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호 2015년 9월호 [특집] 특집-꿀떡을 꿀떡

[ 떡에 관한 말글살이 ]

꽃보다 떡

글 박남일

우리 겨레는 귀신이든 짐승이든 떡을 좋아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예로부터 겨레의 말글살이는 떡과 관련된 수많은 말로 채워졌다.

 

 

“밥 위에 떡”이라는 말이 있다. 밥을 먹은 터에 떡까지 먹으니 겹으로 좋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사람들이 밥보다 떡을 더 좋아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밥은 일상의 양식이고 떡은 별식, 즉 특별한 음식이니 그럴 수밖에. 그런데 떡 좋아하는게 어디 사람뿐이던가. 상대가 듣기 좋을 말만 골라서 사탕발림하는 사람을 빗대어 “귀신 듣는 데서 떡 소리 한다.”고 한다. 귀신도 어지간히 떡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한편 전통 설화에 나오는 호랑이는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라고 오누이를 협박한다. 미루어 보건대 호랑이도 떡을 좋아한다.

이밖에 떡과 관련하여 “개 그림 떡 바라듯”, “까마귀 떡 감추듯”, “떡 본 도깨비” 따위 같은 속담도 있다. 그림 속 떡을 보며 침 흘리는 개도, 누군가에 빼앗길까 봐 서둘러 떡을 감추는 까마귀도, 떡을 보면 춤을 추는 도깨비도 모두 떡을 매우 좋아한다. 그뿐인가. ‘떡밥’ 미끼에 홀려 낚싯바늘을 덥석 물어 버린 물고기도 떡 좋아하기는 마찬가지다.

 

굿하면 굿떡, 똥통 빠지면 똥떡

지금도 그렇지만, 예로부터 떡은 제사나 잔치 때 빚어내는 필수 음식이었다. 그리고 식구들끼리 먹기보다는 여러 사람과 나누어 먹었다. 예나 지금이나 떡은 나눔과 소통의 매개물이었다. 그래서 굿을 하면 굿떡을 돌리고 제사를 지내면 제사떡을 돌리고, 돌잔치를 하면 돌떡을 돌렸다. 심지어 누군가 똥통에 빠지면 ‘똥떡’을 이웃에 돌려 뒷간 귀신의 노여움을 풀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전해오는 떡의 종류도 수백 가지나 되어, 그 이름을 일일이 헤아릴 수도 없다. 하지만 온갖 떡에는 나눔과 소통이라는 공통의 의미가 깃들어 있다.

그러나 떡을 돌려 나눔을 행하는 일이 꼭 아름답게 마감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나눔의 풍습에도 약간의 부작용이 따랐다. 집안에서 일을 치르고 마지못하여, 억지로 떡을 돌리는 경우도 있었다. 가난한 집보다 오히려 부잣집에서 그런 일이 더러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하여 “부잣집 떡도르듯” 하다는 말과 “부잣집 떡개는 작다.”는 말이 나왔다. 예나 지금이나 부자들이 더 인색한 건 진리이다. 실은 인색해서 부자가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한편 사람을 시켜 떡을 돌리다 보면 그 과정에서 약간의 배달사고도 있었을 터. 그럴 때 “말은 보태고 떡은 뗀다.”는 말로 그 애교스런 배달사고를 덮었다. 사람의 말은 여러 입을 거칠수록 보태어 부풀려지고, 떡은 여러 손을 거칠수록 줄어드는 게 당연하다는 뜻이다. “떡 도르라면 덜 도르고 말 도르라면 더 도른다.”는 속담도 이와 비슷한 뜻을 가지고 있다.

떡을 얻어먹고 나면 맛이 있네, 없네 하는 품평회가 열리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혹평이 이어지는 찰나 누군가 나서서 분위기를 다잡는다. “입에 맞는 떡이 어디 있냐.”고. 그러면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는 결의와 함께 품평회는 막을 내린다. 이쯤 되면 떡을 돌리는 실질적 이유가 무엇인지 드러난다. 그것은 바로 험담이 다반사인 마을 사람들에게 “이 떡 먹고 말아라.” 하는, 입막음의 의미였다. 이러한 풍습은 오늘날 뇌물 수수나 청탁 따위 비리 행위에 대한 입단속의 의미로 주고받는 ‘떡값’으로 괴상하게 계승되고 있다. 덕분에 ‘떡검’이나 ‘떡찰’이나 하는 괴상한 말도 인구에 회자되기에 이르렀다.

 

이게 웬 떡이냐’는 감탄이 그립다

떡은 이익이다. 이 나라 사람들은 의미가 있든 없든, 이익 없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 “그런다고 떡이 생기냐?”며 충고하기를 즐긴다. 물질적 이익을 떡으로 표현할 만큼 우리 겨레의 언어적 감수성은 탁월한 동시에 해괴하다. 그래서 뜻밖의 이익이 생겼을 때 흔히 “이게 웬 떡이냐.”는 감탄을 저절로 내뱉는다. 또 “어른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말로 아이들에게 물질적 이익에 대한 욕망을 대물림 시킨다. 지금은 잘 쓰지 않지만, “친아비 장작 패는 데는 안 가고, 의붓아비 떡 치는 데는 간다.”는 속담도 있다. 여기서도 떡은 이익을 상징한다.

이처럼 의리나 의미보다 이익을 먼저 차리는 게 보편적인 사회에서는 치열한 살기다툼이 벌어진다. 그래서 “한 사람의 떡을 열이 보는” 일이 저절로 일어난다. 안정된 직장을 놓고 수백 대 일의 취업경쟁을 벌이는 지금 현실은 그보다 훨씬 각박하다. 따라서 생존을 위해서는 쥐꼬리만 한 급여에도 “떡판에 엎드러지듯” 일해야 한다. 게다가 이익과 실속을 차리는 데는 가족끼리도 다툰다. 그런 경우 “떡 다 건지는 며느리 없다”고 한다. 시어머니 모르게 며느리가 딴 주머니를 찬다는 뜻인데, 그게 어디 며느리만의 잘못이겠는가.

국가와 거대 자본이 “아이 가진 떡”을 빼앗듯 가난한 백성의 노동을 쥐어짜고, 노동개혁이니 임금피크제니 하는 말로 임금 삭감을 주도하는 지금 현실은 “떡을 달라는데 돌을 준다.”는 속담이나 “죽은 사람 손에서 떡 빼앗아 먹겠다.”는 말에 딱 들어맞는다. 여기에 누가 대들기라도 하면 기득권자들은 “떡 먹은 입 쓸어 치듯” 표정을 바꾸고 “내 떡 나 먹었거니” 하거나 “네 떡 내 먹었더냐.”며 딱 잡아뗀다. 청춘을 소진하며 온갖 스펙 쌓기에 골몰하고도 취업에 실패한 다수 청년들은 깊은 절망에 빠질 수밖에. 이런 경우를 일러 “떡도 떡같이 못 해 먹고 찹쌀 한 섬만 다 없어졌다.”고 한다. 결국 저임금 비정규직 일자리를 억지로 선택하고 속이 상할 대로 상한 이들 입에서는 “떡도 떡 같지 않은 옥수수떡이 뱃속을 괴롭힌다.”는 말이 절로 흘러나올 법도 하다. “이게 웬 떡이냐.”는 감탄은 언제쯤 여기저기서 흘러나올 수 있을까.

 

 

떡 해 먹을 세상이지만

떡의 종류는 많다. 그래서 “떡이 별 떡 있지 사람은 별 사람 없다.”고 한다. 하지만 비슷한 노동에 대해서도 임금 차별이 횡행하는 걸 보면 사람도 별 사람이 있는 듯하다. 임금 차별은 곧 사람에 대한 차별이다. 그럼에도 “큰어미 날 지내는데 작은어미 떡 먹듯” 저임금 노동자들의 불행을 틈타 제 이익을 차리는 권력과 자본의 횡포는 잦아들지 않는다. 4대강을 파서 시궁창을 만들고, 핵발전소를 늘려 위험을 창조하고, 명산을 깎아 자본의 영업장을 만들고, 전체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하고, 국가정보기관이 거짓말을 떡 먹듯 해대는 등 뒤숭숭하고 궂은 일이 연달아 일어난다. 그래도 이 땅의 권력과 자본은 건재하다. “남 떡 먹는데 팥고물 떨어지는 걱정”에서 못 벗어난 다수 백성이 있는 까닭이다. 하지만 이쯤 되면 떡을 하여 고사를 지내야 한다. 정말이지 ‘떡 해 먹을 세상’이다.


떡은 사람이 될 수 없지만 사람은 떡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술에 만취하여 몸을 가누지 못하는 사람을 일러 “떡이 되다.”고 한다. 크게 곤욕을 당하거나 매를 많이 맞은 경우를 뜻하기도 하는 말이다. 우리 모두는 결국 떡이 될 것 같다. 하지만 힘들어도 마냥 떡이 될 일은 아니다. 꿋꿋이 버티며 희망을 간직할 일이다. 월급봉투 하나로도 식구들이 사는데 “떡을 치고” 남을 세상에 대한 희망을. 어쨌든 중요한 것은 권력과 자본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경제가 아니다. 우리의 밥이요 떡이다. 그런 점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꽃보다 떡’이다.

 

 


↘ 박남일 님은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우리말 풀이사전》 등 우리말 관련 책을 썼습니다. 지금은 지리산이 바라보이는 동네에서 우리말글을 연구하는 한편,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글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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