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호 2015년 2월호 살림,살림

[ 삶을 가꾸는 글쓰기-글문의 열쇠를 찾자 ]

진짜가 진짜

글 금원배

아이들에게 글을 쓰자고 하면 어려워합니다. 거기엔 여러 까닭이 있겠지요. 지난 호에서는 그 가운데 입말과 글말이 따로 떨어진 걸 짚은 겁니다. 내가 하는 (입)말이 곧 글(말)이 된다는 걸 보이고 싶었어요. 오히려 (입)말을 그대로 쓰는 게 읽기 쉽고 알기 쉽습니다. 우리 토박이말을 살려 쓰면 더 좋고요.
반대로 글을 쓴다고 해서 보통 때 내가 하는 말과 다르게 쓰려고 하면 글이 잘 안 써집니다. 속에 있는 말이 안 나옵니다. 진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찾기도 어려워집니다. 먼저 말문을 열 듯 ‘글문’을 여는 열쇠를 찾아야 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말하듯 쓰는 것, 이게 열쇠입니다. 말하듯 쓰는 것, 이제 글쓰기를 따박따박 해 나가는 아이들에게는 걸음마와 같습니다.
내가 하는 말이 곧 글이 되고 시가 됩니다. 글을 배운 아이 가운데 말 못하는 아이가 아니라면 다 할 수 있는 게 글쓰기입니다. 아니, 말 못하는 아이도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아서 그렇지 자기 안에 말을 다 갖고 있습니다. 내 말을 쓰려고 할 때 자기 목소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 소리로 쓸 때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글이 되는 겁니다.


일기 안 쓸 거야


일기 안 쓸 거야.
나 화났거든.
까불지 마.
왜 화가 났냐고?
일기장이 나한테 바보 멍청이라고 했어.
그래서 내가 지금 화가 났어.
그래서 내가 이 멍청아 까불지 마라고 했어.


(2013년 7월. 경남 양산 평산초 1학년 김도헌)



이제 막 일기 쓰기를 시작한 1학년. 자기 안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
선생님이 일기 써 오라고 하니까 뭘 써야할지 모르겠어요. 앞이 깜깜합니다. 그런 자기 속을 다시 한번 들여다봅니다. 일기장이 마치 자기에게 말을 하는 것 같습니다. “바보 멍청이”라고. 일기도 하나 못 쓰냐고. 자존심 강한 도헌이,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자기 안에 스쳐가는 그 소리 한 자락을 붙잡았습니다. 보기 좋게 일기장에게 한 방 먹일 준비를 합니다. 일기를 안 쓸 거라고 씁니다. 그러고는 일기장한테 들은 소리를 되받아칩니다. “이 멍청아, 까불지 마(나 니가 한 소리 그대로 일기에 썼거든).” 내 마음속 소리도 다 글이 됩니다.
이렇게 자기 말을 글로 옮겨 쓰는 것을 배운 다음엔 어떤 공부로 이어지면 좋을까요? 글은 거짓 없이 써야 합니다. 본 대로, 들은 대로, 느낀 대로. 그렇게 있는 그대로 글을 쓰려면 진짜로 자기 속에서 하고 싶어 하는 말을 써야겠지요. 진짜로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말을 어떻게 끄집어 내볼까요?
오늘은 2학년 담임선생님이 출장입니다. 제가 대신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2학년 아이들과 시 쓰기를 해볼 참입니다. 지난번에 시 맛보기를 했는데 오늘은 어떠려나? 시 맛보기로 같은 학교 선배들이 쓴 글을 읽어 주었지요. 아주 좋아합니다. 학교에서 보는 형, 누나, 언니, 오빠들이 쓴 글이라 신기해 합니다. 또래 아이들이 쓴 시를 읽어 주는 것도 좋지요.
교실 밖에서 얼쩡거리고 있으면 아이들은 제가 들어올 걸 눈치챕니다.
“오늘 선생님이 들어와요? 오늘 뭐 할 거예요?”
“뭐할까?”
“글쓰기 할 거예요? 난 글쓰기가 좋아요.”
1학년과 2학년은 글쓰기가 좋다고 언제든 하자는데 6학년은 싫어합니다. 왜 그럴까? 글모음집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거기에 내 마음이 쏠려 학기 초부터 아이들을 끌고 가려고 해서 그런가 봅니다. 낮은 학년 아이들과는 오늘처럼 담임선생님이 자리를 비웠을 때만 들어가 만날 수 있습니다. 그때 한두 시간 보면서 글 이야기를 들려 주니 싫지 않은 거죠. 글 이야기를 안 하면 담임선생님이 내준 숙제를 해야 하는 것도 한 몫 했겠죠. 뭐든 내 마음만 앞세워서는 안 됩니다. 다른 이의 마음도 살펴봐야 합니다. 어쨌거나 낮은 학년 아이들은 한 명이 “좋다”고 말해 버리면 나머지는 덩달아서 그냥 “나도 좋다”가 돼 버립니다.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아이들이 뭘 쓸까 고민에 빠졌습니다. “지금, 바로 지금 마음에 남아있는 게 뭐꼬?” 이렇게 물으면 대답을 못하고,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한번 해 봐.”라고 말하니 태영이한테서 이야기가 술술 나옵니다.
“그거 쓰면 되겠네. 그게 시네.”


고운가람 안 갈래


엄마 아빠 고운가람 안 갈래
왜냐하면 한자하기 실코
아는 교육을 또 하니까


(2014. 7. 8. 화 2학년 강태영)


‘고운가람’은 우리 동네 지역아동센터 이름입니다. 아이들은 방과 후 공부를 끝내고 지역아동센터에 가서, 거기서 저녁 7시까지 있습니다. 돌봄이라고 하는 게 아이들을 점점 가두고 있는 꼴이 돼 버립니다. 아이들이 자기 말을 할 때 우리는 진정 아이들 삶을 엿볼 수 있습니다.
태영이 이야기를 들으니 서현이도 말할 게 떠올랐습니다. 서현이는 이날 아침에 본 소독차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고 나서는 친절하게 내가 뭘 말해야 할지도 알려 줍니다.
“선생님, 이것도 시죠? 이거 시 맞죠?”
“그래, 시야, 시지.”


방귀차


아침에 학교에 갔더니 방귀를 끼는 소리 들었는데 차다.
그런데 차에서 흰 연기 보니까 흰 연기가 방귀 같다.
그런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저 차는 방귀차라는 생각이 들었다.


(2014. 7. 8. 화 2학년 박서현)


소독차가 방귀 같다는 서현이 말에 병권이는 진짜 방귀 뀐 이야기를 합니다. 사람이 하루에 방귀를 몇 번 뀔까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열 번도 넘게 뀐다는데. 자기는 방귀 안 뀌는 것처럼 시치미를 떼는 사람은 병원에 가야할 거예요. 아니면 거짓말쟁이든가. 병권이는 솔직합니다. 병권이 식구는 모두 건강합니다. 남하초등학교 식구들 모두 방귀를 뀌니까 건강한 겁니다.


방귀


아빠가 방귀를 끼자 뿌웅 나도 끼었다.
엄마가 냄새가 난다고 하였다.
그런데 엄마도 끼었다.

우리 집은 방귀 식구


(2014. 7. 8. 화 2학년 전병권)



병권이가 솔직하게 방귀 이야기를 꺼내니 서현이 소독차 이야기가 시들해졌습니다. 처음엔 ‘방귀차’라는 말만 들어도 웃겼는데. 방귀를 흉내 낸 방귀차보다 진짜 방귀가 더 센가 봅니다. 서현인 더 센 시를 쓰고 싶어졌습니다. 진짜가 세니 진짜를 찾아야 합니다. 서현이 마음에서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뭘까?


하루 종일


엄마, 집에서 영화 하루 종일 볼래.
안 그러면 내가 틀어서 볼게.
영화가 재미있으니까
하루 종일 볼게
하루 종일


(2014. 7. 8. 화 2학년 박서현)



‘진짜’가 진짜 세네요. 방귀차 이야기로 알게 된 진짜의 힘. 진짜로 본 것, 내 마음속에 있는 진짜를 이야기해야 더 세다는 걸 깨달았으니, 다른 애들은 보지 못하고 나만 본 진짜를 이야기해야 최고 힘이 센 시를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태영이가 최고 힘이 센 시를 쓰겠다고 말합니다.



까마귀


점심에 가로등에 까마귀 앉아 있는 거 봤다.
점심 먹을 때 젓가락이 떨어졌다.
갖고 왔다.
또 떨어졌다.
재수 없었다.


(2014. 7. 8. 화 2학년 강태영)


이건 진짭니다.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kulssugi.or.kr



↘ 금원배 님은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회원으로, 경남 거창 남하초등학교에서 아이들과 지내고 있습니다. 지난해 아이들이 쓴 글을 모아 <손으로 하는 수다>라는 글모음집을 냈습니다. <손으로 하는 수다>에 실린 글이 어떻게 나왔는지,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http://www.salimstory.net/renewal/sub/view.php?post_id=1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