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호 2015년 6월호 [특집] 특집-돌봄

[ 공동육아 파주반딧불이어린이집의 새내기조합원 정착기 ]

폐를 끼치는 사람이 되라고?

글 \ 사진 이강룡

파주반딧불이어린이집의 ‘초짜’ 조합원 ‘각군’은 협동조합의 장밋빛 이상만 품고 공동육아에 뛰어들었다가 여러 어려움에 봉착했다. 선배 조합원의 말대로 ‘개고생’이다. 그래도 즐거운 마음으로 고난을 헤쳐 나가는 중이다. 아이뿐 아니라 부모 스스로 성장하고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건설 노동자들이 아니다. 마당 작업 중인 아빠들이다.

 

우리 부부가 공동육아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스페인 프로축구단인 FC바르셀로나 때문이다. FC바르셀로나는 시민들이 한 푼 두 푼 출자해서 만든 협동조합이다. 수백억 원이 훌쩍 넘는 기업 광고 수익을 포기하고 선수들 유니폼에 유니세프 로고를 새겨 넣은 것도 협동조합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협동조합의 궁극 목적은 이윤추구가 아니고 조합원의 행복이니까.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협동조합이다. 공동육아를 택한 이들에게도 이런 자부심이 넘치겠지? 스페인의 몬드라곤 공동체나 FC바르셀로나 같은 곳이 우리에게 심어준 근사한 협동조합 정신이 깃들어 있겠지? 그런 막연한 환상 속에서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덜컥 선택했다. 거기서 문제가 생겼다. 이상만 좇았지 그에 따르는 책임과 역할은 제대로 고민해 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공동육아는 개고생

동갑인 아내와 나는 서른일곱에 결혼해 마흔에 아이를 낳았고, 네 살이 된 사내아이는 지금 파주반딧불이어린이집에 다닌다. 반딧불이어린이집은 2002년도에 경기 고양·파주 지역 부모들이 뜻을 모아 만든 공동육아 협동조합으로 2005년도에 첫 졸업생을 배출했다. 현재 조합원 35가구와 전문 보육교사 6명, 영양교사 1명이 꾸려 나가고 있다. 우리는 아직 반년도 못채운 ‘초짜’ 조합원이다. 개인 소유를 줄이고 공동체에 기여하고 싶고, 후손에게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자는 공동체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다고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나를 보며, 당시에 면접을 진행했던 선배 조합원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공동육아를 책으로 배운 ‘범생이’ 부부가 오셨군.” 하고 웃지는 않았을까? 참고로 나는 불타는 의지를 보이고자 면접날 FC바르셀로나 유니폼을 입고 갔다. 그때 선배 조합원이 해준 말이 환상을 깨버렸다. “공동육아, 개고생이에요.”

공동육아에 참여한다는 것은 모든 일에 공동으로 책임을 지겠다는 말이다. 청소, 관리, 활동, 놀이, 교육·보육 이념과 방식, 먹을거리, 식단 그리고 예산 수립과 비용 마련 등 처음부터 끝까지 조합원들 스스로 해 나가야 한다. 주말에 터전 마당에서 삽질하는 아빠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휴일 한나절 삽질에 매진하다 보면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하는 인생무상을 깨닫는다고 선배가 말해준 적 있다. 일정표는 반딧불이 일정으로 하나둘 채워지기 시작했다. 4세방 모임, 전체 조합원 모임, 들살이(엠티), 조합원 교육 1·2·3차, 작은 청소, 큰 청소. 여기에 아빠엄마들은 1일 영양교사, 1일 보육교사, 아이들 돌봄, 운전 제공 등 ‘아마 활동’을 하며 할당 점수를 따야 한다. 또 모든 조합원은 반드시 소위원회에 소속해 역할을 해야 한다. 아내는 교육소위에서 ‘방장’을 맡았고, 나는 홍보소위에서 소식지 <반디야>를 기획하고 만드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맥주 마시면서도 오로지 육아 이야기

비공식 모임도 많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마실’을 장려한다. 우선 이웃끼리 친하게 지내는 게 중요해서다. 취지는 좋다. 그런데 ‘힘들어’. 사교성이 부족한 우리 부부는 집에 손님을 초대하거나 다른 집을 방문하는 일에 아주 서툰데, 낯선 이웃을 그것도 한 번에 ‘스무 명이나!’ 저녁식사에 초대한다는 건 일생일대의 도전이었다. 우리 부부는 모든 기력을 소진하고 장렬히 몸살에 걸렸다. 처음엔 대청소를 하고 손님을 맞았지만, 여러 번 하다 보니 이제 청소 안 하고도 이웃을 맞을 수 있다. 우리도 살아야 하니까. 서로 난장판이면 ‘쌤쌤’이니까 청소는 서로 안하는 거로….

주중이라고 모임이 없나? 아니다. 퇴근하고 좀 쉬고 싶은데 아빠들 번개가 있으니 참석하라고 연락이 온다. 피곤해도 맥주로 목이나 축이면 괜찮겠다 싶어 갔는데, 여섯 시간 동안 오로지 육아 이야기만 하며 술을 마시는 아빠들을 목격한 나는 그 낯선 사태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마당에 무슨 흙을 깔 건지 토론하며 맥주를 마시는 아빠들. ‘아, 공동육아가 이런 거구나. ’

 

품앗이하려면 이웃이 서로 만만해야

안양의 공동육아 어린이집 이사장이었던 이기식 강사는 교육 때 신입 조합원들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공동육아 힘들어요, 그리고 즐거워요.”, “대강 묻어갈 수도 있고 열심히 참여할 수도 있습니다. 선택에 달렸어요. 그렇지만 나중에 얻는 건 전혀 다를 겁니다.”

공동육아에 참여하며 들었던 조언 중 가장 파격적인 것은 ‘남한테 폐를 끼치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공동육아는 같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마을 아이들을 함께 돌보는 일이다. 이런 ‘품앗이 돌봄’을 하려면 이웃이 만만해야 한다. 먼저 우리가 아이를 봐 달라고 부탁하면 상대방도 다음에 부담 없이 아이를 맡아 달라고 부탁할 수 있다. 그렇게 번갈아 신세지며 서로 만만한 사람이 되는 게 사람 사는 맛인지도 모른다. 소심한 우리 부부는 그 첫 단계인 폐 끼치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졸업한 조합원들도 행사나 교육이 생기면 종종 ‘아이 돌봄서비스’를 제공한다. 조합에서 탈퇴해도 여전히 같은 공동체 구성원이라는 의식이 강하다. 우리 어린이집은 신입 조합원들이 자연스레 공동육아 문화에 스며들도록 같은 동네에 사는 기존 조합원을 ‘100일 서포터즈’로 묶어 돕고 있다. 단순히 다른 집 아이를 맡아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어린이집에서 익혔던 부모이자 교사이자 친구의 역할을 그대로 해낼 수 있다.

 

 

파주반딧불이어린이집의 놀이터인 뒷산에서 아이들이 뛰놀고 있다. 아이들이 화단을 만들어 달라고 하면 아빠들은 화단을 만든다.

 

 

상하가 아니라 동등하게 만나는 관계

아이들이 다른 엄마 아빠들과 쉽게 친해지는 데 반말과 별명 사용이 한몫하는 것 같다. 6살 시윤이는 어른 사람인 나에게 언제 봤다고 대뜸 “이름이 뭐야?”라고 처음으로 물었던 당돌한 사내녀석이다. 터전의 모든 아이들이 다 그렇게 한다. 모든 구성원을 상하가 아닌 동등한 관계로 보는 원칙 때문이다. 처음엔 아이와 어른, 아이와 교사 사이에 반말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게 무척 불편했다. 별명을 불러야 하는 점도 싫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불과 몇 달 만에 익숙해졌다. 효과도 좋다. 반말을 하면 ‘나이순’이라는 위계 관계가 없어져 대화가 편해진다. 별명을 부르면 아이들이 어른들 얼굴을 익히기 편해 금세 친해진다. 내 별명은 ‘각군’이다. 얼굴이 네모나게 각졌다고 아내가 붙여주었다. ‘고맙습니다.’ 다른 집 아이가 “각군!” 하고 외치며 달려와 안기는데 가슴이 찡했다. 내 아들은 달리기가 느려서 3등으로 안겼다. 아이들을 향해 조금씩 마음이 더 열리고 더 어른이 되는 것 같다. 공동육아는 아이를 공동으로 키우는 일이지만 더 나아가 부모가 함께 성장하는 과정이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어린이 보육기관이라기보다는 아이와 부모가 함께 다니는 동네 학교인 것 같다. 공지가 떴다. 6월 12일 우리가 청소 당번이란다. 흐흐.

 

 

↘ 이강룡 님은 번역도 하고 인문학 강의도 하는 글쓰기 강사입니다. 항상 더 낫게 표현하는 법을 궁리합니다. 글쓰기는 삶의 반영이니 잘쓰는 법은 잘 사는 법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누리집은 http://read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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