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호 2014년 8월호 살림,살림

[ 우리를 먹여 살리는 꽃무명 ]

머릿수건을 쓴 아낙 고추꽃

글 장영란 \ 사진 김광화



고추는 가지, 토마토와 한집안인 가지과 채소다. 가지, 고추, 토마토가 얼마나 비슷한지는 길러 보면 안다. 먼저 떡잎이 똑같아 구별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또 이들은 줄기에서 마디가 갈라지며 마디마다 잎겨드랑이에서 꽃을 두 개 이상 피우고 계속해서 새 마디가 갈라지며 꽃을 피우는 무한꽃차례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고추 한 포기가 최대 1천 개 꽃을 피울 수 있다고 한다. 꽃 하나에 고추 하나가 열리니, 그 덕에 한번 심으면 열매를 따 먹고 또 따 먹고 늦가을까지 따 먹을 수 있다.
고추의 고향은 남아메리카 불가리아 고원지대로 추정된다. 고추가 세계에 퍼지기 시작한 건 15~16세기. 원래는 여러해살이이나 한국에서는 서리가 오면 죽어서 한해살이이다. 처음 들어온 건 임진왜란 전후로 추정한다. 한번 들어온 뒤 우리 민족과 잘 어우러져 마치 오랜 동안 함께 살아온 듯 여겨진다. “빨간 주머니 속에 황금동전이 들어있는 것은?” 하면서.
고추꽃은 줄기 마디에 있는 잎겨드랑이에서 잘 바랜 무명 같은 하얀 꽃이 한 송이씩 아래를 보며 피는데 이 모습이 무명 머릿수건을 쓴 아낙 같다. 이 소박한 꽃은 가운데 암술 하나를 남빛 도는 수술 여러 개가 감싸고 있다. 꽃잎이 하나로 된 통꽃이지만 꽃잎 끝이 5~6갈래로 갈라져 있고 수술도 여기에 조응해 5~6개다. 꽃받침 역시 끝만 얕게 5~6갈래로 갈라져 있다.
가지과 꽃받침은 씨방을 감싸는 상위 씨방으로, 꽃잎이 져도 꽃받침은 남아 있다. 그리고 열매와 한 몸으로 딸 때까지 싱싱하게 달려 있다. 열매에 꽃받침이 붙어있는 게 얼마나 되나? 나무 열매에서는 감 정도다. 그래서 감꼭지가 약이 되는가? 고추 꽃받침은 먹을 수 있고 또 영양이 담뿍 담겨 있다. 꽃잎이 시들어 오그라지면서 그 자리에 푸른 아기고추가 모습을 드러낸다. 풋고추를 보면 꼭지라 부르는 부분이 꽃받침, 그 위에 길게 달린 게 꽃자루. 이걸 알고 풋고추를 먹을 때 꽃받침까지 ‘아삭!’ 먹는다. 고추꽃은 6월~ 9월 오전에 핀다. 자기꽃가루받이를 하지만, 아침에 고추밭에 앉아 일을 하노라면 벌이 들락거리는 걸 볼 수 있다. 꽃말은 ‘세련’.



↘ 장영란 님은 무주에서 자급농사를 하며 자연에 눈떠가고 있습니다. 자연에서 살아가는 맛을 사람들과 나누고, 생각이 서로 통하는 이와 만나고 싶어 틈틈이 글을 씁니다. 《자연달력 제철밥상》, 《아이들은 자연이다》, 《자연 그대로 먹어라》, 《숨 쉬는 양념·밥상》 등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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