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호 2014년 8월호 살림,살림

[ 교육살림 ]

화내고 욕하고 싸우며 쑥쑥

글 김명선·김수현·이미란



세끼 밥을 챙겨 먹듯 아이들이 날마다 놀 수 있도록, 엄마들이 놀이터이모가 되어 마련한 방과후 놀이터 ‘와글와글놀이터’. 놀고 싶은 아이는 누구나 함께 노는 이곳에서, 싸움이 벌어졌다. 4학년 남자아이가 긴 줄을 넘고 있는데 6학년 형이 줄을 뺏어 휘두르며 훼방을 놓았다는 것이다.


욕하고 훼방 놓던 아이, 고무줄을 잡아주다


“나 6학년이야! 근데 욕하고 막말하냐? 사과하라고!”
“형이 형답게 굴어야지. 형부터 방해했잖아. 사과 못 해!”
화해할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먼저 둘을 떼 놓고 형한테 말했다. “오늘은 저 동생 화가 안 풀릴 거 같아. 안 풀리는 마음은 놀면서 푸는 거 어때? 다음 놀이터에 나올래?”
형은 그러마 하고 갔다. 그 뒤 참새가 방앗간 들르듯 놀이터에 들렀다. 그런데 나타났다 하면 놀이판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놀이마다 헤집고 훼방을 놓아 형이 떴다 하면 아이들은 “악!” 소리치며 피하기 일쑤였다. 입도 걸어서 열었다 하면 이모들도 듣기 민망한 말을 뱉었다. 아이들에게서 불만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루는 조용히 따로 불렀다. “여기 1학년 동생들이 많잖아? 어떤 동생이 저번에 집에 가서 네가 한 말을 따라하더란다.”
형은 여전히 상스런 말을 쓰고 놀이판도 휩쓸고 다닌다. 하지만 가만 보면 변화가 있다.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고, 거친 말이 줄었다. 훼방만 놓더니 놀이에 끼어드는 경우도 늘었다. 요즘은 최고학년 형답게 동생들을 위해 긴 줄을 돌려주고 고무줄을 잡아주는 배려도 ‘베푸신다.’
망태(가명)가 또 아이를 울렸다. 잘 노는 아이에게 헤드록을 걸고는 풀어주지 않아 애가 겁에 질려 버렸다. 이모들이 가서 풀어줬지만 아이는 울기만 하다가 집에 가더니 몇 주 동안 놀이터에 나타나지 않았다. 덩치 큰 망태가 아이들을 울린 게 이번이 몇 번째인지 모른다. 이유도 없다.
“너, 나랑 맞짱 뜰래?” 망태는 친구들하고 놀기보다 이렇게 시비를 걸고 다닌다. 얼마 전에는 친구 뒤통수를 갈겨 울린 적도 있다. 이유를 물으니 이렇게 말한다. “그냥, 화가 나서 그랬어요.” 화가 나면 험한 욕설도 튀어나온다.
놀이터 안에서 우는 아이가 계속 생겨났다. 욕을 듣고 따라 하는 아이도 있었다. 놀이터에 아이를 보내는 엄마들한테 전화도 왔다. “욕설을 배울까봐 걱정이에요. 아이가 맞을까봐 겁나요. 계속 같이 놀려야 하나요?” 결국 망태에게 최후통첩을 하기로 했다. “너랑 놀이터에서 계속 놀고 싶은데 네가 욕설을 하고 다른 아이들을 울려서 이모들이 걱정이다.” 그러자 망태가 말했다. “이모, 한번만 기회를 주세요.”
그 뒤 망태는 노력한다. 저도 모르게 나오는 욕설을 잘라서 말한다. 입에 붙은 말 습관이라 쉽게 고치기는 힘든 것 같다. 지금껏 이모들도 벅찬 아이였지만 망태가 애쓰는 모습이 고맙다.




놀이터는 아이들이 마음을 풀어 놓는 공간이다.(위) 자유롭지 못한 아이일수록 거칠다. 실컷 놀고 마음껏 하게 두면 금세 얼굴이 환해진다.(아래)


아이들의 마음을 푸는 한마디, “그랬구나”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화내고, 우기고, 이기겠다고 규칙을 어겨 싸운다. 욕하는 아이, 화가 많은 아이, 싸움을 일으키는 아이도 만난다. 욕하면 안된다, 싸우지 마라, 양보해야지 골백번 말해도 들어먹지 않는다. 말을 해도 듣지 않으니 이모들 감정도 날이 선다. 그러다가 알게 되었다. 이모들이 아이들 밖에서 본 상황은 아이가 겪은 감정과는 많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놀이터에서 아이들끼리 다툼이 일어나면 화해시키려고 애쓰기보다 서로 마음이 만나게 한다. 화나는 마음, 섭섭한 마음. 아이들은 마음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풀릴 때가 더 많았다. ‘왜’보다 ‘그랬구나’ 하며 들어주는 동무 같은 이모가 필요했다.
놀다가 보니 어른 손에 이끌려 철이(가명)가 오고 있다.
“너, 어디서 그런 욕을 써! 아무리 화가 나도 그렇게 심한 욕을 쓰면 안 되잖아!”
“놓으란 말이야, 놓으라고!” 이미 화가 많이 난 철이는 그 말이 귀에 들리지 않은 듯했고, 손을 뿌리치며 도망가려고 했다. 어른은 철이의 손을 움켜쥐고 무엇을 잘못했는지 가르치려고 했다.
이모가 달려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묻고, 우리가 잘 타이르겠다고 해서 철이를 데리고 왔다. 철이는 씩씩대며 놀이터를 벗어나 집 쪽으로 가버렸다. 무엇이 저토록 아이를 화나게 했을까. “가방은 안 갖고 가? 이모가 갖다 줄까?” 가만히 따라가며 일부러 말을 붙였다. 철이는 그냥 집으로 가 버렸다.
철이는 3학년인데 유난히 몸집이 작다. 친구들하고 노는 시간보다 혼자 빙글빙글 도는 시간이 더 많다. 이모한테는 천사같이 웃으며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한다. 무서운 이야기를 유난히 좋아해 이야기가 바닥날 때까지 조른다. 이런 아이가 놀다가 화가 나면 어른, 형, 동생을 가리지 않고 죽이겠다고 덤벼든다.
시간이 조금 지나 철이가 가방을 가지러 왔다. “너, 떡 먹을래?” 그러자 무슨 떡이냐고 관심을 보인다. 주머니에 있던 떡을 내주자 조용히 받는다. 집 앞 건널목에서 같이 기다려 준 뒤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돌아섰다. 철이는 다시 환한 얼굴로 놀이터에 나타났다. 놀이터가 좋단다.



화나 짜증은 ‘나쁜 감정’이 아니라 에너지가 높은 감정이다. 판단하기보다 들어줄 때 아이는 더 많이 변화한다.


마음껏 놀아야 마음이 열린다


놀이터에서 이모들에게 걱정을 안겨 주는 아이는 있기 마련이다. 자유를 억압당한 아이일수록 거칠다. 마음을 다치고 풀지 못한 응어리가 많은 아이일수록 화가 많다. 이런 아이들은 별일도 아닌데 화를 내는 것처럼 보인다. 예민하기 때문에 작은 일에도 바짝 반응하는 것이다. 이 아이에게 화내지 마라, 진정하라는 말은 들리지 않는다.
놀이터는 해방구여야 한다. 모든 마음이 열릴 수 있는 안정된 해방구여야 한다. 화나 분노, 질투는 ‘나쁜 감정’이 아니다. 에너지가 높은 감정일 뿐이다. 방향만 잘 잡으면 좋은 에너지가 될 수 있다. 놀이터에서 마음을 풀어 놓은 아이들은 마음의 균형을 잡아간다.


놀이터 이모의 일기
화가 난 아이는 안고 다독여줘요


눈 깜짝할 새 두 녀석이 엉켰다. 아이들을 떼어놓자 분이 덜 풀린 녀석이 상대에게 모래를 확 뿌렸다. 녀석을 안고 다독거렸다. “그래, 화가 났구나. 그래서 그랬구나.” 마음에 화 뭉치가 커다랗게 자리하고 있을 아이가 밀쳐낼 줄 알았는데 그냥 그대로 안겨있다. 마음이 이상했다. 짠하다고 할까. 늘 불만이 가득하고 거칠게 말대답해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아이였는데, 이 아이도 그냥 ‘아기’다.
수돗가로 데려와 흙을 털어줬다. 다른 아이들은 “제가 할게요.” 하는데 요 녀석은 그냥 가만히 있다. 통통한 볼살이 꽤 귀엽다. 이 작은 사건 하나로 내 마음도 아주 조금은 자란 듯 느껴지는데, 그냥 여기까지만 생각하련다. 큰 의미 안 두고 큰 기대 안 하고 “그랬구나.” 하며 아이들도 나도 하루하루 성장하는 거겠지.



와글와글놀이터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http://cafe.daum.net/nolisarang
02-902-9246



↘ 김명선·김수현·이미란 님은 참교육학부모회 동북부지회 놀이터이모들로 아이들에게 놀이는 밥이며, 생명이며, 숨통임을 놀이터에서 깨우쳤습니다. 놀이터를 벗어나서는 역사강사, 동화작가, 상담선생님으로 활동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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