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호 2015년 1월호 [특집] 특집 - 또 다른 겨울나기

[ 전기 대신 아궁이와 화롯불, 텐트와 침낭으로 ]

추워서 더 따스한 계절이 바로 겨울!

글 \ 사진 김세진 편집부

춥다. 목도리에 장갑에 털모자로 온몸을 칭칭 둘러싸도 어서 따뜻한 집에 들어가고만 싶다. 두꺼운 옷 한 벌보다 얇은 옷을 여러 개 입는 것이 효과적이고, 따스한 차를 자주 마시면 도움이 된다고. 하라는 대로 해도 춥기만 하다. 겨울을 좀 다르게 나는 사람이 있다기에 전라도 보성으로, 영암으로 찾아가는 길에 기차를 탔는데 실내가 너무 더웠다. 처음엔 고맙다가 나중엔 공기가 너무 답답해 ‘난방열 주의’라고 쓰여 있는 옆에 ‘질식 주의’라고 쓰고 싶어졌다. 추위와 더위가 오가는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건강하게 겨울을 나면 좋을까? 다르게 겨울을 나는 두 가족을 찾아갔다.



아궁이와 화롯불로 불을 가까이 하기
초은당·노연 씨 부부


어린 시절, 외풍이 심한 집에 살았는데 목욕을 하고 나오면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어머니가 두 팔 벌려 이불을 들고 나를 기다리고 있으면 그 속으로 푹 파고 들어갔다. 이불의 폭신하고 따뜻한 기운이 나를 감싸는 그 느낌이 좋아, 목욕탕 문을 열면서 춥다고 더 호들갑을 떨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땐 집에서 가장 따스한 곳이 안방이라 종종 안방 아랫목 이불 밑으로 기어들어가곤 했는데, 몸을 움직이면 발밑에서 달그락 소리가 나곤 했다. 아침에 해놓은 밥을 따스하게 데우려고 이불 밑에 넣어둔 것이었다. 발끝에 전해진 밥그릇의 온도가 무척이나 뜨겁게 기억되는 건 그 계절이 겨울이어서일 것이다. 겨울에는 실내의 훈기가, 사람의 온기가 더 따스하게 기억되는 법이다. 따스한 기억은 겨울을 잠시 잊게도 한다.
전남 보성에서 만난 초은당·노연 씨 부부 덕에 겨울을 잠시 잊었다. 거창에 살다가 보성으로 이사한 후 거의 10년에 걸쳐 지었다는 한옥집도 무척 따스했다.

 

 

노연 씨가 뒷산에 올랐다. 갈퀴질 한 번에 낙엽과 가리나무가 꽤 모였다. 이걸 베자루에 담아 두고 불씨를 붙일 때마다 쓴다. 이 불 덕에 맛있는 아궁이 밥과 숭늉을 먹었다.

 

사랑채에서 하룻밤 신세를 졌다. 그날 새벽 아궁이에 불을 때었다는데 온기가 다음날 아침까지 갔다. 아랫목에 미리 깔아 놓은 이불 밑으로 들어갔는데 등에서부터 배로 타고 올라오는 기운이 너무 따스해 “아, 행복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서울에서 살면서 언제 이런 데서 자겠냐며, 나무가 타면서 데워진 흙 구들은 몸에도 좋으니 옷을 벗고 누워 보라고 했다. 나무와 흙의 좋은 기운을 몸으로 받아보겠노라며 그렇게 했다가, 밤새 너무 뜨거워 움찔움찔했다. 그들은 사랑채에 20cm의 두꺼운 구들을 놓았는데 덥히는 데 오래 걸리지만 또 잘 식지도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늘 손님이 오는 것은 아니라, 가끔 불을 때니 완전히 덥히는 데 너무 오래 걸려 두껍게 놓은 것이 후회된다고 했다. 보통 구들방은 10~12cm 두께가 적당하다.
초은당·노연 씨 부부가 주로 시간을 보내고 손님들을 맞이하는 거실은 구들이 7~8cm로 약간 얇은 편이다. 그곳은 금방 데워지고 또 금방 식는데, 일어나자마자 이 공간에 불을 떼면 한두 시간만에 쉽게 데워져서 활동 공간으로 편리하다.
거실에 놓은 아궁이는 좀 독특했다. 거실문을 열고 나가면 차를 마실 수 있는 널찍한 실내 공간이 있는데 바로 여기에 아궁이를 만들었다. 그러니까 아궁이가 놓인 곳은 바깥이 아니라 거실과 이어진 실내이다. 구들 달인 이화종 씨가 쓴 《벽난로, 구들방을 데우다》를 보고 초은당 씨가 구들을 그렇게 놓았다. 차를 마시는 곳에서는 벽난로 구실을 하고, 그곳에 이어 바닥을 조금 높여 지은 거실에서는 구들의 역할도 하게 지은 것이다. 그렇게 아궁이를 냈더니, 불을 때러 나갈 때 춥지 않아서 좋다. 그을음이 앉고 먼지가 많이 생겨 청소를 자주 해야 하는 단점이 있지만, 편안하게 앉아서 불을 보는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어 좋다.
“맛이 솔찬해요. 불 피우는 맛, 나무하는 맛, 불 보는 맛. 불은 불러 모아서 불인가? 불 앞에서는 다 모여요. 희한하게.”

 


 

 

 

 

 

 

 

 

 

 

 

 

 

 

 

 

 

 

 

 

 

 

초은당·노연 씨 집 아궁이는 이쪽에서는 벽난로지만 동시에 저쪽에서 구들 구실을 한다. 아궁이를 거실과 이어진 또 다른 실내에 놓아 그렇게 기능하게 만든 것. 바닥은 구들이 덥히고 위쪽의 찬 공기는 화로로 잡았다. 화로를 옮겨 가지고 다니면서 몸도 데우고 차도 끓여 마시고 김도 굽고 심지어 샤브샤브도 해 먹었다.

 

 

아궁이에 들어갈 나무는 1년 전에 해서 비맞지 않은 나무가 좋다고 한다. 군에서 나무를 정리할 때 얻어 오곤 하는데 5~7일 동안 나무를 베고 모으고 쌓으면 한겨울을 난다. 보통 불을 붙일 때 신문지를 많이 쓰지만 그러면 석유 냄새가 나서 초은당·노연 씨는 가리나무(솔잎의 전라도 사투리)로 밑불을 만든다.
2009년에 그 벽난로 아궁이 옆에 요리하는 아궁이를 따로 놓았다. 초은당 씨의 친구가 잔가지를 긁어 밥을 지어 먹고 사는데, 그곳에서 밥을 먹어 보고는 노연씨에게 아궁이로 밥을 해 달라고 조르고 졸랐단다. 매 끼니는 못해도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아궁이 밥을 먹은 지 이제 5년이다.
“아궁이 밥을 처음 먹는 사람들은 대부분 여러 그릇을 먹어요. 저도 그랬고요. 아마 몸에 필요한 무언가를 채워 주는 걸 몸이 아나 봐요. 저는 불과 물을 바꾸면서 몸이 아주 좋아졌어요. 물은 산 위에서 떠와 옹기에 담아 정화해서 떠 먹고요. 그 물로 아궁이에 밥을 지어 먹고 나서는 화장실에 다녀오면 나오자마자 바로 배가 고파요. 소화가 잘되는 거죠.”
노연 씨는 집 뒷산에서 가리나무와 낙엽을 갈퀴로 긁어모아다가 그걸로 밑불을 지피고 살살 부채질을 하고 나무를 더 넣거나 빼면서 화력을 조절해 밥을 해 먹는다. 처음에는 불을 어떻게 조절해야 할지 몰라 계속 오가며 불이 너무 세지는 않은지, 꺼진 것은 아닌지 신경을 썼는데 금세 익숙해졌다. 한 달 정도 매일 하다 보면 불을 잡을 줄 알게 된다고. 지금은 밥을 적당하게 익히는 나무의 양을 안다. 그래서 불에 한 번 올려놓고는 신경 쓰지 않는다.
“가스레인지는 불을 ‘딱’ 켜면 금방 불이 붙잖아요. 밥을 하기 위해 준비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길지 않죠. 그리고 동시에 여러 가지 음식을 할 수 있으니 요리를 할 때도 욕심을 내게 되고. 아궁이 밥을 하면 한 번에 많아야 두 개씩 소박하게 하게 되고 가리나무를 긁어 오는 것부터 준비하게 되니 정성이 들어가요. 또 불이 있을 때 요리를 해야 하니까 미리 예측하고 행동해야 해요. 밥 한 그릇에 우주가 담겨 있다는 걸 정말 느끼게 되죠.”
아궁이를 덥힌 나무가 숯이 되어 잘아지면 화로에 넣는다. 그리고 자리를 옮길 때마다 옆에 화로를 놓는다. 화로에 들어간 숯이 다 타서 재가 되면, 그 재를 설거지할 때 묻혀 쓰고 또 밭에 거름으로 뿌린다.
화롯불 위에 주전자를 올려놓아 차를 끓이기도 하고, 손님이 오면 석쇠를 올려 고기와 생선을 굽기도 한다. 내가 선물로 가져간 김은 바로 석쇠에 적당히 구워서 점심상에 올랐다. 그리고 저녁엔 텃밭에서 채소를 뽑아다가 화롯불 샤브샤브를 해먹었다. 아궁이에 삼발이를 놓고 솥을 올려 국물을 끓인 후 그걸 화로에 옮겼다.화로 위 냄비에서 채소를 여러 번 건져 먹고 칼국수까지 먹었다. 맛은 정말 감동이었다.

 

 

초은당 씨가 겨울철 효자 노릇을 할 땔감을 해 왔다. 트럭에서 나무를 내릴 때부터 구분해서 내렸다. 내 눈엔 다 똑같아 보였는데 초은당 씨 눈엔 다 다르게 보이는 모양이었다. 너무 굵어서 한 번 쪼개 사용할 것, 미끈해서 연장으로 쓰기 좋은 것, 잔 것 등을 나누었다.

 


“구들로 방바닥은 덥히지만 공기가 차잖아요. 화로가 찬 공기를 잡아서 실내가 후끈후끈해져요. 우리는 불을 늘 가까이 해요.”
이 ‘가까이 있는 불’로 몸을 찜질하기도 한다. 치유 효과가 있어 뜸을 들일 때 사용하기도 하는 불을 일상에 가까이 두는 것이다. 몸이 습하면 병이 생기는 경우가 많은데 불이 이를 잡아 준다고 생각해서 노연 씨는 발부터 시작해서 무릎, 다리, 배,가슴, 손목, 얼굴 등 발가벗고 온 몸을 고루 불에 쬔다. 앞으로 쬐었다가 뒤로 쬐었다가 옆으로 쬐었다가 하는데 효과가 있다. 자주 트림이 나오고 위가 안 좋았는데화롯불을 쬐면서 좋아졌다.
또 화로는 도시에서도 사용 가능하다. 놋화로, 무쇠화로, 질그릇화로 등 종류가 다양한데 골동품 가게 등에서 사서 그 안에 잔 숯을 넣어 불을 피우면 된다. 돌화로는 품에 안고 있어도 좋다. 밤에 보면 빨간 화로 불빛이 예쁘기도 해 초은당 씨 말대로 “마치 은하수 같다”. “불을 가까이 하면 참 좋아요. 불을 바라보면 차분해지고 불이 오르기를 기다리면서 욕심도 없어지고요.”
자기 전에 그들은 편백나무 우린 물을 화롯불에 데워 세숫물로 내주었다. 정성이황송해, 그 물로 세수도 하고 머리도 감고 온몸을 씻었다.
다음 날, 화롯불에 모여 앉아 몸을 따스하게 하는 모과와 귤피, 생강과 유자 우린 차를 마시는데 창밖에 눈이 내렸다. 그래서 즉석에서 그 차를 ‘눈 내리는 차’라고이름 지었다. 화롯불이 찻주전자를 데우고 있었다.
“겨울은 추우니까 어디 나가지 말고 벗들을 불러 모아 따스한 밥 한 끼 같이 먹으면 어떨까요? 올해를 돌아보기도 하고 맑게 사는 법에 대해 이야기도 하고. 정성과 사랑이 들어가 마음자리가 따스해지면 몸도 절로 따스해질 거예요.”

 



텐트와 침낭, 물주머니로 체온 유지하기
전 선애학교 교장 김재형 씨 가족


김재형 씨는 4년 전 12월에 꽃이 피는 걸 봤다. 낙엽이 진 후인데 마치 4월인 것처럼 나무에 물이 올라왔다. 농사를 짓고 있었기에 기후변화를 느끼고 있었고 우울해졌다. 그래서 가족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석유를 최대한 쓰지 않기로 했다. 지구 온도를 높이지 않으려고 나무도 안 때는 실험을 했다.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던 딸과 아내 김도연 씨와 함께 최소한으로 난방을 하기로 했다.
더러 양심수 어머니 중에 감옥에 들어가 있는 아들을 생각하며 난방을 안 하는 사람이 있는데, 당시의 심정은 그와 다르지 않았다고. 강요하지 않았는데 가족들도 생각을 같이해서 함께 시작하게 되었다.
사람의 원래 체온을 유지해서 겨울을 잘나는 과제에 도전했다. 첫 해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저 이불을 두껍게 덮고 두꺼운 페트병에 뜨거운 물을 끓여서 넣어 안고 잤다. 다음해는 등산용 침낭을 사용했다. 침낭은 겨울용으로 나온 미라형이 따스하다. 다소 비싸도 품질이 좋은 것을 구입하는 게 효과가 좋다.
김재형 씨는 명상 공동체 수선재에서 운영하는 회사 아루이에서 가족별로 침낭을 샀다. 그리고 텐트도 장만했다. 텐트는 1인용 텐트가 5~6만 원쯤 한다. 각자 텐트 안에 들어가 침낭을 안고 또 물주머니(탕파)를 안고 잔다. 탕파는 3.4ℓ짜리 대용량으로 알루미늄으로 만든 것을 샀다.

 


 

 

 

 

 

 

 

 

 

 

 

 

 

 

 

 

 

 

침낭은 다소 비싸도 좋은 재질로 만든 것이 좋다. 김재형 씨 가족은 미라 모양의 겨울용 침낭을 개인별로 샀다. 그리고 알루미늄 탕파를 이불에 자기 전에 미리 넣어 놓는다. 잘 때는 침낭을 열어 발밑에 탕파를 두면 후끈후끈하단다.

 

기 전에 침낭 안에 미리 탕파를 넣어두고, 잘 때는 발밑에 놓고 잔다. ‘머리는 차게, 몸은 따스하게’ 하는 게 좋다는데, 발이 따스하면 온몸이 따스해진다. 침낭에 들어가 지퍼를 완전히 잠그면 몸의 열이 바깥으로 나가지 않는다. 침낭에서 자는게 처음엔 좀 답답하지만 익숙해지면 그냥 생활이 되고 포근하게 느껴진다.
아내 김도연 씨는 당시에 독특한 공간에서 겨울을 나기도 했다. 판소리를 연습하기 위해 별도의 공간이 필요해서 성인 한 명이 앉거나 누울 수 있는 정도의 공간을 텐트 모양으로 만들었다. 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부직포를 여러 개 감싸고 서로 기대서 움집처럼 만든 공간이다. 그런데 이 곳에 촛불을 하나만 켜도 한겨울에도 따스하다고 했다. 소리를 하면서 몸에서 열이 나오고 촛불의 열과 합쳐져서다.
최근에는 선애학교 교장 일 때문에 영암으로, 보은으로 다니기도 해서, 처음 시작할 때처럼 온 가족이 엄격하게 겨울을 보내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여전히 어디에서든 침낭 안에서 탕파를 안고 겨울을 지낸다.
“보통 시골에서는 9월부터 이듬해 5월 말까지 불을 때고 장마철에도 불을 때는데, 우리는 불 때는 기간을 1년에 두 달 정도로 줄였어요.”
김재형 씨는 체온을 유지해 겨울나기를 한 이후 삶이 바뀌었다고 했다. 트럭을 작은 승용차로 바꿨고, 나무하고 불 때는 데 시간을 들이지 않게 되니 생활의 얽매임에서 해방되었다.
“불 때기는 나에게 여성들의 밥하기와 비슷한 노동이었어요. 겨울에 매일매일 해야 하는 일이죠. 그런데 침낭과 텐트를 이용하면서 시간이 늘어나니 공부하고 명상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이런 삶에 관심을 두는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었고 그러다가 선애학교 교장이라는 역할도 하게 되었죠.”
하지만 그는 이런 삶을 누군가에게 강요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생각하면 ‘내 몸을 학대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서다. 그냥 자기가 하는 거지. 남에게 함께하자고 설득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원래 겨울에는 추운 게 당연해요. 조금 춥게 지내는 버릇을 들이면 우리가 느끼는 즐거움의 폭이 다를 거예요.”
마라톤을 하면 힘들지만 어느 정도 하다보면 즐거운 것처럼 추위도 어느 정도 느끼다 보면 작은 따스함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다는 말이다.
“더위도 잘 느끼면 기분이 좋고 추위도 잘 느끼면 기분이 좋아요. 추위와 더위를 무서워하면서 피하려고만 하면 몸의 감각이 없어지죠. 더우면 더운 대로 좋고, 추우면 추운 대로 좋아요. 더우면 안 된다거나 추우면 안 된다거나 하는 것도 내 감각의 범위를 한정해 놓는 감각의 감옥일 수있어요.”
문득 김재형 씨가 몇 년 전에 《살림이야기》에 썼던 구절이 떠올랐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겨울을 넘기는 다양한 방법을 찾아왔다. 그러나 언제나 변하지 않았던 관점은 겨울을 ‘겨우겨우’ 살아남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걸 잊지 말자고 ‘겨울’이라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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