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호 2014년 9월호 [특집] 특집-쌀 개방

[ 생산자와 소비자가 하나 되어 행동할 때 ]

경쟁력 없다고 논을 몽땅 갈아엎을 것인가?

글 변현단, 안인숙

정부의 ‘쌀 시장 전면 개방’ 발표는 먹을거리 종속을 받아들이는 굴욕적인 주권 포기 선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생산자와 소비자, 즉 쌀에 관한 당사자들과 거쳐야 할 절차를 무시한 폭력적인 처사이다. 식량자급률을 높이기 위한 아무런 방안 없이 개방의 문만 열어 제치는 불성실한 태도 역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농부들이 벼농사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도록


글. 변현단



수익 없는 벼농사, 그나마 힘에 부치면 제일 먼저 포기


나는 약 4천300㎡(6마지기, 1천300평)의 벼농사를 짓고 있다. 내가 사는 마을에서 벼농사를 제일 많이 짓는 사람이 약 1만3천220㎡(20마지기), 가장 적게 짓는 할머니는 1천320㎡(2마지기)를 짓는다. 나이 드신 분들은 대부분 벼농사를 짓고 있지만, 귀농한 사람들이 벼농사를 짓는 경우는 드물다.
‘2015년 1월 쌀 시장 전면 개방’이라는 정부 발표에 농민들이 시위를 한다는 소식을 뉴스로 접하지만, 내가 사는 마을과 전남 곡성 읍내는 조용하기만 하다. 농번기인지라 농사에 여념이 없기도 하지만, 쌀 시장 개방이 자신들의 농사나 수입에 그리 큰 영향을 미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벼농사가 수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농가는 별로 없기 때문이다.
관행농이든 친환경이든 나락 80kg 한 가마니 수매 가격은 17~20만 원이다. 화학비료·제초제와 농약을 사용하는 관행농사를 짓는 경우 660㎡(1마지기, 200평)에 많으면 4~5가마, 경지정리가 잘 된 논에서 무농약 무제초제로 짓는 경우 평균 3가마를 거둔다. 내 경우 생산량은 18가마를 밑돈다. 수확량 일부는 직거래로 판매하는데 쌀 한 가마니에 27만 원 정도, 다 판다고 가정하면 약 459만 원이 총수입이다. 추수까지 드는 기계값 100만 원에 정미 비용, 상토값을 포함한 모판 비용, 나락을 말리는 과정에서 품앗이해 주는 사람들과 먹고마시는 비용, 논 관리하는 수고비까지 합친다면 ‘자급을 위한 농사’로서의 의미 이상은 없다.
따라서 쌀로 농가수익을 얻으려면 최소 20마지기 이상을 지어야 하며, 직접 기계를 소유하고 다룰 줄 알아야 한다. 그래봐야 이것저것 다 빼면 수익은 한 해 1천만 원에 미치지 못하니, 자식들과 나눠 먹는 정도로만 기능한다. 그나마 힘에 부치면 벼농사를 제일 먼저 포기한다. 지난해 우리 마을의 칠순 할아버지는 논의 절반을 토란농사에 할애했다. 특히 곡성의 논들은 토란 또는 블루베리 재배 비닐하우스로 급속하게 바뀌어 가고 있다.




이미 벼농사로 많은 수입을 얻는 농가는 별로 없다. 그나마 힘에 부치면 벼농사를 제일 먼저 포기하는 게 현실.


“블루베리, 매실만 먹고살 수는 없는 일”


한국에서 자급률이 제일 높은 쌀이 국민의 절대적인 식량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반도체 팔아 쌀 사먹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라는 생각을 가진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 같은 개방 압력에 버티거나 대비책을 준비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당연히 회의적이다. 쌀 시장 개방 원년인 우루과이라운드(UR)가 있던 해가 김대중 정부 시절이었고, 노무현 정부 때 한-미 FTA에 굴종했는데, 하물며 지금 정부에게 무엇을 바랄 수 있을까?
‘밥’을 가장 주요한 삶의 원천으로 살아온 우리의 정서도 이제는 옛날 말이 되고, 농민들도 정부의 규모화 정책과 보조금에 눈이 흐려져 놀아나다 빚쟁이가 되어 버리기 일쑤다. 그렇게 당하고도 올해도 양파를 뒤엎고, 매실나무를 베어버리는 일이 반복해서 벌어진다. 지자체는 부농 육성이라는 정부시책에 부응해 규모화, 기업화, 공장화를 목표로 ‘소득작물’을 선정하여 농가에 권유하고 집중 지원한다. 그러면 전국적으로 소득작물 열병을 앓기 시작하여, 산을 깎고 논을 뒤엎어 너도나도 재배하게 된다. 블루베리, 고사리, 매실, 곶감용 대봉감 등. “사람들이 고사리나 블루베리, 매실, 곶감만 먹고살 수는 없는 일이다.” “공급량이 많아지고 인건비는 올라가므로 결국 몇 년 안에 망할 것”이라고 일침을 놓지만 여전히 농민들은 지자체의 지원정책으로만 귀와 눈을 가져간다. 이것이 한국 농업이 산업자본시장에 편입되어 유행병처럼 망하고 흥하는 현실이다. 민선 지자체 장은 임기 동안 실적을 내는 데 목매달기 때문에 이런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소비자들은 “무슨 음식이 어디에 좋다, 나쁘다” 하는 미디어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다양한 물품을 언제나 구매할 수 있기를 원한다. 그래서 농민들은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위해 규모를 늘리고, 비닐하우스에 의존해 ‘계절 없는 농사’를 지으며, 수많은 가공식품을 만든다. 쌀값 또한 소비자 중심으로 맞추어져 있는데다가 농산물 등 식재가격이 낮아 부가가치가 높은 가공식품을 생산하게 되는 이치에서, 소비자들은 쌀 시장 개방에 따른 문제점을 피부로 느끼지 못할뿐더러 어쩌면 득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정부는 부농 육성이라는 시책에 따라 소득작물을 선정하여 농가에 권유하고 집중 지원한다. 그러나 “고사리나 블루베리, 매실, 곶감만 먹고살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쌀값을 충분히 높여 농부들이 벼농사를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쌀 개방에 대한 근본적 해법이다.


근본적 해법은 쌀값 충분히 높이는 것


나는 이러한 한국 농업환경에 대한 근본적 고찰부터 하지 않으면 식량자급이든, 건강한 먹을거리 회복이든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쌀 시장 전면 개방에 높은 관세율을 적용하더라도, 수입 과정에서 수많은 방부제와 같은 화공약품이 뿌려진 수입 쌀이 결국 가난한 국민들의 주식이 된다는 점에 대해 정부는 안중에도 없다.
한국의 농업환경이 바뀌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쌀 20kg이 50만 원이라고 한다면 사 먹을 사람이 있을까? 차라리 수입 쌀을 먹겠다고 하는 사람은 없을까? 도시 생활자의 경우 통신비, 교통비, 문화비 등 생명 유지 외의 부분에 지출이 많다. 엥겔지수가 높으면 ‘가난’하고 ‘비문화적’이라고 하여 의류, 소품, 전자기기 등을 더 소비한다. 명실상부한 ‘소비자’로서 기업에 종속된 삶을 사는 한편, 싼 가격으로 생명 유지를 하는 대신 오히려 병원비 지출은 늘어났다.
따라서 도시인들이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식생활 비용이 높아야 할 수밖에 없으며, 그에 따라 농부들은 정성을 다해 농사짓게 됨으로써 이른바 ‘도농상생’이 가능하게 된다. 도시 생활자들이 자신들의 먹을거리를 가능한 싼 가격으로 들여오고자 한다면 농촌에서 쌀을 비롯한 건강한 먹을거리 생산자들은 줄어들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가난한 도시 생활자들은 수입 농산물에 의존하게 될 것이며, 의료비(보험료를 비롯한 간접비용으로 들어가는 돈)는 늘어날 것이다.
정부가 쌀 개방에 고율관세를 적용하여 수입 쌀에 대한 접근성을 낮춘다 하더라도 결국 쌀농사 포기가 늘어나 자급률이 떨어지고, 자연스럽게 수입 쌀에 의존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따라서 쌀 개방에 대한 근본적 해법은 쌀값을 충분히 높임으로써 농부들이 벼농사를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농부들의 농사방식이 건강하게 변화하고, 소비자들의 엥겔지수 상승으로 다른 항목의 소비가 줄어 우리 땅이 건강하고 생태적으로 바뀌는 것은 덤이다.


↘ 변현단 님은 토종종자모임 씨드림 운영위원이며, 곡성에서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자립적인 삶과 죽음을 화두로 생활에서 얻은 지혜로 《연두》, 《소박한 미래》, 《자립인간》 등의 책을 냈습니다.




돈이 있어도 쌀 못 사는 시대가 온다


글. 안인숙


쌀은 자립·자급·주권과 동의어



지난 7월 18일 농림축산식품부에서 놀라운 발표를 했다. 쌀을 대놓고 수입하겠다고 한다. 해마다 늘어나는 쌀 의무도입물량과 이를 처리하는 비용이 증가하여 시장개방을 피할 수 없다는 게 이유다. 수입 쌀에 400% 이상의 고율관세를 붙이는 조건으로 쌀 시장을 개방하겠다는 양허안을 오는 9월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출할 것이라 한다. 그리고 2015년 1월 1일부터 쌀 시장을 전면 개방하겠다고 한다.
WTO가 출범한 것은 1995년. 이후 세계 각국은 농산물 시장을 상호 개방하는 시대를 맞이하였다. 개방 초기, 쌀은 한국의 식량안보와 식량주권에 중요한 품목이므로 개방을 유예 받는 대신 일정량의 외국 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하게 되었다. 20년 동안 쌀 생산 기반을 지키려고 온 국민이 합심하여 전면적인 쌀 시장 개방만은 막아왔는데, 이게 웬일인가?
나에게 쌀은 무엇인가? 여름 초입에 사방으로 줄맞춰 푸르게 심어진 모, 가을 넓은 들판에 고개 숙인 벼가 내 안에 있다. 수로를 따라 졸졸졸 흐르는 물과 개구리 울음 소리가 있고, 여름철 폭우도 거뜬히 가두고 거센 태풍에 벼가 쓰러져 누워도 우리에게 쌀을 남겨주는, 농부가 필사적으로 지켜내는 논이 있다.
우리에게 쌀은 무엇인가? 자립·자급·주권과 동의어이다. 한국의 식량자급률이 그나마 23%를 유지하는 것은 쌀 때문인데, 쌀시장을 전면 개방하는 것은 자급과 자립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막대한 국가보조금, 싼 땅값과 인건비를 무기로 한국에 쌀을 수출할 수 있는 미국과 중국 쌀을 고율관세로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관세화를 한다는 것은 이미 쌀의 특별한 지위를 버리겠다는 것이고, 관세가 그렇게 높게 유지될 리 만무하다. 어차피 우리가 필요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팔고 싶으면 파는 강대국의 힘에 굴복한 것이니까. 자립은 경제적 이익보다 우선하는 가치이다. 경제적 이익이 나지 않는 많은 것-자연과 어우러지기, 자연에서 위로받기, 자립하여 자존감 갖기, 독립하여 자유 맛보기 등-이 우리 삶을 채우고 있고, 그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



소비자는 먹을거리 기본권 확보를 위해 더 또렷한 목소리로 외쳐야 한다.


멕시코·이집트·필리핀이 준 교훈을 잊지 말자


우리 사회에서 쌀은 무엇인가? 기본권과 자유의 동의어다. 국민이라면 누구나 안전한 먹을거리를 먹고 힘내서 일할 수 있는 권리, 농사지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권리가 있고 이것이 ‘먹을거리 기본권’이다. 국민이 기본권을 누리지 못할 때, 사회에서 소외되고 그로 인해 자유롭지 못하다. 외국의 눈치 안 보고 스스로 먹을거리를 해결하는 힘을 가짐으로써 국가는 국민을 자유롭게 한다.
세계는 지금 자유무역협정(FTA)이라는 결코 자유롭지 않은 시장 개방 논리로 가득 차 있다. 농업 부문에 막대한 피해가 있을 것을 예상하면서도 개방을 강행하는 것은, 경제성장에 대한 뒤틀린 인식 때문이다. 경제가 성장하면 모두가 풍요로울 것인가에 대해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성장의 혜택은 모두에게 돌아가지 않고, 경제적 불평등은 이전보다 훨씬 심해졌다.
농림축산식품부의 계산은 맞아떨어지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높은 관세율을 유지하여 수입 쌀 소비를 꺼리게 하겠다고? 믿는 것은 오로지 높은 관세! 하지만 높은 관세를 어찌 계속 유지할지는 대책이 없다. 또한 관세화를 하더라도 의무도입물량은 그대로 수입해야 하는 상황이라 재고부담 비용은 그대로 들어갈 것이다. 비용은 줄이지 못한 채 수입 쌀이 늘어나고, 현재 89%인 쌀 자급률은 나락에 떨어질 것이 뻔하다.






쌀농사가 1년짜리인가? 주곡 생산을 포기한 채 수출을 위한 플랜테이션 농업과 관광 산업에 집중하다 식량 예속상태가 되어 고통받는 상황을 멕시코, 아이티 등이 이미 보여주었다. 이상기후, 경작지 감소, 바이오연료 증가, 육식 증가로 인해 곡물 생산은 줄고 수요는 늘었다. 바야흐로 ‘신기아시대(A New Era Of Hunger)’에 들어섰다. 돈이 있어도 쌀을 살 수 없는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2008년 밀값 폭등으로 나타난 이집트의 시위대는 “우리는 자유가 필요하다. 우리 삶이 힘들어지고 있다”고 외쳤다. 식량은 생존이며 자유를 의미한다. 3모작이 가능한 필리핀 역시 경제개발 논리에 따라 논을 메워 골프장을 짓고 관광산업에 주력하면서 농업을 포기하였고, 그 결과 국제 쌀값 인상과 거래량 급감에 따라 폭동이 일어난 경험이 있다.




지난 8월 20일에는 여성농민대회(왼쪽)가, 8월 12일에는 ‘쌀 전면 개방 반대와 식량주권 실현을 위한 여성행동’(오른쪽)이 있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하나 되어 국민과 합의하지 않은 일방적인 쌀 전면 개방 방침을 즉각 철회할 것을 정부에 요구했다.


‘쌀 시장 전면 개방 반대’를 외치자


정부의 논리에 속아 넘어가는 사람,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쌀과 논을, 농업과 농촌 공동체를 정부와는 다르게 보아야 한다. 쌀은 한국의 풍토에 가장 적합한 자연의탁 생산물이고, 논은 환경을 지키는 파수꾼이다. 자급은 불굴의 의지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풀뿌리가 가장 우선시하는 가치이다. 그리고 농사짓는 농촌과 도시가 상생해야 하지 않을까? 경쟁력 없다고 논을 몽땅 갈아엎고 공장을 건설할 것인가? 참으로 비통한 일이다.
정부가 쌀 시장 개방과 관련하여 국민적 합의를 거치고, 대책을 마련하여 협상에 임하라고 촉구해야 한다. 이미 전국의 농민회를 중심으로 식량주권을 지키자는 목소리가 모아지고 있다. 소비자는 먹을거리 기본권 확보를 위해 더 또렷한 목소리로 쌀 시장 전면 개방 반대를 외쳐야 한다. ‘식량주권과 먹거리 안전을 위한 범국민 운동본부‘가 지난 4월 출범하였고, 8월 20일에는 쌀 시장 개방에 반대하는 여성농민대회도 열렸다.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하나가 되어 범국민적인 저항을 해야 할 때이다.
1987년 6월항쟁 때 나는 광화문으로 나가지 않았다. 1년 내내 회색 옷을 입고 살던 시절, 사회 변화를 가져온 위대한 행동에 함께하지 않았다. 차가운 겨울을 몰아내는 데 나서지 않았지만, 그들이 불러낸 봄을 누릴 수는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멀리서 지켜보고 있을 처지가 아니다. 기성세대가 아닌가? 내가 하지 않은 일에도 책임이 있고,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는 더군다나 책임이 있다. 한순간 침몰하는 배를 보았다. 공인된 권력은 도움을 주지 않았고, 선량한 개인은 도움을 줄 수 없었다. 쌀 시장 개방이 쌀 생산량 감소에 그치지 않고, 국민을 사지로 몰아넣을 또 다른 세월호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당장 이 미친 짓을 중단시키는 일이다.



↘ 안인숙 님은 독서와 회식을 좋아하는 한살림 조합원입니다. 고양파주행복중심생협 이사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행복중심생협연합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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