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호 2015년 9월호 [특집] 특집-꿀떡을 꿀떡

[ 핵 없는 푸른 하늘을 만들어 가는 청년초록네트워크 ]

핵 산업에 죽음을!

글 김수로

지난 8월 6일, 서울 도심에 청년 한 무리가 등장했다. 머리엔 커다란 종이학 모자를 쓰고 핵 산업을 중단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푸른하늘을 향한 행진’이라 쓴 커다란 현수막과 높이가 4m가량 되는 거대한 노란 천막이 행진 행렬을 뒤따랐다. 천막에 쓴 ‘탈핵’이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펄럭였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푸른하늘을 위한 행진’을 하는 모습. 지난 70년간 핵산업이 불러온 희생의 역사를 끝내기 위해,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핵이 인류에게 미치는 영향을 알리며 핵 산업 중단을 요구할 것이다.

 

 

원자폭탄이 ‘민주주의의 승리’라니

올해는 원폭 70주년이다. 70년 전의 원폭, 너무 오래된 옛일일지 모른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투하를 기억하고 있을까? 원폭 투하를 두고 한국의 세계사 교과서 중 하나가 “전체주의에 대한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가르치는 것처럼,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도 원자폭탄을 조국의 광복을 가져다 준 정의의 상징으로 기억하고 있을까?

1945년 8월 6일과 9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으로 인해 70만 명이 죽거나 다쳤다. 그중 7만 명은 강제징용 등으로 일본에 있던 한국인이었다. 반 이상이 죽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원폭 피폭 후유증으로 인한 각종 질병과 함께 가난, 차별, 소외에 시달려야 했다. 부모의 피폭 후유증을 물려받은 2세들 역시 힘겨운 삶을 살아갔다. 그들은 70년 동안 철저히 외면당했다.

2011년에는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사고가 일어났다. 그리고 2012년 핵발전소에서 생산되는 전기를 나르느라 세워지는 초고압 송전탑 반대 투쟁을 하던 밀양의 이치우 어르신이 분신자결을 했다.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우리는 핵과 핵 발전의 위험성, 그것이 가져오는 희생을 생생히 맞닥뜨리게 되었다.

큰 공장과 대도시를 굴러가게 하는 전기를 생산해 내느라 비수도권 지역에 세워지는 핵발전소와 송전탑이 지역 주민들의 삶을 앗아가는 것을 보면서 문제의식이 생긴 청년들이 우리 사회에 대해 고민했다. 다수의 편리를 위해 약자에게 희생이 집중되어 있는 시스템을 이대로 모른 척해도 되는지 말이다. 이는 피해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 결론이 닿았다. 핵 산업이 지속되는 사회에서 우리 모두가 당면하는 문제였다.

우리는 원폭 피해자들을 이대로 잊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원자폭탄의 모습으로 세상에 등장한 핵이 발전을 거듭하며 만들어 낸 수많은 희생자들 역시 잊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희생은 하루 빨리 멈춰져야 했다. 이에 뜻을 함께한 사람들이 ‘청년초록네트워크’란 이름으로 만나기 시작했다. 청년이 주체가 되어 핵 산업이 뿌리내리고 있는 희생의 시스템을 더 이상 긍정하지 않고, 그로부터 저항하며 핵 산업 중단을 계속해서 요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원폭 피해자, 송전탑 건설 지역 주민, 후쿠시마 사고 피해 청년이 함께

2013년 청년초록네트워크는 ‘한-일 푸른하늘 공동행동’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매해 8월 6일 일본에서 히로시마 원폭 투하를 기억하고자 열리는 ‘푸른하늘 행동’에 함께한 것이다. 우리는 송전탑 건설지 주민, 삼척 핵발전소 건설 예정지 주민, 고리1호기 핵발전소 피폭자, 한국인 원폭 피해자, 히로시마 피폭자 2세 등 건강하고 안정된 삶과 터전을 핵에 빼앗긴 사람들과 함께 도심 일대를 행진했다. 300명의 참가자들과 함께함으로써 일본과 국제적인 연대를 도모하는 길을 열었다.
지난해 여름과 올봄엔 ‘생명평화의 초록농활’을 떠났다. 흔히 농활은 대학생들이 농촌에 가서 봉사활동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우
리는 이왕이면 초고압 송전탑과 핵발전소 건설 반대 투쟁이 한창인 경남 밀양, 경북 영덕·청도 등지로 농활을 떠나기로 했다. 송전탑과 핵발전소 반대 투쟁을 하는 주민들 대다수는 온몸을 던져 삶의 터전을 지키느라 농사일에 많은 시간을 내지 못한다. 농사일에 일손을 보태면서 그들의 삶에 한 발짝 더 다가가 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우리는 이 마을 저 마을로 가서 풀을 뽑고, 땅을 일구고, 과일을 땄다. 흥겨운 노래에 맞춰 간단한 율동을 만들어 주민들 앞에서 선보이기도 하고, 밤에는 다 같이 모여 노래를 부르고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 7월 31일과 8월 1일에는 ‘푸른하늘 낭독회 70년’과 ‘푸른하늘포럼’을 하자센터에서 개최했다. 낭독회에서는 핵과 핵 산업이 미친 영향과 그에 따른 희생을 주제로 쓴 시들을 낭독했다. 청년초록네트워크에서 함께 활동하는 푸른하늘 서포터즈가 자작시를 낭독했고, 하자작업장학교 학생들과 후쿠시마 출신 청년인 나가시마카에데 씨도 함께 시를 낭독했다. 푸른하늘포럼에서는 한국인 원폭 피해자와 핵발전소 건설 예정지인 영덕 지역 주민, 후쿠시마 사고 피해 청년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이 겪은 핵 피해를 통감하며,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다시금 되새기는 시간이었다.
내년 1월에는 전국의 청년, 청소년들과 함께 ‘푸른하늘 겨울캠프’를 떠날 예정이다. 지난 캠프에서는 경남 창녕 우포늪, 경북 경주월성핵발전소와 방폐장 등을 견학하며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 핵발전 현장을 되짚어 보았다. 또 세계 각지에서 반핵운동을 활발히 하는 대만과 일본의 청년들, 핵발전소와 송전탑 부지에서 투쟁하고 있는 사람들을 초청해 이야기를 나눴다. 돌아오는 겨울캠프에서도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함께 고민하는 자리를 만들고자 한다. 이름 모를 풀꽃에서부터 다양한 생명들과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많은 것을 느끼고 얻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생명과 미래를 담보로 한 핵 산업은 이제 그만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얼굴이 붉어질 만큼 뜨겁던 지난 8월 6일 우리는 거리로 나왔다. 제각기 ‘NO MORE 히로시마’, ‘핵발전소 NO!’ 등의 문구가 쓰인 피켓을 든 채였다. 그리고 외치기 시작했다. “여러분,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십니까? 오늘은 70년 전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날입니다. 핵이 인류에게 최초로 모습을 드러낸 날입니다.” 우리는 평화와 반핵의 상징인 종이학으로 만든 조형물을 들고, 거대한 핵 마크 모양의 풍선을 굴리며 서울 종로 일대를 행진했다. 그러고 나서 일본과 대만의 청년들과 함께 만든 ‘푸른하늘 국제선언문’을 낭독했다. 원자폭탄과 핵 발전에 반대하고 핵 산업 중단을 요구하는 내용을 담은 이 선언은 같은 날 일본과 대만에서 동시에 발표되었다.

우리는 이처럼 핵과 핵 산업이 인류에게 미치는 영향을 계속해서 알리고, 녹색의 가치를 공유하는 다른 청년들과의 네트워크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 또 지속가능한 생태사회를 만들기 위해 늘 고민할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생명과 미래를 담보로 이어져 온 핵 산업의 발전을 원하지 않는다. 나아가 우리 사회가 핵이라는 기형적이고도 불합리한 공급구조를 가진 에너지로 지탱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끝없이 외칠 것이다. “인간이 아니라 핵 산업에 죽음을!”

* 청년초록네트워크 www.y-green.kr

 

 

↘ 김수로 님은 농업대안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청년초록네트워크의 집행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틈틈이 부모님의 농사일을 도와 깨와 감자 등을 키우고, 염소를 돌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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