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호 2015년 1월호 살림,살림

[ 옛 농부들의 농사 이야기 ]

지붕이 바뀌면서 변한 농사 언제부터 거름을 대량생산하게 되었을까?

글 전희식 \ 그림 전새날

현재의 농사 모습에 선조들의 전통 농사 방법이 녹아 있다. 그 원형을 찾아 전통 농업과 생태 농법의 뿌리를 살펴보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귀농 초보자는 농사법과 생활 전반을 설계하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편집자 주


부엌 천장으로 물기가 배어 나왔다. 지붕을 칼라 강판으로 이으면서 채광을 위해 썬라이트를 한 장 썼는데 그곳에서 비가 새는 게 분명했다. 칼라 강판은 수명이 50년인 반면 썬라이트는 고작 5~6년이다. 하지만 해마다 이엉을 엮던 때에 비하면 그 정도 지붕재는 특급이다. 1970년대 슬레이트가 지붕재로 등장하면서 이엉 엮던 일이 없어졌다. 그리고 이엉을 엮던 짚을 거름으로 쓰면서 농사 생활이 바뀌었다.

 




해마다 지붕 이는 데만 반달


가을걷이도 끝나고 마늘이나 밀, 보리 등 가을 파종까지 끝나면 이엉 엮기를 시작한다. 지붕을 잇기 위해서다. 아버지와 형님은 볕 잘 드는 섬돌을 등에 지고 앉아 몇날 며칠 이엉을 엮었다. 부잣집 기와 말고는 지붕재는 거의 볏짚이었다. 수명은 딱 1년.
보통 예닐곱 살이면 이엉 엮기를 함께한다. 나도 아버지나 형 옆에 앉아 볏짚을 한 주먹씩 추려 대 주었다. 볏단 하나를 깔고 앉아 손바닥에 침을 뱉어 가며 엮은 이엉을 앞발로 쭉쭉 밀어내면 이엉이 돼지 창자처럼 주름져서 꾸불꾸불 마당 앞쪽으로 밀려났다.
이엉 한 다발에는 보통 20단 정도의 볏짚이 들어간다. 그 정도만 해서 엮어야 어깨에 짊어지고 사다리를 올라 지붕에서 작업하기 알맞다. 이엉 하나에 20kg쯤 될까? 이엉 엮을 때는 첫서리가 내릴 즈음이라 낮에도 손을 호호 불어 가며 일을 한다. 게으르거나 일이 늦은 집에서는 첫눈이 날릴 때 지붕을 이기도 한다. 삼간집에 지붕 하나를 이려면 이엉이 열다섯 개쯤 든다. 지붕 이는 건 모내기 이상으로 큰 행사다. 마당에는 이엉 다발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고 대여섯 장정들이 품앗이로 동원된다.
한 해 전에 인 이엉을 걷어 내고, 볏짚 뿌리가 밑으로 가게 해서 이엉 첫 다발을 지붕에 거꾸로 깐다. 처마 끝을 튼튼하게 하기 위해서다. 그다음부터는 한 뼘 간격으로 이엉을 겹치게 이어 깐다. 마지막으로 용마루를 지붕 꼭대기에 인다.
시커멓게 썩은 옛 지붕을 걷어 내고 샛노란 새 볏짚으로 지붕을 이고 나서 꼭 하는 작업이 있다. 새끼줄로 촘촘하게 지붕을 묶어 주는 일이다. 바람이 불어 이엉이 곧추선다든가 날아가 버리면 낭패이기 때문이다. 새끼줄로 지붕을 묶을 때도 요령이 있다. 이엉 볏짚 길이의 중간 조금 아래쪽에다 새끼줄을 쳐야 튼튼하게 묶인다.
지붕 이는 진짜 마무리 작업은 따로 있다. 처마 끝을 가지런히 잘라 내는 것이다. 삐져나온 이엉 자락을 잘라 내서 보기 좋게 하고, 낙숫물이 마당에 떨어질 때 지저분하지 않게 한다. 요즘 같으면 전지가위로 자르겠지만 당시에는 낫으로 잘랐다. 마당에 수북이 쌓인 시커먼 옛 지붕 볏짚은 거름 자리로 옮겨, 겨우내 썩혀 이듬해 농장으로 낸다. 부스러질 정도로 삭아버린 상태라 소 마구간에 깔지도 못한다.
매년 이렇게 지붕을 이다가 3~4년이 되면 특별한 작업을 해야 한다. 한 해 지붕만 걷어 내다 보니 그 아래 있는 3~4년 된 지붕은 삭고 삭아서 바람에 날릴 정도가 된다. 그래서 지붕의 바닥 흙이 드러나게 몇 년 쌓인 지붕을 모두 걷어 낸다. 이때는 이엉을 더 촘촘히 깔아야 하니까 삼간집에 이엉이 스무 개 이상 든다. 그 다음해는 전해의 이엉을 걷어 내지 않고 지붕을 인다.

 


겨우내 소거름을 만들다

 
1970년대 슬레이트 지붕의 등장
 은 농촌의 혁명이었다. 지금이야 천덕꾸러기지만 당시 슬레이트 지붕은 한순간에 농촌 생활 전체를 바꾸었다. 매년 지붕 이는 일이 반달 일거리였는데 그 노동을 생략시킨 것이다. 그뿐 아니다. 애써 물 건너고 산 넘어서 나락 단을 집으로 짊어지고 와서 타작할 이유가 사라졌다. 논에서 타작하고 소 먹이나 마구간에 깔 볏짚만 집으로 가져오고 그냥 논에 두었다가 이듬해 논을 갈 때 갈아엎으면 그만이었다. 엄청난 노동력의 절감이었다.
지붕 자체도 혁명이었다. 지붕 이는 일이 사라진 데다 지붕 처마를 길게 쑥 뽑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제까지는 서까래 끝에 반 자나될까 말까 처마를 냈다면 슬레이트 지붕재는 한 자 넘게 처마를 끌어낼 수 있다 보니 섬돌에 빗물이 차지 않게 되었다. 짚 지붕에는 새가 집을 짓거나 굼벵이가 파고드는 탓에 한여름에 비가 새고 난리를 치지만 슬레이트 지붕은 ‘걱정 뚝’이었다.
슬레이트로 지붕을 이는 집에 동네 사람들이 다 몰려와서 구경했다. 전문 일꾼도 등장했다. 이 동네 저 동네 불려 다니면서 지붕 이는 일로 밥벌이를 했다. 슬레이트는 대골과 소골이 있었는데 대골은 골이 굵고 넓었다. 두께도 두꺼웠다. 돈이 좀 있는 집은 대골 슬레이트 지붕을 이었다. 농협에서는 융자를 해 주면서까지 지붕 개량을 독려했지만 가난한 집은 언감생심이었다. 지붕 개량을 하더라도 아래채는 엄두도 못 내고 몸채만 겨우 했다. 지붕 개량 덕에 농가마다 거름이 대량으로 생산되기 시작했다. 마구간에 짚을 충분히 깔아 넣기 시작했다. 소 거름이 겨우 내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농촌 산업 구조도 바뀌었다. 면 단위 마을마다 두세 개씩 있던 시멘트 기와 공장이 사라져 버렸다. 비싼 흙 기와를 쓰지 못하던 사람들에게 저렴한 시멘트 기와가 인기였지만 슬레이트 지붕과 경쟁할 수 없었다. 짚 지붕을 이지 않다 보니 볏짚이 길고 짧은 것에 더 이상 연연할 필요가 없어졌다. 슬레이트 지붕의 등장은 볏짚 길이가 짧은 통일벼 등 개량 벼가 등장하던 시기와도 맞물린다. 동네마다 있던 삼밭도 사라졌다. 3~4년에 한 번씩 지붕을 통째로 갈 때는 꼭 맨 밑에 ‘지릅대기’라고 불리는 껍질을 벗긴 삼나뭇대를 짱짱하
게 엮어 깔았는데 그럴 필요가 사라졌다. 공업용 면직물의 대량 보급과 삼 재배가 사라지는 것이 지붕 개량 시기와 맞물려 있다.

 


인생역전 상전벽해



요즘 지붕을 개량한다고 하면 십중팔구 슬레이트 지붕을 걷어 내고 칼라 강판이나 싱글 지붕으로 바꾸는 걸로 생각한다. 인터넷으로 ‘지붕 개량’을 검색하면, 가구당 최대 280만 원까지 비용을 지원 받아 슬레이트 지붕을 걷어 낼 수 있다는 정보가 나온다. 지원비는 폐기물 전문 처리 업체가 와서, 분진이 날지 않도록 낡은 슬레이트 지붕을 비닐로 밀봉하여 특수 처리하는 비용으로 쓰인다. 한 때는 지붕 혁명의 대명사이던 슬레이트 지붕이 이제는 1급 발암물질로 전락했다.
석면으로 만든 슬레이트 지붕은 함부로 손댈 수 없다. 자기 집이라도 그렇다. 슬레이트 지붕을 걷어내 땅에 파묻거나 방치하면 처벌을 받는다. 등록된 전문 업체가 하는 게 아니면 ‘불법 철거 행위’로 자그마치 징역 5년 이하에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린다니 상전벽해라고할 수 있다.
7년 여 동안 햇볕을 받아 더 이상 빗물을 막아내는 데 한계를 드러낸 지붕에 썬라이트를 한 장 사다 새로 깔았다. 더 이상 비가 새지 않는다. 5~6년쯤은 문제없겠지.



↘ 전희식 님은 농민생활인문학 대표이고 녹색당 농업먹거리위원장입니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의 존엄성을지켜 드리자는 생각에 전북 장수군 산골로 가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 삶을 《똥꽃》, 《엄마하고 나하고》, 《시골집 고쳐 살기》 등에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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