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호 2015년 9월호 살림,살림

[ 안녕하세요-KBS <인간의 조건 – 도시농부>의 프로듀서 원승연 씨 ]

도시텃밭, 예능 방송도 한다!

글 이선미 편집부 \ 사진 류관희

주말 밤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도시 한복판 건물 옥상에서 농사짓기를 소재로 한 예능 프로그램을 봤다. 지상파 방송에서 ‘농사 예능’이라니, 농사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모을 정도로 위상이 높아진 건지 아니면 농사마저도 일개 흥밋거리가 되어버린 건지 알쏭달쏭하다. KBS <인간의 조건–도시농부>를 만드는 원승연 프로듀서에게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텃밭을 직접 가꿀 때 삶이 어떻게 바뀌는지 궁금했어요”

2013년 처음 방송된 <인간의 조건>은 자동차 없이 살기, 휴대전화 없이 살기 등 문명의 이기 없이 ‘사람답게 사는 삶’을 표방해왔다. 그렇게 2년 넘게 방송을 계속하다보니 “더 이상 없이 살 게 없었”고, “그렇다면 ‘무언가 없이 살기가 아니라 있이 살기로 해 보면 어떨까?’ 했을 때 가장 먼저 농사가 떠올랐다.”는 게 원승연 씨의 말이다. 다른 건 다 차치하고 사람이 살려면 먹어야 하고 먹으려면 농사를 지어야 하니, 인간의 제일 조건으로 농사를 선택한 것은 당연해 보였다.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다 보니 남들이 하지 않은 걸 하는 것도 고민하는 부분이에요.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 조연출을 하면서 농사를 접했고, 생각보다 더 이야기가 되겠다 싶었죠.”

출연자들이 직접 작물을 가꾸고 그 모습을 촬영하려면 방송국에서 가까운 곳에 농사를 지어야 했다. 주변 땅은 땅값이 비싼 데다가 이미 포화상태라 고심 끝에 선택한 것이 옥상텃밭. “서울에서 휴경지는 옥상 외에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노들텃밭같이 이미 잘되는 곳에 들어가는 건 의미가 없고요. 또 바쁜 연예인들은 서울에서 아무리 가까운 지방이라 해도 잘 못 가기 때문에 실제로 농지를 돌보는 사람은 현지 주민들이 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단순 체험밖에 안 되죠. 집 가까운 데서 텃밭을 직접 가꿀 때 삶이 어떻게 바뀌는지 궁금했어요.” 녹지가 부족한 도심에서 옥상텃밭을 통해 풀을 보고 느낄 수 있다는 점도매력적이었다고.

원승연 씨는 직접 농사지어 본 경험이 없는 대신 작가들과 같이 공부를 많이 했다. 그러면서 농약을 쓰지 않는 유기농사가 도시농부의 원칙이고, 출연자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끔 두는 것이 농사에 흥미를 잃지 않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걸 알게 됐다. “제작진이 출연자들에게 뭔가 임무를 주거나 진행하지 않아요. 텃밭에 벌레가 생겼을 때 내버려 둔다고 시청자들에게 욕을 먹었는데, 벌레를 잡을지 말지는 출연자들이 결정하지 제작진이 잡을 수는 없어요. ‘이렇게 해 저렇게 해’ 하는 순간 아무것도 안 되거든요.”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예능 방송의 재미를 위해서도 그렇지만 출연자들이 ‘내 농사’라는 책임감을 갖기에도 자유로운 편이 훨씬 나았을 것이다.

그 때문에 시행착오도 여러 번 겪었다. 그 중 하나가 쌈 채소를 너무 많이 심은 것. 하루가 다르게 왕성하게 자라는 덕분에 채소를 많이 먹었다고. “회식하러 삼겹살 집에 가더라도 우리 밭에서 딴 채소를 가져갔어요.” 보아하니 지난여름 쌈은 여한 없이 먹은 듯싶다.

 

 

 

 

 

 

 

 

 

 

 

 

 

 

 

 

 

 

 

 

 

<인간의 조건 - 도시농부>의 옥상텃밭. 서울 영등포구청 옥상에 상추, 고추, 시금치, 가지 등 수십 가지 채소를 길렀고 심지어 벼농사까지 했다.

 

 

좋아하는 청양고추를 직접 길러 먹게 되다

출연자 중에는 요즘 한창 인기를 끄는 요리사들이 있다. 이들이 텃밭에서 직접 키운 채소를 이용해 그 자리에서 뚝딱 맛깔스러운 음식을 해내는 것도 볼거리. “최현석 씨는 이렇게 인기가 많아지기 전에 섭외했어요. 실제로 먹을거리를 다루는 사람이니까 먹을거리가 자라는 과정에도 흥미가 있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전작 <해피투게더 3>에서 만나 이야기해 보니 농사에 굉장히 관심이 많고 직접 해 보고 싶었다고 해서 같이 가게 됐죠.” 덕분에 작물을 잘 키우는 것이 잘 먹는 것으로, 잘 먹는 것이 누군가를 잘 먹이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텃밭농사가 실제 출연자들의 삶에 끼친 영향이 있을지 궁금했다. “가수 조정치 씨가 공부를 가장 많이 했고 변화도 커요. 곧 이사를 가는데 이사하는 건물 옥상을 쓸 수 있게 돼서 상자텃밭을 만들 준비를 한다는 거예요. 방송과 상관없이 옥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텃밭 해야지.’라고 생각했다니 농사가 평생의 취미가 된 거죠.” 변한 건 원승연 씨 자신도 마찬가지. 매운맛을 좋아해서 마트에 들를 때마다 청양고추를 한 봉지씩 샀는데, 이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집 베란다에 청양고추 두 그루를 심어 따 먹는다. “어디서 어떻게 자란 건지 아니까 안전하기도 하고요. 냉장고에 오래 보관하면 짓무르는데 줄기에 달려 있는 건 늘 싱싱하죠. 무엇보다 계속 열리니까 좋아요.”

 

무엇 때문에 농사짓는지 알게 하고 싶어

그는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도시텃밭을 일구는 사람들이 참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전에는 관심도 없고 필요도 없어 보지 못하던 걸 보게 된 셈이다. 그 자신이 그랬기 때문에 도시텃밭에 관심 없는 사람들은 방송에 흥미가 없겠다는 예상도 했다. “시청률이 아주 높게 나올 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나도 한 번 해볼까?’ 정도만 이끌어 내도 성공적이죠. 이 사람들이 대체 무엇 때문에 농사짓는지 사람들이 알게 하고 싶어요.”

하지만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계몽적인 성격이 강하면 사람들은 피로감을 느낀다. 원승연 씨도 그 점을 잘 알기 때문에 캠페인처럼 보이지 않도록 노력한다. “어떻게보면 재미없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는 거죠. 긴 호흡으로 조금씩 느린 변화를 보여주는 게 이 프로그램의 목표에요. 다행히 농사는 하면 할수록 할 말이 많은 아이템이라서 자신이 좀 생겼어요.”

<인간의 조건–도시농부>의 옥상텃밭은 한 차례 수확을 끝내고 휴지기를 맞은 상태. 가을에는 김장채소를 길러 김장에 도전할 계획이다. “기존 맛집 탐방처럼 전국 각지의 김치 맛을 찾아가는 게 아니라 김장채소를 기르는 것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배추김치, 갓김치, 섞박지 등 김치 담글 때 쓸 고추도 말리고요. 농사일 외에도 할 일이 끝없이 있다는 걸 보여줄 겁니다.”

원승연 씨는 농사가 사람들의 눈길을 단박에 끄는 자극적인 소재가 아닌 만큼 시청자들의 반응이 뜨겁거나 빠르지 않은 점이 조금 아쉽다. “우리 프로그램을 기다려 주는 사람들이 조금 더 있다면 계속 밀고 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 특히 도시텃밭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를 기다린다. “일반적인 예능 프로그램과는 다른 방법으로 접근할 거예요. 의미 있는 일이 재미있는 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도시에서 건강하게 농사짓고 싶다는 말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그는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원초적인 데 집중하게 되는 것 같다.”면서 “먹는 것만큼 삶의 기본이 되면서 중요한 게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가능한 한 오랫동안 <인간의 조건 - 도시농부>를 이어가고 싶고, 토박이작물 등 아직 다루지 못한 것들도 이야기하고 싶다. 물론 예능PD로서 사람들에게 재미와 웃음을 주는 일도 놓치지 않을 것이다. 방송을 통해 농사의 의미와 가치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슬며시 스며들면 좋겠는가? 여기 쉽고도 확실한 방법이 하나 있다. 바로 ‘본방 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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