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호 2015년 9월호 [특집] 특집-꿀떡을 꿀떡

[ 30년 떡 장인 웬떡 대표 이규봉 씨 ]

떡이 곧 사람살이

글 \ 사진 김세진 편집부

“떡 하는 게 얼마나 떡 같은지 알아? 하지 마.”
대학에서 한식 교육을 하던 이규봉 씨가 떡을 연구한다고 했을 때 동료 교수가 이렇게 그를 말렸다. 그 말대로 떡 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이규봉 씨는 금세 알게 되었지만, 낙후한 떡 산업을 일으켜 보겠다는 사명감 때문에 30년 동안 떡을 만들어 왔다. 그가 경기도 용인시에 세운 떡 가공업체 ‘웬떡’에서는 지난 5월부터 한살림성남용인생협의 서현 매장에서 떡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규봉 대표

 

 

새벽 5시. 깜깜한 거리에 서현 매장에만 불이 켜져 있었다. 사실 찾아갈 때만 해도 떡 만드는 과정을 차례차례 소개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떡을 매장에 내놓는 오전 10시 30분 정도까지 눈코 뜰 새 없이 여러 과정이 동시에 진행되었다. 미리 씻어 놓은 대추와 검은팥, 서리태, 밤, 곶감 등으로 쇠머리찰떡 모양을 내는 동안 한쪽에선 인절미를 찌고, 또 다른 쪽에선 찹쌀을 빻아서 소금으로 간하고 물을 넣어 조절하는 식이었다. 각각 찌는 시간이 다른데 설기는 14분, 찰떡은 30분, 쇠머리찰떡은 45분이 걸린다. 찔 때도 우선 수분이 고루 퍼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거즈를 덮어 주어야 해서 그 앞에 지키고 있어야 했다. 바람떡에 들어갈 소를 만들 때는 검은팥의 껍질을 벗겨서 찐 것을 식히면서 계속 만져 주었다. 단백질이 굳지 않도록 재빨리 식히고 계속 만지면서 비벼주어야 한다고 했다. 손이 빠르면서도 무척이나 정확했다. 쌀과 재료를 씻어서 불리고, 콩가루 등을 미리 볶는 등의 사전작업은 보통 전날에 해 놓고, 당일에는 새벽 5시부터 본격적으로 떡을 만들어 낸다. 송편이나 돌떡 등 특별 주문이 있을 때는 새벽 2~3시에도 일을 시작한다. 주문 양에 따라 밤을 새우기도 한다. 아침에 바로 떡을 가져가서 먹을 수 있게 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재료·기술·정성이 어우러져

이규봉 씨는 어떤 재료를 넣느냐, 맛과 영양을 높이기 위해 어떤 재료들을 어떻게 섞느냐, 만드는 과정에서 얼마나 치대고 수분을 보존해 주느냐, 만든 다음에 어떻게 보관하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기 때문에 떡에는 정성이 들어간다고 했다. 또 손으로 치대면서 떡 만드는 사람의 기운도 담기기 때문에 아프거나 화가 났을 때는 떡을 만들지 않는 것이 좋다고 했다. 또 떡에는 문화도 담겨 있는데 조상들이 잔치나 제사에 꼭 떡을 올렸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정작 떡에 관한 자료나 연구는 많지 않다. 떡은 한식에서 디저트로 분류하곤 하는데 자료가 많지 않아 고민하다가 이규봉 씨 본인이 떡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떡 수업이 끝난 뒤 학생들이 맛이 없다며 직접 만든 떡을 버렸다. 충격을 받아 더욱 떡 연구에 집중하게 되었다. 연구 끝에 그는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우선, 국산 재료를 사용한다. 2012년 기준 23.6%로 떨어진 식량자급률을 높이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쌀 소비를 늘리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수입 재료를 썼을 때 맛이 없어서이다. 외국에서 묵은 것을 들여오기도 하고, 썩지 말라고 약품 처리를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재료를 찾아 전국을 다녔는데 한살림에 즉석떡을 내면서는 재료 구하기가 수월해졌다. 경기 안성 등지에서 오는 무농약 이상의 쌀을 쓰면서는 맛이 확연히 달라졌다. 우선 쌀을 씻을 때 향기 자체가 다르다. 그리고 기존에 쓰던 쌀이 거친 데 비해 친환경 쌀은 맛과 촉감이 부드럽다.

 

당근·단호박·복분자로 색 내기

“떡은 말로 하는 게 아니라 손으로 하는거죠. 그래서 쌀을 가루 내고 치대고 반복하면서 수십 년 동안 경험이 쌓여야 비로소 제대로 할 수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저런 상황에서는 저렇게 하는 식견이 생기는 거죠. 영양을 유지하는 조리와 기술은 무엇인지 알고 정성까지 들어가야 해요. 예를 들어 팥으로 소를 만들 때는 팥에 들어 있는 독소를 빼기 위해 한번 삶아서 물을 따라 버려야 하죠. 이론과 실무 모두 알아야 하고, 또 거기에 정성이 있어야 해요.”

몸에 안 좋은 것을 빼고 영양을 고려한 재료 조합은 기본이다. 색을 낼 때도 식용색소 대신 천연 재료를 사용한다. 천연 재료엔 독소가 있기 때문에 식용색소가 오히려 더 낫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이규봉 씨는 “천연 재료들에 있을 수도 있는 독소는 조리하면서 없어진다.”고 말한다. 붉은색은 당근으로, 노란색은 단호박으로, 보라색은 복분자로 낸다. 당근과 단호박에는 베타카로틴이 들어 있어, 열을 가했을 때 색이 변하지 않고 영양 흡수도 잘된다. 당근을 졸여서 엑기스를 만들어 쓰면 맛과 향이 그대로 유지된다. 안성 단호박, 고흥 유자, 경산 대추, 가평 잣, 제주도 구좌 당근 등 각 지역에서 맛있는 재료들을 가져온다. 기름은 현미유, 소금은 천일염을 쓴다.

 

 

생각지도 못했던 좋은 일이 있을 때 “이게 웬 떡이야?”라고들 한다. ‘맛있고 믿을 수 있는 우리 떡’을 말하는 웬떡을 한입 덥석 물면 “이게 웬 떡이야?”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 떡을 만들어 내느라 떡장이들은 새벽부터 분주하다. 한살림성남용인생협의 서현 매장 안에 있는 즉석떡 코너 웬떡.

 

 

재료, 필요한 만큼 매일 손질

이규봉 씨는 떡을 만들 때 설탕을 많이 넣지 않는데 달지 않아서인지 아이들은 “여기 떡은 어른 떡”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인로의 《파한집》에 보면 12세기에 설탕을 들여왔다고 해요. 하지만 조상들은 그전에도 떡을 만들어 먹었어요. 설탕 없이 어떻게 만들었을까요? 설탕 안 넣고 만든 다음 꿀이나 조청 같은 천연감미료에 찍어 먹었어요. 그런데 현대 소비자들 입맛에 맞게 만들어야 하니 설탕을 아예 안 넣을 수는 없죠. 하지만 떡은 달지 않게 만드는 게 좋아요. 대신 취향에 따라 설탕을 뿌려 먹거나 조청을 발라 먹게끔 작은 용기 안에 넣는 등 개발할 필요가 있죠.”

또 재료를 그때그때 손질하는 원칙을 지킨다. 직원 신진섭 씨는 다른 떡집에서도 일했는데 처음에 이곳에 와서 무척 놀랐다. 찹쌀이나 멥쌀 등의 재료는 보통 일주일에서 이주일치를 미리 씻어서 냉장 보관하는 데 비해 웬떡에서는 매일매일 다음날 쓸 것만 손질해서다. 또 단가를 맞추기 위해 수입산 재료를 쓰고 떡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유화제를 넣기도 하고 식용 색소를 쓰는 게 보통인데 웬떡에서는 그날그날 단호박과 당근 등을 갈아 색을 내고 국산만을 쓰기 때문이다. 맛과 영양을 보존하기 위해서다.

또 포장할 때도 신경 쓴다. 랩이나 플라스틱 용기를 쓰지 않고 안전성 검사를 통과한 종이 상자와 패키지를 사용한다. 다 만든 떡을 넣고도 습기가 차지 않게 하려고 식힌 뒤에 포장한다. 이규봉 씨는 기계도 주문 제작했다. 구리로 만든 기존 것에서 몸에 좋지 않은 성분이 나올 수도 있고, 웬떡에서 만드는 떡에 적합하지 않아 100% 스테인리스강으로 새로운 기계를 제작했다. 이규봉 씨는 떡 레시피가 좀 더 정형화되고 정확하고 다양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양과 맛의 성분이 더 일정해지고 과학적으로 조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제작 과정도 좀 더 기계화되어서 편리해져야 젊은이들도 떡 산업에 뛰어들 거라 생각한다.

“떡 산업에 미래가 있다고 생각해요. 떡은 들고 다니면서 먹을 수도 있고 영양도 있고 참으로 매력적이에요. 떡을 만들면서 떡 만드는 과정이 사람 사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요. 떡 속에 인생이 있다고나 할까? 인생에 바람 잘 날 없지만 사건을 잘 잡아 주는 게 중요한 만큼 떡도 그래요. 레시피대로 잘 만들어도 재료에 따라, 그날그날 공기 중에 있는 습기에 따라, 심지어 먹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 떡맛이 좋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요. 똑같은 재료로 정성을 다해도 그렇죠. 변수가 있어서 인내를 배우는 것 같아요. 그래서 떡이 사람살이고, 스승이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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