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호 2014년 8월호 살림,살림

[ 살림의 현장 ]

“저희가 일으킬게요, 할머니” 현장탐방 ‘청년, 밀양의 미래를 꿈꾸다’

글 \ 사진 박경내



헤어질 시간이었다. “할머니, 저희 갈게요.” “너희 언제 다시 올 꺼고?” 할머니께서 슬픈 표정으로 물으셨다. 왠지 이번에는 꼭 지킬 수 있는 대답을 해드려야 할 것 같아 고민됐다. 멀리서 오는 것이니, ‘그래, 한 계절에 한 번이면 자주 오는 게지’ 싶었다. “가을에 다시 올게요.” 그런데 이내 할머니께서 “내 그때까지 몬 산다. 지금도 경찰차가 지나가기만 해도 가슴이 벌렁벌렁하고... 지금도 이렇게 힘든데 가을에 오면 내 읍따.”라며 눈시울을 붉히시는 모습에 코끝이 짠해져 떠나는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괜히 알아봐야 마음만 아프지’ 했던 밀양


어쩌다 보니 6년째 서울에 머무르고 있지만, 경남에서 나고 자란 내게 밀양은 언제나 편안한 곳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밀양에서 송전탑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며, 그 문제로 한국전력(한전)과 주민들이 싸우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단순히 전기만이 아닌 핵발전소와도 관련 있다는 이야기가 덧붙어서.
나는 정작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사고가 일어난 당시에도 알 수 없는 두려움 때문에 ‘더 알아서 뭐하나,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일 괜히 알아봐야 마음만 아프지.’하며 사실을 찾아보지 않고 외면하며 지나친 터였다. 내 마음 아플까봐 후쿠시마 사고 때 그랬던 것처럼, 밀양의 안타까운 소식을 간간이 전해 들으면서도 굳이 더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렇게 밀양 송전탑에 대해 감흥 없이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지난 해 가을 열린 촛불문화제에 하자센터 청소년들이 직접 그려서 걸어놓은 현수막. 여전히 전국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힘을 실어주고 있다. 밀양의 미래는 우리의 미래이기도 하니까.




전기 아껴 쓸 테니 지금 이대로 살았으면


그러다가 지난해 가을, 내가 활동하고 있는 평화재단 청년 모임에서 밀양 현장탐방 겸 농활을 간다고 했다. 현장탐방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장소를 여럿이서 함께 찾아가 직접 실상을 보고 듣는 프로그램이다. 시골에 간다는 생각에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밀양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고향 사투리가 반가웠고, 시골이 주는 아늑함에 마음이 포근해지고 눈이 밝아졌다.
그런 반가움도 잠시. 동네 주민들이 송전탑 공사현장이라며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단박에 알아챌 수 있었다. ‘아, 송전탑이란 게 하나만 짓는 게 아니구나. 곳곳에 하나씩 지어 이어야 하는 어마어마한 공사구나.’ 그동안의 무지와 무관심에 대한 미안함이 마음 한 켠에 올라왔다.
다음날 동화마을 송전탑 공사현장까지 헉헉거리며 산을 타고 올라갔다. 송전탑 대부분이 전선을 이어야 하기 때문에 산 정상 부근에 있기 마련이라고 한다. 청년들도 한 번 오르내리기 어려운 곳을 연세가 많고 거동도 불편한 할머니들이 몇 년간 매일이다시피 다녔을 것을 생각하니 숙연해졌다. 765kV 전기가 송전탑을 타고 흐르고 흘러 서울로 온다는데, 서울에 살고있는 한 사람으로서 책임감이 들었다. 농활로 주렁주렁 매달린 감 따는 작업을 하며, ‘서울 사람들이 전기 아껴 쓸 테니 지금 이대로 건강하게 감을 먹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잠깐 해 보았다.




지난 6월 11일 행정대집행 이후 새로 지은 움막에 둘러앉아 동네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송전탑 반대투쟁을 하면서, 무엇보다 그동안 의좋게 지내던 동네 사람들 간에 의견이 달라 사이가 나빠진 게 참 속상하다고 하셨다.



“언론에서 있는 그대로 전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감동과 미안함이 무색하게도 내 일상은 다시 너무도 분주하게 흘러, 차마 다 잊은 건 아니었어도 최근 밀양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일을 멀리서 안타까이 지켜볼 뿐이었다. 그런 와중에 지난해에 이어 다시 밀양 현장탐방을 가게 되었다.
도착하자마자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 오마이TV에 출연해 밀양 송전탑 상황에 대해 설명한 ‘밀양 송전탑의 진실 -그들은 왜 송전탑에 반대하는가?’라는 영상을 보았다. 이어서 밀양 주민들과 한전의 싸움을 둘러싼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밀양전>을 보았다. 오기 전 밀양 주민들 인터뷰집인 《밀양을 살다》를 읽고 온 후에 두 영상을 덧붙여 보니, 마음에 깊이 와닿기도 하고 착잡하기도 하고 그랬다.
이후 청년들과 둘러앉아 영상을 어떻게 보았는지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언론에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하지 않는 것 같다”며 이제야 진상을 알게 되었다는 말부터 “용감하게 싸우는 할머니들의 모습에서 감동을 받았고, 송전탑 공사가 진행되는 상황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는 이야기까지 서로 마음을 나눴다.


“청년들이 팍 차고 못 일어나나?”


동네 어르신들을 만나서 직접 말씀을 들어보기 위해서 위양마을로 찾아갔다. 엄청난 공권력이 투입된 지난 6월 11일 행정대집행 이후, 어르신들은 송전탑 공사현장에서 쫓겨나와 마을 초입에 움막을 지은 직후였다. 우리가 도착하자 움막에서 나온 아저씨와 할머니께서 우리를 반가이 맞아주셨다. 할머니 한 분은 방금 보고 온 <밀양전>에, 다른 한 분은 《밀양을 살다》 책에 나온 분이어서 마치 잘 아는 사람을 만난 양 반가움이 더하기도 했다.
할머니께서는 송전탑 반대 투쟁을 하면서 “느그는 전기 안 쓰나?”라는 말을 들을 때 제일 마음이 아프다면서, 세월호 사건과 송전탑 공사는 판박이로 이 모든 게 다 돈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송전탑 공사 반대를 통해 공부도 많이 했다면서, 이제는 원전반대와 탈핵운동도 같이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셨다.
또 “예전처럼 고등학생과 젊은이들이 들고 일어나야 하는데 안 그런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하셨다. 그곳에 앉아 있던 나부터 복잡한 마음으로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있다가 한 번 더 “청년들이 팍 차고 못 일어나나?”라면서 답답해 하시는데, 우리 중 어느 한 명이 “저희가 일으킬게요, 할머니.”라고 이내 말씀을 받자 할머니는 “아이구!” 기뻐하시며 그 친구를 안아주었다.
이번 방문 때는 송전탑 공사 현장은 아예 갈 수도 없을 정도로 상황이 안 좋다보니, 마치 밀양의 언저리에만 머물다가 가는 듯도 했다. 그래도 밀양에서 보고 듣고 느낀 많은 것들이 긴 여운으로 남았다. 밀양에서 다급한 소식들이 들려올 때, 내 몸과 마음은 밀양을 응원하고 그곳을 향해 내달려가고 있을 게다.


평화재단 청년포럼 현장탐방 ‘청년, 밀양의 미래를 꿈꾸다’

7월 12일부터 13일까지 밀양 송전탑 공사 관련 현장을 찾아가고 농활을 하였다. 밀양은 지난 해 여름, 가을 이후로 세 번째 방문이다. 평화재단 청년학교를 다니거나 수료한 20~35살 청년 80여 명이 함께했다. 청년학교는 해마다 2번씩 열리며 현재 4기를 준비 중이다. 현장탐방은 환경, 주거, 대안적 삶등을 주제로 달마다 열리고 있다.


↘ 박경내 님은 궁금한 게 많아서 이것저것 쫓아다니며 배우고, 사람과 자연을 만나면서 여행하듯이 사는 것을 좋아합니다. 평화재단 청년팀에서 자원활동가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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