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호 2015년 1월호 살림,살림

[ 모심의 눈 ]

자살과 생명

글 정희진

9년째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인 대한민국

 

통계청이 발표한 <2013년 사망 원인 통계>에 의하면, 한국에서는 매일 39.5명이 자살한다. 서울지역의 20~30대 사망 원인 1위는 자살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9년째 자살률 1위다. OECD 평균은 12.1명.

 

사회적 낙인을 피하려고 자살을 ‘교통사고’나 ‘실족사’ 등으로 다르게 신고하는 예는 다반사다. ‘축소 보고’는 자살 통계의 운명이다. 문화적 관습 때문에 정확한 통계가 나올 수 없는 분야다. 어쨌든 ‘거짓말’이나마, 자살과 관련한 통계는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이슈가 되었다. 숨기는 것보다는 낫다.

 

그러나 자살 자체나 자살하는 이들이 생전에 느낀 통증, 남은 가족들의 삶에 대한 인식에는 큰 변화가 없다. 자살 통계는 자살에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다른 문제를 설명하는 데 ‘동원’되는 이야기 구조를 갖는다. 이를테면 경제 위기로 인한 자살(이코노사이드)을 비난하는 이들은 거의 없는데, 이는 사회의 관심이 자살이 아니라 경제가 어렵다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이때 자살은 경제적 문제를 드러내기 위한 ‘장치’에 머문다. 이제 우리 사회의 자살 담론은 개인적인 문제에서 사회구조의 피해자, 사회적 타살이라는 방향으로 확실히 이동한 듯하다. 하지만 그것은 ‘세 모녀 자살 사건’처럼 ‘생계형 자살’에 한정된다. 빈곤층의 자살이나 따돌림 폭력에 시달리다 죽음을 선택한 경우에는 공감하는 분위기가 완연하다. 그러나 이 역시 사회 비판을 위한 것이다. 이런 공감은 자살자를 이해하기보다는 우리 자신을 이해하기 위한 것으로 “그들이 죽을 만큼 이 사회에 문제가 많다”를 강조하는 데 초점이 있다.

 

자살에 대한 고정관념을 불러온 관념론

 

자살에 대한 고정관념의 배후는 주로 서양철학의 관념론이다. 삶의 주체가 인간이 아니라 ‘조물주’라는 인식이다. 삶과 죽음을 관장하는 자, 인간에게 생사를 부여하고 앗아가는 힘은 도시국가, 국가, 자연, 신, 조물주의 영역이라는 통치 이데올로기 때문에, 자살은 지배자에 대한 극단의 반역으로 간주된다. 자살에 대한 저주는 종교나 사회체제를 불문한다. 과거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자살은 ‘인민에 대한 배반’으로서 반역자, 변절자 취급을 받았다.

 

서양 사상에서는 인간을 신의 형상을 본뜬 피조물로 생각한다. 이러한 세계관에서는 ‘체액’을 철저히 관리·통제하고 영과 육이 건강한 ‘젊은 남성’만이 온전한 인간이라고 본다. 신은 전지전능하기 때문에 자신의 작품을 불완전하게 만들 리 없다고 여긴다. 신의 작품이므로 건강 개념은 각 기관과 장기가 정확히 작동하고 조화를 이루었을 때를 말한다. 건강(health)의 어원은 온전한(whole), 강건한(hale), 신성한(holy) 같은 앵글로 어족에서 유래했는데, 종합하면 조물주를 기쁘게 하는 완벽한 존재다.

 

여성과 장애인, 노인 같은 건강 약자는 신의 은총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다. 피, 눈물, 콧물, 배설물 등 체액을 흘리고 다니는 통제력이 없는 이들은 규범적 인간에 도달하지 못한 존재다. 병에 걸린 사람은 벌 받은, 재수 없는 이이며, 신자유주의 용어로는 낙오자라는 의식이 지금도 팽배하다. 이것은 차별적인 사고이지 생명 존중 담론과는 거리가 멀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과 질병에 대한 인식 넓혀야

 

자살에 대한 인식 중에서 가장 두려운 부분은 약자 혐오다. 자살에 대한 편견은 기본적으로 약자 혐오에서 출발한다. 자살 비난은 젊음과 건강에 대한 욕망,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시작한다. 자살을 반대하는 이유가 말로는 생명 중시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인 생명 경시다. 80대의 말기 암 환자가 반복적인 수술 끝에 자살했다면 쉽게 비난할 수 없다. 합리적 결정이라고 생각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자살은 질병으로 인한 죽음이지 개인의 잘못된 결정이 아니다. 이기적인 행위도 도피도 포기도 아니다. 암으로 사망한 환자에게 우리는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자살은 (주로 우울증으로 인한) 질병사일 뿐이다. 의지를 관장하는 뇌 기능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자살은 생명 경시의 문제가 아니라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 질병에 대한 인식의 확장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할 문제다. ‘생명’은 자명한 논리가 아니라 사회적 경합의 산물이다. 아는 것은 정치적 행위다.

 

↘ 정희진 님은 평화학 연구자로, 학문 간 경계를 넘나드는 공부와 글쓰기를 지향합니다. 《정희진처럼 읽기》(2014), 《페미니즘의 도전》(2005),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2001) 등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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