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호 2015년 6월호 살림,살림

[ 살림의 현장-농민은 국민의 생명을, 국민은 농민의 생활을 지켜야 ]

농민에게 기본소득을

글 정기석

<2014년 농가 및 어가경제조사> 결과에 따르면 농가부채, 농업경영비, 농가 평균 가계지출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농업총수입에서 농업경영비를 뺀 농업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은 32%에 그친다. 그나마 농가 경영주 본인과 가족의 노동력 대가, 인건비는 농업경영비에 포함하지도 않은 것이다. 농사는 어렵고 농촌생활은 힘겹다.

 

 

 

수확 예상 수입을 ‘땡겨 쓰는’ 농업인 월급제

그래서일까? ‘농업인 월급제’가 유행이다. 지자체에서 가을철 농산물 수확 예상 대금만큼을 봄부터 월급 형식으로 미리 지급하는 제도다. 안정적이고 계획적인 농업 경영 및 가계 운영을 돕겠다는 목적이다. 경기 화성에서 2013년에 전국 최초로 시행해 올 해 전남 나주와 순천, 전북 임실 등이 뒤따르고 있다. “이제 빚지지 않고 농사지을 수 있다”며 농민들의 호응도 좋다고 한다.

그런데 월급제라는 용어는 부적절해 보인다. 굳이 표현하자면 ‘농산물 매출예상채권담보부 월단위 지급형 농가대출’ 정도가 정확할 것이다. 농민들의 금융이자 부담을 더는 취지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정도만 해도 혁신적인 제도임에는 틀림없다. 농민들이 농번기에 영농자금을 빌리고 추수기에 이자와 원금을 갚아야 하는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느 대출처럼 채무자 처지인 농민의 신용도를 평가하는 등으로 신청자격도 제한되고 지원예산도 많지 않은 점은 아쉽다. 대다수 소농과 영세농의 열악한 소득구조를 근본적·실질적으로 개선하기에는 아무래도 역부족이다.

강원도는 귀농인 지원에 농정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올해 전국 최초로 귀농인 31명을 선발해 정착지원금을 지급하고 있다. 최근 2년간 강원도로 전입한 20~45살 이하의 귀농인을 대상으로 1년차에는 월 80만원씩, 2년차에는 50만 원씩 지원해 조기 정착을 돕겠다는 것이다.

이는 일본의 ‘청년 취농자 급여제’를 따라한 것이다. 일본은 2012년부터 신규 취농종합지원사업을 벌이고 있다. 45살 이하의 청년 취농자에게 준비기간 2년과 독립기간 5년 등 총 7년에 걸쳐 급여 형태의 보조금을 지급한다. 지급액은 연간 150만 엔(약 1천7백만 원) 수준이다.

 

농사만으로는 한 해 평균 약 1천만 원 벌 뿐

지난해 귀농·귀촌 인구는 4만 4천586가구, 8만 855명으로 전년 대비 1.4배 증가했다. 게다가 은퇴기에 접어든 베이비부머 7백만 명이 도시 탈출을 예비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을 받아들여야 하는 한국 농촌의 현실은 만만치 않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도시민의 귀농·귀촌 실태와 정책 과제>(2012)에 따르면 귀농·귀촌 정착 시 애로사항으로 영농기반 마련(28.4%), 사업자금 조달(26.1%) 등을 들고 있다. 귀농·귀촌에 실패하고 다른 곳으로 재이주한 경우는 일자리 부족(34.6%)과 부족한 소득(26.9%)이 큰 원인이다. 개인적으로 귀농과 귀촌을 굳이 가르지 않고 '귀농촌’이라 부르곤 한다. 어차피 농사만 지어서는 먹고살기 어려워 귀농과 귀촌을 가르는 시도가 무의미하다는 생각 때문이다.도시를 떠나도 돈 문제, 먹고사는 문제는 어김없이 따라붙는다.

 

 

통계청의 <2014년 농가 및 어가경제조사> (2015)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농가의 평균소득은 3천495만 원이다. 그중 농사지어서 벌어들인 농업소득은 1천30만 3천 원으로 29.5%에 불과하고, 오히려 농업외소득이 1천479만 9천 원으로 더 많다. 주로 도소매, 사업외소득으로 농사짓지 않고 부업을 하거나 품을 팔아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다. 주객이 전도된 셈이다. 부업을 하지 않고 오로지 농사에만 매진하는 전업농가(연간 30일 이상 농사 이외의 일에 종사한 가구원이 없는 농가)의 소득은 고작 2천 637만 1천 원밖에 되지 않는다.

농가 인구는 275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5.5%에 지나지 않고, 농가 경영주 112만여명 가운데 10명 중 7명이 60살 이상 노인이다. 농지면적은 지난해 168만 7천 ha로 줄었고 향후 2년 동안 165만 ha로 감소할 전망이다. 2014년 곡물자급률(사료 포함)은 2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최하위권이고, 국내 농업생산액은 44조 원 정도로 국내총생산의 2.8%에 불과하다. 이게 예정된 손해를 당연하다는 듯 감수하고 빚이 빚을 낳는 한국 농업의 구조적 문제이다. 소농·영세농·초보농의 적나라한 생활 현장이다. 이래서는 한국 농업과 농촌의 살 길이 달리 없어 보인다.

 

국가에서 농가소득의 50~90%를 보전하는 독일·스위스

농사는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그게 가장 합리적이고 생산적이다. 농업은 국민의 생존권 보호에 근본적이고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산업으로서 마땅히 기간산업 대접을 받아야 한다. 그러자면 농정 철학과 패러다임부터 바뀌어야 한다.

독일은 일찍이 1954년부터 ‘농민도 일반 국민과 동등한 소득과 풍요로운 삶의 질을 향유하며 국가 발전에 동참한다’, ‘국민에게 질 좋고 건강한 농산물을 적정한 가격에 안정적으로 공급한다’, ‘국제 농업 및 식량 문제 해결에 기여한다’, ‘자연과 농촌의 문화경관을 보존하며 다양한 동식물을 보호한다’는 녹색계획의 4대 원칙을 철저히 고수하고 있다.

결과는 성공적이다. 독일 농민들은 농촌을 떠나지 않는다. 떠날 필요가 없다. 농촌에서 살 만하기 때문이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수호하는 농민이 농촌을 떠나지 않고 생활할 수 있도록, 독일·스위스 등은 농촌 문화 및 경관 보전 명목의 직불금으로 농가소득의 50~90%를 보전하고 있다.

 

농민기본소득제로 농업과 농민 지켜야

이른바 ‘4대 대안국민농정’으로 농정의 패러다임을 전환하자. ‘국민농정’으로 5% 생산자인 농민만의 고립된 농업에서 벗어나 95% 소비자인 일반 국민들도 농정의 책임주체로 연대하고 동참해야 한다. ‘공익농정’으로 국민의 생존권과 국가의 식량주권을 지키는 농업의 지위를 보장해야 한다. ‘지역농정’으로 초국적자본과의 승산이 희박한 자유무역 전쟁에서 벗어나 지역 및 마을 공동체 단위로 유기적 내부 순환의 자급체계와 자립기틀을 구축해야 한다. ‘협동농정’으로 농민 개인의 경쟁이 아닌 협동해서 자립하는 농사 공동체를 조직하고 경영해야 한다.

그리고 농민에게 기본소득 월급을 지급해야 한다. 먼저 소득별·연령별 특정 집단을 대상으로 부분적인 기본소득제인 ‘기초생활연금제’를 도입할 수 있다. 소득인정액 하위 30%에게는 영세농 기초생활연금제, 65살 이상 농민에게는 고령농 기초생활연금제를 시행하는 등이다. 그러고 나서 본격적으로 국가 차원에서 모든 농민을 대상으로 하는 농민기본소득제를 도입한다. 2014년 말 기준으로 농민 275만 명에게 월 50만 원씩 무조건, 무기한 지급하면 연간 약 14조 원 정도가 필요하다. 농림수산식품분야 연간 예산규모와 비슷하다.

기본소득이든, 연금이든, 직불금이든, 배당 또는 수당이든 어떻게 부르고 얼마를 어떤 방식으로 지급할지는 지금 중요하지 않다. 당장 중요한 건 농민기본소득제의 가치를 국민 속으로 널리 전파하는 것이다. 농민기본소득제는 농민에게만 특별히 베푸는 시혜가 아니다. 효과는 농가 소득 안정이나 농민 지위 향상에만 그치지 않는다. 귀농촌인 등 신규 농업인력도 자연스레 농촌으로 유입되고 덩달아 지역공동체 삶의 질도 올라갈 것이다. 농촌과 지역이 살아나면 도시와 국가도 발전한다.

농민의 일은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이다. 단지 이 말만 이해하고 공감하면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농민은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 국민은 농민의 생활을 지킨다.”

 

 

↘ 정기석 님은 마을연구소 소장이자 연구원, 마을살이 공동체학교 선생이자 학생입니다. 지은 책으로 《농부의 나라》, 《사람 사는 대안마을》, 《마을시민으로 사는 법》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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