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호 2015년 9월호 살림,살림

[ 옛 농부들의 농사이야기-도열병·벼멸구·참새 떼를 쫓아야 영그는 벼 이삭 ]

논 물꼬 떼야 가을이 온다

글 전희식 \ 그림 전새날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기운이 감돌지만 낮에는 무더위로 숨이 턱턱 막히는 때다. 밤낮 기온차가 크고 후덥지근하다가 난데없이 소나기가 쏟아지는 날도 있다. 땅바닥에 내리 꽂듯 소나기가 내리면 땅내가 훅 풍기면서 더운 기운이 허공으로 솟는다. 소나기와 함께 천둥 번개가 치면 옛 어른들은 번개소리에 놀라 나락에 붙으려던 병이 떨어져 나간다고 좋아라 했다.

 

 

 

천둥소리에 놀라 도망가는 도열병

소낙비 한줄기에 도망가는 나락 병이 뭘까? 도열병이다. 논매기를 다 끝내고 이삭이 팰 때가 되면 벼농사는 한시름 놓는 때지만 마지막 복병이 기다리고 있는데 바로 도열병이다. 도열병은 벼의 줄기나 잎, 이삭 모가지에 걸린다. 벼 알에도 병기가 붙는다. 열이 올라 벼가 발갛게 타 죽는 병이라서 벼의 열병이라고 하는 것이다.

귀도 없고 눈도 없는 병균이 어찌 천둥 번개소리에 도망을 가겠는가. 시원하게 소나기가 쏟아지면 논의 열기가 내려가면서 도열병 발병률도 뚝 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한여름 소낙비는 장골 열 사람이 열흘 풀매는 것만큼이나 소출을 더 나게 한다는 말이 있다.

모를 내고 100일쯤 되면 벼 이삭이 패는데 대개 처서가 지나고 9월에 접어들 때다. 습한 상태로 무더위가 계속되면 도열병이 달려드는데 발병하고 나면 속수무책이다. 이른 모내기로 인해 뿌리 활착이 부실하게 되거나 거름을 많이 준 때문이라고 한다. 사후 약방문이지만 볏짚을 태운 재를 논에 뿌리기도 하고 소금을 뿌려 논물의 염도를 높이기도 했다.

벼농사하는 사람들이 신경 써야 하는 게 또 하나 있다. 보릿거름 장만하느라고 풀베기를 한창 하다가 여러 날만에 논에 가 보면 벼멸구가 달려든다. 이제 더 쓸데가 없을 것 같아서 깨끗이 씻어 헛간에 호미를 걸어둔다고 하여 ‘호미씻기’라고 하는 풍습에 따라 하루 거방지게 놀기까지 했지만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드는 벼멸구.

멸구는 볏짚 아래 부분의 액즙을 빨아 먹어 벼를 쓰러뜨리든지 말려 죽인다. 농부들이 긴 장대를 들고 논둑을 다니면서 벼를 슬렁슬렁 뒤흔들어 벼멸구를 나락에서 떨어뜨리면 물꼬를 따라 누런 벼멸구들이 둥둥 떠내려간다. 때로 물꼬에 등유를 흘려보내면서 벼멸구를 장대로 떨어내기도 하는데 그러면 벼멸구가 기름 낀 물에 떨어져 익사하기도 한다. 지금이야 등유는 경유보다도 싸지만 60년대만 해도 경유보다 다섯 배쯤 비싼 게 등유였다. 그 비싼 등유를 이용하면 벼멸구잡이가 매우 효과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벼 이삭은 병이 오든 벌레가 나타나든 개의치 않고 때가 되면 열매를 맺기 위해 올라온다. 뒤따라 피는 나락 꽃은 무척 개성이 있다. 유심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벼도 꽃이 피는지 모를 정도다.

 

폭탄 소리 들려도 허수아비 서 있어도 몰려드는 참새 떼

벼꽃은 나락 껍질이 살짝 벌어지면서 깨알보다도 작은 몽우리를 앞세우고 고개를 내미는데 하루에 겨우 한 시간 정도 볼 수 있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 사이에 한 시간 정도 얼굴을 내밀고는 수정을 마치고 그대로 진다. 재미있는 것은 이 시간대에 날씨가 갰다 흐렸다 하면 껍질이 열렸다 닫혔다 하고 벼꽃 역시 날름거리는 뱀 혓바닥처럼 나락 껍질 틈새로 들락날락하는 듯이 보이는 것이다.

벼꽃이 들락거리면 어른들은 “날씨 참 더럽다.”고 한다. 기껏 한 시간여 걸리는 가루받이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 하늘을 원망하는 소리가 아닐까 한다. 가루받이가 잘돼야 벼 수확량이 는다. 1주일 동안에 이삭에 달린 200여 개의 꽃들은 이런 식으로 수정을 마친다. 물 관리, 풀 관리를 잘하고 멸구도 물리치고 도열병도 막아 내면 나락이 익기 시작한다.

그러나 끝이 아니다. 벼가 익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참새 떼가 나타난다. 참새. 새 중에 최고인 새라서 ‘참’자가 붙었을까. ‘참’나무, ‘참’깨처럼.

나락 논 위에 무리를 지어 와르르 와르르 좌우로 뻗어 날다가 하늘로 솟구치는 군무를 펼치면 그들이야 멋진 공중묘기일지 모르나 농부들은 훠이 훠이 쫓기에 바쁘다. 참새는 나락이 익어 갈 때 한 알 한 알 쪼아먹는다. 나락 속에 우윳빛 뽀얀 액즙이 생기는 바로 그 순간에 훑어 내리면서 먹어치우니 벼 알갱이들이 알알이 허옇게 말라 죽어 쭉정이가 된다.

요즘은 새벽부터 논이나 과수원에서 펑펑 크게 울리는 폭탄 터지는 소리가 나는데 새 쫓는 소리다. 초기에는 카바이트 폭탄을 썼지만 요즘은 조류퇴치기라 하여 건전지를 넣어 개짓는 소리나 총소리, 매 울음소리 등 갖가지 소리를 내는 장비를 설치하기도 한다. 그때 태양광 전지를 쓰기도 한다. 새들도 그 소리가 ‘뻥’인 줄 아나 보다. 대포 터지는 소리가 하루 내내 들리니 말이다. 옛날에는 가을 들녘의 상징처럼 허수아비가 논마다 서 있었다. 허수아비의 옷차림과 표정은 농촌 들녘을 한층 풍요롭게 꾸몄지만 요새는 보기 힘들다. 옛날에는 참새를 쫓기 위해 뙈기라는 것도 동원했다. 볏짚을 2.4~3m(한 길)로 꼬아 만들고 끝에는 삼나무 껍질을 꼬아서 긴 채찍처럼 만든 것으로 머리 위로 빙빙 크게 돌리다가 한순간 반대로 당겨 치면 총소리처럼 엄청 큰소리가 나는 기구이다. 참새들이 이 소리에 놀라 도망가는 것도 그때뿐이고 나락 맛을 못 잊은 참새 떼는 다시 달려든다.

 

부잣집은 올게쌀, 꼬신내 나고

그나저나 누런 가을빛이 논가로 물들기 시작하면 벼 익는 소리가 짤랑짤랑 들리는 듯하다. 추석이 이른 해, 농부들은 논에 갈때마다 낱알을 손톱으로 터뜨려 익었는지 확인한다. 제사상에 햅쌀밥을 올리기 위해서다.

가난한 사람은 엄두를 못 내지만 부자들은 올게쌀(찐쌀)을 해 먹는다. 올게쌀은 아직 덜 익은 벼를 솥에 쪄 말려서 껍질을 벗겨 먹는 것을 말한다. 제대로 수확하면 두 배가 나올 쌀인데 올게쌀로 해 먹으면 그만큼 손해라 누구나 함부로 하지 못했고 해 먹더라도 겨우 시늉하듯이 조금 해 먹었다. 덜 익은 벼를 베기 때문에 그냥 말려서 절구에 찧으면 쌀이 다 깨져서 싸라기가 된다. 쪄서 말려서 빻으면 찰기가 있어서 쌀이 바스라지지 않는다. 쌀 색깔도 노릇노릇하고 맛도 아주 고소하다. 올게쌀을 한 집의 아이들이 주전부리 삼아 그걸 호주머니에 한 줌 넣어서 몇 알씩 꺼내 먹으면 다른 아이들이 군침을 흘리며 따라다니다가 유리구슬이나 딱지 한 장을 주고 몇 알 얻어먹기도 한다.

벼농사 관리의 마지막 단계가 있다. 논에 물이 흘러들지 않게 물을 떼는 일이다. 그러면 나락의 푸른기가 가시고 누렇게 물들며 고개를 푹 숙인다. 물이 나는 무논은 논 뒤쪽을 쳐서 물이 도랑으로 빠져 나가게 한다. 이렇게 논 물꼬를 떼야 가을이 온다.

그 옛날, 이렇게 해서 생산한 쌀은 얼마나 될까? 재미있는 통계가 있다. 2014년 한국에서 한 사람이 65.1kg의 쌀을 먹었지만 1900년대 초반에는 한 사람이 132kg을 먹었다는 것이다. 1980년대 초, 쌀농사가 왕성할 때가 130kg이고 보면 대단한 수치다. 1900년대 초에 한국과 중국, 일본을 3년간 머물며 지속가능한 동아시아 농사법을 연구한 미국 학자 프랭클린 킹이 쓴 《4천 년의 농부》(2006)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는 이렇게도 말했다.

“한국, 중국, 일본은 체계적인 관개 배수 시스템을 갖추고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퇴비로 사용하기 위해 풋거름을 쓰고 모든 종류의 쓰레기를 남김없이 땅으로 돌려보내는 것을 종교에 가까운 신념으로 여기고 있다.… 서구사회가 사막화되는 농토를 막으려면 이를 본받아야 한다.”

격세지감이다. 과도하게 산업화된 지금 우리 들녘을 보면 아득한 옛날 얘기임에 틀림없다. 그만큼 우리는 자연스런 삶을 잃어버린 듯하다.

 

 

 

↘ 전희식 님은 농민생활인문학 대표로, 전북 장수군 산골에 살면서 《똥꽃》, 《엄마하고 나하고》, 《시골집 고쳐 살기》 등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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