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호 2014년 9월호 [특집] 특집-쌀 개방

[ 먼저 현상유지를 위해 협상에 나서야 ]

‘2015년 쌀 시장 자동 개방’은 거짓

정리 이선미 편집부 \ 사진 문재형


정부는 지난 7월 18일 기습적으로 쌀 관세화를 발표했다. 정부 방침대로라면 앞으로 누구든 소정의 관세만 내면 자유롭게 쌀을 수입할 수 있게 돼, 그야말로 쌀 시장이 전면 개방되는 것. 한국인의 주식일 뿐 아니라 한국 농업과 식량주권의 상징인 쌀이 “바람 앞의 등불” 처지가 된 지금, 관세화가 아닌 ‘협상’ 준비에 온 힘을 쏟아야 할 때다.


지난 8월 12일 한살림은 정부의 쌀 관세화 발표에 대한 문제점을 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지 토론하기 위해 ‘쌀 개방 문제,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라는 주제로 정책간담회를 열었다. 한살림 생산자회원, 실무자, 조합원 그리고 장경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이 함께했다. “기본적으로 식량이 무역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의문”이라며 “식량 공급방법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는 이상국 한살림연합 상임대표의 말로 논의가 시작됐다.


문제 1. 사회적 합의 없이 독단적 발표
정부는 제대로 된 대화와 소통 없이, 처음부터 관세화 하나만 이야기하고 그 이외의 내용은 무시했다. 일본의 경우 정부·국회·농민이 3자협의체를 만들어 의견을 조율한 후 맨 마지막에 정부가 관세화를 발표함에 따라 각자 100% 만족하지는 못하더라도 사회적 갈등은 크게 없었다. 필리핀은 농민 대표가 정부 대표로 참여하여 협상과정이 농민들에게 투명하게 알려졌고, 이를 통해 다른 나라와 협상할 때 국내 농민의 지지를 업었기 때문에 ‘밀실협상’이나 ‘독주’ 등과 같은 말은 나오지 않았다.
반면 한국 정부는 농민단체에서 협의체를 만들자고 요구하는 데 대해 이미 충분히 협의했다며 거부하고 있다. 제대로 된 사회적 합의를 할 생각이 없는 것이다. 사회동향연구소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정부가 쌀 시장 전면 개방에 관해 ‘국민 동의를 충분히 구하지 않았다’는 응답이 69.8%로, ‘국민 동의를 충분히 구했다’는 응답(18.7%)보다 세 배 이상 많았다. 또한 쌀 시장 전면 개방에 대해서는 ‘식량주권의 문제이므로 전면 개방은 막아야 한다’는 의견이 56.3%로 ‘더 이상 피할 수 없으므로 전면 개방해야 한다’는 응답(31.5%)보다 많았다.
이에 조완형 한살림연합 전무는 “쌀 개방에 따른 이해당사자, 특히 농민들과 합의를 거치지 않고 쌀 개방을 발표한 정부는 정상적이지 않다”고 말했고, 장경호 부소장은 “국민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설정하고 진행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지난 8월 12일 한살림에서 ‘쌀 개방 문제,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라는 주제로 정책간담회가 열렸다. 조완형 한살림 전무는 “정부는 이해당사자, 특히 농민들과 합의를 거치지 않고 쌀 개방을 발표했다”면서, “개방 수준을 현상유지하도록 강하게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 2. 현상유지 권리 스스로 포기
우루과이라운드(UR) 농업협정문에는 모든 회원국의 시장 개방 의무 이행 기간이 명시돼 있다. 이에 따라 선진국은 6년간(1995~2000년), 개발도상국은 10년간(1995~2004년) 관세 및 보조금 감축 등의 의무를 이행해 왔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현상유지해 오고 있다. 즉, 선진국은 2000년의 개방 수준을 2014년 현재까지 14년간, 개발도상국은 2004년부터 현재까지 10년간 추가적이고 새로운 개방 조치 없이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UR 당시 개발도상국 지위를 받은 한국은 최초 10년간(1995~2004년) 일정량의 쌀을 의무 수입하는 의무수입물량을 해마다 늘려왔고, 이후 10년간(2005~2014년) 이를 두 배로 늘리는 의무를 추가로 이행했다. 즉, 다른 회원국과 달리 2005년에 추가로 시장 개방 의무를 수행했고, 내년부터 관세화한다면 또 다시 추가로 시장 개방 조치를 하는 셈이다.
이에 장경호 부소장은 “모든 회원국이 동등하게 의무를 수행해야 하는 만큼 현상유지는 형평성의 문제”라면서, “정부가 먼저관세화를 발표함으로써 현상유지 가능성 자체를 말 한마디 못 꺼내 보고 포기해야만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른 회원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정당한 권리인 현상유지를 정부 스스로 포기하는 셈이다.
특히 정부는 10년 전에 이미 쌀 개방에 대해 다시 협상해야 한다는 점이 예정되어 있었는데도 세계무역기구(WTO)에 현상유지가 가능한지 한번 물어보지도 않았다. 지난해 인도는 WTO 농업협정문의 보조금 규정을 위반했지만, 오히려 이에 대해 다른 모든 회원국들이 문제 삼지 않는다는
합의를 이끌어 냈고 한국 역시 찬성의견을 표시했다. 그런데 이렇게 보조금 규정 위반사항조차 합의되는 상황에서 한국은 정당한 현상유지 권리조차 제기하지 못했다.
한편, 한국은 UR 농업협정문에 따른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회원국들과의 형평성을 근거로 현상유지를 주장하는 것은 실현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있다. 즉, 지금까지 ‘관세화’라는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년부터는 이를 이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해마다 의무수입물량을 수입해온 것은 UR 농업협정문에 따른 의무 이행이 아니라는 뜻이 된다.
한국은 1995년 약 5만1천 t에서 시작하여 2004년에는 약 20만4천 t의 쌀을 의무수입물량으로 수입해 왔고, 이후 해마다 2만 t씩 늘려 2014년 현재 약 40만9천 t을 수입했다. 이에 대해 장경호 부소장은 “그렇다면 협정에 따른 의무도 아닌 의무 수입은 왜 한 건가”라며 “한국 정부는 의무를 수행해 오고도 안 했다며 자기 발목을 자기가 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관세화를 하더라도 해마다 의무 수입은 계속해야 한다.


문제 3. 유력한 협상카드 ‘국가별 쿼터’ 스스로 폐기
정부가 말하는 대로 쌀 관세화를 하더라도 협상은 해야 한다. 일본은 2년간, 대만은 5년간 협상하며 관세화 개방을 최종 결정했다. 한국도 마찬가지로, 현상유지를 하든 관세화를 하든 협상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협상에 쓸 수 있는 유력한 카드인 ‘국가별 쿼터’를 버리는 모양새다. 국가별 쿼터란 의무수입물량의 절반가량을 특정 국가로부터 수입하도록 정해놓은 것으로, 현재 약 40만9천 t에 이르는 의무수입물량을 주요 이해당사국에 배분하는 방법을 협상카드로 쓸 수 있다. 실제로 필리핀의 쌀 협상 과정을 보면 협상 상대국의 핵심적인 요구사항은 국가별 쿼터 확보였다. 쌀 수출국의 입장에서는 의무수입물량의 총량보다는 자국에 얼마만큼의 물량을 할애해 주는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리핀은 국가별 쿼터를 적절하게 활용하여 협상을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낼 수 있었다.
반면 한국은 관세화로 쌀 개방을 할 경우 국가별 쿼터가 사라지는데도 이를 고려하지 않고 먼저 관세화를 발표함으로써 유력한 협상카드를 스스로 용도 폐기해 버렸다. “농민들의 말은 ‘정부가 협상하기도 전에 모든 것을 다 내려놓았다’는 것”으로, “정부가 먼저 관세화로 쌀 개방하겠다고 발표해 버리면 다른 것은 할 수 없고 그거 하나 지키려고 협상장에 나가게 된다”며 “이것은 협상이 아니고 처음부터 항복한 것”이라는 게 장경호 부소장의 말이다.



1인당 쌀 소비량은 1996년 102.4kg에서 2013년 67.2kg으로 해마다 감소해 왔다. 쌀 전면 개방으로부터 우리 쌀을 지키려면 쌀 이용률을 높이는 일 또한 필요하다.


문제 4. 고율관세 유지 의지 불투명
위 내용들을 보면 현상유지가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남은 건 높은 관세를 매겨 관세화 개방하는 것이다. WTO에 통보하는 관세는 일단 우리가 정하기 때문에, 정부의 말대로 높은 관세를 매기는 것 자체는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문제는 “높은 관세가 도하개발아젠다 협상 타결 때까지 장기간 유지”되어야 하고 “어떠한 자유무역협정(FTA)이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든지 쌀은 예외로 뽑아내야 하는 것”
이다. 한국인의 주식인 밥쌀용 쌀을 한국에 수출하는 나라는 미국과 중국뿐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따라서 쌀 관세는 실질적으로 미국산 및 중국산 쌀에 부과되므로, 실제 수입되는 쌀에 WTO 농업협정문에 따라 정한 높은 관세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향후 미국과 중국 등과의 모든 협정에서 반드시 쌀이 제외되어야 한다.
특히 관세화가 되면 미국의 국가별 쿼터가 없어지게 되고, 미국은 이를 어떤 식으로든 보전하기 위해 조치할 것이다. 이에 대한 선택지 중 하나는 비공식적으로 일정량의 쌀을 계속 수입하는 것인데, 이는 중국을 비롯해 다른 나라의 반발이나 무역분쟁을 불러올 수 있다. 다른 하나는 공식적으로 미국 쌀에 대해서만 관세를 낮추는 것으로, 이 경우 중국 등 다른 나라에서도 관세 인하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장경호 부소장은 “한국 정부가 ‘쌀에 대한 관세 인하를 요구하면 TPP에 가입하지 않겠다’는 등으로 명백하게 약속한다면 정부를 신뢰할 수 있겠지만, 오히려 ‘TPP에 가입하는 데 쌀이 걸림돌이다’라고 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본다. 그래서 쌀 관세율을 정부가 자의적으로 바꾸지 못하게 국회 동의를 거치게끔 하는 등 법제화를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거부하고 있다. 말로는 믿으라고 하지만 정작 믿음을 주는 행동은 하지 않는 셈이다.


문제 5. 관련 정보 자의적으로 해석
정부는 관세화로 쌀 개방을 한 일본과 대만을 예로 들며 관세화 발표를 정당화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과 대만이 관세화할 당시에는 FTA가 없었기 때문에 고율관세를 매겨 놓고 지속할 수 있었다. 관세를 높게 정해도 FTA, TPP 등과 연계되어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큰 지금과는 다른 환경이었던 것이다. 일본이 FTA를 체결하지 못한 것도 쌀 등 농산물 수입을 늘려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정부는 관세화에 불리한 내용은 감추고 유리한 내용만 뽑아서 홍보하고 있다. “한 나라의 정부가 특정 편에 서서 농민 등 국민을 상대로 협의가 아닌 협상을 하는 것 같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일부 언론 보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 예가 WTO 협정문에도 없는 ‘2015년 쌀 시장 자동 개방’이라는 내용으로, 한국은 올해 9월까지 쌀 관세화를 통보해야 하는 의무 또한 없는데도 마치 통보 시한이 정해져 있고 이를 어기면 국제사회에서 큰 불이익을 받을 것처럼 잘못된 정보를 전하고 있다.



정책간담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쌀 개방에 대한 언론 보도 내용과 오늘 내용이 많이 다르다”고 말했다. 제대로 된 정보가 일반 시민들에게 알려지지 않고 있어,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일이 시급하다.


“밥솥을 들고 거리로 나가자”
이렇게 많은 문제점이 있는데도 정부가 쌀 관세화를 빨리 처리해 버리려는 이유에 대해 장경호 부소장은 “정부는 이번 기회에 쌀을 버리고 싶어 하는 것 같다”고 답했다. “국경을 없애고 쌀부터 구조조정하면 기업농 등은 잘되고 가족농이나 소농은 농사를 포기하게 되어, 한국 농업 전체의 구조조정이 빨라질 것으로 생각”하는 게 아닐까 짐작한다.
농민들의 힘만으로 이러한 상황을 바꾸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많은 농민들이 나이가 많고, 20년 동안 쌀 개방에 대항하느라 지치기도 했다. 정부가 알아서 잘 하겠거니 하고 포기한 농민도 상당수다. 농민들이 아무리 쌀 관세화 반대 집회를 해도 정치권은 눈 하나 깜짝 안 한다. “표만 좋아하고 쌀은 쌀쌀맞게 대하는” 정치인들의 행태가 야속하다.
결국 쌀을 먹는 사람들이 나서야 한다. 생협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가 중재역할을
하여 정부의 독주를 막고, 연대를 통해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게 가장 시급한 일이다. 이를 위해 조완형 전무는 “쌀 개방이 소비자에게 절실한 문제라는 사실이 공감을 얻어야 한다”며 “단순히 생협 조합원 수를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쌀 이용률을 최대한 높이는 등의 활동 또한 필요하다”고 말했다. “밥솥을 들고 거리로 나가 쌀 개방 반대 시위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은 실제로 쌀을 소비하는 사람들의 역할을 강조한 것이다. 정부가 독단적으로 쌀 개
방을 추진하지 못하게끔 관련 내용에 대해 국회의 사전 동의를 얻도록 법제화를 요구하고 정부·국회·농민에 시민사회를 포함한 4자협의체를 구성할 수도 있다. 이렇게 협의체가 구성된다면 협의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농민들은 그것을 거부하지 않을 것이다.



쌀 80kg 가마당 생산비는 1996년 68,030원에서 2011년 98,031원으로 45% 정도 늘어난 데 비해, 수매가격은 131,770원에서 166,068원으로 25% 정도 느는 데 그쳤다. 특히 2001년 이후 수매가격이 오히려 깎이는 등 사실상 동결됨에 따라 이미 농민들이 벼농사를 지속하기 힘든 상황에서 쌀 전면 개방은 옳지 않다.


농자재 가격이 크게 오르는 동안, 한국의 쌀값은 15년간 거의 동결돼 왔다. 이미 농민들이 농업을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쌀 개방 후 10년이 지나면 농민이 얼마나 남아 있을지 의문”이다. 또한 논농사가 줄어들면 환경이 파괴되고 홍수가 늘어날 것이다. 이른바 쌀의 ‘다원적 기능’ 또는 ‘공익적 기능’이 줄어드는 것이다. 좋은 환경을 위해 논 넓이를 늘리고 싶어도 쌀이 소비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장경호 부소장은 “정부는 특정 방침을 정해놓지 말고 먼저 모든 가능성을 갖고 협상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쌀은 한국 농업 전체를 대표한다. 우리 모두는 쌀 개방의 ‘당사자’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생명밥상 주권이 무너지면 우리 모두의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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