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호 2015년 6월호 [특집] 특집-돌봄

[ 들어가는 글 ]

왜 ‘돌봄’인가

글 이선미 편집부

사회가 발전하고 구성원의 소득이 많아졌지만 오히려 노년의 삶은 더 외롭고 팍팍해졌다고 한다. 가정마다 아이들의 수는 크게 줄었는데도 아이 키우기는 더 힘들다고 한다. 가족의 희생과 국가 정책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돌봄’. 왜 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 봤다.

 

 

 

 

 

 

지역과 이웃이 중심이 된 돌봄망 필요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2010) 결과에 따르면 한국 전체 인구 4천799만 761명 중 65살 이상은 542만 4천667명으로 약 12%를 차지한다. 65살 이상 인구가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라 불린다. 한국은 2000년에 고령화사회에 진입했으며, 2026년에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예정이다. 미국이 100년, 프랑스가 150년 걸려 진입하는 수치임을 비교하면 한국 사회는 정말 빠른 속도로 늙어가고 있다.

한편, 0~14살 이하는 778만 6천973명으로 전체 인구의 약 16%를 차지한다. <국제통계연감>의 합계출산율(한 여성이 평생 동안 평균 몇 명의 자녀를 낳는가를 나타내는 지표)을 보면 2015년 기준 한국은 1.32로 일본 1.41, 미국 1.97보다 낮은 것은 물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낮다. 즉, 우리 사회는 해마다 늘어나는 노인들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하는 동시에 해마다 떨어지는 출산율을 끌어올리고 아이를 마음 놓고 키울 수 있게 하는 돌봄서비스를 마련해야 한다.

과거에는 노인과 아이를 돌보는 역할을 가족이 전담하다시피 했다. 그러나 한국 여성정책연구원의 <노년기 가족돌봄의 위기와 지원방안 연구>(2014)에서 볼 수 있듯이 가족형태 및 돌봄에 대한 급격한 가치관 변화 등에 따라 노인돌봄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고, 노인을 돌보는 가족원 또한 고령화되면서 이들의 부담이 커지고 있어 이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아이돌봄 역시 마찬가지로 맞벌이 증가로 인해 아이의 엄마인 여성이 육아를 전담하기 어려워진데다가, 핵가족화와 함께 가족 간의 물리적 거리가 멀어지면서 다른 가족 구성원의 도움을 받기도 쉽지 않다.

이에 따라 국가적으로 돌봄서비스를 제도화하고 시행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그러나 경남 무상급식 중단에 따른 찬반 논쟁을 봐도 알 수 있듯이 복지 관련 국가 정책에서 사회 구성원들의 합의를 이끌어 내는 일은 쉽지 않다. 또 정책을 시행하는 데에는 막대한 예산, 즉 세금이 든다. 예산을 확보하는 것도 어렵지만, 예산을 집행하는 것 자체가 일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최근 중요하게 나타난 것이 공동체돌봄이다. 지역과 이웃이 중심이 된 돌봄망이다. 더 이상 혼자 열심히 해서 살수 있는 사회가 아닌데다가 국가를 전적으로 믿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는 결국 개개인이 모여 문제를 함께 감당하게 된다. 가족돌봄과 국가돌봄이 공동체돌봄으로 전환되는 모습을 보이는 이유다.

 

 

 

 

한살림서울생협의 <돌봄서비스 관련 조합원 의향 조사>(2014)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5천829명 가운데 80% 이상이 영·유아 및 고령자 돌봄서비스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전체 응답자의 84.3%가 돌봄 소모임 구성 시 참여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시민들 역시 지역과 시민사회 영역에서 돌봄서비스를 추진해 주기를 기대하는 모양새다. 농촌 마을에서 이미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여민동락 공동체도 있고, 도시에서 본격적으로 돌봄서비스를 시작한 울림두레생협도 있다.

 

서로를 돌보는 것이 답

지난 어버이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향년 여든 여섯이었다. 할머니는 사 년 전 치매에 들었다. 예순이 넘거나 다 된 아버지 형제들이 나름대로 돌보았지만, 점점 심해지는 증상에 어쩔 줄 몰라 하는 듯 했다. 결국 좋다는 요양원을 수소문해 할머니를 부탁하고 때때로 방문하는 것으로 되었다. 그러다 할머니는 갑자기 병세가 악화됐고, 병원에서 이십여 일을 머물다 죽음을 맞았다.

장례를 치르는데 큰집 사촌 중 하나가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와 꽤 오랜 기간 함께 살아 정이 남달랐을 텐데 이상했다. 알고보니 여섯 살과 세 살 된 두 딸을 맡길 데가 없어서 장례식장에 오지 못하는 거였다. 육촌 친척까지 다 모인 발인 날에도 그 사촌은 아이들을 돌보느라 오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이번 호 특집 주제를 ‘돌봄’으로 정하고 난 후의 일들이다. 장례기간 동안 나는 이 주제를 떠올리며,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몇 년 전부터 마지막까지 직계 가족이 아닌 요양원과 병원이 할머니를 보살폈다고 생각했다. 덕분에 가족들은 육체적으로 힘든 일은 많이 덜었지만, 감정적으로는 더 힘들어 했다. 저마다 할머니를 제대로 모시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느끼는 듯했다. 한편, 아이들을 보느라 장례식장에 오지 못한 사촌 역시 바늘방석에 앉은 얼굴이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도 사촌을 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다. 어쩔 수 없었다는 걸 알면서도 ‘인정머리 없는 손녀’로 생각하는 듯했다.

아버지의 형제들이 한데 모여 살았다면 할머니를 집에서 함께 보살필 수 있지 않았을까? 사촌이 동네 이웃들과 공동체 관계를 맺었다면 아이들을 마음 놓고 맡기고 장례식에 올 수 있지 않았을까? 이웃에 돌봄을 함께할 사람들이 있었다면 뭔가 다르지 않았을까? 이건 나에게도 하는 질문이다. 내 부모도 이제 노년에 들어서는데 나는 무얼 준비해야 할까? 내 노후에 가장 중요한 건 뭘까? 보험보다, 연금보다 서로 돕고 기댈 사람과 관계 아닐까? 머릿속이 복잡했고, 아직도 복잡하다.

그래도 하나 확신한 것이 있다. 나는 더 이상 돌봄이라는 문제에서 구경꾼이 될수 없는 당사자라는 사실이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렇기에, 돌봄은 결국 일방적일 수 없는 ‘서로돌봄’이다. 노인돌봄을 통해 내 노년을 준비하고, 아이돌봄을 통해 나는 내 미래를 빚진다. “돌봄을 왜 해야 하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이것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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