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호 2015년 10월호 [특집] 특집-버려지는 먹을거리 13억 톤

[ 제철 노지 생산으로 쓰레기 줄이는 ‘노지제철채소작목반’ ]

먹을거리 지키는 꾸러미

글 김상균

나는 꾸러미를 내고 있는 농부다. 겨우 몇 년 전 경기 남양주시 조안면으로 귀농한 터라 아직 글쓰기 부끄럽지만 팔당생명살림영농조합에 속한 ‘노지제철채소작목반’에서 하는 꾸러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무엇이든 많이 생산하고 많이 소비하고 결국 많이 버리는 시대에 꾸러미가 해답이 될까? 잘 모르겠지만 작은 틈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자연에 의존한 농사로 적당량 생산

우리 ‘노지제철채소작목반’은 이름이 보여주듯 비닐하우스 같은 시설재배를 하지 않고 노지 농사만 짓는다. 무농약 이상으로 내고 있다. 그러니 때에 맞는 제철 채소만 재배할 수밖에 없다. 마트에는 계절에 상관없이 다양하고 많은 식재료들이 넘쳐 나고 덩달아 소비자들의 냉장고도 가득 차 채 못 먹은 식재료들이 그대로 버려지기도 한다. 자연에만 기댄 농사를 지으면 애초에 그렇게 많은 작물을 낼 수가 없다.

오로지 자연에 의지하는 농사를 지을 땐 밥상엔 계절에 맞는 먹을거리만 올렸고 대신 다양하게 먹으려고 각종 요리법이 발달했고 말림·염장·발효 등 다양한 저장방식이 발달했다. 급격한 도시화와 공업화가 진행되면서 도시 경제 규모가 커졌고 정부는 저렴한 노동력을 공급하는 도시 소비자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먹을거리를 충분히,저렴하게 공급하는 정책을 택한 것 같다. 적극적으로 시설재배를 확대하고, 소농보다는 대농 중심으로 정책을 펼치고, 농약과 화학비료를 써서라도 생산량을 늘리라고 권장했다.

우리는 지금 언제 어디에서나 손쉽고 저렴하게 먹을거리를 구할 수 있다. 먹을거리가 지천에 널려 있고 손쉽게 재배되고 소비되지만, 바쁜 현대인들의 식생활에서는 그마저 냉장고에 처박힌 채 정크푸드 등의 외식에 떠밀려 결국 버려지기도 한다. 넘치도록 생산되고 공급되기 때문에 소비자의 손에 선택되려면 조금이라도 휘거나 상처가 있어서도 안 된다. 또 오래 보관해야 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비닐 등에 싸여 자연스럽지 못한 방법으로 생산되고 있다. 소비자들은 이미 거기에 익숙해졌고 그러는 동안 한쪽에서는 가장 자연스럽게 재배되는 소중한 먹을거리들이 버려지고 있다.

꾸러미에서는 다양한 시도가 가능하다. 계절에 맞는 먹을거리를 받는다는 큰 원칙 아래 소비자는 1~2주에 한 번 생산자가 보내주는 대로 먹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매주 또는 격주로 오는 꾸러미의 구성 내용을 선택할 수 없지만 고단한 농촌과 소농과 함께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불편함을 받아들인다. 꾸러미에서 생산자들은 새로운 시도를 해, 토종씨앗을 뿌려 키운 작물이나 조금 못생긴 채소도 담아 보낼 수도 있다. 하지만 농부의 입장에서 시장에서 정해진 규격을 완전 무시할 수는 없다. 꾸러미를 통해 소비자와 생산자는 서로의 얼굴과 이름을 걸고 만난다.

이런 소비자와 생산자에게는 무엇보다 “먹을거리는 자연스럽게 재배되어야 하며 그 어느 것도 함부로 버릴 것이 없다”는 인식이 먼저이다. 그동안 단순히 소비를 위해 규격화된 채소 외의 것들, 생산과 판매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버려지던 수많은 생명이 꾸러미를 통해 만나는 생산자와 소비자와의 관계에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

 

 

노지제철채소작목반 농부들이 모여 꾸러미로 보낼 작물들을 한 아름 들어 보였다. 노지에서만 기른 무농약 이상의 제철 채소를 1~2주에 한 번 꾸러미 소비자 회원들에게 보낸다. 소비자들과 함께 김장도 담그며 종종 만난다.

 

 

넘칠 때 많이 먹고 없을 땐 안 먹고

제철 먹을거리를 먹는다는 것은 넘칠 때 많이 먹고 부족할 땐 안 먹거나 덜 먹겠다는 선택이다. 대신 넘칠 때 저장해 놓으면 부족할 때 먹을 수 있고, 먹을거리 하나가 다양한 요리방법과 저장방법으로 또 다른 맛을 내는 소중한 먹을거리가 된다. 우리는 노지재배하는 특성 때문에 넘칠 때에는 넘치게 보낸다. 예를 들어 오이가 많이 나올 때는 생오이를 많이 먹는다. 남은 것으로 오이지를 담그면 오이가 나오지 않을 때 또 다른 맛을 즐기며 먹을 수 있다. 호박이나 가지도 많을 때 미리 말려 둔다. 호박고지로 저장하면 다른 계절에 먹을 수 있다. 제철 재배하는 채소는 이렇게 절임류, 말림류, 발효 등의 저장방법을 통해 다른 계절에도 우리 밥상에 오를 수 있었다.

그렇게 먹을거리를 소중하게 여겼다. 우리는 많이 나는 작물을 절이거나 장아찌로 만들거나 고지로 만들어 보내기도 하고,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요리 방법을 소개하기도 한다. 고들빼기나 도토리가루 등 시중에서 구하기 힘든 것을 보내기도 한다.

배추 하나도 다양하게 먹을 수 있다. 속이 덜 찬 배추라도 국거리로, 쌈 채소로 먹기에 부족함이 없다. 다듬고 만드는 방법을 몰라 그냥 버리던 무청도 잘 손질하면 영양이 배가 되는 시래기가 된다. 이런저런 이유로 냉장고 속에만 있다가 그냥 버려지는 그런 먹을거리처럼 우리의 요리방법, 저장 방법도 함께 버려졌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먹는 방법을 알면 버려지던 음식 재료들이 오히려 시중 판매장에서는 구할 수도 없는 훌륭한 먹을거리로 변신하게 된다. 요즘 젊은이들은 나물 요리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아 나물 요리 방법 등을 자주 소개한다. 작물을 내는 생산자들이 요리법까지 소개하거나, 단순하고 다양하게먹을 수 있도록 절밥 요리 등을 찾아서 소개한다.

꾸러미가 그렇게 값이 싼 건 아니다. 소비자들은 시중에 나와 있는 농수축산물보다 비싸게 구입한다. 생산자는 적지도 넘치지도 않을 정도의 식재료를 정기적으로 보내고 있다. 노지제철채소작목반에서는 1인가구에게는 매주 한 번이 아니라 격주에 한번 공급받을 것을 권한다. 다음 번 꾸러미를 받기 전까지 다 소비하기 위해서다. 물론 그렇게 하면 우리 매출은 줄지만 먹을거리가 버려지는 것을 줄일 수 있다면 그것이 우리의 소임이 아닌가 싶다. 소비자도 그러한 노력을 충분히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싸다고 마구 구입했다가 버려지는 비용을 생각하면 꾸러미가 처음에 다소 비싸게 느껴져도 버리지 않고 온전히 소비해서 얻는 비용을 감안하면 오히려 경제적이다. 더군다나 먹을거리를 소중히 여기게 된다.

소비자들은 꾸러미를 처음 받아 보고 당황하기도 한다. 스스로 선택하고 구매해서 요리하던 방식에서 받은 것으로 요리하는 데 익숙해지기까지 다소 시간이 필요한 듯하다. 그 시기에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 장마철에는 노지채소를 많이 받지 못해 실망하는 사람들도 있다. 언제나 손쉽게 구하던 삶의 방식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하는 신뢰 관계를 통해 다양하게 교류하면 더욱 좋다. 치커리와 상추를 재배해 본 어린이는 다시는 그런 음식을 버리지 않는다. 또 우리 꾸러미를 받고 있는 YMCA 등대생협 회원들과는 얼마 전에 만나 오이지와 물김치를 함께 담그고 메주를 쑤고 또 노지 채소 판매 행사도 열었다. 소비자 회원들끼리 하는 모임이 꾸러미를 지속하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혼자 먹기에 많은 양이라며 두 사람이 함께 받아 요리하고 나누는 소비자도 있다. 이렇게 버려지는 먹을거리에 대해 고민하는 소비자들, 그리고 힘들지만 제철 채소를 생산하는 소농 생산자들은 먹을거리를 지키며,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소중한 일을 하고 있다고 자부하여도 될 것이다.

전국의 생협들이 ‘푸드셰어링’의 거점이 되어도 좋겠다. 매장 한쪽에 냉장고 한 대를 설치해서 조합원뿐 아니라 지역의 빵집이나 채소가게 등에서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먹을거리를 두도록 적극 유도하고, 또 누구나 필요한 사람들이 손쉽게 가져갈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사람들이 접근하기 쉬운 곳에 냉장고를 두어 가져가기에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분위기를 만들어도 좋겠다.

 

 

↘ 김상균 님은 몇 년 전 경기 남양주시 조안면으로 귀농하여 팔당생명살림영농조합에서 남양주시와 양평 등지에서 농사짓는 다른 일곱 농가(또 단품, 임업, 가공품 등 1~2품목을 공급해 주는 다수의 준회원 농가)와 함께 ‘노지제철채소작목반’에서 농사를 배우고 있는 초보농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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