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호 2015년 6월호 살림,살림

[ 지리산 동네부엌-보리밥·쌈장·오이송송이 ]

애타게 기다리던 보리의 계절

글 고은정 \ 사진 류관희

산야에 나물이 흔하디흔해 그거라도 넉넉하게 먹던 5월이 가고, 아직 농사로 변변하게 거둘 만한 것이 없는 6월. 선조들은 희멀건 나물죽도 하루 세끼를 온전하게 먹을 수 없었다. 기다리던 보리가 나오면 마침 풍성하게 나오는 상추에 싸 양 볼 볼록하게 한입 먹었다.

 

 

강원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근심 걱정 없이 뛰고 노느라 망종이니 하지니 하는 절기를 아예 듣지 못하고 자랐다. 혹여 들었대도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으므로 순환하는 절기에 따라 농사짓는 일의 중요성도 당연히 알지 못했다. 어린 시절 내 기억 속의 유월은 오로지 배고픔의 연속선을 벗어나지 못했던 기억들로만 가득하다. 일 년 양식이 바닥나고 보리가 익기만을 애타게 기다리는 어른들은 그때를 보릿고개라고 했지만 어린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 동네의 큰 아이들을 따라 다니면서 풋보리를 잘라다가 불을 놓아 구워 먹는 이른바 보리서리를 하고 다니기에 여념 없었다.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보리알들을 주워 먹다가 입가에 검은 숯검뎅이를 잔뜩 묻히고 집으로 들어가 바로 들통 났는데 제 모습은 모른 채 시치미를 떼다가 어머니께 야단을 맞았다. 울면서도 ‘어찌 아셨을까? 엄마는 정말 귀신같다.’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철없는 나였지만 늘 말썽만 피운 것은 아니고 때로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날도 있었다. 보리 수확이 끝난 텅 빈 들판을 돌아다니며 키 작은 어린아이의 눈에만 보이는 이삭들을 주워 마당에 모았다. 어느 사이 내 키만큼 모으자 그 보리를 들고 나갔다 돌아오는 어머니의 손에는, 지금의 모 제과에서 나오는 ‘조리퐁’과 비슷하지만, 결코 잊지 못할 맛의 보리튀밥이 들려 있었다.

호남과 충청 지역에서는 보리그스름(보리그을음)이라 하여 풋보리를 베어다가 그을음을 해서 먹으면 그해 보리밥도 달게 먹고 이듬해 보리농사 풍년이 든다고 하여 강원도의 보리서리와 비슷한 풍습이 남아 있다. 제주도에서는 망종에 풋보리 이삭을 뜯어서 손으로 비벼 보리알을 모은 뒤 솥에 볶고 맷돌에 갈아 채로 쳐 낸 보릿가루로 죽을 끓여 먹으면 여름에 보리밥을 먹고 배탈이 나지 않는다는 민속이 있었다.

보리는 가을에 파종해 겨울을 눈밭에서 지내고 봄을 지나 여름에 수확해 성질이 매우 서늘하다. 그래서 무더운 여름철 해 먹기 좋은 곡식으로 독이 없고 단맛을 내고 비위를 튼튼하게 한다. 쌀보다 섬유질이 다섯 배 많아 대장의 연동운동을 도와 장위를 튼튼하게 한다. 또한 혈당을 내려주고 콜레스테롤 수치를 내리고 대장암을 예방한다. 보리차도 역시 몸의 열을 내려 무더위를 이기게 하고 식욕을 증진시킨다. 보리를 발아시켜 만드는 맥아(엿기름)는 가스가 차거나 오심구토나 설사가 날 때, 가슴이 답답하고 젖몸살을 앓을 때 효과가 있다.

망종 전후 수확하는 보리는 몸에 아주 좋은 잡곡이다. 이른 아침에 삶아 미리 건져 바구니에 담은 깡보리밥은 긴긴 여름날의 더위 때문에 겉이 마르고 검어지고 더러 약간 쉬기도 하지만, 바깥 농사일을 마치고 돌아온 어머니는 그 보리를 찬 우물물에 씻어 건져 쌀과함께 밥을 해 주셨다. 보리는 서늘한 성질 덕에 쌀밥과는 달리 쉽게 상하지도 않지만 약간 상했다 해도 크게 탈이 나지 않으므로 제주도에서는 약간 쉰내가 나는 보리밥에 엿기름물을 부어 삭혀서 보리쉰다리라는 음료로 마시기도 한다. 배를 주리고 살면서도 조상들은 번뜩이는 기지와 낭만을 잃지 않아 보리쉰다리를 만들어 내고 장맛비를 매화비라 부르며 망종·하지도 매우라 불렀다.

 

 

곰취잎을 커다랗게 펼쳐 보리밥을 올리고 더덕싹과 민들레를 얹어 고소한 쌈장으로 화룡점정을 찍었다. 입안에 넣으면 풍성해진 양 볼만큼 마음도 채워질 테다.

 

눈칫밥 먹는 중에도 상추쌈은 먹는다

농가월령가에 “유월은 남풍이 때맞춰 불어 맥추를 재촉하니 밤사이에 보리밭이 누런빛이 나겠으니 문 앞에 터를 닦고 보리타작할 장소를 마련하라.”는 구절이 보인다. 보리가 익어 모두 베어 내면 빈터에 벼를 심고 밭갈이를 할 수 있으니 이 무렵은 최고의 농번기이다. 오죽하면 불 때던 부지깽이도 일손을 거든다고 하였을까? 하지만 이때는 바쁜 데 비례해 배고픔이 극에 달하는 시기였다. 지난가을에 수확한 벼가 떨어지고 보리는 아직 수확하지 못한 때라 푸성귀를 잔뜩 넣고 멀겋게 죽을 끓여 연명하면서 일한 시기이다. 그러다 보리타작을 하면 실하게 지은 보리밥을 풍성한 상추 위에 넉넉히 얹어 상추쌈을 싸 먹었다.

어린 시절 외가에 가서 상추쌈을 먹을라치면 상추 뜯고 쑥갓 뜯고 실파도 한 움큼 뽑아 다듬고 그러는 사이 작은 뚝배기에 막장도 보글보글 지졌다. 상추 두어 장에 쑥갓과 실파를 얹고 찬 보리밥을 한술 올린 다음 막장을 간으로 얹어 싸서는 입에 밀어 넣는다. 양 볼이 볼록하니 차마 서로 눈뜨고 봐주기 어렵기에 서먹한 사이의 남녀가 같이 앉아 먹기에 적합하지 않은 음식이기는 하다. 하지만 허물없이 지내고 싶은 누군가가 있다면 불러다 상추쌈 넉넉한 밥상을 앞에 놓고 먹어도 좋겠다.

쌈은 다른 나라에도 더러 있지만 우리만의 음식이 아닌가 한다. 과거에는 서민들의 밥상에서는 수라상에까지 빈부귀천의 구분 없이 누구나 즐겼던 음식이다. 조선조 숙종 때의 실학자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조선 사람들은 큰 잎사귀만 있으면 무엇이든 쌈으로 싸 먹는다.”고 하였고 숙종 3년 4월 26일 《승정원일기》에는 “장렬왕후 수라상에 상추가 올랐다.”는 기록이 있다. 큰 잎사귀만 있으면 다 쌈을 싸 먹었기에 그랬는지, 그날은 담당자가 담뱃잎을 같이 넣었다가 벌 받을 위기에서 숙종의 용서를 받았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또 영조 때의 학자 이덕무는 《사소절》에 이렇게 기록했다.

“상추, 김 따위로 쌈을 쌀 적에는 손바닥에 놓고 싸지 마라. 점잖지 못한 행동이다. 쌈을 싸는 순서는 먼저 숟가락으로 밥을 떠서 그릇 위에 가로놓고 젓가락으로 쌈 두세 잎을 집어다가 떠 놓은 밥 위에 반듯이 덮은 다음 숟가락을 들어 입에 넣고 곧 장을 찍어 먹는다. 그리고 입에 넣을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싸서 볼이 불거져 보기 싫게 하지 말라.”

상추를 고문헌에서는 와거채, 천금채 등으로 불렀고 열을 내리며 수분대사를 원활하게 하여 소변을 잘 보게 하고 수종·부종에 효과가 있다고 했다. 칼슘과 카로틴, 비타민C의 함량이 높고 미량 원소와 섬유질 성분이 많아 골격이나 모발, 피부 등의 성장 발육에 도움이 된다. 특히 상추를 자르면 나오는 흰 즙에 있는 쓴맛 내는 성분 락투신이 최면 작용과 통증을 진정시키는 마취 작용을 해 신경안정이나 불면증에 큰 효과가 있다.

사찰에서는 작은 먹을거리 하나도 버리지 않고 알뜰하게 다 챙긴다. 그래서 상추가 들어갈 때쯤 상추대궁으로 전을 부쳐 먹는 것으로 마무리를 한다. 그러나 아직 상추대궁전을 먹을 때가 아니다. 쌈으로 먹는 상추가 맛있을 때다. 막장 지지기 번거로우면 된장으로 만든 쌈장 얹어 쌈을 싸서 먹으면 절로 꿀꺽 넘어갈 것이다.

 

보리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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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
보리쌀 3컵(물 8컵), 쌀 1컵(뜨거운 물 1컵)
만드는 법
① 쌀은 깨끗이 씻어 체에 받쳐 둔다.
② 보리쌀은 물을 적게 넣고 박박 주물러 두 번 씻고 3~4번 헹군다.
③ 밥솥에 보리쌀과 분량의 물을 넣고 끓인다.
④ 보리쌀이 끓기 시작하면 불을 최소로 줄여 15~20분 더 끓인 후 뚜껑을 열어 퍼졌는지 확인한다.
⑤ 보리쌀이 다 퍼지고 물이 조금 남아 있을 때 불려 둔 쌀을 위에 펴서 얹고 준비해 둔 뜨거운 물을 가장자리에 살살 붓고 뚜껑을 덮은 뒤 중간불로 올린다.
⑥ 다시 김이 나기 시작하면 불을 최소로 줄이고 15분 후 불을 끈다.
⑦ 뚜껑을 열지 않고 5분간 두었다가 밥을 푼다.
* 미리 삶아 둔 보리쌀을 멥쌀과 함께 넣어 바로 밥을 해도 된다. 멥쌀을 넣지 않고 보리쌀만으로 한 밥을 꽁보리밥이라고 부른다.

 

 

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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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
된장 200g, 두부 100g, 다진 양파 2큰술, 풋고추 2개, 다진 파 1큰술, 다진 마늘 2큰술, 고춧가루 1큰술, 들깨가루 1큰술, 다시마가루 1작은술, 멸치가루 1작은술, 표고버섯가루 1작은술, 끓인 물 약간
만드는 법
① 두부를 으깬다.
② 양파, 대파, 마늘, 풋고추를 다진다.
③ 모든 재료를 그릇에 담고 고루 섞는다.
④ 되기는 끓여서 식힌 물로 조절한다.

 

 

 

 

 

 

단오 무렵의 맏물 오이로 오이송송이

농가월령가에는 “오월 오일 단옷날 물색이 생신하다. 오이밭에 맏물 따니 이슬에 젖었고 앵두 익어 붉은 빛이 아침볕에 눈부시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오래전 책이지만 요즘도 별반 다르지 않게 단오 전후로 맏물 오이를 따게 된다. 이 맏물 오이는 아삭하고 달아 과일처럼 맨입에 먹어도 좋다. 하나둘 따기 시작하던 오이가 점점 많아져 나중에는 매일 따도 감당하지 못할 만큼 많이 열리면서 여름은 깊어지고 풍성해진다.

95% 이상의 수분을 가지고 있는 오이는 채소 중 수박을 제외하면 가장 찬 성질을 지녀 더운 여름을 잘 이기게 하는 제대로 된 여름채소이다. 오이를 텃밭에 심어 생으로도 먹고 숙채로도 먹고 오이지도 담가서 먹다 보면 오이도 늙어가고, 그때부터는 늙은 오이를 밥상에 올리면서 여름은 서서히 가을에게 자리를 내준다. 오이송송이는 만들기도 쉽고 김칫거리 마땅찮은 계절에 김치로도 손색이 없다. 오이 익을 무렵 마침 수확하는 양파를 같은 크기로 썰어 넣거나 부추와 함께 무치면 궁합도 잘 맞아 더할 나위 없다.

 

오이송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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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
오이 5개, 부추 100g, 양파 1/2개
양념 : 고춧가루 5큰술, 다진 마늘 2작은술, 새우젓 2큰술, 멸치액젓 1큰술
만드는 법
① 오이를 굵은 소금으로 문질러 씻은 뒤 물기를 빼고 길이로 4등분하여 길이 1.5cm 정도로 썬다.
② 부추를 깨끗이 씻어 물기를 빼고 1.5cm 길이로 썬다.
③ 양파는 오이와 같은 크기로 깍둑썰기한다.
④ 썰어 놓은 오이와 부추에 준비한 양념을 넣고 버무린다.
* 오이소박이나 오이송송이를 하는 오이는 가시오이를 쓰기도 하지만 보통 백오이를 쓴다. 오이 넣은 김치는 바로 먹지 않고 오래 보관하면서 먹는 음식이므로 무르지 않게 하는 것이 좋다. 백오이로 김치를 담글 때는 반드시 오이의 겉에 가시가 있는 것을 골라내야 한다. 그래야 무르지 않고 오래 아삭하게 먹을 수 있다. 

 

 

↘ 고은정 님은 약선식생활연구센터 대표로, 우리 장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라면 어디든 가리지 않고 달려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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