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호 2014년 8월호 살림,살림

[ 이야기가 있는 밥상 ]

내 삶을 바꾼 요리 파주키친’의 현미채소스프·모듬채소구이샐러드

글 임경호 \ 사진 이득

누구에게나 한번쯤 삶의 방향이 크게 바뀌는 인생의 변곡점이 찾아온다. 불치의 병은 내 본연의 모습을 깊숙이 들여다보게 했고, 요리라는 숨은 재능을 발견하게 했다. 음식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그걸 매개로 서로가 서로에게 선물이 되어 준다. 요리는 기쁨과 행복을 누리도록 내 삶을 바꾸었다.

 



 


요양 여행에서 찾은 두 번째 재능


잦은 휴학과 전과로 29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대학을 간신히 마쳤다. 4학년 한 해는 졸업 전시회에만 몰두한 나머지 진로를 준비하지 못했다. 그저 막연하게 학생을 가르치고 싶어 유학을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학비가 부담되었다. 돈을 모아 유학하겠다는 생각으로 뒤늦게 취업의 문을 두드렸지만, 전공인 미디어와 관련된 IT분야에서는 나이가 걸림돌이 되었다. 그렇게 취업난을 겪고 있을 때 지금의 지도교수에게 조교 장학생 추천을 받아 대학원에 들어갈 수 있었다.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이 교수가 되겠다는 구체적인 꿈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석사 과정과 석박사 통합과정을 거쳐 마침내 2011년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듬해 3월에는 같은 학교 산학협력단에서 연구교수로 임용되면서, 교수가 되겠다는 꿈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큰 문제가 생겼다. 2012년 4월, 신장 기능이 10%밖에 남지 않았다는 만성신부전증 말기 진단을 받았다. 각종 합병증으로 여기저기 몸이 아팠고 서서히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밀려왔다. ‘말기’라는 병리학적 진단에 대해 어떻게 마음을 추스르고 이 병과 싸워나갈지 도무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삶이 다무너져 내린 듯 막막했다. 우울하고 불안하던 어느 날 ‘내가 아직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싶고, 아무런 구속도 받지 않고 자유로운 여행을 하고 싶어 무작정 제주도로 떠났다. 서귀포 남원의 한 게스트하우스. 친한 형님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인데, 내 투병 소식을 전해 듣고 언제든 쉬고 싶을 때면 내려와 편히 머무르라고했다. 고마운 곳이다. 그곳에서 하루나 이틀씩 스쳐가는 많은 여행객을 만났다. 매일 저녁, 나는 그때그때 마련한 재료로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 낯선 여행객들과 함께 나누어 먹었다. 처음 만난 사이지만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금방 친해졌다. 모두 그릇의 바닥이 드러나도록 끝까지 맛있게 먹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는 매력과 기쁨을 만끽했다. 뿌듯함을 넘어 행복한 기분까지 들었다. 어느 정도 요리 솜씨가 있다고는 생각했는데, 재능이라는 확신이 뒤늦게 들었다. 요리를 하면서 사람들을 기쁘고 행복하게 하고 싶다는 새로운 꿈이 이때쯤 생겨났다.


식탁이 우리 집의 중심


약물치료도 받고 한의원도 다니고, 자연건강법과 같은 대체요법도 하면서 몸을 다스렸지만, 병의 진행 속도는 빨랐다. 투석할 시점이 왔다. 겨울이 되자 몇 차례 감기가 걸리더니 갑자기 급성신부전증이 진행되면서, 요독이 온몸으로 퍼져 위태로운 순간까지 이르렀다. 결국 지난해 3월, 응급 혈액투석을 했다. 한 달간 혈액투석을 하다가, 서서히 복막투석으로 전환했다. 그리고 요양과 투병을 위해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조금은 한적한 파주로 이사해 하루에 네 차례씩 집에서 투석을 하면서 지내기 시작했다.
이 정도의 중증이면 보호자가 필요하지만, 나는 홀로서기를 택했다. 정말로 혼자가 되다 보니 외로움을 견디는 것도 지병 못지않게 힘들었다. 풍경이 멋지긴 했지만, 39평 전세 아파트는 너무 넓었다. 특히 넓은 거실은 마음 한쪽에 횅함을 더했다. 거실에 가구나 물건이 아닌 사람들로 채워지기를 소망했다. 그래서 부엌 식탁을 거실 한가운데로 옮겼다. 며칠 뒤 집들이도 할 겸 지인들을 초대해 음식을 나눠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손님들을 자주 초대하면서 문득 제주도의 추억이 떠올랐다. 창밖 풍경이 멋진 이곳에서 그때처럼 좋은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나눠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주에서 홀로서기를 하기 위해 먼저 동네 구석구석을 걸었다. 건강한 먹거리를 위해 생협 조합원으로 가입하고 한살림 요리 소모임과 책 읽기 모임을 하면서 이웃들과 사귀기 시작했다. 이 즈음에 인상 깊게 읽은 책이 있다. 후지무라 야스유키의 《적게 벌고 행복하게 살기-3만 엔 비즈니스》. ‘파주키친’을 시작해도 괜찮겠다는 용기를 북돋워 주었고 어떻게 운영할지에 대한 생각을 다듬어 준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파주키친이 무한경쟁, 승자독식을 강요하는 신자유주의 방식이 아닌 대안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꼭 필요한 만큼만 적게 벌면서도 ‘나와 이웃을 행복하게 하고, 지구 환경을 나아지게 하는 일’이 되길 바랐다. 또 이웃들과 소소한 행복을 나누고, 만성 신부전증을 견디면서, 경제적 자립도 하는 ‘지속 가능한’ 일이 되길 바랐다.

 

 

7월 15일 열린 요리교실에 인근 일산과 파주에 사는 이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참여했다. 아이들은 한입 맛보더니 엄마에게 다음날 현미야채스프를 해 달라고 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선물이 되는 ‘파주키친’


이렇게 파주키친(blog.naver.com/kh_7777)은 식탁이 단 하나인 맞춤 식당이 되었다. 금~일요일 사흘 동안 열고, 예약은 한 번에 1~4명까지 점심과 저녁에 한 팀씩만 받는다. 음식 나르기와 설거지는 손님 스스로 하는 독특한 규칙이 있다. 식비는 모금이나 후원금으로 받거나, 필요한 물품이나 농산물과 물물교환하기도 한다. 메뉴는 유기농현미채소스프, 모듬채소구이샐러드, 오일·토마토·페스토· 두유크림 소스를 사용한 퓨전파스타 메뉴가 있고, 현미밥과 토마토스튜, 현미토마토리조또에 샐러드를 곁들인 세트 메뉴가 있다. 이것들은 바로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이었다. 사 먹으면 몸에 좋지 않은 각종 화학 첨가물, 조미료
등이 들어가기 때문에, 아픈 나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직접 만들다가 요리를 개발했다. 밀가루가 몸에 좋지 않아서 최근에는 현미면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파스타에도, 채식 짜장면에도, 검은콩국수에도 현미면을 사용한다. 유기농·무농약 식재료를 고집하는데, 한살림과 초록바구니를 주로 이용하고 페이스북이나 지인을 통해 알게 된 유기농 생산자와 직거래하기도 한다. 누가 어떻게 생산한 것인지 알고 먹는 좋은 식재료는 음식의 맛을 보장한다. 요리사의 실력과 정성이 더해지면 ‘힐링푸드’가 된다. 손님이 예약하면 장보기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각자의 건강 상태나 상황에 맞출 수 있다. 이렇게 마음과 정성을 다해 만든 요리를 선물하듯이 내어 놓는다. 손님들 중에는 빈손으로 오지 않고 파주키친에 필요할 만한 물건이나 좋은 식재를 선물로 들고 오시는 분들도 있다. 그렇게 마음과 마음을 나누며 서로가 서로에게 선물이 되어 준다.
지난해 수술한 뒤 올해 2월까지는 몸이 아파 경제활동을 할 수 없었다. 3월부터는 다시 강의도 하고 도서관 사서 보조로 일하면서 조금씩 자립을 이루어가고 있다. 아직까지 파주키친은 가계에 큰 보탬이 되지는 않지만 정신적으로 재활과 자립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제는 ‘봉사 와 나눔’을 하고 싶어 지난 6월부터 매달 원주에 있는 밥상공동체에 봉사활동을 가고 있다. 건강하고 맛있는 채식 요리법을 공유하기 위해 요리교실도 시작했다. 그날 만들어 먹은 ‘힐링&슬로우’ 요리가 오늘 소개한 요리.


모듬채소구이샐러드

 



 

건강을 위해 현미밥과 생채소를 주식으로 먹었던 적이 있다. 당시 채식이 익숙하지 않아 하루 이틀은 괜찮아도 사흘째부터 힘들어졌다. 채소를 더 맛있게 먹는 법을 연구하다가 만든 요리다. 파주키친을 방문한 이들이 “채식이 이렇게 맛있을 수 있냐?”며 가장 선호하는 메뉴다. 채소에 얹는 들깨드레싱이 제법 잘 어울린다.


재료(2인분 기준)


감자·당근 슬라이스(2mm 두께) 6~8개, 애호박·가지 슬라이스(80mm 두께) 2~3개와 방울토마토 4~5개, 브로콜리 작은 송이 2~3개, 양상추, 어린잎채소, 현미유, 통후추, 피클링스파이스, 볶은 소금


* 들깨드레싱 : 들깨가루 2작은술, 들기름과 올리브유 각 1큰술, 맛간장과 진간장 각 1작은술, 꿀 1작은술


만들기
➊ 깊은 그릇에 감자·당근 슬라이스, 애호박·가지 슬라이스와 방울토마토, 브로콜리를 담는다. 여기에 현미유, 볶은 소금, 후추, 피클링스파이스를 넣고 섞어 3~5분 정도 재어 둔다. ➋ 오븐을 예열(210℃ 3분)하는 동안 양상추, 어린잎채소를 씻고 다듬어 다른 접시에 담는다. ➌ 오븐용 접시 또는 팬에 종이 호일을 깔고 방울토마토, 브로콜리만 빼고 재어 둔 채소를 넣는다. 예열된 오븐에 넣고 10분간 굽는다. ➍ 10분 뒤 오븐에 넣은 그릇을 꺼내 방울토마토, 브로콜리를 넣어 5분간 더 익힌다. 더 바삭한 식감을 원하면 ‘그릴’ 모드로 2분간 한 번 더 익힌다. ➎ 익는 동안 드레싱용으로 준비된 재료들을 모두 섞어 들깨드레싱을 만든다. ➏ 오븐 구이가 끝나면 생채소(➋의 양상추, 어린잎채소)가 담긴 접시에 담고, 드레싱을 뿌린다.



현미채소스프

 



일반인에게는 건강식, 환자에게는 회복식! 10분 안에 완성 가능해 바쁜 아침과 속이 안 좋은 저녁에 좋다. 감자, 토마토, 단호박 등 주재료에 따라 맛이 다양해진다.


재료(2인분 기준)


현미가루 2큰술, 양파 1/3개, 브로콜리 작은 송이 2개, 당근 1/3개, 다시마육수 1컵(200ml), 생수(100ml), 현미유 약간, 죽염 1/2작은술, 유기농설탕 1작은술, 볶은 참깨/볶은 검은깨, 파슬리 약간


만들기


➊ 양파, 당근, 브로콜리를 잘게 썬다. 브로콜리 밑동은, 스프 만들 때 잘게 썰어 사용한다. ➋ 내열 유리 냄비에 현미유를 두르고 준비한 재료를 볶는다. 센 불에 빠르게 볶는다. ➌ 다시마 육수를 자박하게 붓고, 끓기 시작하면 불을 끄고 1분 정도 식혀 핸드블라인더로 간다. ➍ 냄비에 현미가루와 생수를 붓고 잘 개어, 센 불에서 빠르게 저으면서 끓이다가 부글부글 끓기 시작하면 약 불로 줄인다. 약 불로 줄인 후에도 계속 빠르게 저어야 굳지 않고 부드럽다. ➎ 갈아 놓은 채소와 죽염, 유기농설탕을 냄비에 넣고 잘 저으면서 5분 정도 끓인다. ➏ 완성된 스프를 그릇에 담고, 볶은 참깨, 볶은 검은깨, 파슬리를 뿌린다. 깨는 한 꼬집 집어 손가락으로 으깨면서 뿌리면 더 고소하다.


↘ 임경호 님은 신부전증 치료를 위해 몸에 좋은 음식을 만들어 먹다가 ‘파주키친’을 통해 같이 나누어 먹고 있습니다. 파주키친에서는 ‘힐링&슬로우푸드’를 맛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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