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호 2015년 7월호 살림,살림

[ 지리산 동네부엌-통밀밥·감자범벅·감자옹심이 ]

요염한 ‘미끈유월’에는 범벅 타령

글 고은정 \ 사진 류관희

씹는 재미도 있고, 먹고 나면 막 구운 빵을 씹을 때 느껴지는 구수함이 길게 남는 통밀밥 한 그릇, 남부러울 것이 없다. 뚝딱 만들어 새참으로 먹었다는 감자범벅과 감자옹심이는 이 계절에 잘 어울린다.

 

 

 

 

 

 

바야흐로 복월이다. 혹염이라 불리기도 하는 계하 6월(음력)이다. 24절기 중에서 소서와 대서가 있고, 무더위가 극성을 부리는 초복과 중복이 있어 연중 가장 더운 때이다. 모내기 하랴, 밭농사 신경 쓰랴, 농사일에 정신이 하나도 없어 계절이 언제 지나가는지 모르기도 하려니와 더위가 미끄러지듯이 얼른 지나가라고 ‘미끈유월’이라는 별명도 얻은 계절이다. 수박과 참외 같은 과일과 채소가 풍성한 계절이지만 소서 무렵부터는 장맛비가 자주 내려 잘못하면 습기가 만물을 썩게 할 수도 있다. 그래서 혹자는 음력 6월을 썩은 달, 액월이라고 부르니 매사에 조심해야 하는 때이기도 하다.


이즈음 들판에 나가 일하면 지열이 후끈 달아올라 숨이 막힐 지경이고, 논에서 일해도 벼 포기 사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정신을 아찔하게 하며, 태양은 마치 훨훨 타오르는 불꽃과 같아 들판을 사르는 것 같이 요염하다. 이 무렵의 요염함은 밭작물을 재촉하여 과일이며 채소 등 수확하는 것들이 생겨나니 음력 6월의 절기인 유두나 삼복, 칠석 등에 농신제를 지낸다. 왕실에서는 종묘에 올리고 양반가에서는 사당에 올리는 유두천신에는 참외나 수박 같은 햇과일, 유두면, 수단, 건단, 연병, 상화병 등이 그 주인공이 된다.

 

 

동네부엌에 찾아온 송창해 씨(왼쪽)와 고은정 씨(오른쪽)가 마주 앉아 감자옹심이를 빚었다.

 

 

햇밀 수확하면 밀가루보다 밀밥

이즈음에는 갓 수확한 햇밀로 만든 음식이 가장 맛이 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유두에 먹는 절기음식에는 밀가루로 만든 것이 많은데 유두면, 상화병, 연병 등이 바로 그것이다. 《동국세시기》에 유두의 절식으로 등장하는 상화병은 밀가루에 술을 넣고 반죽하여 발효시킨 후 그 안에 팥이나 깨, 고기, 나물 등을 넣고 둥글게 빚어 찐 음식이다.

상화병을 파는 가게 쌍화점에서 가게주인과 아가씨가 농하는 노래 ‘고려가요’에 처음으로 그 이름이 나오는 상화병은 고려시대에 들어온 외래음식이지만 조선후기까지 별미떡류의 하나로 다루어졌다. 현재의 밀가루로 만든 찐빵과 같으며 쪄낸 모양이 마치 서리가 하얗게 내려앉은 것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상화병은 보리수단과 같이 먹으면 더 맛있다. 수단은 물에 동그란 것이 떠있다는 말로 삶은 햇보리에 녹말가루를 묻혀 끓는 물에 데친 후 차가운 꿀물이나 오미자국에 띄워 시원하게 먹는 화채를 말한다. 혹하고 반하게 하는 오미자의 붉은 색에 흰 녹말 옷을 입은 보리를 띄운 모습은 보기만 해도 이미 훌륭한 맛의 음료이다. 《시의전서》나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 등에는 흰떡을 콩알만 하게썬 다음 녹말을 묻혀 삶아 만든다는 기록이 있다.

연병은 밀가루를 반죽하여 얇게 부친 밀전병에 깨나 팥을 달게 만들어 넣거나 각색 나물을 넣어 말아 먹는 밀쌈을 말한다. 이 연병이 화려하게 변신해 지금은 구절판을 장식하기도 하고 강원도에서 주로 먹는 메밀총떡 등이 되었지만 과거 조선의 연중행사에 늘 등장하던 음식이기도 하였다. 고려 말기에 이색은 유두절을 맞아 “상당군 댁 부침개 맛이 참으로 일품이라. 하얀 부침개에 달고 매운 맛이 섞여 있네.”라는 시를 읊었다.

밀가루 음식은 칼국수, 수제비, 부침, 부꾸미, 밀적 등 다양한 방법의 조리법에 의한 다양한 모습으로 발달해 왔다. 여름이 제철인 밀로 만든 음식은 더운 여름철 건강을 책임지는 중요한 음식이다. 맛이 달고 성질이 서늘하며 독이 없으므로 아직 쌀 수확을 하지 못한 여름철 주식으로 손색이 없고 심장과 비장, 신장을 이롭게 한다. 심장과 간의 음이 부족해서 오는 히스테리와 불면증, 갱년기 증후군, 잠잘 때 흘리는 땀, 쉽게 놀라고 꿈을 많이 꿀 때, 산후에 몸이 허약해졌을 때, 부종이 있을 때, 어린아이가 경기를 하고 밤에 울면서 잠을 못 잘 때 등 다양한 증세에 다른 약재와 함께 이용하면 도움이 된다.

특히 갱년기에 접어들어 불안하고 불면증이 생긴 여성들은 밀에 대추와 감초를 곁들여 차로 마시면 증세를 개선할 수 있다.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이니 더욱 값진 식재료이다. 하지만 너무 많이 먹으면 기가 막히게 되므로, 몸에 기가 정체되어 있거나 습한 열이 있는 사람은 먹지 않거나 먹어도 아주 적게 먹어야 한다.

딱 이맘때 한두 번쯤은 통밀을 한 움큼 넣고 보리밥 하듯 밀밥을 해 먹으면 별미다. 입안에서 흩어지며 미끈거리는 보리밥과는 달리 밀밥은 톡톡 터지는 재미와 함께 막 구운 빵을 씹을 때 느껴지는 구수함이 길게 남는다. 밀밥은 한 그릇 퍼놓고 텃밭에 나가 상추 몇 잎 뜯어다 된장에만 쌈을 싸도 고기 생각 따윈 처음부터 없었던 것 같이 맛나다.

 

 

통밀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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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
쌀 3컵, 통밀 1컵, 물 4컵
만드는 법
① 쌀을 씻어 30분간 불린다. 첫물을 빠르게 버려야 밥에서 잡내가 나지 않는다.
② 통밀을 쌀과 같은 방법으로 씻어 불린다.
③ 냄비에 물과 불린 통밀을 넣고 끓이다가 통밀이 끓기 시작하면 불린 쌀을 넣고 더 끓인다.
④ 밥이 다시 끓기 시작하면 불을 줄이고 15분간 뜸을 들인다.
⑤ 불을 끄고 5분간 후뜸을 들인다.
이렇게! 통밀밥은 통밀이 단단하여 쌀보다 먼저 끓이다가 밥을 하거나 미리 한 번 끓인 후 쌀과 함께 섞어 밥을 한다. 아니면 압력솥을 이용해 한꺼번에 넣고 밥을 한다.

 

 

 

 

 

찰떡궁합 감자와 햇밀이 부르는 범벅 타령

누구나 어린 시절에 먹던 음식 몇 가지에 얽힌 추억이 있을 것이다. 특별한 사람에 대한 추억, 특정 장소에 대한 추억, 별스런 사건들에 대한 추억 등등 추억이란 건 저마다 다른 무게와 느낌으로 남아서 삶을 풍요롭게도 하고 아프게 오래도록 남기도 한다. 어린 시절에 먹었던 음식들과 만나면서 나는 내 안에 깊이 잠들어 있던 기억들을 깨우면서 기뻐하기도 하고 오래 지우지 못하고 있던 것들과 화해하기도 한다.

해마다 하지가 지나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면, 그 무렵 캐기 시작하는 감자에 얽힌 기억들이 오랜 시간 나를 주방에 붙잡아 놓고는 한다. 하지 무렵에 캐기 시작하므로 붙여진 이름이라 하지감자일 텐데, 뽀얀 분이 이는 찐 감자는 이 계절의 햇감자만이 보여주는 진기이다. 시장에만 가면 언제든지 사다 먹을 수 있다지만 하지 무렵부터 나오는 햇감자라야 쪄 먹어도 제맛이다. 껍질을 까지 않고 깨끗이 씻어 소금 조금 넣고 찌면, 껍질이 툭툭 터진 틈 사이로 뽀얀 분이 밀고 나와 입에 넣기도 전에 벌써 침이 꼴깍하고 넘어 간다.

그런 감자라야 한다. 그렇게 반짝이며 분이 이는 감자를 한 바가지 까서 솥에 넣고 담장을 타고 오르는 울타리콩이나 강낭콩, 제비콩들을 한 움큼 같이 넣고 끓인다. 감자가 거의 익을 때쯤 햇밀가루로 한 반죽을 얹어 익히는 음식으로 그 간단한 음식을 감자범벅이라 불렀다. 감자를 삶기 시작할 때와 밀가루 반죽에만 소금을 살짝 더할 뿐인 감자범벅이 어째 자꾸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감자의 주성분은 탄수화물이고 칼륨의 함량이 높아 소금과 함께 섭취하면 좋고, 인의 함량은 많지만 칼슘이 적으므로 우유와 함께 조리해 먹으면 궁합이 맞는다. 비타민C와 B1이 많으므로 생채소가 부족한 겨울에 비타민의 주요 공급원으로 훌륭하다. 한방에서는 감자를 맛이 달고 성질이 평순하므로 늘 먹어도 좋고 위와 대장에 도움을 주는 식품으로 꼽는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 했으니 비위가 허해서 설사를 자주 하는 사람은 많이 먹지 않는 것이 좋다.

 

 

감자범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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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
감자 5개, 밀가루 1컵, 강낭콩 1컵, 물, 소금 약간
밀가루 반죽 : 밀가루 1컵, 물 2/3컵, 간장 1작은술, 소금 약간
만드는 법
① 감자는 깨끗이 씻고 껍질을 까서 굵직하게 썰어 놓는다.
② 밀가루는 간장으로 밑간하고 수제비 반죽보다 약간 질게 하여 놓는다.
③ 강낭콩은 깨끗이 씻어 놓는다.
④ 솥에 감자와 강낭콩을 넣고 감자가 잠길 정도로만 자작하게 물을 넣고 소금으로 아주 약하게 간을 하여 끓인다.
⑤ 물이 잦아들고 감자가 익을 무렵 미리 준비해 둔 밀가루 반죽을 감자 위에 얹은 후 뚜껑을 덮고 밀가루가 익을 때까지 다시 끓인 후 5분간 뜸을 들인다.
⑥ 감자와 강낭콩, 밀가루 반죽이 다 익으면 주걱으로 섞어 큰 그릇에 담아낸다.

 

 

 

감자옹심이와 어머니

나는 팔십을 넘긴 친정어머니와 한집에 살고 있다.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것이 아니라 되레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고 사는 중이라 늘 죄송하고 마음이 불편하다. 사람들은 친정어머니와 함께 사는 나를 만나면 남편이 좋은 사람인가 보다고 칭찬하지만 그때마다 나는 우리가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께서 우리를 거두고 사시는 것이라 고쳐 말하곤 한다. 산골생활에 아직도 적응하지 못하고 좌충우돌하는 남편과 나를 대신해 집안 곳곳을 살피고 관리할 뿐 아니라 살림에서 손 놓고 바깥일만 하는 나를 위해 끼니는 물론, 먼 길 운전하는 날엔 차 안에서 졸음을 쫓으라고 간식까지 챙겨 주신다.

방안에 앉아 효도만을 받아도 모자랄 연세에 힘에 부치는 일을 하시려니 여기저기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하시고 정말 가끔은 병도 나신다. 어머니의 고달픈 생활에 대한 마음 불편함은 그 크기를 헤아릴 수조차 없지만 그렇다고 바깥일을 접지 못하니 불효도 그런 불효가 없다. 그런 날들엔 풀이 죽어 다니면서 어머니의 안색을 살피는 일로 집에서의 시간을 다 보내게 되는데 그러다 어머니의 표정이 조금 편안해지면 나는 다시금 어린 시절에 강원도에서 해먹던 감자옹심이를 해 먹자고 조른다. 그러면 어머니는 싫지 않은 표정으로 눈을 흘기시면서 한말씀하신다.

“쯧쯧, 없이 살 때 해먹던 음식이 뭐 그리 맛있다고.”

어머니는 감자옹심이를 만들기 위해 다시 일어나 움직이시고 나는 그런 어머니를 보면서 안도의 숨을 내쉰다. 감자가 그렇게 어머니와 나 사이에서 삶에 활력을 불어 넣으면서 두고두고 잊히지 않을 추억들을 만들어 준다. 

 

 

감자옹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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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
감자 큰 것 5개(1kg), 애호박 1/2개, 양파 1/2개, 대파 1뿌리, 국간장 1큰술, 소금
국물: 국물용 멸치 20g, 다시마 10x10cm 두 장, 표고버섯 3~4개, 파뿌리, 물 10컵
만드는 법
① 감자를 깨끗이 씻어 껍질을 벗기는 동안 국물 육수를 낸다.
② 껍질 벗긴 감자는 강판에 갈아 체에 걸러 건더기는 따로 물기를 짜 둔다.
③ 체에서 나온 감자의 물은 버리지 말고 볼에 담아 10분 정도 그대로 둔다.
④ 애호박은 채 썰고, 양파와 대파도 호박과 같은 크기로 채 썰어 준비한다.
⑤ 감자의 앙금이 가라앉으면 윗물만 살살 따라 버리고 체에 걸러 둔 감자 건더기를 합친다.
⑥ 볼에 5의 재료를 넣고 한 꼬집의 소금으로 밑간을 하여 감자 반죽을 한다.
⑦ 지름 2cm 크기의 경단 모양을 빚는다.
⑧ 넉넉한 크기의 냄비에 간장으로 약하게 간을 한 국물을 붓고 끓이다가 국물이 끓어오르면 만들어 놓은 감자와 양파를 넣는다.
⑨ 감자가 익어 떠오르면 10분쯤 더 끓인다. 충분히 끓여야 속까지 고르게 익는다.
⑩ 감자의 속까지 다 익으면 채 썰어둔 호박과 대파를 넣고 모자라는 간은 소금으로 한다. 기호에 따라 매운 고추를 넣어 얼큰하게 먹어도 좋다.

 

 

↘ 고은정 님은 약선식생활연구센터 대표로, 우리 장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라면 어디든 가리지 않고 달려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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