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호 2015년 5월호 살림,살림

[ 옛 농부들의 농사이야기-벌레는 놔두고 흙을 살피라 ]

옛날 옛날에는 해충이 없었다는데

글 전희식 \ 그림 전새날

5월에 하루 놀면 이를 벌충하기 위해 7~8월에 열흘 일해야 하고 동지섣달에는열흘 굶는다고 한다. 5월의 하루는 그만큼 농사에 소중하다. 씨를 뿌리고 모종을 옮겨 심고 북주기도 하고 웃거름도 주는 때이다. 단 하루를 놓치면 열흘 일거리가 생긴다. 일거리도 많지만 먹을거리도 넘친다. 벌레들 먹을거리 말이다.농부들 일거리를 늘리는 벌레 이야기다.

 

식성도 가지가지

5월이면 감자잎이 제법 큰 숟가락만 하게 되면서 꽃이 피는데 이때 감자잎이 성글게 잠자리 날개같이 변하기도 한다. 하루 이틀만 방심하면 병충해가 삽시간에 밭 전체에 번진다. 몸뚱이를 키우는 영양성장을 완성하고 열매를 키우는 생식성장 단계로 넘어가야 할 감자가 그렇게 시들시들 죽어 버린다. 막 모종을 옮겨 심은 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 오이순이 똑 잘려 나가 버렸다. 줄기는 물론 고추 밑줄기도 댕강. 파프리카, 참외, 수박은 물론 토마토와 풋고추, 가지, 피망도 다르지 않다. 해충들 때문이다. 온 사방천지에 식판이 차려졌는데 염치고 뭐고 없다. 겨우내 알이나 유충으로 지내면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오늘이 아닌가. 닥치는 대로 갉아먹고 빨아먹고 씹어 먹는다. 농부들을 괴롭히는 이 고약한 자들의 실명을 공개하지 않을 수 없다. 마음 같아서는 실명공개 뿐 아니라 전자발찌라도 채워 버리고 싶을 정도다. 바로 무당벌레, 거세미, 노린재, 진딧물, 총채벌레, 담배가루이 등이다.

해충이란 사람에게 경제적인 손실을 주는 벌레를 일컫는 말이다. 초식성 벌레는 해충이라고 보면 된다. 육식을 하는 벌레도 있는데 이걸 익충이라고 여기면 된다. 농부에게 이득이 되는 벌레라는 뜻. 같은 포유류 동물이지만 사자는 육식동물, 다른 말로 포식성 동물인데 반해 사슴은 초식동물이다. 벌레도 식물의 잎이나 줄기를 먹고 사는 초식성은 농부들의 골칫거리다. 이런 초식성 벌레를 잡아먹는 천적이 바로 포식성 벌레들로 익충이다. 더러 일부러 키워서 농장에 풀기도 한다. 앞으로 곤충산업이 유망하다는 말이 이래서 나온다. 모든 존재의 생명력이 왕성해지는 5월에 해충들을 막아 내기 위한 농부의 눈물겨운 노력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백이면 백. 모든 나이든 농부들은 그 역사가 그리 오래지 않다고 말한다.

 

비료 나오고 해충과 농약 등장

옛 농서를 보면 농법 변천사가 나오는데 해충 방제법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잡초 방제법은 나오지만 해충과 병원균에 대한 방제는 없다. 왜 그럴까? 시골의 나이든 농부들의 얘기와 연결해서 보면 간단하다. 옛날에는 해충이 없었고 농장에 해로운 균이 번성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비료가 등장하고 나서 충과 균이 농장에 극성을 부리기 시작했다는 얘기를 모든 촌로들이 똑같이 한다. 비료를 주면 토양의 물리적 성질이 급격히 악화된다. 통기성과 배수성, 물리적 구조 등이 심각하게 훼손된다. 흙이 죽어 버린다는 얘긴데 흙속의 미생물을 포함해 다양한 생명체들이 사라진다. 해충이 등장하고 살충제를 뿌리니 상태는 더 악화된다. 농약에 저항성을 가진 해충이 등장하고 농약은 더 독해지고 토양은 더 나빠진다. 거름 등 인공적인 투입물은 덩달아 늘어나고.

벌레가 생겨도 피해가 크지 않았다. 조화롭고 튼튼한 개체군들의 먹이사슬이 잘 작동했다는 얘기다. 1960년대에야 겨우 등장한 농약은 요즘엔 독극물로 분류되어 사용이 금지된 디디티다. 씨앗을 뿌리고 떡잎이 나올 때 벌레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모기장이나 삼베로 만든 주머니에 넣어 작대기에 대롱대롱 매달고 나뭇가지로 톡톡 치면서 하얀 가루약을 뿌렸는데 나중에 이것이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확인되어 1970년대 초에는 전 세계적으로 전면 사용 금지되고 말았다.

논에 생기는 멸구도 자연 상태를 유지하는 농사에서는 피해가 크지 않았는데 다수확품종이 나오면서 피해가 생기기 시작했다. 물이 들어가는 수통에 경유나 석유를 부어서논 표면에 기름이 엷게 깔릴 때 긴 장대로 벼를 두드려서 멸구를 기름에 빠뜨려 죽이기도 했지만 화학농법이 일반화되면서 점점 병충해가 심각해지자 각종 농약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 중반에 처음 나온 ‘요소’라는 질소질 비료는 병해충을 불러들인 일등공신이다. 비료의 등장 과정도 추악하다면 추악하다. 삼성그룹의 ‘한국비료’가 비료공장을 지으면서 거액의 사카린을 밀수해 박정희 군사정권의 뒤를 봐주었다. 장준하 선생이 <사상계>에 박정희야말로 밀수왕초라고 했다가 바로 구속되기도 했다.

 

무당벌레는 해충이면서 익충

응애는 익충일까, 해충일까? 응애는 강낭콩잎이나 신선초, 가지 뒷면에 겨우 0.5㎜ 밖에 안 되는 몸뚱이를 찰싹 붙이고 액즙을 빨아먹는다. 해충이다. 점박이응애를 이리응애가 잡아먹는다. 그 응애는 익충이다. 무당벌레가 진딧물을 잡아먹는다. 하루에 수백 마리씩 먹어 치우는데 무당벌레 한 마리가 생애 동안에 진딧물 5천 마리를 잡으니 대단한 익충이다. 무당벌레는 가지, 토마토, 고춧잎과 줄기, 특히 감자잎을 가장 잘 먹어 치운다. 그래서 고약한 해충이다.

해충이라고 다 잡아 죽이다 보니 뜻하지 않은 곳에서 엄청난 피해가 발생하기도 한다.사람에게 해를 주는 줄 알았는데 득을 주는 경우를 뒤늦게 발견하기도 한다. 사람 중심으로 해충과 익충으로 나눌 수 없다는 얘기다. 익충만 있기를 바란다는 것이 무리다. 해충이 있어야 익충이 있는 것이고 익충이 살아가려면 해충이 없으면 안 된다.

막 자라기 시작하는 오이나 땅콩, 파, 무 등에 피해를 주는 거세미는 댕강댕강 줄기를 잘라먹는 녀석이라 확실한 해충인데 낮에는 숨어 있다가 밤에만 활동하는지라 잡기도 힘들다. 이런 악질 해충, 거세미가 깡그리 없어지면 어떤 일이 생길지는 아무도 모른다. 해충은 사람들의 편의에 따라 분류한 것일 뿐이다. 농작물에 해를 입히는 벌레가 극성을 부린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농부의 책임이다. 농부가 해충을 불러들였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충은 무죄다. 작물을 사랑한 죄밖에 없다.

 

제충국·목초액·생선아미노산액비·자닮유황

해충 방제의 가장 훌륭한 방법은 그냥 놔두는 것이다. 웩? 그냥 놔두라고? 나 하나, 땅 하나, 들짐승 하나. 이렇게 나눠 먹으려고 했지만 씨도 안 남기고 벌레들이 다 먹어 치우는데 그냥 놔두라고? 이미 여러 자연방제법이 나와 있고 유기농 농자재도 비싸긴 해도 돈만 주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지만 그냥 놔두고 흙을 잘 돌보면 병충해는 해결된다. 그게 근원적인 해결법이다. 흙을 ‘떼알구조’ 상태로 돌리라는 말이다. 농약과 비료, 대형 농기계는 떼알구조 흙을 회복하는 데 있어 최고의 적이다. 로터리를 치는 행위는 흙을 부드럽게 한다지만 사실 지렁이와 미생물, 절지동물을 죽이고 공기구멍과 물 흐름 구멍을 파괴한다. 생태계의 균형 자체를 파괴한다. 결국 해충을 번성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도 땅이 온전히 물성을 회복하기까지 과도기적으로 피해를 줄이고 싶다면 인터넷에 검색하면 많은 지혜를 만날 수 있다. 제충국이 좋다고 한다. 오죽하면 이름마저 ‘벌레 잡는 국화’라고 붙었을까? 사람들마다 다 다르니 일반화할수 없지만 나는 목초액으로 효과를 보기도 했고 생선아미노산 액비나 쌀겨와 깻묵으로 만든 액비를 이용해서 작물을 튼튼하게 키우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그중에 가장 효과적인 것은 ‘자연을 닮은 사람들(jadam.kr)’에서 소개하는 ‘자닮유황’과 ‘자닮오일’을 만들어 뿌리는 것이었다. 농장 상태에 알맞은 비율로 섞고 물로 희석하여 뿌린 뒤에 크게 효과를 보고는 계속 이 방법을 애용하고 있다. 흙을 온전한 상태로 만들기까지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자기 농장에 맞는 방제법을 찾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 전희식 님은 농민생활인문학 대표로, 전북 장수군 산골에 살면서 《똥꽃》, 《엄마하고 나하고》, 《시골집 고쳐 살기》 등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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