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호 2014년 7월호 살림,살림

[ 시골살림 길잡이-직접 만드는 농사 연장 ]

탈핵 낫

글 전희식



우리 동네에 고수 농사꾼이 있는데 못 다루는 기계가 없고 용접에다 미장은 물론 배관과 전기까지 만능 일꾼이다. 매년 여름에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 길가 풀을 깎는 날이 있는데 이 양반이 지팡이를 짚고 발목 깁스를 하고서 나타났다. 안전 장구를 다 했는데도 예초기 작업을 하다가 돌멩이에 날이 부러지면서 정통으로 발목으로 날아들어 크게 다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접었던 꿈 하나를 다시 펼쳐들기 시작했다. 바로 예초기를 대체하는 대형 낫을 만드는 일이다.


서서 쓰는 필리핀의 반달 낫


오죽하면 버스를 세워서 유심히 살펴보았을까? 필리핀 북부 바기오지역에 전통농업 견학을 갔다가 차창 밖으로 보니 사람들이 뻣뻣하게 서서 풀을 깎고 있었다. 낫을 들고 쪼그리고 앉아서만 풀을 베는 걸로 알았다. 그런데 서서 풀을 베니 일하기도 편하고 능률도 우리하고는 비할 바가 아니다.
옛 소련 국기에 나오는 반달 모양 대형 낫인데 끝이 안쪽으로 살짝 휘어져 낫이 지면에는 수평으로 닿았다. 잠시 양해를 구하고 직접 해 보니 두 손으로 하는 작업이라 힘도 덜 들었다. 귀국하자마자 혹시나 하고 철물점에 가서 물어보았지만 역시나였다. 인터넷 쇼핑몰을 뒤져도 없었고 농기구 전문 매장에도 마찬가지였다. 예초기를 쓸 때 가장 고약한 것이 매캐한 매연이다. 배터리로 돌아가는 예초기도 있긴 하다. 그래도 여전히 맘에 들지 않는 것은 그 귀한 풀들이 고속으로 돌아가는 예초기 날에 완전 박살이 나서 풀을 밭에 깔아줄 수 없이 그냥 버려야 한다는 점이다. 가장 안전하다는 나일론 끈 예초기도 그런 면에서는 똑같다. 예초기는 진동과 소음으로 몸을 괴롭혀서 한 시간 이상 일을 할 수가 없다.
필리핀에는 있는데 대한민국에 왜 없을까 싶어서 백방으로 수소문했지만 없었다. 너무 발전한 나라라는 게 문제다. 모든 것들이 자동 아니면 전동 공구여서 수작업 농기구는 종적을 감춘 지 오래다. 쇼핑몰에 나온 대형 낫은 수초를 베는 것이거나 가면무도회에 쓰는 장난감 플라스틱 낫이 전부다. 풀과 나무 잔가지까지 쳐내려는 용도에는 맞지 않았다.


2만5천 원짜리 수동 예초기

‘반달형 대형 낫’을 포기하고 있었는데 예초기에 다친 동네 사람을 보고는 다시 수색에 나섰다. 웬만하면 석유를 쓰지 않는 농사를 짓겠다는 다짐과도 맞아 떨어지기에 그 농기구를 구하고야 말겠다는 오기도 생겼다.
지성이면 감천인가? 작년 가을에 그 낫이 나타났다. <한겨레21>에 연재하는 강명구교수의 칼럼에서 본 것이다. 이름은 달랐지만 내가 바라는 바로 그 낫이었다. 이름이 ‘사이드’라고 하는데 강교수는 도깨비낫이라고 불렀다.
얼른 검색을 했더니 아뿔싸, 너무 비쌌다. 국내 제품은 없고 외국에서 수입하는 것인
데 20~30만 원대였다. 궁리하다가 인터넷에서 사진을 몇 장 뽑아서 동네 대장간을찾았다. 그런데 아쉽게도 주인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대장간은 폐쇄되고 없었다. 다른 지역 장날에 맞춰 대장간을 찾아가서 사진을 보여드리고는 손짓발짓 해 가며 그림까지 그려 보였다.
대장장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참을 궁리하다가 못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유는 뻔했다. 비싸게 치여서 못 만든다는 것이라 돈은 얼마든지 드릴 테니 염려 말라고 했다. 슬그머니 겁이 났지만 흥정을 해서라도 만들고 싶어서 얼마 드리면 만들겠냐고 했더니 놀랍게도 2만 원 달라고 했다. 이런 횡재가!
그렇게 해서 열흘 뒤에 찾으러 갔더니 내가 그린 그림보다도 훨씬 기계공학적이고 신체구조적인 낫을 내놓았다. 낫 길이가 40㎝에 달하고 약간 묵직해서 힘도 잘 받게 만들었다. 맘에 꼭 들어서 2만5천 원을 드리자 대장장이 아저씨는 긴 자루까지 하나 끼워 주었다. 반달형으로 만들면 낫에 감기는 풀 양이 너무 많아 힘들다고 하면서 직각을 조금 넘는 각도로 만들었고 낫의 목을 안쪽으로 살짝 휘어서 허리를 안 굽혀도 낫의 날이 지면에 수평을 유지하도록 한 기막힌 작품이었다.
집에 오기 바쁘게 휴대용 금강석 숫돌을 옆에 차고 밭으로 올라갔다. 낫을 잘 갈아 그동안 엄두를 못 내던 묵은밭에 가서 풀을 베어 보았다. 풀은 물론 밭두렁 찔레가시랑 조팝나무까지 단숨에 날아갔다. 점차 요령도 생겼다. 허리에 반동을 줘 가며 상체를 돌리면 2~3m까지 풀들이 나란히 쓰러졌다. 이전엔 찔레가시를 벨 때 팔뚝을 찔려 가며 기어들어가 낫으로 베었는데 이제는 낫을 살짝 걸고 당기기만 하면 내 몸에 생채기 하나 안 내고 나무가 속절없이 잘려났다.
풀들은 고스란히 걷어서 감자밭과 고추밭에 덮으니 일석이조, 일석삼조였다. 매연도 소음도 없고 지형에 따라 낫질 반경을 조절할 수 있고 장애물이 있으면 마음대로 피해갈 수도 있으니 엔진 예초기는 이제 무덤으로 가야 할 처지가 된 것이다.
휴가 나온 아들에게 낫을 보여주고 일을 시켰더니 신기해하면서 군말 없이 일을 했다. 농사꾼에게는 연장이 좋아야 하지만 연장이 재미까지 있으면 금상첨화다. 작년 가을에 심었던 호밀도 순식간에 다 베어내고 호박을 심었다.
밀양 송전탑 건설을 강행하면서 할머니들이 경찰들에게 들려 나오는 장면을 보고 낫 이름을 바꾸어도 될 것 같았다. 전기를 쓰지 않는 ‘탈핵 낫’!



↘ 전희식 님은 농민생활인문학 대표이고 녹색당 농업위원장입니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의 존엄성을 지켜드리자는 생각에 전북 장수군 산골로 가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 삶을 《똥꽃》, 《엄마하고 나하고》, 《시골집 고쳐 살기》 등에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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