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호 2015년 1월호 살림,살림

[ 살림의 현장-충북 괴산에서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 ]

아직은 우리 가슴의 노란 리본을 뗄 때가 아닙니다

글 \ 사진 김의열

세월호 희생자 단원고 이창현 학생의 어머니 최순화 씨가 간담회에서 그 동안의 이야기를 전했다. “거짓과 악의 세력이 아무리 강해보이더라도 길게 지치지 않고 끝까지 싸워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진도 앞바다에 304명의 꽃다운 생명을 수장시킨 세월호 참사는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에게 감당하기 힘든 비극적인 고통을 안겨 주었다. 많은 국민들의 가슴에도 엄청난 슬픔과 분노를 새겨 놓았다. 참사가 일어난 지 250일이 넘도록 제대로 된 원인 규명은 하나도 이루어진 게 없이 짙은 안개처럼 수많은 의혹에 휩싸여 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217일째 되던 지난 2014년 11월 19일 저녁, 충북 괴산에서 세월호 희생자인 단원고 2학년 5반 이창현 군의 어머니 최순화 씨를 모셔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한 괴산군민 간담회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괴산군민 모임이 ‘유가족과 함께하는 괴산군민 간담회’를 준비할 때에는 군 단위 모임이라 당초 예상으로 30~40명 정도가 모이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상을 훨씬 뛰어 넘어 60여 명이 괴산여성회관 2층 강당을 꽉 메웠다. 가족대책위에서 만든 ‘세월호 200일 특집 다큐멘터리’를 함께 보고 최순화 씨의이야기를 듣는 내내 함께 모인 사람들은 한마음이 되어 눈물을 지었다.

 

최순화 씨는 처음 참사가 일어나고 며칠 후 배 밖에서 떠다나는 창현이의 시신을 발견한 이야기부터 하늘나라로 먼저 간 창현이 생전의 이야기와 진상 규명 활동에 적극 참여하게 된 이야기를 눈시울을 붉히며 풀어 나갔다.

 

“중 2때 창현이가 수학여행을 다녀와서부터 잘못된 친구들을 사귀게 됐고 그 이후로 창현이와 사이가 서먹해졌다. 나는 창현이에게 학교와 집과 교회의 틀 안에만 머무르도록 요구했지만 창현이는 계속 거부하고 뛰쳐나가 이상한 친구들과 어울렸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로 창현이가 하늘나라로 떠난 뒤 얼마 지나, 살아 돌아온 창현이 친구들이 나를 찾아와 말하더라. 창현이 덕택에 학교를 그만두지 않고 계속 다닐 수 있었고 학교를 그만두었던 한 친구는 다시 마음을 잡고 검정고시를 봤다고. 창현이에게 고맙다고. 친구들의 말을 들으며 우리 창현이가 내가 생각한 것처럼 나쁜 길로 빠져든 게 아니라 친구들 사이에서 바른 길을 보고 그들을 인도해 준 아이였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한 손으로 계속 눈물을 훔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처음엔 진상 규명 활동에 참여하지 않았다. 창현이가 떠난 후 며칠 뒤 꿈에서 창현이가 나를 찾아왔다. 너무나도 생생하고 밝은 모습이었다. 아이들의 죽음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아무런 의혹도 밝혀지지 않는 모습을 보며 진상 규명 활동에 뛰어들었다. 꿈에 나타난 창현이의 모습을 떠올리며 아이들의 죽음의 진실을 밝히는 일에 끝까지 함께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거짓과 악의 세력이 아무리 강해보이더라도 길게 지치지 않고 끝까지 싸워나갈 것이다.”

 

지난 2014년 11월 19일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괴산군민모임에서 ‘유가족과 함께하는 괴산군민 간담회’를 열었다. 예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모여 유가족의 아픔을 나누고 위로하였다.

 

최순화 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으로 눈물이 흘렀지만 한편으론 힘이 났다. 연약한 한 여인의 눈물 어린 목소리였지만 그 소리는 마치 광야에서 외치는 예언자의 목소리 같았다. 함께 모인 이들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모두들 함께 아파했고 함께 눈물 흘렸다. 그리고 함께하겠노라고 다짐했다. “오랫동안 지치지 말고 가야 할 싸움이니 슬픔에만 빠져 있지 말고 밝고 힘찬 에너지로 살아가자.”고 격려하는 이도 있었고 산과 들에서 직접 꺾어 만든 노란 꽃바구니를 전해주며 하늘로 떠난 이들과 유가족을 위해 기도해 준 이도 있었다.

 

최순화 씨는 모임이 끝나고 걸어 나오면서 뜻밖에 많은 사람들이 와줘서 놀랐다고, 생각지도 못한 환대와 마음의 선물에 너무나도 감사한다고 했다. “다음에 꼭 안산에서 다시 보자”는 말과 함께 “마음 가득 에너지를 받아 충전하고 돌아간다”며 늦은 밤 홀로 운전대를 잡고 차를 몰아 안산으로 향했다. 이날 모임은 유가족이 괴산 주민들에게 세월호의 진실을 알리는 자리이면서 동시에 괴산 주민들이 유가족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힘을 불어넣어 준 자리이기도 했다.



청주생산자와 솔맹이골 엄마들의 김치 선물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하는 마음으로, 청주생산자의 유기농 배추에 괴산 솔맹이골 엄마들이 한겨울을 든든하게 날 김장김치를 담가유가족들에게 보냈다.

다음 날인 11월 20일, 솔뫼농장 어울림터에서는 또 다른 가슴 따뜻한 일이 벌어졌다. 한살림 청주생산자연합회 회원 한 분이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해 유기농 절임배추 200포기를 내어 주었고 솔맹이골의 젊은 엄마들이 각자 양념과 부재료를 가져와 김치를 담갔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따위는 아랑곳없이 엄마들은 하루 종일 무채를 썰고 양념을 버무리고 배춧속을 넣어 김치를 담갔다. 10kg 상자에 정성껏 담은 김치를 세월호 유가족 26집과 유가족들의 치유공간 ‘이웃’에 택배로 전했다. 다음 날 치유공간 이웃을 비롯하여 유가족들이 문자메시지와 전화로 고마운 마음들을 전해 왔다. 잘 먹고 힘내겠다는 말과 함께.

 

‘우리 사회가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눠질것’이라고들 한다. 세월호는 여러 가지 시금석 역할을 한다. 우리 앞에는 두 갈래 길이 놓여 있다.

 

하나는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길이다. 각자가 분리의식에 갇혀 고립된 어두움 속에서 서로 경쟁하고 짓밟고 올라서고 빼앗으며 결국은 승자가 모든 걸 차지해 버리고 패자는 쓸쓸히 도태되고 만다. 물질의 욕망이 정신의 가치를 압도하고 생존 자체가 지상과제가 되는 아수라장의 길이다.

 

또 한 길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우주 생명이 하나가 되는 길고도 거대한 연대와 협동과 사랑의 길이다. 분리의식이라는 어두운 골방에서 벗어나 타인과 온 우주 생명을 향해 자신을 열고 함께 나누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입 맞추고 노래하는 존재로 바꿈하는 것이다. 물질을 획득하는 건 정신과 영혼의 가치를 드높이기 위해서일 뿐 남보다 더 많이 가지기 위해 경쟁하고 빼앗는 일은 없다. 나눔으로 풍요로워지고 소박함이 기쁨이 되며 들꽃과 벌레들과도 친구가 되는 세상을 이루는 길이다.

 

두 갈래 길 가운데 어떤 길을 걸어갈 것인지는 세월호 참사를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과 입장에 따라 판가름이 난다. 또한 우리 사회가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지도 세월호 참사를 대하고 해결해 가는 우리 사회의 모습에서 판가름이 날 것이다. 다행히 세월호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끌어안고, 죽어간 아이들을 내 아이들로 받아들이며, 유가족들의 고통을 내 고통으로 느끼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에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5명 이상이 모인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겠다고 한다.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고 유가족들의 아픔에 함께 다가가려는 마음이라면 그들을 초대하자. 그들의 이야기를 가슴으로 듣고 함께 하는 마음을 전해주자. 아니면 우리가 그들을 찾아가자. 안산 합동분향소가 있고 아직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9명의 시신이 잠겨 있는 진도 팽목항이 있다. 그들의 손을 잡고 그들의 아픔을 끌어안고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며 굳건한 연대의 마음을 보내자. 아직은 우리 가슴에 달려 있는 노란 리본을 뗄 때가 아니다.


↘ 김의열 님은 1966년 전남 장성에서 나고 충북 청주에서 자랐습니다. 1988년에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로 들어와 농사를 배우다 가톨릭농민회 실무자로 청주에 나가 일했고 1992년 결혼해서 다시 삼송리로 돌아와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1994년 지역 농부들과 함께 유기농업 생산자 모임인 ‘솔뫼농장’을 만들어 20년 동안 함께해 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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