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호 2014년 8월호 [특집] 특집-강이 흐른다

[ 녹색가격제도 ]

재생에너지에 정당한 값을 지불하자

글 이상훈

“벤츠를 원하는 소비자도 있고 폭스바겐을 원하는 소비자도 있다. 벤츠가 그만한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에 고객이 큰돈을 내듯이 우리 제품도 가치를 알아보는 소비자가 있기 때문에 판매에 어려움이 없다.”
2002년 독일에서 유기축산을 하는 농부에서 들은 이야기는 재생에너지의 경쟁력에 대한 내 생각을 바꾸어 놓았다. 그 뒤 나는 재생에너지의 경제성을 비판하는 주류적 시각에 반해, 재생에너지는 비록 화석연료나 원자력에 비해 비용을 더 부담한다 해도 가치가 있다는 얘기를 당당하게 한다.
화석연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이유 중 하나는 각국 정부가 화석연료에 막대한 보조금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전 세계 화석연료 보조금은 재생에너지 보조금의 4~5배에 이른다. 그래서 재생에너지 보급을 촉진하는 첫째조건은 화석연료 보조금을 없애는 것이다. 미래에는 화석연료나 원자력보다 재생에너지가 더 경제적이기 때문에 다른 에너지정책을 논할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한국, 2035년까지 핵발전소 설비 29% 확대


후쿠시마 재앙 이후 탈핵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한국 에너지 정책은 별 변화가 없다.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2035년까지 핵발전소의 설비 비중을 29% 수준으로 유지하고자 한다. 핵발전소 설비 비중이 현재 수준인 26%보다 늘어나면서 기존의 핵발전소 확대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고 전력 수요 증가 추세도 이어질 전망이다.
후쿠시마 재앙이 일어난 일본에서조차 핵발전소 정책이 후쿠시마 이전으로 회귀할 조짐을 보인다. 핵발전소를 조기 폐쇄하는 대신에 가스 발전과 재생에너지를 늘리겠다는 탈핵 구상은 점차 흐릿해지고 있다. 두 나라에서 모두 전기를 저렴하게 안정적으로 공급하려면 핵발전소가 필요하다는 핵 산업계의 논리가 정책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탈핵을 요구하는 시민단체들은 독일의 에너지 전환 정책을 배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핵발전소를 줄이는 대신 재생에너지의 비중을 빠르게 높여가는 독일의 에너지 정책을 공부하고 독일의 경험에서 배우고자 한다. 하지만 간혹 간과되는 측면이 있다. 재생에너지 전환을 위해 독일 시민들이 상당한 부담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독일은 기준가격구매제를 통해서 풍력, 태양광, 바이오가스 발전 등을 확대해 오고있다.


전기요금 인상 감수하는 독일 시민


기준가격구매제는 재생에너지에서 생산한 전기를 전력회사가 경제성을 보장하는 기준 가격에 의무적으로 매입하고 그 비용을 소비자 전기요금에 반영하는 제도이다. 재생에너지 비중 25%를 넘긴 독일은 2013년에 소비자들이 기준가격구매제 유지를 위해 추가 부담한 요금이 200억 유로(우리 돈 약 28조 원)에 이른다.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라 부담이 증가해 2014년엔 월 300kW/h를 쓰는 가정에서 매월 약 2만6천 원의 요금을 추가로 내야 한다. 결국 시민들이 전기요금 인상을 감수하면서 재생에너지에 기반한 에너지 전환을 지지했기 때문에, 독일 정부는 기존 에너지업계의 반발에도 흔들리지 않고 재생에너지 보급·확대 정책을 유지할 수 있다. 물론 풍력이나 태양광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시민이라는 점도 시민사회가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지지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자, 탈핵까지 못 가더라도 핵발전소 비중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조금이라도 늘리고 싶다면 합리적 소비자의 상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독일 전기요금의 1/3에 불과한 저렴한 전기요금에 익숙해진 생활과 결별할 각오를 해야 한다.
같은 에너지라도 원자력 전기 대신 재생에너지 전기를 쓰고 싶으니 필요하면 전기요금을 인상해 달라고 요구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싸게 전기를 쓰고 싶은 소비자가 적어도 절반이 넘기 때문에 비싼 전기를 쓰게 해달라는 탈핵론자들의 요구는 당분간 실현되기 어렵다. 하지만 녹색가격제도가 도입된다면 원하는 소비자부터 더 가치 있는 전기, 더 비싼 전기를 구매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시민 참여로 가능한 녹색가격제도


녹색가격제도(Green Pricing)는 재생에너지를 사용하여 생산된 전력(녹색전력)
을 소비자에게 일반 전력보다 높은 가격(녹색가격)으로 판매하는 제도이다. 물리적으로 같은 에너지라도 재생에너지 전력에 더 높은 가치를 지불하려는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제도이다. 소비자들은 녹색전력을 구매하여 재생에너지 전력 등 녹색전력 확대에 간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미국이나 독일에선 녹색전력을 상품으로 판매하는 전력판매회사들이 상당수 있다. 또, 독일에는 쇠나우전력회사(EWS)나 그린피스에너지처럼 녹색전력만 판매하는 전력회사들도 있다. 독일 남부 흑림지대에 쇠나우전력회사는 체르노빌 사고 이후 쇠나우 주민들이 인수하여 성장시킨 전력판매회사로 현재 13만5천가구에 99% 재생에너지 전력을 판매 중이다. 2만3천 명의 조합원이 설립한 그린피스에너지는 재생에너지와 가스발전에서 나온 전력을 혼합해 고객 11만 명에게 공급하는 한편, 총 용량 65MW의 풍력발전소 11개와 태양광발전소 3개도 설립하였다.
한국에서도 재생에너지 전력을 더 선호하는 시민이 크게 늘었다. 한살림을 비롯한 생활협동조합 조합원, 환경단체 회원, 탈핵의 가치를 공감하고 실천하는 종교인 등 많은 사람들이 요금을 더 내더라도 재생에너지 전력 구매에 참여하고 싶을 것이다.
또한, 녹색전력을 구매해 이미지를 개선하려는 기업들도 있다. 물론 국내에선 한전이 유일무이한 전력판매회사라 녹색전력제도를 도입하려면 한전이 녹색전력을 상품으로 팔거나 녹색전력 상품을 다른 회사도 판매할 수 있도록 전력 판매에 대한 규정이 바뀌어야 한다. 쉽지 않지만 녹색전력 상품을 구매하려는 목소리가 커지면 변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녹색가격제도는 사회 전반에 재생에너지에 대한 지불의사를 높이고 전기요금 정상화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제값을 치루면서 유기농산물을 구매해 온 시민들이 이제 재생에너지 생산에 투자하고 녹색전력 구매에 나서야 할 때다. 그것이 탈핵을 실천하는 길이다.



↘ 이상훈 님은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소장으로, 재생에너지에 기반한 녹색에너지 사회 실현을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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