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호 2015년 2월호 살림,살림

[ 책으로 떠나는 인문학 여행-연대와 기본소득 ]

사람이 희망

글 하승우

내가 속한 땡땡책협동조합은 매월 조합원의 날을 연다. 조합원의 날에는 한 가지 주제를 정하고 각자 그 주제에 어울리는 한 권의 책을 가져와서 다른 조합원들에게 소개한다. 지난 1월의 주제가 ‘세월호’인지라 다들 울먹이며 무거운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가져간 책은 류은숙 씨의 《사람인 까닭에》(2012)였다.

 

사람인 까닭에
류은숙 지음 / 낮은산 펴냄 / 2012년

 

조건 없이 기본소득
바티스트 밀롱도 지음 / 권효정 옮김 / 바다출판사 펴냄 / 2014년

 

 

세월호를 기억하는 것도 중요하고 그 기억을 딛고 뭔가를 시도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아프고 힘든데 왜 그래야 하지? 이제는 좀 흘려보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든다. 그때 생각한 책이 《사람인 까닭에》이었다. 조합원의 날에는 서문의 마지막 문단을 읽었다.

 

“연대의 전령이란 '나 같은 걸 누가 기다리고 있겠어?’가 아니라 ‘나라도 가 봐야지’라는 마음으로 신발을 챙겨 신는 사람이다. 도무지 알아주지 않을 것 같은 사연들을 퍼뜨리는 전령이요, 도무지 오지 않을 것 같은 지원대가 오리라는 희망을 앞서 건네주는 전령이다. 나의 찌질함을 타인에 대한 공감으로, 나의 억울함과 분노를 원인에 대한 인식으로, ‘될 대로 되라’ 식의 나의 포기를 ‘같이 해 보자’는 도전으로 갈아 입혀 주는 사람들이 바로 그 전령들이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 한, 기다리는 심정을 헤아릴 수 있는 한, 만남의 기대와 실망을 겪어 낼 수 있는 한, 누구나 연대의 전령이 될 수 있다.”

 

읽는 목소리의 떨림이 숨죽여 듣는 눈과 귀로 전해지면 단어는 의미가 된다. 의미가 된 말은 서로를 묶는 끈이 되고,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여기저기 등장하는 연대의 전령

 

표지에 적힌 “21년차 인권활동가 12년차 식당 노동자”라는 소개처럼 류은숙 씨는 인권활동가로 활동하며 밥벌이는 주말의 식당 아르바이트로 해결해 왔다. 투쟁현장에 먹을 것을 잔뜩 장만해서 방문하고 자신의 근거지인 ‘인권연구소 창’에 끊임없이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이 사람의 에너지는 어디에서 나올까? 책을 읽으면 답이 나온다. 사람으로 살기 위해, 사람으로 살고 싶기에 우리는 손을 잡고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상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흔히 인권활동은 여러 가지 권리목록을 만드는 활동처럼 이해되곤 하지만 류은숙 씨는 오히려 그런 제도화를 경계한다. 기우뚱하게 경사진 사회에서 모두에게 보편적인 길로 가기 위한 “연대는 비대칭적”일 수밖에 없다. 물론 “복지국가는 다양한 공감을 묶어 세워 빈곤과 장애로 인한 고통에 대해 공통의 울타리를” 친다. 이런 제도를 통해 사회적 인권은 “법 이외에 다른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고 생활의 가장 긴급한 필요를 채울 수 있도록 권리로” 보장된다. 그런데 이런 인권은 제도를 만드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평등한 사회적 인권에 대한 정치적 공감”과 “그것을 바탕으로 연대를 규범화한 법과 제도들에 대한 정치적 합의”가 필요하다. 제도를 도입하기는 쉽지만 “복지의 생산 과정에 꼭 들어가야 하는 정서적, 정치적 공감, 연대 의식과 책임의 제도화는 빌려쓸 수 없는 것들”이란 지적은 제도를 만들었으니 정부가 알아서 하겠지, 특별법을 제정했으니 알아서 되겠지 하며 발을 빼려는 우리 발목을 잡는다.

 

사람인 까닭에 우리는 같이 있지만 ‘좋은 인디언은 죽은 인디언뿐?: 내가 아는 장애인은 다 죽었다’라는 장을 읽다 보면 연대로 나가지 못하는 연민이란 “제일 편리한  감정”임을 알게 된다. “기다림은 가만히 있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사람의 것”이기에 움직일 때에만 우리는 희망을 목격하고 그것을 증언할 수 있다.

 

그런데 류은숙 씨도 사람인 까닭에 나이를 먹고 이제 더는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기 힘들다. 연대의 전령으로 살아온 그에게도 뭔가 생활할 방법이 있어야 희망도 지속된다.

 

조건 없는 희망이 자유이다

 

바티스트 밀롱도의 《조건 없이 기본소득》(2014)은 기본소득이라는 ‘해괴한’ 발상을 쉽게 알려 준다. 우파 신자유주의의 선봉장이던 밀턴 프리드먼도 조건 없이 돈을 주자는 기본소득을 옹호했다니 놀라운 일이다.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색깔이 다르지만 기본소득의 기본논리는 좌우를 막론하고 주장되어 왔다고 한다.

 

기본소득이 중요한 이유는 책에 나오는 몇 가지 소제목들로 설명할 수 있다. ‘가난을 증명하지 않을 권리’, ‘존재 그 자체를 위한 돈’, ‘과잉 생산·소비에 마침표를 찍자’, ‘완전고용에 대한 미련을 버리자’, ‘돈 버느라 인생을 소진할 수 없다’, ‘필요 없는 노동은 없다’ 등 뭔가 후끈해지는 제목들이다.

 

내용도 명쾌하다. 성장을 지향하는 사회는 그 에너지를 “노동에 대한 강요, 과도하게 일해야 할 의무, 더 일하라는 부추김”에서 마련한다. 이 에너지는 악순환되는데 피로에 쩐 사람들은 그걸 소비로 풀고 소비를 위해 다시 과로한다. 기본소득은 이 고리를 끊으니 단지 복지제도가 아니다. 기본소득은 “일과 소비의 악순환에서 벗어나 우리의 소중한 자유시간을 재평가”하도록 하고 “과잉생산과 과잉소비에 마침표를 찍고, 끊임없이 수익을 내려는 욕망과도 결별”하도록 돕는다. 이거야말로 자본주의체제에 대한 위협 아닌가? 그리고 한살림 정신과도 닿아 있지 않을까?

 

취지는 좋다 해도 현실성이 있을까? 밀롱드는 “세금을 통한 재원 마련”이면 충분하다고 본다. “돈은 결국은 사회적 부산물일 뿐”이니 정치적인 결정이 중요하다. “오늘날의 ‘패자’들은 정치에 거의 관여할 힘이 없지만, 기본소득을 받게 되면 그들의 정치적 영향력도 무시하지 못할 만큼 커질 것”이다.

 

그리고 책은 ‘2014년 한국형 기본소득 모델 설계도’까지 보여준다. 강남훈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1인당 월 30만 원을 지급하면 1년에 총 181조 5천억 원이 필요한데, 조세제도를 대수술하면 가능하다는 계산이다. “국민과 기업한테서 세금을 거둬 다시 기본소득으로 돌려”준다는 발상인데, 단순하게 한국의 토건사업을 중단한다면 굳이 세금을 올릴 필요가 없거나 더 많은 기본소득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도 이 좋은 걸 왜 안 할까? 더 이상 명령을 따르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누구에게 불리할까? 녹색당과 노동당이 기본소득을 열심히 주장하고 있으니 귀를 기울여 볼 만하다.

 

↘ 하승우 님은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운영위원으로 풀뿌리민주주의와 아나키즘, 자치와 공생의 삶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사회의 모순과 잘못을 지적하기 위해 날카롭고 까칠해야 하지만 삶의 방향은 우정을 향해야 한다고 믿는 ‘까칠한 로맨티스트’입니다. 오랜 수도권 생활을 접고 충북 옥천에서 자치와 자급의 삶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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