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호 2015년 6월호 [특집] 특집-돌봄

[ 지역공동체 돌봄으로 노인의 사회적 단절 막는다 ]

돈보다 사람 중심으로 온 마을이 함께

글 권혁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9년 전 전남 영광으로 귀촌하여 지역활동을 시작한 여민동락공동체는 마을회관과 경로당을 마을복지센터로 만들어 온 마을이 함께 노인을 돌본다. “말년에 호사를 누린다”며 노인들이 웃음꽃을 피우는 그 자체만으로 주민들은 행복할 따름이다.

 

 

 

최소 비용으로 최고의 복지를

국가 주도 복지모델과 시장 주도 복지모델 모두가 부적격 판정을 받으면서 대안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 ‘지역공동체 복지모델’이다.

지역공동체 복지모델은 지역공동체가 스스로의 힘으로 복지를 해결할 능력을 키워 간다는 전제 아래 국가의 지원이 결합되는 형태로, 기존 방식과 결정적 차이점은 재정이나 기금 등 돈에만 의존하지 않고 물질적 지원 못지않게 공동체적 인간관계 회복을 통한 삶의 질 향상을 중시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최소의 비용으로 최고의 복지를 지향하는 ‘사람 중심 마을 돌봄’이다.

여민동락공동체(여민동락)는 마을공동체 안에서 주민들 스스로 우애와 협동의 복지를 이루도록 신명을 돋우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고령화·공동화로 온통 없는 것투성이인 농촌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싶지만, 인구 대비 도시보다 많은 게 마을회관 또는 경로당이다. 사회적 인프라가 거의 없는 이곳에서 마을회관과 경로당은 주민들과 함께 뭔가를 도모할 수 있는 소중한 공간으로, 이른바 ‘여민동락출장소’가 되기도 했다.

 

함께 모이고 먹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

여민동락은 마을 노인을 돌보면서 공동체관계의 회복을 꾀하는 돌봄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바로 ‘품앗이학교’이다. 서비스 제공기관이나 사회복지사가 아니라 마을 주민들이 스스로 요양보호사가 되거나 지자체의 노인일자리사업(일명 ‘노노케어’로, 65살 이상의 건강한 노인이 고령의 심신이 미약한 노인을 돌보는 일)에 참여하여 고령의 마을 노인을 정서적·신체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품앗이학교는 농한기에 마을 노인을 대상으로 진행하던 기초건강체크, 민요교실 등의 문화여가 프로그램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봄이 되면 건강한 노인들은 논밭으로 나가고,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은 삼삼오오 모여 텔레비전을 보거나 사람들이 없으면 경로당 문을 잠그는 경우가 많았다. 이마저도 하기 어려운 고령의 노인은 주로 집에 있거나 기껏해야 집 주변 정도가 활동범위였다.

그래서 마을 안에서 돌봄이 해결되는 방안을 찾다가 품앗이학교를 기획하게 됐다. 사업 추진을 위해 독거노인 욕구조사, 경로당 이용 현황 파악을 위한 설문조사 등을 했다. 또한 실제 사업이 가능한 거점 경로당을 선정하고 이장·부녀회장·노인회장 및 마을 주민들과 끊임없이 논의하는 한편, 재원 확보를 위한 방안도 모색하였다.

품앗이학교에서는 마을 주민과 노인들이 매일 모여서 건강체조, 한글교실, 미술교실, 치매예방활동 등 다양한 활동과 점심식사를 함께한다. 특히 함께 준비하고 먹는 점심은 서로 유대감과 정서적 친밀감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오랜 세월 이웃들과 함께 협동과 호혜의 문화를 만들어 왔던 노인들은 사회적 관계 단절과 정서적 고독에서 만성질환으로 인한 신체적 불편보다 더 큰 좌절감과 상실감, 삶의 욕구 저하를 느낀다. 식탁에 둘러앉아 함께 먹고 이야기 나누는 일이 촌락의 가장 기본적인 관계 맺기 방식이기에 공동 점심은 꼭 신경 써서 진행한다. 이 밖에도 독거노인의 사회적 고립을 방지하기 위해 평소 주변에서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사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 주고 일상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마을 주민과 노인이 함께 운영

품앗이학교 추진 주체는 여민동락노인복지센터로 경로당 주간보호사업과 연계하고 있다. 겉으로 드러난 모양은 다른 경로당과 매우 비슷하다. 그러나 품앗이학교 운영 관련 사항은 마을 주민과 노인이 참여하는 회의에서 결정된다.대체로 다른 경로당은 노인들만의 조직으로 운영되고 지자체가 정해 준 프로그램을 진행하지만, 품앗이학교는 마을 주민과 노인이 함께 참여하는 것이다. 다른 노인복지기관처럼 노인이 일방적으로 서비스를 받는 방식도 아니다. 또한 품앗이학교가 있는 마을에는 자치 조직으로 마을복지위원회가 구성되어 있는데, 여기서 품앗이학교를 포함한 마을 활동을 논의하고 추진한다.

몇 개월간의 기획과 준비를 통해 품앗이학교가 출발했지만 진행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처음에는 여민동락의 담당 사회복지사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주민들에게 돌봄서비스를 제공하고 기록하는 방법을 알려 주었으나 잘 따라오지 못했다. 그렇다고 사회복지사가 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거니와 그래서도 안 되었기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주민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소통하고 기다리는 방법밖에 없었다. 어떤 마을은 마을 대표들끼리 사소한 문제로 언성을 높이다 갈등과 분열이 심각해져서 잠시 활동을 접어야 했다.

오히려 돌봄프로그램에 참여한 노인들은 단 한 건의 말썽도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즐거워했다. “내가 다 죽을 때 되어 배운 한글이 너무나 좋네. 손자한테 내가 직접 이름 적은 봉투에 용돈도 주고 자식들한테 자랑도 하고 말이야.” “몸도 아프고 심심해서 죽겄는디 요로코롬 맨날 친구들도 만나고 밥도 같이 먹고 정말 좋구만. 사람 오래 살고 볼 일이여.” 하며 담당 사회복지사에게 사업이 오래도록 지속되기를 끊임없이 요청했다.

 

 

 

 

 

 

 

 

 

 

 

 

 

 

 

 

 

 

품앗이학교 한글교실, 민요교실 등에 참여한 마을 노인들의 모습. 노인들끼리가 아닌 주민들과 함께함으로써 사회적 고립과 고독을 덜 느끼게 되는 것이 지역공동체 노인돌봄의 가장 큰 장점이다.

 

 

‘콘크리트 복지’로는 할 수 없는 사람 중심 돌봄

품앗이학교를 시작한 지 이제 4년째,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지만 지역공동체 노인 돌봄을 고민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싶은 이야기를 간략하게 적고자 한다.

첫 번째, 지역공동체 돌봄은 탁월한 개인의 능력이나 그럴 듯한 기획력, 풍부한 재정과 같이 우리가 자주 접했던 방식들과는 함께하기 어렵다. 여민동락에서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이전부터 해오던 다양한 사업과 프로그램이 아니라 마을에 실제로 살면서 주민들과 이웃 관계를 구축하고 신뢰를 쌓아 온 시간이었다. 즉, 농촌이라는 공간에서 함께 어려움을 겪고 서로 도우며 살아온 과정이 있었기에 개인과 지역의 현실적 문제를 조금이라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고, 주민들과 좀 더 쉽게 협력의 장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사무실에 앉아 컴퓨터와 서류에 묶여 지역에 뭐가 있는지, 누가 사는지, 어떤 곤란함이 있는지를 제대로 모르고 건물 규모만 늘리는 ‘콘크리트 복지’를 했다면 감히 엄두도 내기 어려운 일이었다.

두 번째, 지역공동체 돌봄의 운영주체는 마을 주민과 대표들이다. 특정 단체나 개인, 기존에 다양한 사업을 해 온 복지기관이 중심이 되는 게 아니다. 온전히 마을 주민들의 몫이고, 이끄는 것도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마을 대표들의 몫이다. 그래서 시간이 오래 걸린다. 1~2년 만에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성과를 달성해야 하는 공무원의 방식과는 상극이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인내와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을 대표들의 역량을 높이는 일로, 이들에게는 이전과는 다른 민주주의 실천력과 협동 능력이 요구된다. 또한 왜 이 시기에 이 사업이 필요한지, 왜 마을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 그래서 다양한 경로를 통한 학습의 장을 꾸준히 마련하고 참여하도록 하는 게 사람들이 지치거나 분열하지 않고 제대로, 오래도록 함께하는 비법이다. 아무리 뛰어난 개인과 탁월한 기획이 있어도 마을 주민들과 또는 주민들끼리 불화와 분열이 생길 경우 한순간에 무너지게 마련이다. 이것을 조정하고 통합할 수 있는 민주적 리더십을 기르는 일이 지역공동체 노인돌봄을 지속가능하게 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숙제이다.

 

 

↘ 권혁범 님은 여민동락공동체 노인복지센터장으로 사는 게 즐겁습니다. 단순하고 소박하고 재미있게, 그렇게 살아가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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