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호 2015년 10월호 [특집] 특집-버려지는 먹을거리 13억 톤

[ 서울광장·가락시장·홍대 거리에서 리듬 타며 요리하는 ‘요리가무’ ]

청년들의 농산물 구출작전

글 장시내

전 세계에서 규격에 맞지 않거나 혹은 진열 기한이 지난 멀쩡한 농산물이 대량으로 버려지고 있다. 이런 문제를 고민하는 젊은이들이 모인 슬로푸드청년네트워크가 2013년부터 ‘버려질 뻔한 농산물 구출작전, 요리가무’라는 행사를 기획해 길거리에서 채소와 과일을 씻고 자르고 요리해서 행인들과 나누어 왔다.

 

 

요리'가무'답게 음악을 즐기며 즐겁게 음식을 준비하고 나누는 청년들

 

 

우리는 2013년 6월 서울광장에 모여 규격에 맞지 않아 버려질 뻔한 제철 농산물 60kg로 신선한 샐러드 500인분을, 9월 가락시장에서는 대형마트에서 버리는 농산물 60kg로 약 200인분 카레와 과일 화채를, 10월 슬로푸드국제대회에서는 가격하락 때문에 산지 폐기될 뻔한 양파와 감자 120kg로 600인분 허브구이와 감자수프를, 10월 홍대에서는 농산물 40kg로 400인분 카레를, 2014년 9월 청계천에서는 농산물 70kg로 300인분 타코와 샐러드, 사과와 배 크럼블을 만들었다. 이때까지 모두 350kg의 버려지는 농산물로 2천 명 시민들과 음식을 나누었다.

독일과 멕시코, 일본 등 다른 나라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디스코수프, 디스코샐러드라는 이름으로 벌어지고 있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대량 버려지는 사실을 알리고 직접 먹어 보는 기회를 마련한 것이다. 단순히 ‘아까워서’가 아니라 잘못된 음식 시스템 때문에 생겨난 심각한 문제라는 사실을 알리고 있다.

 

음식이 식탁에 오르기까지 과정을 생각하는 철학

우리가 하고 있는 슬로푸드 운동은 이탈리아의 한 작은 도시에 들어온 맥도널드에 반대하며 시작했다. 단지 몸에 좋지 않은 패스트푸드를 팔아서가 아니다. 김치나 된장이 발효음식이라고, 혹은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든 죽이라고 무조건 슬로푸드라 부를 수는 없다. 슬로푸드는 음식이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궁금해 하면서 시작한다. 내가 먹는 햄버거 속 패티의 소고기는 무엇을 먹고 어떤 환경에서 자란 소로 만드는지, 소스에는 어떤 재료가 들어갔는지, 토마토와 양상추는 제철재료인지, 이 소비가 농부와 지역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특정 음식을 규정짓는 단어가 아니라 하나의 삶의 철학이다.

음식과 요리에 관심이 많은 나는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에서 직원으로 일하면서 좀 더 재미있고 젊은 세대에 맞는 활동을 하고 싶어 또래 친구들과 슬로푸드청년네트워크를 시작했다. 흙 만지기 좋아하고, 생태감수성이 살아 있고, 손으로 정성스레 만든 것을 소중하게 느끼고 남과 나누는 사람, 지갑에서 돈을 꺼내 소비만 하는 대신 함께 살아가는 일원으로 지구에서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사람들과 모여 작은 변화를 만들고 싶었다. 20~30대 젊은 층 인식이 변하지 않으면 미래 식문화도 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무척 중요한 활동이다. 함께 식문화를 공부하고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친구들은 현재 10명가량이다.

 

제철이 무색한 마트 농산물들

도대체 버려질 뻔한 농산물이 우리와 무슨 관련이 있을까? 대형마트에 가 보면 제철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다양한 농산물이 놓여 있다. 전봇대 마냥 곧게 뻗은 오이와 가지, 물감을 칠한 듯 선명한 색깔을 띄는 균일한 크기의 사과와 당근. 틀에 넣고 찍어낸 것도 아닌데, 집 앞 텃밭에서 수확했던 농산물과 왜 이렇게 다를까? 꼬불꼬불하거나 상처가 있거나 제각기 크거나 작아 개성이 있는 아이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또 마트에는 진열기한이라는 것이 있다. 유통 가능한 기한이 아니라 말 그대로 진열대에 진열 가능한 기한을 말한다. 소비자에게 최고의 상품을 제공하기 위해 기한 지난 농산물들을 따로 빼낸다. 또 배추, 상추, 양파 같은 채소들은 매년 금값이 되었다가 똥값이 되고는 한다. 인건비는커녕 모종값도 남길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이 농산물은 그대로 산지에서 폐기된다.

규격에 맞지 않는 농산물, 마트 진열 기한, 가격 폭락 등의 이유로 판매가치가 떨어진 농산물은 어떻게 될까? 전 세계 식량 생산량의 1/3이 이러한 이유로 버려지고 있다. 한국 농지 171만 1천 ha의 1/3인 약 57만 ha의 땅이 그저 소모된 것이고, 농민 약 284만 명 중 약 95만 명의 땀이 헛수고로 돌아간 것이고, 농산물이 생산·유통·소비·폐기되기까지 물, 전기, 석유 등 상당한 자원이 낭비된 것과 같다. 환경오염비용의 큰 원인이기도 하다.

 

상큼 아삭하고 든든하고

요리가무는 유통인들과 농부들을 만나 올 해 작황이 어떤지, 어떤 농산물 가격이 폭락했는지 들으면서 준비를 시작한다. 보통 유통회사나 농부에게 가서 버려지는 농산물을 받아 오는데, 때에 따라 대형마트의 진열기한이 지난 농산물도 이용한다. 테이블부터 도마까지 요리에 필요한 온갖 기물과 춤이 절로 나오는 음악을 준비하고 함께 요리할 참가자들을 모집한다.

구해 온 농산물을 50명 정도의 참가자들이 요리해 300명이 먹을 음식을 만든다. 쉰명의 젊은이들이 모두 칼을 들고 각양각색 재료를 손질하는 장면도 흔한 광경이 아닌데 거기다 리듬까지 타며 즐긴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어느새 다가와 요리에 참여하기도 하고, 완성한 음식을 맛보고는 놀란 얼굴로 “그러니까 이게 원래는 버려질 뻔 했던 재료로 만들어진 거라고요?”하며 되묻는다. 맛에 전혀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샐러드가 된 알록달록한 채소와 과일은 여전히 상큼 아삭하고, 각종 채소를 넣어 만든 수프나 카레는 추운 날 따뜻하게 몸을 데워 줄 뿐 아니라 배를 든든히 채워 준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소비자 인식이 변해야 하고 효과적인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 우리는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도록 돕고 농부와 유통인, 소비자와 전문가가 소통하는 자리를 마련할 뿐이다. 엉킨 실타래의 첫 매듭을 풀어 보고자 요리가무를 기획했다. 도시와 농촌은 몸도 멀지만 마음도 멀다. 무너져 가는 농촌을 보도하는 기사가 넘치지만 남의 일이라며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자연이 주는 먹거리에 대한 이해가 없는 소비자의 모습은 또 어떤가? 하지만 매사에 무겁고 진지하게 문제를 짚는다면, 그렇지 않아도 힘들고 외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관심을 끌 수 없다. 요리가무는 처음부터 끝까지 음악에 덩실대며, 직접 요리하고, 함께 먹으며 재미를 느끼고 의미도 챙기는 행사이다.

이 운동을 시작하면서 내 마음은 더 불편해졌다. 식탁에 올라오는 음식이 어디에서 어떻게 누구를 거쳐 오는지 알면 알수록 화가나 젓가락이 가지 않을 때도 있다. 이 불편함이 나와 내 주변 사람들 식생활을 바꾸고 있다. 칼을 쥐어 본 적도 없는 친구가 집에서 요리를 시작했고 나는 회사에 도시락을 싸 가지고 간다. 이제는 가격표 대신 원재료 표시를 보고 식품을 고른다. 크고 예쁜 농산물보다는 생협이나 농부 직거래 장터에서 믿을 수 있는 제철 식재료를 구입한다.

해외에서는 ‘푸드 웨이스트’ 문제가 이미 이슈화되었다. 2009년 영국 런던을 시작으로 프랑스, 벨기에에서 ‘피딩 5000’라는 요리가무와 비슷한 행사가 열리고, 35년 전 미국에서 시작한 ‘푸드 낫 범브’도 있다. 독일 베를린에서는 못생긴 농산물을 활용해 케이터링 사업을 하는 사람도 있다. 꾸러미를 받거나 농가와 계약 재배를 하는 방법으로 중간 유통단계를 줄여서 가능한 버리는 것 없이 수확해 소비하는 레스토랑과 소비자들도 있다. 한국은 여태까지는 소비 단계에서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만을 주목해 왔지만, 이제는 그보다 더 큰 문제인 농산물 폐기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

오는 11월 킨텍스에서 열리는 2015슬로푸드국제대회에서 요리가무를 열 계획이다. 누구든지 가벼운 마음으로 와서 함께 흥 보따리를 펼쳐보길 바란다. 형, 누나들이 요리가무로 신나게 만든 한 그릇 음식을 야무지게 먹는 어린이를 보면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누르게 된다. 이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에는 음식이 조금 더 질 좋고 깨끗하고 공정했으면. 그리고 모두 그런 음식을 누릴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세상이 올 때까지 우리 함께 요리하고 먹고 춤추자!

 

 

↘ 장시내 님은 환경과 사람에게 최대한 해가 가지 않는 좋은 음식과 술을 나의 사람들과 함께 마음 놓고 즐기면서 자급자족하는 꿈을 꿉니다. 그것을 위해 지금은 서울 한복판에서 슬로푸드청년네트워크의 리더를 맡고 있고 언제나 현재의 삶을 살아가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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