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호 2015년 9월호 살림,살림

[ 지리산 동네부엌-포도설기·고추장찌개·고추간장·과일깍두기 ]

백로에 포도지정

글 고은정 \ 사진 류관희

여름 더위가 사라지고 며칠 사이 아침저녁으로 옷깃을 여미게 하는 찬바람이 분다. 그러면 어김없이 고추장찌개와 고추간장이 생각난다. 매운 고추의 뜨거운 성질이 몸을 따뜻하게 하고 찬 기운을 흩뜨려 몰아내기 때문일 게다. 포도 끝물이 아쉬우니 쌀가루를 꺼내 포도설기를 해 먹고, 백과가 지천이라도 김장용 무배추가 아직 어릴 때니 과일로 깍두기를 담가 먹으면 좋다.

 

 

마당에 꽈리가 탐스럽게도 열렸다.

 

처서가 지나면 농부들은 세 벌 김매기를 하고 그것을 끝으로 본격적인 가을걷이를 준비한다. 여름내 그렇게도 극성스럽던 풀들이 힘을 잃고 처서 이후에는 더 이상 자라지 않기 때문에 산소와 논두렁 밭두렁의 풀도 깎아 추수를 준비하는 것이다. 특히 나무 아래 자란 풀들을 깎아 주어야 떨어진 알밤, 호두, 대추들을 제대로 주울 수 있다. 따가운 햇살 아래 오곡이 익어 간다. 건조한 계절로 들어서니 여름내 고생하며 농사지은 고추를 비롯해 호박이나 가지를 켜서 말리기에 좋은 시기이다. 이 무렵에는 밤 기온이 많이 떨어지고 한낮엔 여름보다 더 뜨겁기 때문에 일교차가 커져서 농작물에 이슬이 맺혀 절기상으로는 백로라 이름 붙였다. 이때를 전후로 가을장마도 물러가고 맑은 날만 계속되므로 이슬을 닮은 포도알들이 더욱 검어지고 향이 짙어져 제맛이 나므로 절로 손이 간다. 그래서 선조들은 백로를 포도의 절기라 했다. 중복에는 참외, 말복에는 수박, 처서에는 복숭아가 제맛을 낸다는 기록이 있다. 제철 과일에 대한 이해 없이 생산하고 소비하는 현대인들은 다시 온고지신하는 마음으로 밥상을 재검토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둘러앉은 밥상에 차린 가을맞이 음식들 사이로 부추꽃이 보인다. 고등학생인 최주희 씨와 엄마 이영란 씨 그리고 최연희 씨(왼쪽부터)가 젓가락을 들었다.

 


껍질과 씨까지 건강하게 먹는 포도

포도는 다산의 상징이다. 조선의 백자 문양이나 선비들 그림에도 자주 등장할 뿐 아니라 첫 수확물은 사당에 먼저 고한 후에 먹었다니 포도를 귀하게 여긴 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포도는 맛이 달고 시며 성질이 평하고 독이 없다. 습기로 근골이 저리는 증상을 완화해 주며 기운을 더해 주고 뜻을 강하게 해 주며 풍한을 잘 견디게 해 줘서 오래 먹으면 몸이 가벼워지며 늙지 않고 오래오래 살게 한다. 포도나무의 뿌리도 달여 먹으면 열을 내려 주고 부종을 없애 주며 임산부의 입덧이나 멈추지 않는 딸꾹질에도 효과가 있다.
현대 식품영양학에서도 신이 내린 선물이라고 일컬을 만큼 항산화 효능이나 면역력이 높아 질병 예방이나 노화 방지, 치매 예방에 탁월하다. 껍질을 먹을 때 느껴지는 시고 떫은맛에 들어 있는 레스베라트롤이라는 물질은 임상실험 결과 심혈관계통의 질병을 예방하고 항암 효과가 있다. 특히 포도의 껍질과 씨, 꼭지에는 많은 양의 레스베라트롤이 함유되어 있으므로 껍질과 씨를 같이 먹는 것이 좋다. 이런 효능은 와인에도 함유되어 있어 심혈관계통의 질병을 앓는 사람들에게는 하루 한 잔 와인이 약보다 좋다. 또 포도는 과일 중에서 피로 회복에 가장 좋다. 소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흡수되어 에너지로 바뀌는 포도당이 많이 들어 있기 때문인데, 실제로 포도에 단당류가 많이 들어 이름도 포도당이다. 하지만 당뇨 증세가 있는 사람이나 대변이 묽은 사람은 신중을 기해 먹어야 한
다. 한꺼번에 너무 많이 먹으면 가슴이 답답하고 눈이 어두워질 수도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동의보감》에 “열매는 자줏빛과 흰빛의 2가지가 있는데 자줏빛이 나는 것을 마유라 하고, 흰빛이 나는 것을 수정이라고 한다. 둥근 것도 있고 씨가 없는 것도 있는데, 음력 7∼8월이 되면 익는다. 북쪽 지방의 과실 중에 제일 진귀한 것이다.”라고 기록된 것을 보면, 귀해서 그렇지, 실제로 청포도와 붉은포도 재배의 역사는 적어도 조선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짐작할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연산군은 1505년 경회루에서 대비와 연꽃을 구경하다가 승지가 수정포도를 얼음과 함께 쟁반에 담아 바치니 “얼음 채운 파란 알이 달고 시원해, 옛 그대로인 성심에 절로 기쁘네. 몹시 취한 주독만 풀어 주는 것이 아니라 병든 위, 상한 간도 고쳐주겠네.”라고 하였다. 포도를 과실뿐만 아니라 약으로도 이용한 조상들의 ‘식약동원(食藥同源:식재료와 약의 근원이 같음)’ 식생활철학을 알 수 있다
포도가 맛있다는 백로 무렵이다. 이웃 농부가 여름내 땀으로 키운 포도를 먹으며 ‘포도지정’이란 말을 생각해 본다. 어린 자식을 위해 어머니가 포도 한 알 한 알을 입에 넣어 껍질과 씨를 가려낸 후 입물림으로 먹여 주며 키우는 정을 말함인데, 그래서 배은망덕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포도지정을 잊었다 하여 사람들에게 지탄을 받아 왔다. 생각해 보면 너무 어렸을 것이기에 부모님이 내 입에 포도를 입물림으로 먹여 주신 기억은 없다. 그러나 나도 딸아이를 키울 때 포도를 깨끗하게 씻고 한 알 한 알 정성들여 껍질을 까고 씨를 발라 아이 입에 넣어 주었다. 행여 더러운 것이 아이 입에 들어갈까 걱정하며 먹이던 것을 떠올리니 그렇게 나를 키워 주셨을 부모님 생각에 죄송하기 그지없다.
최근에는 과학의 발달로 껍질에 있는 성분까지도 즙으로 추출해 내는 조리 도구가 개발되어 팔리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기계에 줄기까지 넣어 즙을 짜서는 자기도 마시고 가족들에게도 마시게 한다. 포도의 줄기에도 식물성생리활성물질이 많이 들어 있다고 하니, 건강을 생각하는 현대인들이 선택이다. 그런 결과로 집집마다 아이들의 체력이 조금 더 좋아지고 가족의 건강을 좀 더 챙겼는지 모르겠지만 씹는 즐거움이나 부모자식 간의 돈독한 정에도 그 무게가 더해졌는지 알 길이 없다. 아니 오히려 한 알 한 알 정성스레 먹여 주는 정이 부족한 탓인지 최근에 부쩍 어른 섬김이 부족해서 문제가 되고, 그것을 일깨우는 말들이 무성한 것을 보면, 모자람은 모자람이 아니고 풍족함은 풍족함이 아님을 알 것도 같다.

 


포도의 색과 맛·향이 오롯이 담긴 포도설기

백로가 지나면 포도가 끝물 무렵이니 아쉽기 그지없다. 그래서 해마다 품질이 좀 떨어지는 포도를 넉넉히 사서 물을 추가하지 않고 끓여서 병에 담아 둔다. 가족들이 피곤해 하고 힘들어 할 때 한 잔씩 마시게도 하지만 음식에 색과 맛을 더해 주므로 자주 이용한다. 농익은 포도가 내는 생과일의 맛을 따라잡을 수야 없지만 아쉬운 대로 제법 쓸 만하다. 밀가루 반죽이나 쌀가루로 조리하는 음식에도 빠지지 않는다. 또 냉동실에서 떨어질 만하면 바로 만들어 두는 식재료에 쌀가루가 있다. 김치를 담글 때 풀을 쑤기 편하고, 전을 부칠 때도 쓰고, 때때로 입이 궁금하면 한 봉지씩 꺼내 각종 떡을 해 먹어도 좋기 때문이다. 아껴 먹던 포도가 끝나니 오늘은 시간과 마음을 내서 냉동실에서 잠자던 쌀가루를 꺼내 포도설기 쪄 먹으며 아쉬움을 달래본다.

 

찬바람 불 땐 고추장찌개·고추간장
지리산으로 이사하기 전까지는 충북 괴산으로 귀농한 농부에게 해마다 고추를 샀다. 한 번 방문해 인연을 맺고는 늘 추석 전에 연락해 맏물고추나 두물고추 위주로 사서 잘 닦고 말려 필요할 때 써왔다. 김장할 것은 김치용으로 조금 덜 빻고 고추장을 담을 것은 아주 곱게 빻아 따로 잘 싸서 냉동 보관해 둔다. 평소 요리할 때 넣어 먹을 것은 또 별도로 보관하는 이 모든 일을 추석 전에 모두 끝내 둔다. 지리산 인근으로 이사한 이후 마을 농부에게 고추를 사고 있다. 지리산 농부는 유기농으로 재배한 고추를 고집스럽게 태양초로 만들어 보내온다. 여전히 김장용, 고추장용, 일반 조리용으로 구분해 주문하고 고추씨도 넉넉하게 부탁한다. 그렇게 나에게 온 고춧가루와 고추씨는 가을고추장이 되고 겨울김장이 되고 가을막장이 되어 우리 집 밥상의 풍요를 책임진다.
짜증내게 하던 여름 더위가 사라지고 며칠 사이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분다. 때맞춰 지난해 가을에 담근 고추장항아리가 바닥을 보인다. 돼지고기 한 근 사다가 고추장항아리를 훑어 찌개를 끓여야겠다. 건조한 가을엔 돼지고기 몇 점이 도움이 될 것이다. 육수 없이도 돼지고기와 감자만으로 감칠맛은 충분하니 주방에서 오래 서성이지 않아도 된다. 고추장찌개 몇 번 끓여 먹다가 질릴 만하면 이제 고추간장을 해 먹어도 맛있다. 몇 포기 심어 두었던 텃밭고추에 고추 흰꽃이 연달아 핀다. 한여름보다는 천천히 크지만 풋고추로 즐기기엔 살이 너무 두껍고 억세다. 매운 고추는 성질이 매우 뜨거우므로 몸을 따뜻하게 하고 찬 기운을 흩뜨려 몰아내는 효능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찬바람이 불면 어김없이 고추장찌개가 생
각나고 고추간장이 먹고 싶다.

 

초가을, 과일로 담그는 깍두기
과일이 풍성한 계절 초가을이다. 오곡이 익어가고 백과가 지천이지만 김장용 무배추는 아직 어려 맛있는 김칫거리가 아쉬운 때이기도 하다. 배추는 어린 것을 솎아서 데쳐 먹거나 무쳐 먹고 풋김치로 담가 먹는 정도다. 무 또한 아직 손가락만 하여 비릿할 때니 열무처럼 먹을 수는 있지만 제 역할을 하려면 아직 먼 시기다. 이것저것 과일이라도 풍성하여 참 다행인 때다. 내가 살고 있는 지리산의 북쪽은 규모는 작지만 사과맛이 좋기로 이름난 사과산지다. 추석 전후로 녹색이 예쁜 아오리와 붉은 홍로가 나온다. 가끔 이 사과로 김치로 담가 먹으면 별미다. 김칫거리가 마땅치 않을 때니 더 맛나다. 먹다가 남은 배가 있다면 같이 넣고 가을 뿌리채소 중 마나 연근 등을 같이 썰어 넣어도 좋다. 깍두기로 담가 바로바로 먹으면 좋다. 과수의 씨앗인 과일은 인체에서 씨앗의 역할을 하고 식물의 뿌리 뿌리채소는 사람에게서도 뿌리의 역할을 한다. 그러니 과일과 뿌리채소로 만들어 먹는 샐러드 같은 깍두기는 가을을 보내는 우리에게 생명력을 키우는 훌륭한 음식이 될 것이다.

 

포도설기
*
재료
쌀가루 5컵(500g), 소금 1/2큰술, 포도즙 10큰술(쌀가루 수분 함량에 따라 포도즙 양 조절), 마른 블루베리 50g, 설탕 약간
만드는 법
① 쌀가루에 포도즙을 넣고 손바닥으로 고루 비벼 섞으면서 수분의 함량을 맞춘다.
② 쌀가루를 중간 굵기의 체에 내린다.
③ 체에 내린 쌀가루에 취향에 맞춰 적당한 양의 설탕을 섞는다.
④ 쌀가루에 블루베리를 섞는다.
⑤ 찜솥에 물을 넉넉히 담고 끓인다.
⑥ 물이 끓는 동안 대나무 찜기에 젖은 면보나 실리콘 시루 밑을 깔고 설탕을 살짝 뿌리면 떡이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것을 막아 준다.
⑦ 준비된 찜기에 쌀가루를 넣고 고루 펴서 윗면을 평평하게 고른다.
⑧ 물이 끓어 김이 올라오면 찜기를 찜솥에 앉히고 뚜껑을 덮어 20분간 찐다.
⑨ 20분이 되면 불을 끄고 찜기를 솥에서 내린 후 뚜껑을 열지 말고 5분간 후뜸을 들인다.

 

 

고추장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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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
돼지사태 300g, 감자 1개, 양파 1개, 표고버섯 3개, 대파 1뿌리, 들기름 1큰술, 물 1ℓ, 고추장 2큰술, 고춧가루 1큰술, 집간장 1큰술, 소금 약간
만드는 법
① 돼지고기를 냄비에 넣고 분량의 들기름으로 볶는다.
② 볶은 돼지고기에 뜨거운 물 1ℓ를 붓고 끓인다.
③ 감자의 껍질을 까서 큼직하게 썰어 둔다.
④ 양파는 손질해 반으로 자르고 다시 6등분하여 감자의 크기와 비슷하게 썬다.
⑤ 표고버섯은 깨끗하게 씻어 미지근한 물에 불린 후 은행잎 모양으로 4등분한다.
⑥ 대파는 어슷하게 썬다.
⑦ 고기가 어느 정도 익으면 고추장을 풀고 썰어 둔 감자와 양파, 버섯을 넣는다.
⑧ 감자가 익으면 고춧가루를 넣고 한소끔 더 끓으면 집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한다.
⑨ 대파를 넣고 불을 끈다.

 

고추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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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
손질한 국물멸치 1컵, 청양고추 10개, 풋고추 10개, 들기름 2~3큰술, 다진 마늘 1큰술, 물 1/2컵, 간장 2~3큰술, 조청 1큰술, 참기름 1/2큰술, 통깨 약간
만드는 법
① 멸치는 머리와 내장을 제거하고 기름기 없는 프라이팬에 넣고 볶은 후 잘게 잘라 놓는다.
② 고추는 깨끗이 씻어 4등분한 뒤 잘게 썬다.
③ 달군 프라이팬에 들기름을 두른 후 다진 마늘을 넣고 볶는다.
④ 마늘 향이 밴 기름에 손질한 멸치를 넣고 볶는다.
⑤ 멸치가 골고루 볶아지면 분량의 고추를 넣고 같이 볶는다.
⑥ 5의 재료에 물 1/2컵을 넣고 자작하게 끓이면서 간장과 조청으로 간을 한다.
⑦ 참기름과 통깨로 마무리한다.

 

과일깍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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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
사과 1개, 배 1개, 단감 1개, 연근 1토막(사과 크기), 마 1토막(사과 크기), 양파 1개
양념: 젓갈(새우젓 중 추젓) 3큰술, 다진 마늘 1작은술, 생강즙 1/4작은술, 고춧가루 2~3큰술, 쪽파 5뿌리
만드는 법
① 사과, 연근, 단감, 마를 깨끗하게 씻어 껍질째 가로세로 1cm 길이로 깍뚝썰기 한다.
② 배와 양파는 껍질을 벗기고 가로세로 1cm 길이로 깍둑썰기 한다.
③ 쪽파는 다듬어 깨끗이 씻은 후 길이 1cm 정도로 썬다.
④ 마늘은 곱게 찧고 생강은 즙을 낸다.
⑤ 분량의 젓갈에 고춧가루, 쪽파, 마늘, 생강을 넣고 잘 섞는다.
⑥ 썰어 놓은 과일과 채소를 큰 볼에 함께 담고 준비한 양념을 넣고 먹기 직전에 버무려 낸다.
* 과일이나 채소는 그때그때 나오는 것이나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적당히 이용하면 된다. 젓갈의 양도 재료의 크기에 따라 조절한다.

 

 

↘ 고은정 님은 약선식생활연구센터 대표로, 우리 장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라면 어디든 달려가고 있습니다. 《장 나와라 뚝딱》과 《집 주변에서 찾는 음식보약》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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