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호 2015년 9월호 [특집] 특집-꿀떡을 꿀떡

[ 절기마다, 지역마다 다른 우리 떡 ]

단풍 구경엔 뭐니 뭐니 해도 국화전

글 박혜숙

가래떡, 수리취떡, 송편, 인절미, 모시떡. 이름 아는 떡들만 읊어 봐도 많기도 하다. 절기마다, 경조사마다 다르게 먹는 떡. 우리 조상들은 떡을 언제부터 어떻게 해 먹고 살았을까? 지역마다, 때마다 어떤 다른 떡을 먹었을까?

 

 

삼국시대 이전부터 특별한 날에 먹고, 간식으로 먹고

동네에 떡집이 하나 있다. 일을 보고 돌아올 때, 저녁거리를 사가지고 올 때, 종종 그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일이 없어도 부러 마실가듯 그 앞을 어슬렁거린다. 고소하고 달달한 냄새가 바람을 타고 오면 염치없게도 코가 벌름벌름거린다. 얼른 떡 몇 점 집어 들고 호기로이 외친다. “떡 주세요! 떡!”

내 몸에도 떡에 대한 기억이 녹아 있는 게 분명하다. 식품공학을 연구하는 이철호 교수는 논문 <한국 떡에 관한 문헌적 고찰>에서 청동기시대 유적지인 나진초도패총과 삼국시대 고분군에서 시루가 출토된 것으로 미루어, 피나 조, 보리나 밀 등의 곡식을 심어 먹던 삼국시대 이전부터 떡을 만들어 먹었을 거라고 추정한다. 갈돌 같은 도구를 이용해서 잡곡을 가루 내어 불에 달군 돌에 구워 먹었다는 것이다. 떡은 밥을 먹기 전부터 끼니를 때우던 음식이었던 셈이다. 시루를 쓰던 청동기시대에는 찌는 떡을 주로 만들어 먹었다. 고구려 벽화인 ‘안악3호분’의 부엌 장면에는 당시에 사용했던 시루가 그려져 있다. 삼국시대에는 특별한 날 떡을 먹었다. 철기문화가 융성했던 통일신라시대 때에는 무쇠 솥이 보편화되어, 떡을 전보다 자주 해 먹었다. 명절이나 잔칫날, 제삿날이면 잊지 않고 떡을 빚었고 이웃이나 친척들에게 떡을 선물하기도 했다. 일본에 떡 문화를 전해 준 것도 이 때다. 고려시대에는 명절마다 종류가 다른 떡을 해 먹었다. 차 문화가 발전하면서 떡이 간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조선시대에는 떡의 재료가 한층 더 다양해졌다. 쌀가루에 여러 가지 곡식 가루나 과일, 꽃, 야생초나 약재 등을 넣었고 고물이 발달했다. 색깔이나 모양을 내기 위해 떡 위에 올리는 웃기떡도 화려해졌다. 떡이 크고 작은 행사에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음식, 신분에 관계없이 모두들 즐겨 먹는 음식으로 정착했다. 이처럼 떡에는 우리 조상들의 삶의 철학과 생활이 담겨 있다. 그런데 왜 점점 떡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을까? 왜 요즘 떡보다 빵에 더 자주 손이 가는 것일까?

 

평안도는 뽕떡, 황해도는 꿀물 경단, 전라도는 수리취떡, 충청도는 칡개떡

떡은 종류가 무척 많다. 만드는 방법에 따라서는 찌는 떡, 치는 떡, 지지는 떡, 삶은 떡으로 나눈다. 시루떡이나 백설기, 송편처럼 반죽을 시루 등에 쪄서 만드는 떡이 찌는 떡이고, 가래떡, 절편, 인절미처럼 떡메 등으로 쳐서 만드는 떡이 치는 떡이다. 화전이나 부꾸미처럼 기름을 두르고 번철에 지져서 만드는 떡이 지지는 떡이며, 수수경단이나 오메기떡처럼 뜨거운 물에 삶아서 만드는 떡이 삶는 떡이다.

조상들은 고장에서 나는 특산물로 그 지역만의 특별하고도 개성 있는 떡을 만들어 먹었다. 잡곡과 사과 등을 많이 재배한 평안도에서는 감자시루떡, 녹두지짐, 뽕떡을, 쌀과 수수, 조, 밀을 많이 재배한 황해도에서는 좁쌀떡, 꿀물 경단을, 산이 많고 추워서 잡곡 농사를 주로 지었던 함경도에서는 감자찰떡, 귀리절편, 언감자송편을, 과일이 많이 난 서울과 경기도에서는 흰 절편에 색색의 물을 들인 색떡과 여주산병, 쑥버무리를 만들어 먹었다. 충청도에서는 산나물과 칡, 버섯, 도토리를 넣은 도토리떡, 칡개떡, 호박송편을, 쌀과 약초, 산나물이 많이 나는 전라도에서는 감인절미, 모시떡, 수리취떡을 해 먹었다. 감자나 옥수수, 메밀 등을 주로 재배한 강원도에서는 메밀총떡, 옥수수보리개떡을 해먹었고, 밤, 사과, 유자 등 과일이 많이 난 경상도에서는 유자잎인절미, 곶감호박떡, 망개떡을 해 먹었다. 물이 귀해서 고구마나 감자 등 밭농사를 주로 지었던 제주도에서는 빙떡, 오메기떡, 차좁쌀떡을 해 먹었다.

 

 

지역마다 특산물을 넣어 각기 다른 떡을 해 먹었다.
자료 제공: 《역사가 보이는 별별 우리떡》

 

머슴날엔 노비 송편, 꽃놀이엔 화전, 상달에는 팥시루떡, 섣달그믐엔 골무떡

절기에 따라 먹는 떡도 달랐다. 농사를 주로 짓던 우리 민족은 절기를 매우 중요하게 여겨 계절이 바뀔 때나 명절이면 잊지 않고 떡을 빚고, 특별한 의미를 담아 소원을 빌었다.

음력 1월 1일 설날에는 집집마다 흰 가래떡을 뽑아 떡국을 끓여 먹었다. 재산이 늘어나기를 소망하며 가래떡을 쭉쭉 길게 늘이고, 재물이 들어오기를 빌며 가래떡을 동글납작한 동전 모양으로 썰었다. 음력 2월 1일은 한 해 농사가 시작되는 것을 기념하는 머슴날이다. 농사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커다란 노비 송편을 만들어, 노비들에게 나이만큼 나누어주었다. 힘든 농사일을 척척 해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으리라. 바깥나들이가 자유롭지 못했던 옛날 여인들은 3월 삼짇날이면 겨우내 움츠렸던 몸과 마음을 펴고 들판으로 삼삼오오 꽃놀이를 나갔다. 산들에 활짝 핀 진달래를 따서 화전을 지져 먹으며 오순도순 정담을 나누곤 했다. 4월 초파일에는 파릇파릇 돋아나는 느티나무 새싹을 따다가 느티떡을 만들어 먹으며 부처가 태어난 것을 축하했다. 5월 단오에는 수레바퀴처럼 둥글게 여름을 잘 보내라는 뜻을 담아 수레바퀴 무늬를 찍은 수리취떡을, 더위가 시작되는 6월 유두에는 오미자를 우린 물이나 꿀물에 시원한 수단을 띄워 먹었다.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7월 칠석에는 애호박을 넣은 밀전병과 증편을 만들어 먹고, 추석에는 햅쌀로 송편을 만들어 먹었다. 오색 단풍이 아름다운 9월 9일 중양절에는 산과 들로 나가 단풍 구경을 하며 국화전을 만들어 먹었다. 시도 읊고 술잔도 기울였다니 신선이 부럽지 않았을 것이다. 음력 10월 상달에는 마을과 집안이 두루 편안하기를 빌며, 붉은팥시루떡이나 무시루떡을 쪄서 고사를 지냈다. 동지에는 팥죽을 쑤어 먹고, 음력 12월 30일 무렵인 섣달그믐에는 한 해를 잘 보낸 것을 감사하며 천지신명에게 고사를 지내고, 골무떡을 빚어 이웃과 나누어 먹었다. 절기에 먹는 떡에는 조상의 지혜가 담겨 있다. 계절의 변화와 절기의 의미를 살펴 그때그때 특별한 소망을 빌고, 또 제철에 나는 신선한 재료로 떡을 만들어 맛과 건강까지 세심하게 배려하지 않았던가!

 

아이가 태어나도, 책을 한 권 떼도, 혼인해도

어디 그뿐이랴! 특별한 날에도 떡을 먹었다. 아기가 태어난 날, 아이가 자라서 서당에서 책을 한 권 뗀 날, 어른이 되거나 혼인을 한 날, 회갑, 세상을 떠난 날. 떡은 그렇게 늘 우리 곁에 있었다.

돌이켜보면 내 삶의 굽이굽이에도 떡이 있었다. 맏딸의 행복을 빌며 어려운 살림에도 꼬박꼬박 빚어주셨던 엄마표 수수팥떡, 외할머니 체취가 듬뿍 묻어나던 향긋한 쑥개떡, 온 식구가 모여 앉아 빚었던 달콤한 송편, 노을빛 갱년기와 씩씩하게 맞장을 뜨라며 친구가 부쳐 준 찰떡.

떡집 앞을 지나다 보니, 갓 나온 떡 케이크가 눈에 쏙 들어온다.

“시아버님 생신에 쓸 거예요. 예쁘죠?”

하늘색 원피스를 입은 앞집 새댁이 날 보며 활짝 웃는다. 요즘에는 전통 떡의 특성을 살리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더한 떡케이크가 인기를 끈다. 우리 땅에서 난 곡식과 과일, 약재로 만들어 우리 몸에 딱 맞는 떡! 요것조것 골라먹는 재미도 있고, 옹기종기 모여앉아 만드는 즐거움도 있다. 돌아오는 추석에는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떡을 만들면 어떨까? 오호, 솔향기 그윽한 송편을 떠올리기만 해도 꿀꺽꿀꺽, 자꾸 침이 넘어간다.

 

 

↘ 박혜숙 님은 동화작가로, 오늘도 아이들에게 들려줄 재미있고 신나는 이야기를 위해 부지런히 이야기 씨앗을 모으고 있습니다. 《역사가 보이는 별별 우리떡》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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