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호 2015년 2월호 [특집] 특집 - 안녕? 아침밥

[ 핵 없는 세상을 위해-765kV 신경기변전소 후보지 거부 ]

수도권엔 전기 공급, 우리에겐 전자파 공급

글 고진하

안녕하세요. 저는 765kV 신경기변전소 후보지인 경기도 여주시 산북면 주민입니다. 잘못된 에너지 정책의 전환을 목표로 변전소 후보지 주민들이 만든 ‘정의로운 에너지 정책 시민모임’이란 단체의 회원입니다. 지난해 하반기에 불거진 신경기변전소는 밀양만큼은 알려져 있지 않은 이야기라 낯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저희 단체가 최근 발표한 아래 글에 지금의 상황과 주민들의 생각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기업에 싸고 풍부한 전기 공급이 다인가


한국전력공사(한전)가 신경기변전소 후보지를 발표했던 지난 7월부터 우리 경기 광주, 양평, 여주, 이천 주민들은 피 말리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너무 위험해서 세계에서 몇 나라밖에 쓰지 않는다는 765kV 송전탑들이 코앞에 들어선다는 것이 무섭고 두려웠습니다. 도로에는 후보지 선정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물결을 이루었고 한숨 소리만 높아갔습니다.
부끄럽지만, 우리는 함께 손잡고 나아가지 못하고 내 고장만이라도 재앙을 피해야겠다는 편협한 모습도 보였습니다. ‘생명 먼저’를 외치는 우리가 내 생명은 소중하고 남의 생명은 어떻게 돼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지 자괴감이 일었습니다.
우리도 어리석지만, 이런 반인륜적인 싸움에 우리를 떠밀어 넣은 뒤 약한 놈을 골라내려고 팔짱 낀 채 구경하고 있는 한전은 야비합니다. 공기업 한전을 통해 전기를 공급하는 정부에게 국민을 분열시키고 비루하게 만들면서 천하게 나라를 운영해도 되는지 묻고 싶습니다.
순박한 마을 어르신들은 우리도 전기를 쓰는데 송전탑을 못 짓게 하면 되냐고 물었습니다. 전기를 쓰지 않기 때문에 변전소와 송전탑을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기를 쓰고 앞으로도 써야 하기에 오히려 묻습니다.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보고 반대하는 초고압 송전탑을 세우지 않으면 전기를 쓸 수 없는지, 전기를 만들고 보내는 지금의 방식이 옳은지, 이 방법밖에 없는지 물음표를 던지게 됐습니다. 기업에 싸고 풍부한 전기를 공급하는 것에만 에너지 정책의 기조가 맞춰 있어서 핵발전소와 초고압 송전탑을 끊임없이 세우면서 자연과 인간을 짓밟는다는 진실을 알게 됐습니다.
먼저, 우리가 여태 아무것도 모르고 전기를 편리하게 쓰기까지 피눈물을 흘렸을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을 전합니다. 근본을 재검토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 후보지 주민들은 에너지를 생산하고 공급하는 더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방식을 함께 고민해서 대안을 마련해 보자고, 그래서 모두 행복하게 에너지를 쓸 수 있게 하자고 여러분께 호소합니다.


지역 분산 발전 확대·재생 에너지 개발·산업용전기요금 현실화


지역이기주의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 지역엔 이미 345kV 또는 765kV 송전탑이 지나가는 곳이 적지 않습니다. 벼락보다 세다는 초고압 송전탑 옆에 살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더 많은 보상을 노리는 것으로 왜곡하거나 좌파니 빨갱이로 매도하지 말아 주십시오. 우리는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은 평범한 국민들일 뿐입니다.
인구 적은 농촌이 양보하라고 일방적 희생을 강요할 때는 지났습니다. 수요 증가를 불러오는 공급 일변도의 에너지 정책을 혁신해 주십시오. 765kV 송전을 법으로 금지하고, 장거리 송전이 필요치 않도록 지역 분산 발전을 확대해 주십시오. 송전탑을 세우는 노력으로 재생 가능 에너지를 개발해 주십시오. 기존 송전선로는 지중화와 초전도 케이블 등으로 안전하게 만들어 갑시다.
이익을 보는 사람이 비용을 부담하는 수익자 부담 원칙에 의거해 원가보다 낮게 책정돼 있는 산업용 전기요금의 현실화, 송전 거리를 반영한 차등 요금제 등으로 재원을 마련합시다. 마을 구간이라도 적용한 뒤 단계적으로 확대합시다. 공론의 장에서 함께 머리를 맞대고 도시와 지방이 상생할 수 있는 해법을 찾아내어 아름다운 합의를 이루어 냅시다.


언론 보도를 통해 비로소 알게 된 진행 사항


에너지 정책과 함께 민주주의의 역시 중요합니다. 우리는 한전이 신경기변전소 입지선정위원회 회의를 여섯 번이나 열도록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신경기변전소를 여기 짓겠다면서도 한전이 우리에게 알려준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후보지 위치며 규모도 언론 보도로 알았습니다.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면서 왜 우리를 문밖에 세워둡니까? 한전은 무소불위 전원개발촉진법을 무기로 많은 사람의 생명과 재산이 걸린 문제를 밀실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저항에 부딪히면 돈과 힘으로 억눌러왔습니다. 이러한 비민주적인 방식은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할 뿐 아니라 바람직한 의사결정 과정을 방해하여 갈등을 더 키웁니다. 우리는 이해당사자를 빼고 내린 불공정한 후보지 선정은 원천 무효임을 주장하며 신경기변전소 후보지 거부를 선언합니다. 우리는 신경기변전소가 백지화되고 정의로운 에너지 정책이 실현되는 날까지 투쟁할 것을 선언합니다.



2019년까지 초대형변전소와 송전탑 170기 건설 계획


신경기변전소는 강원도 신울진핵발전소에서 생산될 전기를 수도권의 대공장과 대도시로 보내기 위한 것입니다. 한전은 2019년까지 2조 원 이상을 들여 경기 동부지역 8만 8천 ㎡ 터에 2만 6천 ㎡ 규모의 초대형 변전소를 지을 계획이며, 그 주위로 송전탑 170기가 들어서게 됩니다. 이를 위해 한전이 지난해 7월 발표한 후보지는 여주 2곳(금사면 전북리, 산북면 후리), 광주 1곳(곤지암읍 삼합리), 양평 1곳(강하면 전수리), 이천 1곳(마장면 관리)입니다. 약 100m 높이의 송전탑이 약 500m 간격으로 들어서면 △산림과 농경지 훼손 △전자파와 송전 소음으로 인한 건강 피해 △경관 파괴로 인한 심리적 피해 △지가 하락으로 인한 재산 피해 등이 예상됩니다. 당연히 각 지자체와 주민들은 서명 운동, 반대 집회, 한전 항의 시위 등을 통해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한전은 지난해 12월로 예정돼 있던 확정 발표를 올 상반기로 미루어 놓은 상태고요.
우리 지역은 대부분 수도권 물 공급을 위해 각종 규제를 받아 온 지역들인데 변전소 건설까지 겹치니 소외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개발 제한 묶은 것도 도시 위한 희생인데 전자파 이웃 삼아 절망 속에 살라 하네’, ‘물고문 50년에 이제는 전기고문?’, ‘수도권엔 전기 공급, 우리에겐 전자파 공급’과 같은 펼침막 문구들에 이런 정서가 거칠지만 솔직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국민이 감시와 견제를 게을리하는 동안 국책 사업들은 세금 먹는 하마가 되고 강산은 골병들고 백성은 등골이 빠지고 있습니다. 다행히 우리 지역에서는 종교 및 시민사회가 손을 잡아 주어 신경기송·변전소저지 여주범시민대책위원회가 출범했고, 도 단위에서도 경기 765kV 송·변전 백지화 공동대책위원회가 1월 20일 출범했습니다. 함께해 주시면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종교 지도자들과 신경기변전소 후보지 주민들과 정의로운에너지시민모임 회원들이 모여 신경기변전소 여주범종교시민대책위원회 출범식을 열었다.>

 

 

<2014년 7월 이후 경기도 광주시와 여주시의 경계를 이루는 고갯마루에는 신경기변전소 결사 반대를 외치는 주민들의 펼침막이 층층이 걸려 있다.>

 


 다음 아고라 청원운동 <신경기변전소 백지화하라>
 네이버 카페 ‘정의로운 에너지정책 시민 모임’ cafe.naver.com/energyfopeoplepower


↘ 고진하 님은 경기도 여주시 산북면 주민으로 신경기변전소 건설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정의로운 에너지 정책 시민모임의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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