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호 2014년 8월호 살림,살림

[ 땅땅거리며 살다 ]

“우리 식구들은 안 변해” 충북 보은 백록동공동체의 서태순·소병석 씨

글 이선미 편집부 \ 사진 류관희






부부를 만나기 얼마 전, 정부는 기습적으로 쌀 수입 개방을 발표했다. 정부의 졸속행정을 걱정스러워 하면서도 서태순 씨는 희망을 이야기했다.
“우리 식구들은 안 변해. 난 믿어요. 하지만 낸중에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우리 농산물을 믿고 먹었으면 좋겠어요. 당장 싸다고 먹는 게 아니라, 일반 사람들도 우리 농업을 지켜주면 좋겠어. 밀가루도 얼마나 싸게 들어왔어? 그래 갖고 지금 와서 우리밀이 어떻게 됐냐고. 농사 살릴라고 애쓰고 노력하는 소비자들이 많아서 그나마 다행이지만.”


“안 멕여 보낼 수는 없는 일이지”


서태순·소병석 부부를 만나기로 한 날. 오랜 가뭄에도 비는 올 기미 없이 무더웠다. 가는 도중 걸려온 서태순 씨의전화. 언제 오느냐는 말에 혹시나 우리 일행을 기다리느라 농사일을 공치게 돼 그런 건 아닌지 마음이 급해졌다. 아이코! 걱정이 무색하게 참 반갑게 맞아주고, 마루에 들어 앉으니 곧 김이 오르는 곤드레밥을 내온다. “곤드레밥은 식으면 맛이 없어요. 바로 한 거니까 많이 드셔.” 그래서 우리 오는 시간을 물어왔던 것. 오자마자 받는 정성이 황송하다.
표고버섯을 다져서 말려놨다가 곤드레나물과 함께 넣어 지은 밥은 구수하고 씹는 맛이 좋다. 들기름을 두른 후 맵지 않은 아삭이고추와 양파, 마늘 듬뿍 넣어 간장에 볶아낸 반찬은 입맛 돋우는 여름 별미. 집 앞에 가득한 고들빼기는 새순만 따서 매실효소로 무치고, 동치미에는 콜라비 썰어 넣어 시원한 맛을 더했다. 콩을 갈아 거르지 않은 콩국은 달큼한 게 입에 착 붙는다. “진짜 산 건 하나도 없네. 다 우리가 기른 거라 돈 들어간 것 없는 시골밥상이에요.” 밥 위에 얹은 달걀까지 직접 키우는 닭이 낳은 것이니, 더 말할 것도 없다.
갑자기 찾아와 밥을 얻어먹는 게 여간 미안하지 않은데, 서태순 씨는 오히려 별일 아니라고 손사래를 친다. 일손돕기며 생명학교로 찾아오는 사람들을 밥해 먹인 경력이 오래돼서다. “잘해주지는 못해도 우리를 찾아온 사람들을 안 멕여 보낼 수는 없는 일이지. 그 사람들이 와서 식사를 준비한 적이 있는데, 그거는 있을 수가 없는 일이더라고. 어떤 사람들은 오는 사람들한테 ‘밥 싸오라’ 시키라는데 나는 그럴 수가 없어요.”



같이 유기농사짓다가 지금은 충북 청주에 나가 사는 이웃과 대구에 살면서 여름마다 농사지으러 오는 이웃이 놀러왔다. 농사일도 도와주고 밥상도 같이 차리며 밥도 함께 먹는 모습이 영락없는 한 식구. 푸짐한 밥상을 받는 우리 일행에게 “좋겠다”고 말을 건네는데, 맞다. 참 좋았다.




돈 주고 사온 것 하나 없이 직접 기르거나 근처에서 뜯어온 것들로만 차려진 상. 밥 한 톨 남김 없이 죄다 먹을 수밖에 없을 만큼 맛있었다. 이 감동을 말로밖에 전할 수 없어 안타까울 뿐.



생명학교 아이들에게 지극정성


특히 한살림 생산지에서 농촌을 체험하고 자연과 생명의 가치를 느끼도록 마련된 생명학교로 온 아이들에게 극진하다. 언젠가 서태순 씨는 딸 친구의 아이가 아토피가 너무 심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단다. “농약 친 건지 안 친 건지 그 아이가 먹어보면 안다고 그래요. 농약 친 걸 먹으면 대번에 표가 난다고.” 그 말을 들은 후, 생명학교에 온 아이들에게 아토피 있는 사람은 손 들어보라고 했더니 반 이상이었다. 더욱 더 아이들에게 아무거나 먹이면 안 된다고 생각해 차리는 음식을 모두 다 꼼꼼히 확인한다. “아이들 생각하면 철저하게 해야 한다”는 거다.
내 아이 한 명 돌보는 것도 힘든 요즘. 계절마다 네다섯 번씩 남의 아이를, 그것도 수십 명 거두는 일이 어찌 고되지 않을까? “하나도 안 힘들고 재밌어요. 그리고 나는 무엇보다도 이 아이들이 빨리 자란다고 생각해요. 금방 우리 식구가 되는 거예요. 우리 식구가 많아야 농사짓는 것도 걱정없을 거 아니에요? 그렇게 생각하면 정말 잘 키워야지요.”
서태순 씨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더 있다. 그는 직접 낳은 3남매와 함께 소병석 씨 형의 아이들인 조카 3명까지 총 6명의 아이를 키웠다. “키울 때야 조금 힘들었지만 정말 사랑으로 키웠지, 누구 하나 미워한 적은 없어요. 얼마나 감사해요? 미우면 아이 못 키워요.” 그렇게 키운 조카들은 친자식보다 더 잘한다. 때마다 좋다는 것, 맛나다는 것은 다 사오고 농사일도 거든다. “내가 호강하지 뭐. 내가 잘하면 다 돌아온다는 것을 느껴요. 아이들도 잘 자라면 우리한테 다 돌아오는 거예요.”


미쳤다고 했던 유기농사, 천직이 되다


서태순·소병석 부부가 속한 백록동공동체는 경북 상주, 충북 옥천·보은 3개 군의 경계에 있으며 한살림 초창기부터 역사가 깊다. 그래서인지 1997년경부터 공동체에 함께한 부부가 막내였는데, 얼마 전 한살림 실무자였던 40대 사람이 귀농하면서 막내 자리를 물려줬다.
“1990년대 초반, 지금은 돌아가신 이철희 씨가 우리 마을에서 제일 먼저 유기농사를 했어요. 솔직히 나도 그 양반한테 미쳤다고 했어요. 우리는 약 한번 슬쩍 치면 깨끗한데, 잡초를 손으로 다 매고 하니까 얼마나 힘들어? 그런데 그 양반이 ‘우리가 앞으로 이렇게 해야 산다’고 했어요.”
가만히 생각하면 다 맞는 말이었지만, 미련해 보이는 유기농사를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던 당시 정부에서 친환경마을을 조성하면서 농가마다 지원금을 3천만 원씩 주기 시작했다. 마을회의를 거쳐 다들 친환경농사로 바꾸기로 했는데, 막상 닥치자 안 한다는 사람이 많았다. “우리 땅 평수가 들어가면 정부 시범마을이 될 수 있었거든요. 우리가 친환경농사를 하면 마을이 확 바뀔 수 있다는 걸 아니까, 한살림에서도 대우 많이 해줬어요. 그때는 농사짓는 것보다 지원금이 더 많았어요. 소출이 안 나오니까 지원금이 필요했지.”
주위에서 하도 권해서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수확이 없어 생활고를 겪었다. 다행히 요령이 생기고 보니 유기농사짓는 사람들이나 관행농사하는 사람들의 형편이 크게 다르지 않더란다. “오히려 농사일은 우리가 조금 더 편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밭은 비닐멀칭하면 제초가 되고, 논은 우렁이가 풀을 해결해주니까. 우리 정신만 똑바르면 돼요. 내가 쓰레기 안 버리고 오염될 짓을 하지 않으면 자연도 지키고 농사도 잘 된다고. ‘아, 유기농사가 나한테 다 좋구나’ 느껴서 이게 천직이구나 싶었죠.”
이렇게 어려운 와중에도 유기농사를 지켜온 백록동공동체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서 지정한 유기농산물 ‘스타팜’이다. 유기합성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농산물을 재배하는 농장이라는 뜻이다.




“이 논이 동네에서 제일 물 좋은 땅인데, 몇 년 전 땅 주인이 이사 가느라 파는 걸 우리가 샀어요.” 빚내서 땅을 사고, 농사지어 빚을 갚아 나가며 내 땅을 일군 부부. 지난날의 성실함을 딛고 서서 마주보는 눈빛에 정이 담뿍하다.



풀 자라고 병해충 와도 약 안 쳐


교회 청년회에서 만나 1974년 소병석 씨 26살, 서태순 씨 23살에 결혼한 부부는 올해로 같이 농사지은 지 40년째다. 결혼할 때는 논 한 마지기도 없이 남의 땅만 부쳤지만, 지금은 약 3만3천 ㎡(1만여 평) 정도 되는 농지를 갖게 됐다. 논밭이 각각 절반으로, “한살림에서 먹고 있는 건 다 한다.” 벼, 고추, 참깨, 들깨, 고구마, 감자, 콩, 대추... 돈은 안 되고 몸은 힘든 농사라고 하지만, 우리에게 꼭 필요한 작물들이다.
벼농사는 고 최재명 생산자가 창안한 우렁이농법으로 짓는다. 우렁이가 논의 풀을 먹어치우는 덕분에 때마다 퇴비 좀 주고 물 관리만 잘하면 걱정 없다. 요새는 가뭄으로 물이 말라서 우렁이가 많이 죽었다. “그나마 다행인 게 모가 어릴 때는 우렁이가 중요한데 모가 크면 좀 덜하거든. 모내기하고 나서 풀을 잡아야지, 그 후엔 우렁이로 풀 못 잡아요.” 그래서 지금은 때마다 부부가 직접 풀을 뽑는다.
7~8년 전부터 대추농사를 짓고 있다. 예부터 충북 보은은 대추로 유명한 고장이었는데, 화학비료를 쓰면서부터 대추가 안 됐다고 한다. 그러다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깻묵과 퇴비만 주니까 다시 농사가 되기 시작했단다. 대추농사초기에는 품종에 대해 잘 몰라서 고생을 많이 했다. 대추나무는 접붙이는 게 안 좋다고 하는데, 그것도 모르고 3년이나 기다렸다. 그러다가 접붙이지 않은 원래 나무를 심었더니 그제서야 대추가 열리기 시작했다.
대추가 이렇게 많이 달린 건 올해가 처음이다. “대추가 너무 안 달려서 ‘많이 좀 달리게 해주세요’ 기도했는데 정말 그렇게 됐어요.”라고 말하는 서태순 씨는 연신 싱글벙글하다. “원래 가무는 해에 뭐든지 잘 되는 거여. 가물면 힘은 드는데 농사는 잘 되는 거지. 대신 물은 좀 대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럴 수 없으니까 문제고. 다행히 여기는 땅 깊숙이 60m 아래에서 지하수를 기계로 퍼내서 써요. 많은 양은 아니지만 그래도 쓸 만허요.” 소병석 씨가 말을 덧붙인다.
요즘 하는 일은 순지르기. “대추나무를 내가 만들어 가는 거예요. 나무만 너무 커서 열매를 못 맺으면 안 되니까.” 그러나 이렇게 정성을 들여도, 나무마다 숨어서 대추알을 망치는 노린재 때문에 모양도 나빠지고 맛도 없어지는 경우가 많아 속상하다. 약을 치면 벌레도 안 먹고 알도 굵지만 그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생대추는 10월 10일 안쪽에 따고, 10월 20일경까지 다 따서 건조한 건대추는 전량 다 한살림으로 간다. 한살림에서는 생대추 가격이 kg당 1만 원 안쪽인데, 시중에서 질 좋은 대추가 kg당 2~3만 원 되는 데 비하면 너무 싸다. “생산자들이 너무 힘드니까 ‘너무 싸서 안 되겠다’고 이야기를 했지. 올해엔 값을 조금 올린다고 하는데 얼마나 올릴지 모르겠어.”
부부가 옆 대추밭도 함께 살핀다. “원래 관행농사짓던 사람인데 유기농사 짓자고 설득해서 넘어온” 이웃의 수확이 걱정돼서다. “엄청 잘되던 밭이었거든. 그런데 유기농사하면서 수확도 적지, 가격도 싸지 얼마나 미안했는지 몰라요.” 그래도 올해는 이웃의 대추나무도 열매가 많이 달려서 마음이 한결 가볍다.
고추는 4월 말 심어서 8월 15일경 수확했는데, 날이 더워지면서 8월 초로 수확시기가 좀 빨라졌다. 여러 가지 작물을 오랫동안 농사지어 온 ‘전문가’인 부부가 제일 힘든 농사로 꼽는 것이 바로 고추. 병해충 때문이다. “장마 지나고 병해충이 오면 우리 먹을 것도 못 딸 때가 있어요. 그냥 쳐다만 볼 수밖에. 그래도 약 안 쳐요.” 서태순 씨가 애들처럼 귀여워하는 고추가 병해충 때문에 마르는 일이 없으면 참 좋겠다.
콩 농사가 비교적 짓기 쉽고 수확도 괜찮았지만, 벌레를 잡을 방법이 없어 규모를 줄였다. 콩을 줄인 대신 감자, 고구마를 더 하는데 이것도 여러 해 하니까 연작피해가 있다. 그래서 작물을 좀 바꿔볼까 싶어서 블랙초크베리라고도 불리는 아로니아를 시범적으로 심어봤다. 안토시아닌과 폴리페놀 등의 성분이 많아 다양한 효능이 있다고 해서다. 이제 심은 지 4년 됐는데, 지금까지는 수확이 별로 없다가 올해 많이 달렸다. 9월 초 수확하는 아로니아는 블루베리와 달리 떫은맛이 있어 생과로는 먹기 힘든 터라 아직 한살림에서는 취급하지 않는다.




가장 어려운 농사는 고추. 병충해에 당할 재간이 없어 장마 이후가 걱정이다. 유난히 빨리 더워진 날씨 때문에 고추가 벌써 빨개지는 것도 문제.



살아남으려면 서로 귀한 줄 알아야 한다


“도시 사는 친구들 만나도 나만치 누리고는 못 살았더라고. 농사는 내가 어디 가고 싶으면 일단 접고 갈 수 있거든요. 외국도 가고 전국 여기저기 여행도 가고.” 농사지은 걸 한 번도 후회한 적 없다는 서태순 씨. 자연 느끼며 살 수 있어 좋고, 명예퇴직할 걱정 없어 좋다는 그는 농사일이 피곤하기는 해도 하기 싫은 적은 없었다. “남들보다 앞에 가면 수월한데 늦게 가면 고된 거거든. 앞서 가면 서서히 할 수 있어요.” 그래서 마을에서 빨리 일하기로 유명한 그에게 때마다 동네 사람들은 언제 무슨 일하는지 물어본다.아, 이 바지런함이여.
지금까지는 부부가 농지를 거의 다 건사했다. 일손돕기도 오고 자녀들과 조카들도 간간히 도우니 할 만했다. 하지만 소병석 씨가 크게 병치레한 후 이제는 농지를 좀 줄이려고 하는데, 임자 찾기가 쉽지 않다. “유기농사하려는 사람, 젊은 사람... 내가 보는 게 너무 많은가? 누구든지 한살림 식구가 온다면 정해진 땅값에서 좀 빼주기도 할 텐데 말이죠.” 서태순 씨가 직접 한 말이니 관심 있는 사람들은 언제든 문의하시라.
살아남으려면 서로 귀한 줄 알아야 한다며 “‘너야 죽건 말건 상관없다’ 이러면 한살림이 아닌 거”라는 소병석 씨의 말이 더욱 와 닿는 시절. 병해충으로 정성껏 기른 농작물이 다 말라 죽어도 정한 마음을 지키며 약 한 번 치지 않는 생산자를 귀하게 여기는 것이 내 생명 지키는 길인 줄 다시 알았다. 우리 정부는 언제쯤 우리 농업과 한 가지 살림을 살까? 부부와 헤어져 돌아오는 길. 가슴이 답답한 게 더위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우리 농사에는 딱히 특이할 게 없어요. 그저 이 사람과 내가 마음을 맞춰가며 짓는 거지.” 소병석 씨의 말을 들어서일까? 부부의 웃는 낯은 똑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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