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호 2015년 1월호 [특집] 특집 - 또 다른 겨울나기

[ 핵발전 산업 노동자와 전기 소비자 시민이 함께 ]

‘정의로운 전환’으로 탈핵을

글 김현우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사고가 나고 벌써 네 번째 새해를 맞이했지만 사고수습 전망은 여전히 어둡기만 하다. 그나마 더 이상 세상에 안전한 핵발전은 없다는 인식이 널리 확산된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고, 한국도 이제 반핵을 넘어서 ‘탈핵’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게 된 게 사실이다. 하지만 핵발전을 없애는 그날까지 풀어야 할 과제는 너무도 많다.


해로운 노동을 안전하고 이로운 산업으로


우리는 그동안 밀양과 청도가 남의 일이 아니며, 대도시의 전력 소비자들도 핵발전의 이해당사자임을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이야기해 왔다. 하지만 핵발전 산업에 종사해 온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 그리고 자의가 아니더라도 핵발전에 의지해 살아야 했던 지역주민 등이 더욱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임은 분명하다. 핵발전이 없더라도 이들이 안심하며 안정적인 삶을 누리도록 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핵발전에 반대하는 시민들과 핵발전을 유지하고자 하는 노동자들 사이의 대립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시민과 노동자들이 실은 서로 다른 사람이 아닌데도 말이다.
이런 점에서 탈핵 에너지 전환은 다른 어느 산업보다 ‘정의로운 전환’이 필요한 경우다. 정의로운 전환은 미국의 노동운동가 토니마조치가 생각해 낸 개념으로, 그 자신이 1950년대에 미국의 화장품 공장에서 유독한 원료와 해로운 작업과정을 경험하면서 이러한 지속가능하지 않은 작업장과 노동을 국가와 노사 그리고 지역사회의 공동 노력을 통해 안전하고 이로운 산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 데서 비롯했다. 이러한 산업 전환은 과정과 결과 모두 정의로워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노동자의 재훈련과 급여 유지를 위한 공공 기금이 조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생각은 최근 국제 노동운동계가 기후변화 대응과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각국의 정책 속에서 노동자와 지역사회의 희생이 생기지 않아야 한다고 요구함으로써 펼쳐지고 있다.


핵발전 중단해도 노동자들은 계속 일할 수 있다


현재 한국 핵발전 산업 노동자는 협력업체까지 포함해서 대략 2만 4천 명 정도인데, 정의로운 탈핵 전환이라면 핵발전 산업 종사자들을 재생에너지와 에너지 효율화 부문 일자리로 전환하면서 여기에 필요한 기금과 직무 확보, 직업 훈련을 관련 기업과 사회적 합의 속에서 해결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정책적으로 핵발전을 중단하기로 결정된다 하더라도 당장 핵발전소 운영과 관리가 불필요해지거나 관련 기술과 수요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재생에너지 발전소들도 터빈과 발전 계통 설계· 제작, 송전과 배전 관리는 핵발전이나 화석에너지발전과 상당 부분 겹치기 때문에 핵발전 산업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계속 일을 맡을 수 있다. 또 앞으로 수십 년에서 수백 년 이상 해야 할 핵폐기물 관리에도 핵발전 산업 노동자들의 노하우가 여전히 필요할 것이다.
재생에너지발전 산업이 화석연료나 핵발전 산업보다 잠재적인 고용 창출 능력이 더 크다는 연구도 여럿 나와 있고, 실제로 유럽과 북미에서는 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이 크게 늘어나면서 종사자 수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낙관적인 일자리 전망과 정책 프로그램을 제시한다고 해서 핵발전 산업 노동자들이 곧 호응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한국처럼 노동자와 기업주, 노동자와 정부 사이의 신뢰가 약한 사회에서는 이러한 전환 합의가 쉽지 않을 것이다.




(위) 국제노총에서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 시위하는 모습. “노동조합은 해결책을 갖고 있다”는 말 아래 ‘정의로운 전환’이 큰 글씨로 써 있다. (아래)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사고를 수습하는 노동자들. 핵발전 산업에 종사해 온 노동자들이 핵발전이 없더라도 안정적인 삶을 누리며 안전하고 이로운 산업으로 옮겨가야 한다.


재생에너지 부문이 훨씬 더 많은 일자리 창출


세계에서 탈핵을 선도하고 있는 독일은 어떠했을까? 독일은 예전부터 매우 강력한 노동조합이 있었고, 당연히 핵발전과 석탄화력발전에 종사하는 조합원들도 많았다. 때문에 독일이 탈핵을 결정하기까지 노동조합의 이해관계가 엇갈렸고 우여곡절도 많았다. 예를 들어 독일 탄광·화학 및 에너지 노동조합(IG BCE)의 한 지도자는 ‘이데올로기적 이유’로 특정한 국내 에너지원이 에너지 계획에서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국내 에너지원이란 독일에 풍부한 역청탄과 갈탄을 뜻한다. 또한, 이 지도자는 재생에너지 보조금으로 인한 요금 인상 부담이 소비자에게 전가되어서는 안 되며, 석탄 등 화석에너지에 대한 보조금 지원 중단이 독일의 산업경쟁력을 약화시켜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러한 생각이 그만의 것이었을 리는 없다.
그런데 에너지 전환은 비타협적인 선택이 없으면 실현할 수 없다. 현재의 조건 속에서 이쪽과 저쪽의 사정을 다 받아 주면 그것은 현재의 에너지 체계를 유지하겠다는 얘기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독일의 헤르만 셰어가 《에너지 명령》에서 탈핵과 재생에너지에 대한 ‘거짓 합의’를 공격한 이유도 이것이다. 말로는 모두가 재생에너지가 중요하고 동의한다고 하지만, 실은 기존의 전력 수급방식과 생산비용, 고용에 변화가 없는 핵에너지와 화석에너지 그리고 재생에너지의 공존을 기대한다는 것이다. 재생에너지는 아직 충분히 보급되기 어려우므로 당분간 기존의 에너지 수단을 개선하여 모종의 순탄한 징검다리를 고민하자는 논리다. 물론 이 순탄한 징검다리에 끼어드는 것이 핵발전이다. 온실가스도 배출하지 않는 청정에너지라는 이유 그리고 안전성이 강화된 차세대 핵발전이 개발 중이라는 약속을 곁들이면서 말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재생에너지가 국민의 세금을 비효율적으로 쓰게 한다거나 에너지 요금을 비싸게 한다는 부정적인 논리를 동원하면서 여론을 에너지 전환에 회의적이도록 몰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독일의 에너지 전환에서 노동조합의 역할은 점차 커져 갔고 노동조합의 의견도 바뀌어 갔다. 사민당과 녹색당의 탈핵 연정은 사민당의 주요 지지기반인 노동조합의 동의 없이는 어려운 것이기도 했다. 많은 연구와 설득이 있었지만, 독일의 주요 산별 노동조합들이 점차 재생에너지법에 찬동하고 이해를 같이하게 된 것은 전통적 전력 부문보다 재생에너지 부문이 훨씬 더 많은 고용을 창출하고 특히 그 성장세가 가파르기 때문이었다. 2000년 이래 독일에서 대략 20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풍력발전, 태양광발전, 바이오매스 생산과 공급 부문에서 창출되었는데, 금속노동조합(IG Metall)이 탈핵운동에 더욱 동조하게 된 데에는 이러한 부문에 종사하는 조합원들이 시나브로 많아진 것도 배경이 되었다. 이제는 재생에너지 지원 확대 시위에 독일 노동조합들의 깃발도 함께하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정의로운 전환이 한국 에너지 산업 노동자들에게 어떤 숭고한 결단이나 개인적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어서는 안 되며, 만약 그렇게 되면 설득력을 갖기도 어려울 것이다. 현재의 산업구조와 에너지 수급체계를 면밀히 검토하여 다양한 대안의 청사진을 그리는 것이 우선이고, 이 청사진에 노동자와 지역사회의 자리를 만들어 두는 것이 필수다. 그렇게 핵발전 산업 노동자와 전기 소비자로서의 시민이 각자의 존재를 인정하는 동시에 지금의 문제점을 드러내게 될 때, 탈핵을 향한 정의로운 전환은 아주 다양한 방식과 내용으로 실현되기 시작할 것 같다.



↘ 김현우 님은 도시에서 다르게 사는 방법들을 잡다하게 궁리하는 데 관심이 있습니다. 현재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인문사회서점 ‘레드북스’의 공동대표이기도 합니다. 얼마 전 노동과 자연의 동맹을 다룬 책 《정의로운 전환》(2014)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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