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호 2014년 8월호 [특집] 특집-강이 흐른다

[ 강이 살아야 사람이 산다 ]

추억이 흐르는 강, 삶이 펼쳐지는 강

글 신정일


우주 순환의 이치를 안고서 흐르는 강. 한반도 오천 년 역사를 안고서 산천을 실핏줄처럼 흐르는 강을 두고 사람들은 민족의 젖줄, 역사의 숨결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강의 역사가 어디 오천년뿐이겠는가? 강에 기대어 살아온 시간이 곧 인류의 역사다.


꿈에 강을 보면 길조


저물녘 강변에 나가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면, 강은 쉬지 않고 서둘러 흘러간다. “시냇물엔 멈춰선 물길이 없다.”는 옛말처럼 어디에서 비롯되어 어디를 향해 가는지 물어도, 대답 없이 유유히 흘러서 간다.
열 나라, 백 나라가 쓰러지고 일어섰어도 밤낮을 모르고 그침 없이 흐르고 흘러가는 것이 강이다. 강은 한자 ‘江’의 음으로 수(水)와 공(工)이 합쳐져 형성된 문자로 보통명사가 아니라 장강, 곧 양쯔강을 가리키는 고유명사였다. 양쯔강이 흐르며 내는 물소리 ‘끙끙’(工의 고음)을 본떠 만든 의성어가 강이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일반적인 강을 가리키는 보통명사가 되었다. 또한 ‘가람’은 ‘갈래진 것’을 뜻하여 물줄기의 갈래가 모여 흐르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 신화에서 고구려 시조 주몽의 어머니 유화는 강의 신의 딸이었다고 한다. 하느님의 아들 해모수가 유화를 유혹하여 봉신산 아래 압록강변에서 인연을 맺은 뒤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주몽이었다. 그것은 하늘의 신과 물의 신이 결합하여 땅을 다스리는 지위와 권력을 부여받음을 의미하였다. 그러므로 강은 고구려 건국의 신성한 모태를 상징하고 있다. 또한 희망의 땅으로 들어가기 위한 통로이자 낙토의 길목으로, 추격병에 쫓긴 주몽이 별의 도움을 받아 강을 건너 졸본부여를 건설하였다.
강은 이쪽과 저쪽을 구분 짓는 경계선을 상징한다. 그래서 “강 건너 불구경”이나 “강 건너 호랑이”라는 말은 강의 거시적 거리만큼 나와는 상관없다는 뜻을 나타낸다. 또 옛사람들은 꿈에 강을 보면 길조라고 했고, 특히 강물이 집안으로 밀려들면 좋은 일이 있을 징조라고 하였다. 이처럼 인간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강에 대해 미국의 시인 W. C. 윌리엄스는 말했다. “강은 어디에선가 시작되어야 한다. 강의 시작은 모든 곳의 시작을 의미한다.”




충북 괴산 화양동계곡의 제9곡인 파천. 오랜 시간에 걸쳐 자연이 만들어 낸 절경이다.


“멈추어라, 순간이여” 경탄하게 되는 강


성격이 내성적인데다가 친구들로부터 적잖게 따돌림을 받았던 나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그런 나날이 계속되자 자연스럽게 혼자 노는 방법을 터득했다. 다름 아니라 내가 자연 속으로 들어가 자연이 되는 놀이였다.
학교가 파하기가 무섭게 집으로 돌아와 할머니가 밭을 매는 가는골이나 시암골의 시냇가에서 가재를 잡으며 보냈다. 가재를 잡다 보면 ‘이 시냇물이 어디를 흘러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궁금해져서 삼촌이나 고모에게 물어도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프랑스의 시인 프랑시스 잠도 <우리 조상들이 살았던 마을의>라는 시에서 나와 똑같은 생각을 했었다. “그늘 속에서 그 물이 어디로, 그토록 멀리 어디로 흘러가는 지 나는 궁금해 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물의 끝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려고 하던 내 어린 시절을 다시 보는 것이었다.” 나는 슬플 때나 기쁠 때마다 어린 시절 작은 손으로 돌을 들추며 가재를 잡던 추억을 간직하고 지금까지 살았는지도 모른다. 세월이 흐른 뒤 내가 가재를 잡으며 보낸 꿈같은 유년 시절을 지켜본 그 시냇물이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강이라고 일컬어지는 섬진강의 발원지 부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평생을 내 곁에서 그림자처럼 떠나지 않는 강에 대한 그리움은 이미 그때부터 예정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강은 그 후로도 나를 언제나 소년처럼 들뜨게 하였고 가끔은 망연자실한 채 바라보게 하였다. 강에 대한 숙명적인 그리움으로 나는 한강과 낙동강, 금강, 섬진강, 영산강을 비롯한 한국의 10대강을 걷는 도보답사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한 발 한 발 걷기 시작해서 그 강들을 서너 번씩 걸었다.
길은 항상 평탄하지 않고, 낯설었으며, 힘에 겨웠다. 다리가 아파서 쉴 때면 문득 떠오르던 생각. ‘저 모퉁이 돌아가면 어떤 풍경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아픈 다리를 일으켜 모퉁이를 돌아가면 기적처럼 아름다운 풍경들이 나타났다. 경북 안동의 가송리 부근, 강원 정선의 구미정 부근, 전북 순창의 장구목 부근과 무주의 용포리 부근. 지금도 그 강들을 떠올리면 가슴이 뛴다. 아름다운 경치를 만날 때 덩실덩실 춤을 추었던 서경덕, 주저앉아서 통곡했던 김시습, 그리고 《파우스트》에서 “멈추어라, 순간이여. 너 정말 아름답구나.”라고 경탄했던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 강을 따라가며 느끼는 소회였다.




경북 봉화 청량산 부근에서 낙동강을 따라 걸었다. 인간에 의해 파괴되고 오염된 강은 그래도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흐른다.


강의 시절은 어느새 사라지고


오랫동안 강을 따라 걸으며 한국 역사 속에서 강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조선 후기 실학자인 이중환은 역모사건에 몰려 수차례 국문을 받고 오랜 유배생활을 마친 뒤에 사대부들이 살 만한 곳은 어디인지 찾아 나섰다. 그는 이십여 년 간 우리 국토를 헤매고 다닌 뒤 《택리지》를 짓고 다음과 같이 삶터를 규정했다.
“오직 시냇가에 사는 것은 평온한 아름다움과 시원스러운 운치가 있고, 또 관개의 농사짓는 이점이 있다. 이러므로 ‘시냇가에 사는 것이 강가에 사는 것보다 못하고, 강가에 사는 것이 바닷가에 사는 것보다 못 하다’는 말은 옳지 못하다.”
그러한 연유 때문인지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관직에서 물러나면 강가에 터를 잡고, 후학을 가르치거나 공부에 전념하며 남은 생애를 보냈다. 황희 정승은 경기 파주 임진강변의 반구정, 이황은 경북 안동 낙동강변의 도산서원, 이이는 황남 해주의 석담구곡 근처, 송시열은 충북 괴산의 화양동계곡에 거처를 마련했다.
오늘날은 어떤가? 대도시의 강가에는 조망권이 좋은 아파트가 가격이 비싼데도 사람들이 몰려들고 한적한 강가에는 별장이나 음식점, 펜션들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고 있다.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시인 김수영이 <거대한 뿌리>라는 시에서 말했던 것처럼, 삶터를 경치 좋고 한적한 강가에 마련하는 경우가 이어지고 있다.
예로부터 사람들의 삶은 강을 중심으로 발달했고, 그런 연유로 고대국가는 대부분 큰 강 주변에 생겨났다. 지게나 수레, 말이 운송수단이던 시대에 배가 다니는 강은 고속도로나 하늘길 같은 역할을 했으므로 강가에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펼쳐졌다. 모든 길은 강을 중심으로 하여 만들어졌고, 이 길은 사람이 살고 있는 마을을 지나갔다.
그러나 현대에 접어들어 육지교통이 발달하면서부터 강은 사람들의 삶과 기억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도시 근교를 제외하고 강가에 살던 사람들이 자꾸 떠나기 시작했고, 빈집들이 늘어났다. 강이 곧 도(道)이고 길이 곧 도이던 시절은 어느새 사라지고, 강 마을은 소외된 채 길은 속도로서만 존재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강원 정선 부근 한강 줄기에서 나무다리를 건너는 모습. 강이 곧 길이던 시절은 어느새 사라졌지만, 여전히 우리는 강에 기대어 산다.


“안동 똥물 대구가 먹고, 대구 똥물 부산이 먹는” 현실


고대인들은 자연을 따르고 자연의 이치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고 여겼고, 노자 역시 “만물은 자연스레 생성한다”고 했다. 그래서 생태학자들은 조그만 하천에다 보를 막는 것조차 자연에 대한 인간의 간섭이기 때문에 자연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강을 살리자’라는 구호의 물결 속에서 대운하가 계획되다가 4대강사업이 온 나라를 휩쓸고 지나간 뒤,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나타나고 있다.
선종의 격언에 “물의 가르침을 이해하고자한다면 그 물을 마셔라.”라는 말이 있다. 그 말처럼 30여 년 전만 해도 강가에 살던 사람들은 흐르는 강물에 채소를 씻고, 그냥 마셔도 괜찮았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 낙동강 유역에 사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안동 똥물 대구가 먹고, 대구 똥물 부산이 먹는다.”는 말이 사라지지 않는 상황에서 제방에 갇힌 채 오염될 대로 오염된 물을 그냥 마실 사람이 과연 있겠는가?
동학의 2대 교주였던 해월 최시형은 《개벽운수》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세상의 운수는 개벽의 운수라. 천지도 편안치 못하고 산천초목도 편안치 못하고 강물의 고기도 편안치 못하고 나는 새 기는 짐승도 다 편안치 못하리니, 유독 사람만이 따스하게 입고 배부르게 먹으며 편안하게 도를 구하겠는가? 선천과 후천의 운이 서로 엇갈리어 이치와 기운이 서로 싸우면서 만물이 다 싸우니 어찌 사람의 싸움이 없겠는가?” 이 말처럼 사람과 사람이 싸우고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이름 아래 자연을 거스르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말해야 한다. 강을 사랑하는 이여, 강에 기대 사는 이들이여. 강을 따라 천천히 걸어보시라. 삼라만상이 내는 모든 소리가 깃들어 있다는 강물소리를 들으며 듣고, 생각하고, 기다리는 법을 배우시라. 이익과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먹고 살아야 한다’는 핑계로 인간에 의해 파괴되고 오염된강이 그래도 머무르지 않고 흐르면서 그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는 것을 바라보시라. 작은 물방울에서 비롯된 강물이, 오염되고 작은 물길들까지 하나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여 겸손하게 낮은 곳으로만 흘러서 망망한 바다로 가는 것이 강이다. 그래서 니체는 말하지 않았는가? “강을 보라.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그 근원인 바다로 들어가지 않는가?” 수많은 질곡의 세월을 거치며 영원의 바다로 들어가는 강을 따라 걸으며 강과 사람이 하나라는 것, 사람도 역시 그 강물처럼 흐른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시라.
시인 T. S. 엘리엇은 <네 개의 사중주>에서 유장하게 흐르는 강을 두고 “인간들이 잊고 싶은 것을 회상시키는 자”라고 노래했다. 세세로 흘러온 한국의 강이 오천 년 우리 역사의 숨결과 유장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채 흐르도록 하는 것은 오로지 우리들의 몫이다. 강이 살아야 사람이 살고, 자연의 미래가 있다.




↘ 신정일 님은 사단법인 우리땅걷기 이사장으로 한강, 낙동강, 금강, 섬진강, 영산강 등을 도보 답사했습니다. 《새로 쓰는 택리지》 10권을 비롯해 60여 권의 저서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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