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호 2015년 2월호 살림,살림

[ 살림의 현장-《고등학생의 국내 동물원 평가 보고서》 최혁준 저자와 동물원 걷기 ]

다른 존재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

글 이아림

돌이켜 보면 나는 동물을 좋아한다고 자처하면서도 동물에 대해 어떤 소신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행동하거나 말한 적은 없다. 다만 무언가를 하기보다 안 해도 되는 것들은 하지 말자는 태도를 유지하는 편이다. 이를테면 육식을 되도록 자제한다든가 TV의 동물 프로그램을 보지 않는 것이다. 일요일 아침에 방영하는 동물 프로그램에서는 위험에 처한 동물을 구조하거나 동물에게 좀 더 안정적인 환경을 만들어 주기도 하고, 사람과 가까이 지낼 수 없는 습성의 동물을 야생으로 돌려보내는 등 동물과의 공존을 염두에 둔 활동을 선보인다. 하지만 사람의 시점에서 동물의 의사를 해석하는 듯한 전반적인 표현방식이 못내 불편하다.


동물원의 코끼리 탈출, 누가 잘못했고 누구에게 사과하는 걸까


안 하는 것을 한 가지 더 꼽자면 ‘동물원 가기’다. 여기에는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이 있는데, 2005년 4월 어린이대공원에서 벌어졌던 코끼리 탈출 소동이 그것이다. 코끼리 여섯 마리가 동물원 밖으로 달려 나가 인근 주택가와 음식점 그리고 천호대로를 점거했다. 물정 모르는 코끼리들은 좋지도 넓지도 않은 아스팔트 바닥을 잠깐 활보했고, 몇몇 가정집 정원과 음식점으로 들어가 (의도치 않게) 집기와 벽을 부수고 정원을 망가뜨렸다. 조련사들이 유인해 네 시간 만에 소동은 마무리됐지만, 다음 날 주요 매체에는 사진과 함께 “동물원을 탈출해 일대를 아수라장으로 만든 난폭한 폭도”로 코끼리가 묘사되어 있었다.
사실 코끼리 탈출보다 황당했던 건 며칠 후 일간지 구석에서 발견한 기사였다. “코끼리 탈출 소동에 대해사과하는 차원에서 무료 공연을 한다”는 어린이대공원 소식이었다. 대체 누가 잘못했고 누구에게 사과를 한다는 걸까? 네 시간 일탈에 대한 대가치곤 너무 이상한 결론이었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날 대공원에서 코끼리들이 달려 나간 까닭은 퍼레이드 중에 바로 옆에서 날아 오른 비둘기에 놀랐기 때문이었다. 당시 봄꽃 축제를 맞아 코끼리들의 공연은 하루 다섯 차례 잡혀 있었다. 코끼리들이 어린이 대공원으로 거처를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아 환경에 채 적응하지 못한 때였다고도 들었다. 초식동물인 코끼리에겐 특유의 예민함이 있다. 보통 체격이 클수록 외부 자극에 더 민감하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동물원에 대한 나의 불신의 벽은 단단하게 쌓였다.

 

 

사람의 즐거움과 호기심 충족을 위한 동물원에서동물은 부적응, 스트레스 심화와 불안 등 여러 문제를 겪는다. 문제의 근본 원인이 열악한 동물 사육 환경과 그들의 습성을 무시한 프로그램 운영 등에 있음을 알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이 필요하다. 사진 제공 : 책공장더불어




특유의 야생성? 스트레스 행동!


그런데 2015년 새해에 내가 잡은 첫 약속이 ‘동물원 걷기’가 됐다. 범상치 않아 보이는 책 한 권 덕분이었다. 최혁준의 《고등학생의 국내 동물원 평가 보고서》(2014)는 내가 동물원에 가지고 있던 불신보다 훨씬 단단한 내용으로 꽉 차 있는 책이었다. 저자는 각각의 동물원의 어떤 점은 개선되어야 하고 어떤 점은 방향을 유지하며 발전시키면 좋을지, ‘교육프로그램’이라고 마련된 것이 왜 비교육적인지, 관람객이 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행위는 왜 도움 될 게 없는지 등을 오랜 관찰과 해박한 지식으로 차근차근근거를 들어 정리했는데, 그 솜씨가 스무살이 안 된 고등학생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무엇보다 그의 동물 사랑이 무척 속 깊고 건강하게 전해져 왔다. 저자가 직접 해설을 하며 동물원을 걷는 기회라니 놓칠 수 없었다.
행사 날이던 1월 10일은 겨울치곤 날씨가 푸근한 편이어서 걷기에 좋았다. 경기 과천의 서울동물원은 책에서 조사한 국내 9개 동물원 중 동물복지 측면에서 가장 큰 노력을 기울이는 것으로 평가된 곳이다. 역사와 인지도는 물론이며 보유하고 있는 동물의 개체 수나 규모가 국내 최대 수준인 만큼 책에서 비중 있게 다루었는데, 관람객의 오락적 요구와 달리 동물 쇼와 페팅체험(동물을 직접 만지고 즐기는 체험)을 지양하는 반면 종 보전을 위해 실질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등의 행보가 돋보이는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세세한 부분에서 개선될 점이 많았으며, 저자는 이를 꼼꼼하게 짚어주었다(겨울이라 실내에서 보아야 하는 동물이 많았는데, 저자는 40명 안팎이 모였는데도 동물에 피해를 주지 않도록 마이크 없이 ‘생목’으로 4시간 가까이 해설했다).
실내 사육 중인 기린은 본디 독립적인 성향이 강한데도 좁은 공간에 여러 마리가 함께 지내고 있어 스트레스가 심한 듯했다. 동물들이 갇혀 지내는 경우 삶의 요소가 충족되지 못하기 때문에 일정 구간을 의미 없이 반복해서 오가거나 몸을 흔들고 물체를 씹는 등 ‘정형행동’이라 하는 스트레스 징후를 보이는데, 이 기린은 기둥을 반복적으로 핥는 정형행동을 보여 기둥의 페인트가 꽤 넓게 벗겨져 있을 정도였다. 표범이 좁은 내실을 반복적으로 오가며 유리 너머 관람객들에게 위협하듯 으르렁대는 행위를 보고, 많은 사람들은 ‘특유의 야생성’이라고 생각하며 감탄사를 내뱉지 스트레스로 인한 정형행동이라는 걸 알아채기 어려울 것이다.
사육사 하나를 재규어가 쓰다가 늑대가 쓰는 등 여러 종의 동물이 사용한다는 건 그만큼 각기 다른 동물종의 특성이 고려되지 않은 환경이라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또한 실내 사육사 바닥이 콘크리트로 되어 있어 동물이 내내 흡수 안 된 배설물을 밟고 다니게 되는 점은 ‘청소의 용이성’만을 고려한 것이다. 아울러 특이종인 흰너구리는 사실 색소 부족으로 인해 면역력이 떨어지는 데다 자연광을 피해 동굴 생활을 선호하는 동물인데, 아름다워 인기가 많다는 이유로 버젓이 야외에 공개되어 있는 것도 개선이 필요한 점이었다.


다른 존재와 살아가는 데에는 책임 필요


산책이 막바지를 향할 때 역시 실내에서 사육 중인 코끼리를 만날 수 있었다. 필요한 면적에 비해 턱없이 좁은 공간에서 코끼리 역시 정형행동을 보였지만, ‘행동풍부화(동물원 동물들을 위해 야생과 유사한 다양한 환경을 조성하고 긍정적인 자극을 주는 것)’ 시설이 갖춰져 있고 옆 사육사의 다른 코끼리와도 접촉이 가능해 비교적 나은 환경이라고 저자는 말했다.
사람의 즐거움과 호기심 충족을 위한 과정에서 동물은 부적응, 스트레스 심화와 불안 등 여러 문제를 겪는다. 이럴 때 동물원이 쉽게 취하는 방식은 해당 동물의 격리다. 문제의 근본 원인이 열악한 동물 사육 환경과 그들의 습성을 무시한 프로그램 운영에 있는데도 화살은 동물에게 향하는 것이다. 관람객의 동물 인식 수준도 함께 끌어내리 는 사례들이 반복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두 시간을 예정했던 산책은 네 시간이 지나서야 마무리되었다. 들었던 이야기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동물에게 필요한 환경은 ‘죽지 않으면 되는 정도’가 아니라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정도이며, 그것이 가능하도록 하는 게 인간의 몫이라는 것이었다. ‘다른 존재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에 적잖은 책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나는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그 중 한 마리는 길에서 힘들게 지내다 구조된 고양이다. 지천에 널린 동물 학대 이야기들을 접하다 불필요한 것을 안 하는 태도에서 조금 용기를 냈던 게 고양이의 입양이다. 언제나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는가’보다 ‘어떻게 지속하는가’일 것이다. 사실 이 책의 메시지는 동물원의 책임보다 동물원을 찾는 ‘관람객의 책임감’을 향하고 있다.



↘ 이아림 님은 글을 편집하고 인쇄물 만드는 일을 하는 직장인입니다. ‘직장인’보다 더 좋은 수식으로 자신을 설명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이번에 그 수식이 ‘동물’이 되어 기쁘면서도 마음이 묵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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