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호 2014년 8월호 살림,살림

[ 살림의 현장 ]

쌀 개방, 밥상에 식량참사 정부의 ‘쌀 수입 전면 개방’을 바라보며

글 장경호



정부가 지난 7월 18일 ‘쌀 전면 개방’을 선언했다. 이에 따라 내년 1월 1일부터는 해마다 약 40만9천 톤의 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하고, 아울러 누구든지 관세만 부담하면 자유롭게 쌀을 수입할 수 있게 되었다. 역사상 처음으로 쌀 수입 완전 자유화가 예정된 것이다.


사회적 합의 없는 일방적인 쌀 개방


정부의 쌀 전면 개방 선언은 두 가지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선, 쌀 개방과 같은 중차대한 사안을 사회적 합의나 국민적 동의 없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것이다. 관세화를 선택한 일본이나 관세화 유예를 선택한 필리핀은 각각 서로 다른 선택을 했지만 두 나라 모두 공통적으로 사회적인 합의를 거쳐 정부가 최종적인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정부와 국회 그리고 농민의 대표가 참여하는 3자 협의기구’를 통해 쌀 개방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자는 제안마저도 거부하고, 무슨 군사작전하듯이 기습적으로 발표해 버렸다.
농민들은 정부의 발표를 세월호 참사와 같은 ‘식량참사’로 규정하였고, 정부 발표 직후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의 약 67%가 “쌀 개방에 대한 국민적 동의가 없다”고 답하였다. 그리고 국회에서도 이제 겨우 쌀개방 관련 논의가 시작되는 상황인데, 이를 무시하고 독단과 독선에 사로잡힌 정부의 일방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둘째, 정부의 쌀 개방 선언은 앞으로 예정된 쌀 협상을 앞두고 스스로 족쇄를 채우는 자승자박의 우를 범하고 말았다. 정부가 주장하는 관세화 개방이든 농민들이 요구하는 현상 유지든 미국, 중국 등 주요 이해당사국과 ‘쌀 협상’이라는 관문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그리고 협상을 통해 전면개방과 현상 유지 사이에 다양한 절충점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이러한 협상 과정에서 한국의 쌀만 20년에 걸쳐 부당하게 의무를 이행해 온 것에 대해 형평성의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고, ‘국가별 쿼터’라는 유리한 카드를 활용할 수도 있다. 설사 이 협상에 의해 관세화로 가더라도 주요 이해당사국에 자유무역협정(FTA)이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쌀 문제를 거론하지 않겠다는 합의를 끌어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일본과 같이 한국도 의무도입물량(MMA)을 대북 지원을 비롯한 해외 원조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권리를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데 정부의 쌀 개방 선언은 다양한 협상의 가능성과 우리에게 유리한 카드를 모두 폐기해 버리는 결과를 불러 왔다. 이제 남은 것은 오직 300∼500% 수준의 고율관세만을 방어하는 데 급급한, 수세적이고 방어적인 협상이 이어지게 된 상황뿐이다. 정부가 자초한 결과이며, 예상되는 협상 실패에 대한 책임 또한 명백하게 정부와 관료들에게 있다.
쌀 협상은 한 가지가 아니다. 세계무역기구(WTO) 농업협정문에 의한 협상도 있고, 양자 간 FTA에 따른 협상도 있으며, TPP가입을 위한 양자 협의 테이블에서의 협상도 있다. 매우 복잡하고 고차원의 해법을필요로 하는 협상들이다. 정부는 어쨌든 고율관세를 확보하고, 앞으로 그 어떤 FTA, TPP에서든지 쌀을 제외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쌀의 관세율을 변경할 때에는 반드시 사회적 합의와 국회의 동의를 받도록 규정하는 특별법 제정에 대해서는 거부하고 있다. 말로는 정부를 믿어달라고 하면서 정작 구체적인 특별법 약속은 거부하는 이중적인 행태를 보여 주고 있다. 정부 스스로 불신을 불러오고 있으며, 이 때문에 많은 농민과 국민들은 정부가 나중에 말 바꾸기를 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쌀은 한국 농업과 먹거리 기본권 보호막


쌀 개방은 단지 쌀농사를 짓는 농민의 피해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논 넓이는 약 90만 ha이고, 밭 넓이는 약 50만 ha이다. 만약 쌀 수입으로 인해 쌀 재배지의 일부만이라도 다른 작목으로 옮겨 가면, 거의 모든 밭작물이 공급 증가로 인한 연쇄적인 가격 폭락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동안 수많은 농산물 시장 개방과 FTA를해 오면서도 이 나라 농업이 완전히 몰락하지 않고 지금 이 정도나마 유지하고 있는 것은 전체 경지 넓이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쌀이 보호막 역할을 해온 덕분이다. 그런데 쌀 개방은 이 보호막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농민들이 쌀 개방을 ‘쌀’의 문제로 보지 않고, 농업 전체의 문제로 인식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게다가 쌀농사는 해마다 약 27조 원에서 40조 원에 달하는 가치를 우리 국민 모두에게 제공하고 있다. 이른바 ‘다원적 기능’ 또는 ‘공익적 기능’이라고 부르는 것인데, 국민들은 그 혜택을 누리면서도 정작 비용은 지불하지 않고 있다.
농촌어메니티(농촌 지역의 아름다운 경관, 문화유산, 정취 등이 어우러져 쾌적함, 유쾌함, 긍정적인 감정 등을 불러일으키는 장소의 속성이나 감성적 인식) 보전, 홍수 조절, 대기 정화, 환경 보전, 지역공동체 유지, 전통문화보전 등과 같은 다원적 기능은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꼭 필요한 요소들이다. 쌀 개방 때문에 쌀농사가 줄어든다면 이러한 다원적 기능이 약해지고 사회의 지속 가능성은 떨어지는 결과로 이어진다. 만약 쌀농사가 줄어드는 만큼에 해당하는 다원적 기능을 유지하려면 쌀농사를 유지하는 것보다 오히려 훨씬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가고 결국 국민의 조세 부담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쌀 개방을 ‘쌀’과 ‘농민’의 문제로 국한하지 않고 우리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문제로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쌀 개방으로 쌀농사가 줄어들고, 쌀수입이 증가하면서 식량자급률이 떨어지며 식량주권이 상실되는 상황이 가져다 줄 위험성도 간과할 수 없다. 비소를 비롯해 중금속 오염이 심각한 미국 쌀이나 안전성을 신뢰할 수 없는 중국 쌀의 수입이 증가하면, 곧바로 국민의 밥상 전반이 더욱더 위험해질 것이다. 또한 세계적인 식량위기 시대에 식량주권을 상실하면 곧 우리의 먹거리는 초국적 자본의 힘에 좌우된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믿다가 세월호 참사를 겪었다. 쌀 개방 문제에도 정부는 국민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강요한다. 그러나 쌀 개방 문제에 가만히 있으면, 그 결과는 우리 모두의 밥상에 참사를 불러들이는 것이다. 쌀 개방 문제는 생산하는 농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동시에 먹거리의 소비자로서 우리 모두의 기본권을 짓밟는 것이기도 하다. 먹거리 기본권은 정부가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시민들이 실천과 노력을 통해 스스로의 힘으로 세우는 것이다.


↘ 장경호 님은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이며 건국대 경영경제학부 겸임교수로 일하고 있습니다. 서울대 농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중앙대 산업경제학과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한국 농업과먹거리 정책을 연구, 실천해 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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