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호 2014년 8월호 살림,살림

[ 모심의 눈 ]

모든 삶에는 저마다 다른 때가 있다

글 윤선주


사진 Leon Brooks

 

우리 집에는 5년 넘게 키우는 한련화가 있다. 물론 한해살이풀인 한련화가 그토록 장수하는 게 아니라 한 뼘 남짓한 화분에서 계속 맺은 씨앗을 다시 심어 키운다. 작은 연잎처럼 생긴 동그란 잎사귀와 연달아 피는 화려한 노랑, 주황, 자주 꽃을 보면 집집마다 장독대가 있던 어린 시절 생각이 난다. 덕분에 한겨울에도 환한 등불이 켜진 듯한 호사를 누린다.

 

첫 해에 혹시 하는 마음으로 꽃송이의 암술과 수술을 손가락으로 살살 비벼 주었는데 잎사귀와 줄기가 누렇게 변하는 추석 무렵에 제법 통통한 씨앗이 많이 여물었다. 며칠 잘 말렸다가 빈 화분에 꾹꾹 눌러두었다. 어쩌다 상해서 버린 방울토마토에서 싹이 나 2년 넘게 싱싱한 토마토를 겨울에도 따 먹은 일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 겨울 유난히 해가 따스한 날 베란다에 나가 보니 팥알만 한 작은 잎이 여기저기 나오지 않는가! 그렇게 싹이 나오더니 설 무렵 어찌나 많은 꽃을 피워 내는지 나중에는 음식에 장식으로 놓거나 아예 먹기도 했다.

 

이사할 때도 그냥 화분 한구석에 꾹 눌러 갖고 오면 언제나 잎을 내고 꽃을 피운다. 어떤 때는 저 혼자 떨어진 싹이 나기도 하고 이제 더는 나올 싹이 없겠지 생각할 즈음 “저 여기 있어요.”하고 손들고 나오는 어린아이처럼 작은 잎을 내밀기도 한다. 그 차이가 커서 일찍 나온 놈이 꽃봉오리를 낼 때 싹이 나기도 하고, ‘얘는 꽃이 안 피려나’하고 포기할 즈음에 작은 참깨 알갱이만 한 봉오리를 내밀기도 한다.

 

그런 일을 거듭 겪으면서 한련화와 나의 시간, 그들끼리의 시간표도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한날 심은 한련화라도 각자 씨앗의 상태나 주변 환경에 따라 언제 잎을 낼지를 스스로 결정한다. 제 시간을 선택해 이 세상에 나와서 그런지 일단 잎을 틔우면 열심히 산다. 내가 위로가 필요할 때면 그들이 귀찮을 정도로 들여다보고 멀쩡하게 잘 자라는데 화분갈이도 하고 이리저리 옮기기도 하면서, 내가 바쁘면 제대로 물도 주지 못할 때가 있다. 아차, 하고 내다보면 역시 한두 개의 화분은 죽은 것처럼 보일 때도 있는데 흠뻑 물을 주면 다시 싱싱한 모습을 보이곤 한다. 그럴 때는 “아휴, 죽을 뻔 했네!”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도 했다. 그리고 또 하나! 모든 식물은 우리 생각과 다른 모습일지라도 그들이 정한 시간에 꽃을 피운다. 작은 화분에 한련화를 키우면서 이따금 ‘철없이’ 꽃을 피우는 개나리나 벚나무를 이해하게 되었다.

 

지난 7월 초에 제라늄 밑에 더부살이하듯 잎을 틔운 한련화를 화분에 따로 심으려고 꽃삽으로 떠내려다 그만 줄기를 싹둑 자르고 말았다. 미안하고 애달파 가슴이 아릴 지경이었지만 잎사귀 세 장 달린 새 싹을 화분 위에 그냥 올려 두었다. 그런데 며칠 후 다시 보니 잘린 부분에서 가느다란 뿌리가 나온 것이 아닌가. 사투를 벌였을 용기가 고마워 얼른 화분에 심었더니 그 후에 새잎을 냈다. 안부가 궁금해 들여다볼 때마다 조금만 더 힘을 내주기를 부탁한다.

 

작은 화분을 보며 여러 가지를 생각한다. 모든 삶은 자기 나름의 시간이 있고 겉으로 어찌 보이든 잎 피고 열매 맺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것. 그래서 결국은 일생의 어느 때 찬란하게 꽃 피는 날이 반드시 있다는 것. 어쩌면 우리 집 한련화처럼 일 년 내내 어느 부분에서든 눈부신 시간을 가질지도 모른다. 너는 왜 그리 더디냐고, 무슨 꽃이 이쁘지도 않냐고, 색은 왜 그 모양이냐고 내 눈으로 판단하지 않으면 모든 식물은 힘껏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열매 맺는다. 사람도 그렇다.



↘ 윤선주 님은 도시와 농촌이 생명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믿음으로 초창기부터 한살림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지금은 한살림연합 이사로 일하며 경험과 생각을 이웃과 나누고 있습니다.


http://www.salimstory.net/renewal/sub/view.php?post_id=10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