슬프기도 하지만 한편에 안정감이 있어요. 80살이 10년밖에 안 남았다고 생각하면 서글프지만 “운명은 재천”이니 신경 쓸 것 없고 지금은 마음이 편해요. 우리 세대는 전쟁도 겪고 고생을 너무 많이 했어요.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해요.

 

강_ 저는 종교가 있으니 마음이 편해요. 다리가 성하면 뭐든지 할 수 있기 때문에 슬프지는 않아요. 다만 세월이 가는 게 안타까울 뿐이지.

 

김_ 고장난 벽시계처럼 시간이 멈췄으면 해요. 하지만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진 않아요. 살아온 세월이 얼마나 힘들었는데. 돈 번다고, 애들 키운다고.

 

심_ 나도 시어머니 돌보던 때가 너무 힘들었어요. 오늘이 참 행복해요. 이 순간이 제일 행복한 것 같아요. 옛날 생각하면 머리가 아파요.

 

우_ 지금이 행복하고 노년이 축복이라고 말씀하시니 저도 기분이 좋아요. 이렇게 계속 만나시면서 관계가 더욱 돈독해지고 새로운 역할도 찾으실 것 같아요. 뭔가 재미난 일들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긴 시간 여러 이야기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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